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196
196
뱃길이 막히면 참칭파를 비롯하여 대공령 전체를 지탱하는 권위가 위협받는다.
콘라트의 수입원이 무역로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나, 이만한 대군을 유지하려면 봉역에서 거둬들이는 조세만으론 턱없이 부족했다.
“팔색조 군도의 통제권은 반드시 사수해야만 한다. 가문 함대가 괴멸되었더라도, 도시 국가의 선단이 남아있지 않나. 그들에게 협조를 구하라.”
식은땀을 흘리던 가신이 답했다.
“하오나 전하. 도시 국가를 대표하는 이오폴릭투스 총독이 환어음 결제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습니다.”
대공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가당치도 않은 소리냐. 분명 모든 부채는 내가 황금 옥좌에 즉위한 뒤에 일괄적으로 상환하도록 보장하지 않았나.”
“···이미 수송 계약에 너무 많은 환어음을 체결했다면서, 대금을 현물로 지불해달라 요청하더군요.”
전쟁 중 모든 거래를 현금으로 진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가뜩이나 제국 내 복잡하게 뒤엉킨 국경을 감안하면 군비를 조달하는 것만으로도 추가비용이 발생한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현물을 요구하는 건 당분간 그쪽과의 거래를 끊겠다는 표현이나 다름없었다.
“빌어먹을 하플링 같으니! 그간 누구보다도 전쟁의 수혜를 누렸으면서!”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 콘라트조차 거친 언사를 내뱉었다. 스트레이커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베르겐푸르트에서의 패전이 도시 국가들에도 전해진 모양입니다. 전세가 기울어지니 그 약삭빠른 쥐새끼들이 발을 빼려는 것이겠죠.”
그러자 콘라트 옆에 배석된 오펠부르크 변경백이 항변했다.
“패전이라니? 란츠크네히트 연대는 여전히 손실을 회복하지 못했고, 적의 기병 전력은 궤멸되었거늘! 용병 나부랭이가 전투 경과에 대해 함부로 논하지 마라!”
거듭 출신을 들먹이니 스트레이커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나마 제가 퇴로를 안배한 덕분에 아군이 와해되지 않고 병력을 보전한 겁니다. 반면 각하께선 끝까지 응전을 고집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네놈들이 전열에 가세했다면 전황이 어찌 되었을 줄 알고! 멋대로 전장을 이탈한 탓에 기세가 꺾인 것이다.”
둘의 대립은 단순히 지휘관으로서 성향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스트레이커는 노련한 야전 지휘관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고, 반대로 변경백은 기존 귀족 가신 파벌의 거두였다.
군막의 공기가 과열될 기미가 보이자 콘라트가 나섰다.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해 더는 논하지 말게나. 나는 어느 지휘관도 책망할 의사가 없네. 베르겐푸르트 전투의 실책은 우리에게도 뼈아픈 일이었으나, 마찬가지로 베르나드 역시 우리 못지않은 피해를 보았으니 전략적 우위는 점하지 못했다.”
그는 전령을 향해 단호히 일렀다.
“그자가 원하는 대로 봉역에서 금화를 수송하여 넘겨라. 단, 해역의 운송이 확실히 보호받게끔 조치하도록.”
대기하고 있던 서기들이 황급히 서신을 작성하자 콘라트가 거기 대고 인장을 찍었다.
참모들이 헐레벌떡 뛰쳐나가는 전령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변경백이 말했다.
“도시 국가 측이 돌변한 건 베르겐푸르트의 소식 때문만은 아닐 거요. 우리가 교전을 회피하면서 보인 태도 탓에 자칫 전쟁에서 밀리는 듯한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는 것이외다.”
“아직도 회전을 고집하시겠다고요? 사령술사와의 일전은 우리에게 손해만 강요될 뿐입니다.”
“당장 그놈과 전장에서 맞붙겠다는 게 아니다! 지금 병력을 유지할 여력마저 위협받고 있는 마당에 언제까지고 놈의 술책에 질질 끌려다닐 순 없지 않나!”
은연중 군막에 모인 지휘관들의 눈빛에서 각기 다양한 정서가 표출되었다. 변경백처럼 분개하는 이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사령술사가 보인 위용을 두려워했다.
“전하, 전쟁에 있어 적극적 공세를 취해야만 흐름을 주도할 수 있습니다. 마침 수확철이니 연대를 분산하여 물자를 징발하시지요.”
즉각 스트레이커가 반대하고 나섰다.
“지금 약탈을 하자는 겁니까? 이 땅의 민중들도 장차 전하께서 다스릴 신하들입니다! 그간 약탈을 자중했던 건 전하의 의중이지 않았습니까!”
“이미 베르나드에게 찬동하는 봉역이나 도시들은 파악해두지 않았나. 우리에게 대항하는 이들에게서 수급하면 그만이다.”
