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68
068
악마들은 태생적으로 허기에 시달린다.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선 필멸자들의 부정적인 정서를 빨아먹어야 한다.
악마 숭배에 있어 산 제물이 필수적인 까닭은 그 때문이고, 고문을 즐기는 것도 마찬가지.
찰나의 여흥을 참지 못한 대가.
혹독하게 치러야 할 거다.
되살아난 존재는 확고한 존재감을 흩뿌렸다.
이변을 눈치챈 드레토모스도 단숨에 토드를 으스러트릴 생각이었는지, 손아귀에 힘을 주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뜨드득-!!
악마의 손목이 끊어졌다.
졸지에 토드를 놓친 드레토모스가 반대편 손을 뻗었지만, 땅에서 솟구친 기둥이 훼방을 놓았다.
“이 쥐새끼!”
고함친 드레토모스는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지면에서 솟구친 뿌리가 악마의 팔을 부여잡았다.
“카아악!”
드레토모스가 발을 구르자 땅바닥이 갈라졌다. 악마는 거칠게 뿌리를 걷어내곤 사방으로 불길 서린 칼날을 내질렀다.
연신 길게 뻗어 나간 잿가루들이 폭발을 일으킨다. 끓어오르는 대지.
번져나가는 화염과 연기가 자욱했음에도 사내의 인형만큼은 선명했다.
드레토모스가 그를 향해 검을 겨눴다.
“다 죽어가는 놈을 살려봤자 대적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그러자 불길을 해쳐나온 망자가 대꾸했다.
【충분하지. 이 정도면 차고도 넘치지요.】
죽은 주술사의 눈동자에 귀기 어린 빛이 흘러넘쳤다. 드레토모스는 죽은 자의 몸에 머물러 있는 존재를 인지했다.
“어떤 허물에 숨는다 한들, 네가 보인다. 마법사야. 그 꼭두각시를 부수고, 너를 찾아내 죽이겠다.”
【나를 죽이겠다고.】
오드람에게 빙의한 토드가 그를 향해 비웃음을 던졌다.
【네가?】
두 명의 목소리가 겹쳐서 울렸다.
천공으로부터 으르릉대는 소리가 심연의 구덩이까지 치달는다.
여태껏 토드는 하수인을 조종하면서 이렇게까지 일체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몸인 것처럼 반응성도 좋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대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 육신에 머물러 있는 이상, 두려울 게 없다. 토드는 달려오는 악마를 향해 손을 비틀었다.
쩌정!
벼락 줄기가 정확히 드레토모스의 정수리에 내리꽂혔다. 순간적인 고열은 악마의 육신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지, 왼쪽 뿔의 끄트머리가 녹아내렸다.
낮게 신음한 드레토모스가 지면을 박차고 도약했다.
술법에 일방적으로 농락당하지 않고, 단박에 거리를 좁힐 작정이다.
투사 계급답게 육박전에는 자신이 있나본데, 토드 역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엄연히 주술사는 술법을 근간으로 다재다능한 클래스. 변신술을 사용한다면 근접전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계통이다.
토드는 엄지를 깨물어 피를 뿌렸다.
【내게 곰과 같은 힘이 깃든다.】
순식간에 피부를 허물고 육중한 짐승의 육체로 거듭난다. 아무래도 죽은 상태에서 변신한 탓에 옆구리의 갈비뼈가 조금 드러났지만, 이 정도면 멋으로 남겨두자.
곧바로 토드는 손을 휘둘러 드레토모스와 충돌했다.
쿵!!
맞부딪친 드레토모스가 오히려 나가떨어졌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악마를 향해 토드는 앞발을 내리찍었다.
【서릿결이 몰아치리라!】
토드의 입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고, 돌풍과 더불어 송곳처럼 뾰족한 우박이 드레토모스를 향해 쏟아졌다.
검의 열기로 술법에 응수한 악마가 다시 달려든다.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무수했다.
여기서 매 형상으로 변해 거리를 벌리면서 술법을 퍼부을 수도 있고, 토템들을 소환하거나 저주로 디버프를 걸거나, 아니면 버프를 전신에 도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레벨 99의 스펙을 온몸으로 체감해보고 싶다. 더욱이 수족처럼 다룰 수 있는 몸뚱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서.
토드는 곰 형상으로 변신한 상태에서 맞붙었다.
칼날이 뱃가죽을 타격했지만, 뚫지 못했다. 지옥의 불길로도 베지 못하는 살갗에 악마가 당황했다.
토드는 드레토모스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우직.
단숨에 가슴팍이 내려앉고, 뼈가 장기에 파고든다. 특유의 용암 같은 고온의 혈액이 튀기고, 악마가 쇳소리를 흘렸다.
“케-에-엑!”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음에도 악마는 권능을 발현했다. 놈이 바닥에 쏟아낸 피가 병장기로 변해 일어선다.
사방에서 창칼이 곰의 육신을 찔러댔지만, 토드는 가볍게 손을 휘둘러 이쑤시개 부러트리듯 털어냈다.
무릎으로 악마를 가격하자, 놈의 몸이 앞으로 꺾였다. 앞발을 치켜든 토드는 발톱을 세워 등판을 긁어내렸다.
불꽃처럼 번들거리는 피가 튀긴다.
‘이놈, 싸움 방식이 이렇게 투박한데!’
드레토모스는 단번에 토드가 몸싸움에 익숙하지 않다는 걸 파악했다.