비릿한 미소를 흘린 변경백이 지도를 두드렸다.
“이는 단순히 보급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베르나드의 지지 기반까지 뒤흔드는 것에 의의가 있다. 지지자들의 권역령은 보호한다면 저들에게 누굴 따라야 할지 명확히 새겨줄 수 있을 터.”
“위협을 가해봤자 되려 그들의 반발만 일으킬까 우려스럽습니다.”
스트레이커의 우려를 무시한 변경백은 콘라트를 바라봤다.
“전하, 아무리 사령술사가 부리는 군세가 위협적이라도 그가 온 권역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순 없습니다. 여름이 지나면서 놈의 군세도 한결 수그러들었지요. 지금이야말로 적기입니다!”
아직 비축해둔 물자는 넉넉하지만, 마냥 상황을 낙관할 순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변경백이 직접 약탈을 거론한 이상, 지지부진한 전황으로 인해 축적된 제후들의 불만도 묵과하기 어려웠다.
“적대적인 권역령들에 대해선 물자 징발을 허가하겠네. 단, 회전을 피하는 방침은 유지하지.”
///
그간 주둔하는 성채를 옮겨 다니기만 하던 참칭파에 변화가 생겼다.
‘흩어지고 있네.’
토드는 아즈트룽엔의 등에 올라탄 채로 적의 동태를 예의주시했다.
연대 단위에 못 미치는 병력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군소 제후들의 봉역이나 방비가 빈약한 도시들을 들쑤셨다.
놈들은 굶주린 이리떼와 같았다. 주된 돈줄이 위협받으니 곳곳에서 수탈을 서슴지 않았다.
눈에 띄는 족족 이스라나 구울처럼 기동성이 빠른 하수인을 활용하여 약탈 부대를 소탕하곤 있으나, 어디선가 노획품을 싣고 참칭파의 군영으로 진입하는 행렬이 거듭 이어졌다.
‘약탈 행위가 이곳 근방에서만 그치지 않고, 제국 권역령에 걸쳐 방대하게 자행되고 있어.’
베르겐푸르트에서 제법 많은 적병을 갈아버리긴 했어도, 여전히 콘라트를 지지하는 세력이 우세하다.
‘그렇다고 직접 대공의 주력이 주둔하는 본진을 치자니 그것도 여의치 않고.’
문제는 콘라트의 본대가 주둔하는 요새.
전통적인 성채들과 달리, 야트막한 담벼락에 가까운 성곽이 각 모퉁이를 육각형 꼴로 보완하는 형태였다.
─성형 요새다. 콘라트가 본녀에게 몇 번 보여준 바 있지. 근래 들어 도시 국가 쪽에서 유행하는 방어 시설이노라.
얼핏 성벽이 드높은 전통적인 성채들보다 공성 난이도가 낮아 보이지만, 문제는 모서리마다 위치한 포루였다.
아무래도 포신 각도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기존 성채와 달리, 성형 요새는 사각이 존재하질 않았다.
“저기에 하수인들을 수천, 수만씩 들이부어봤자 소용없겠군요.”
─콘라트는 수비 병력이 작정하고 저기 틀어박히면 수년이고 견딜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게다가 성형 요새의 오른쪽엔 강이 흐르고 있어 건너편에 별도의 보루를 세워두고 일대를 철통같이 틀어막고 있었다.
강물을 통해 끊임없이 약탈한 노획품들을 전달받고, 요새 인근엔 토사로 방벽과 제방까지 구축하여 이중으로 방어한다.
연신 요새를 살피던 토드는 예의 음흉한 미소를 흘렸다.
“뚫어낼 수 없다면, 제 발로 기어 나오게끔 만들어야겠죠.”
─어떻게?
“일단 제가 가리키는 대로 날아가 보세요.”
야음을 틈타 유해룡은 유유히 구름에 모습을 감춘 채 날아갔다. 요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밀밭이었다. 이미 수확할 시기가 조금 지났지만, 양측의 군대가 대치하니 마땅히 거둬갈 농부들마저 도망친 모양이었다.
“이 일대에 숨결을 최대한 살살 뿌려주세요.”
토드의 지시에 제법 광활한 밭을 돌아본 아즈트룽엔이 불만스러운 듯 콧김을 흘렸다.
─사령술사, 본녀더러 숨결을 요청할 거라면 차라리 놈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 쓸어버리면 그만 아니더냐.
앞발로 무성한 곡식들을 파헤친 유해룡이 안광을 번쩍였다.
─본녀는 아즈트룽엔이다! 나더러 이깟 미곡 따위에 숨결을 허비하라고? 받아들일 수 없노라!
토드는 등뼈를 두드리며 속삭였다.
“잘 생각해보세요. 아즈. 자칫 당신이 요새에 접근했다간 촘촘하게 구축된 화망에 뼈마디도 추리지 못할 겁니다.”
─본녀의 존함을 멋대로 줄여 부르지 말거라!
“아무리 숨결을 쏟아부어도 저들이 안쪽에 파둔 참호에 몸을 숨긴다면 막상 사상자는 얼마 안 될 겁니다.”
─흥! 바퀴벌레나 다름없는 열등 종자들 같으니. 떼 지어 번성하는 것이나, 쉽게 박멸되지 않는 습성마저 닮았노라.
열등종을 깔보는 드래곤 특유의 성질머리는 여전했다. 정작 자신이 그토록 경멸하는 열등종을 등에 태우고 있다는 건 망각한 걸까?
토드는 하수인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이어나갔다.
“당신처럼 장엄한 존재는 모르겠지만, 우리 인간들은 가옥에 기거하면서 숱하게 바퀴들과 맞닥뜨리곤 한답니다. 이따금 눈 떠보면 머리맡에서 갈색 더듬이를 손질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가 있는데···”
생생한 묘사를 곁들여주니 기겁한 아즈트룽엔이 기겁했다.
─으엑! 진짜 벌레랑 뒤엉켜 산단 말이냐! 척추뼈가 오싹하도다! 벌레 싫어!
“슬프게도 인간은 지상에 빌붙어 아등바등 살아가는 운명이니만큼, 자연히 그 땅에 기거하는 미물들과 동고동락할 수밖에요. 그래서 자주 마주치는 만큼, 퇴치 방법도 잘 안답니다.”
─집을 불태워버리면 되는 것이 아니냐?!
“그럼 그날로 잠잘 곳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바퀴를 확실하게 박멸하려면 알집에 독을 뿌리는 게 제일입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지 유해룡은 두개골을 기울였다.
─굳이 알집을? 돌아다니는 개체들을 잡아서 죽이는 것도 아니고.
“바퀴는 증식력이 어마어마하지요. 일일이 잡아들이려면 구석에 숨어드는 습성이 있어서, 그 수고로움을 이루 말하기 어렵답니다.”
─숨기까지 한다니! 지독한 놈들.
“그래서 알집에 독을 발라놓으면, 오가는 놈들이 죽어버리죠.”
히죽 웃은 토드는 밀밭을 가리켰다.
“어때요. 알집이 그득하게 찬 것 같지 않습니까?”
슬쩍 밀밭을 둘러본 유해룡의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번뜩였다.
─놈들이 여기까지 수확할 거라 생각하느냐? 워낙 약탈하는 놈들의 숫자가 많아서, 너조차 모든 놈을 잡아들이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참칭파의 보급선을 누가 담당하고 있는진 몰라도, 호위가 철통같은 탓에 습격할 때마다 토드도 하수인을 지속적으로 잃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론 식량을 나르는 수레만 공격할 작정입니다. 하수인들의 작전 역량도 효율적으로 분배해야겠죠.”
식료품을 제외하고 화약, 철 따위의 보급품을 운송하는 보급병들은 관대하게 보내준다.
모든 수송을 차단하긴 어려워도, 점차 목을 조이면 저기 숨어있는 병력 전체가 허기에 시달리게 될 거다.
─정말 악독하고, 치졸한 방식이로다.
토드는 어깨를 들썩이며 대꾸했다.
“이게 사령술사의 방식이니까요.”
사아아···!
유해룡의 입가에서 흘러나온 증기가 곡식에 스며들었다. 맹독 숨결이 토드의 지시에 따라 최대한 옅은 농도로 드넓은 반경에 흩뿌려졌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끔, 낱알이 시들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그러나 독소는 확실히 작용할 수 있도록.
///
토드가 획책한 대로 식량 보급에 차질이 생기자, 견디다 못한 참칭파 병력들이 인근 밭에 자라난 작물들을 수확해갔다.
의외로 놈들은 군견에게 밀알을 먹여보거나, 샅샅이 색을 살피는 등의 철두철미함을 보였다.
‘그래도 소용없지. 내 하수인이 된 이상, 마력이 닿지 않으면 아무런 징후가 없거든.’
토드는 유해룡과 더불어 은밀히 그늘에 몸을 숨긴 채 지켜보기만 했다. 병사들은 무사히 수확물을 챙겨 요새로 돌아갔다.
당장에라도 낭송을 읊조리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지만, 꾹 참아야만 했다.
일단 파종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성급하게 싹을 틔워선 안 된다.
‘체내에 무사히 안착하기까지 충분한 숫자가 쌓여야만 해.’
만족스러운 양의 알곡을 거두려면 저주의 매개가 더 뿌리내려야만 한다.
토드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그리고 음기가 극에 달하는 보름달 무렵, 성형 요새가 내려다보이는 상공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성형 요새 곳곳에서 희미한 불빛들이 반짝인다. 아무리 기감이 예민한 자라도 너무나 미미하고 가늘어서, 쉽사리 느끼지 못할 편린들. 오로지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마력광이었다.
대강 헤아려봐도 숫자가 제법 상당했다.
“어디, 이래도 버티나 볼까요?”
고개를 내저은 아즈트룽엔은 창백한 날개를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너는 본녀가 보아온 인간 중 단연 흉험한 자노라.
“후후, 칭찬 감사합니다. 아즈.”
─넌 머리가 어떻게 돼도 단단히 잘못되었다. 이게 칭찬으로 들리더냐?? 그리고 그 괴상한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했는데···!
익살스러운 미소를 흘린 토드는 입가에 손을 갖다 댔다.
“쉿, 쉿! 아무리 높은 고도라고 해도 이러다가 듣겠습니다. 자, 이제 재밌는 일들이 시작될 테니 잘 보세요.”
대략 자정이 지났을 즈음, 불침번을 교대하려는 병사 중 변소를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제 시작이네요. 처음은 조금 메스꺼운 정도로 시작해서, 참기 어려운 복통이 시작되죠.”
변소라고 해봐야 이런 방어 진지에서 열악한 구덩이가 전부. 유달리 병사들의 인상이 핼쑥해진다.
“그러다가 역한 기운이 목청까지 올라오고···”
파리해진 얼굴의 병사가 입을 틀어막았다.
“우읍, 웩. 크헥.”
“전신에 독소가 전이되면서 내부 장기들이 파괴됩니다.”
동이 틀 무렵, 요새 곳곳에서 시름시름 앓던 병사들이 떼거리로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군영 내에 역병이 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번져나갔다. 부관들은 신속하게 병사들을 통솔하여 시신을 아마포로 감싸고 매장토록 지시했다.
그러나 참칭파에게 내린 재앙은 역병이 도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았으니···.
땅을 파는 데 매진하던 병사는 문득 아마포가 들썩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어···.”
움찔.
분명히 머리께에 덮어둔 천이 움직인다.
삽질을 멈춘 병사가 황급히 군의관을 불렀다.
“나리! 모리츠가 살아있는 것 같은데요?”
“헛소리 마라. 허버트. 괜히 땅 파기 귀찮아서 요령 피우는 건 아니고?”
“아니, 제가 분명히 봤습니다요! 저것 보세요! 지금도 자꾸만 움찔거리는 게, 뭔가 착오가 있는 게 분명···”
어느샌가 모리츠가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비록 아마포를 덮어두고 있어 얼굴이 보이진 않았으나, 분명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병사가 중얼거렸다.
“···착오가 아니라면. 그 검은 남작의 사악한 권능뿐인데.”
군의관도 침을 삼켰다.
“그럴 리 없다. 허버트. 사령술사도 마법사이니만큼 주문을 낭송하려면 일정 거리 내로 접근해야만 해. 포대가 여길 단단히 지키고 있는데, 어떻게 들어온단 말이야.”
왠지 모를 오한이 느껴졌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기엔 늦은 여름인데.
“아, 아마포를 거둬봐라. 상태를 확인해보게.”
그의 재촉에 못이긴 허버트는 겨우 전우에게 드리운 아마포를 향해 손을 뻗었다.
텁.
그런데 대뜸 모리츠가 자신의 손목을 부여잡았다.
그의 손은 명백히 푸르스름한 빛으로 괴사되어 있었다.
“우왁!!”
기겁한 허버트가 사력을 다해 손을 떼려 했으나, 평소에도 비실대던 놈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손아귀가 억셌다.
그대로 허버트를 잡아당긴 모리츠가 입을 벌리고, 자연스레 뒤덮인 아마포가 흘러내렸다.
【흐으, 으어···!】
이지를 잃은, 공허한 눈동자가 보였다.
모리츠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침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녀석의 피부는 썩은 치즈처럼 푸르딩딩한 빛깔이 감돌았다.
산 사람이 아니다.
시체다!
산 송장이 그대로 병사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끄아아악!!”
애처로운 비명이 효시였던 걸까. 사방에서 아마포에 덮어뒀던 사망자들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자신의 동료가 게걸스럽게 고기를 탐하는 모습을 멍하니 응시하던 병사들은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에 만찬이 가득했다.
그들의 눈엔 푹 고아낸 스튜, 메추라기, 과일 따위로 보였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모리츠가 뜯어먹던 닭고기가 허버트로 돌아온 것 같았지만, 알게 뭐람.
【으어어···!】
마지막 기억이 속을 게워낸 거라 그런지 배가 고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