그럼에도 악마는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압도적인 무력의 투사.
여태 오드람과 세 차례나 싸워왔지만, 이렇게까지 일방적으로 밀린 적은 없었다.
오로지 분노와 갈망만으로 살아온 지옥의 투사가 점점 무력감에 잠겼다.
쿠웅.
턱이 돌아간 드레토모스가 또 지면을 뒹굴었다. 매번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는 악마를 지켜보면서 토드가 히죽 웃었다.
‘좋아, 좋아. 샌드백치곤 근성이 있네.’
토드는 지금 사령술사의 저열한 몸뚱이론 느껴본 적 없는 강력함에 취해 있었다.
레벨 99의 육신은 그야말로 전능했다.
별다른 기술을 사용할 필요 없이, 근력만으로 투사 계급에 속하는 악마를 갖고 노는 수준.
‘이것도 나름 재밌네.’
끝내주는 스포츠카를 잠시나마 체험해본 느낌이었다. 그마저도 대여 기간이 짧은 렌트라니.
아쉽지만, 토드와 오드람의 경지 차이가 급격한 탓인지 육신이 빠르게 부패하고 있었다.
‘그래도 주술사는 질리도록 했잖아. 여기서도 별반 다를 건 없네.’
주술사가 이 정도라면. 사령술사는 99에 어떤 모습일까.
눈앞에 그 토대를 쌓아줄 황금 고블린이 있다.
악마는 거칠게 꼬리를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토드를 떨쳐내려 했지만, 토드는 몸으로 분진을 받아내며 악마를 몰아붙였다.
잿가루가 둘 사이에 뿌려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놈을 두들겨 패는 데만 열중했다.
콰콰쾅!!
폭발의 여파로 튕겨 나간 드레토모스의 몰골은 처참했다. 뿔 한쪽은 녹아내렸고, 가슴팍은 허물어졌는데 등 뒤론 뼈가 튀어나왔다.
악마는 초월적인 존재지만, 물질계에 강림하려면 피육으로 만들어진 육신이 필요하다.
덕분에 드레토모스는 생전 겪어본 적 없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비명을 지를 일말의 여유조차 없다.
다리에 힘을 주어 바닥을 차오른 토드가 주먹을 쥐었다. 망치로 내려찍듯, 악마의 머리통을 두드렸다.
꽝, 꽝, 쩌억!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 토드는 내리치는 대신, 발톱을 밀어 넣었다.
“아아악!”
드레토모스가 새된 비명을 토해내며 버둥댔다. 제법 살갗이 두꺼웠지만, 조금만. 조금만 더 힘을 주면 열릴 것 같다.
별수 없이 여기선 술법을 첨가했다.
【어머니 대지의 권능이 내게로!】
토드의 양팔이 부풀어 올랐다. 악마의 두개골을 부여잡은 손아귀에서 발간 핏물이 샘솟는다.
으직.
한계까지 열어젖힌 뼈가 으스러지고, 거세게 발악하던 악마의 움직임이 멎었다.
드레토모스의 뇌수는 기름처럼 격렬하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지글거리며 바닥에 쏟아지는 체액을 보곤 토드가 혀를 찼다.
【쯧쯔, 이렇게 머리가 뜨거우니 생각 없이 세상을 불태우겠다고 지껄이기나 하지.】
여기가 얼마나 멋진 곳인데.
그런데 머리통이 깨진 상태에서도 드레토모스는 엉금엉금 기어갔다.
바퀴벌레도 울고 갈 경이로운 생명력에 토드가 감탄했다.
【목숨이 진짜 질긴데. 이러니 내가 몇 번이고 널 놓쳤지.】
말해놓고 토드가 움찔거렸다. 혓바닥에 감도는 위화감에 돌연 머리가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오드람이 아니고?’
아무래도 일체감이 좋은 만큼, 뭔가 부작용이 있는 게 틀림없다. 게다가 자꾸만 의식적으로 말투가 섞이는 듯한 느낌도 기묘했다.
머리를 내젓는 토드를 대고 드레토모스가 중얼거렸다.
“어, 떻게··· 소생된, 놈이, 강해질 수, 있단.”
【원래 난 만렙이었거든.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찍어봤다고.】
드레토모스의 다리를 짓누르자 놈이 꿈틀댔다. 토드는 그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어디, 머리를 깨부숴도 살아있으니, 심장을 터뜨려도 움직이나 볼까?】
핏물을 쏟아낸 악마가 대꾸했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 마라, 놈. 나는, 반드시.”
콰직!!
앞발이 단숨에 악마의 심장을 으깨버렸다.
토드가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돌아오던가. 말던가.】
자진해서 업을 꼬박꼬박 상납해주겠다는데, 오히려 감사하지.
드레토모스의 육신에서 찢어지는 포효가 울려 퍼지더니, 심장에서 빠져나간 기운이 순식간에 지하로 빨려 들어갔다.
육신의 구속력을 잃은 악마가 다시 지옥으로 추방되는 광경이었다.
존재를 떠받드는 영혼도 걷히니, 굳세던 육신에 불꽃이 휘감겼다. 순식간에 발화한 잔해는 잿가루도 남기지 않고 산화했다.
토드는 입맛을 다셨다.
‘악마들은 시체도 안 남겨? 영양가 없는 놈들일세.’
악마를 사령술로 일으켜 보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래도 나중 가면 좀 강한 녀석들은 드레토모스처럼 껍데기를 빌리는 게 아니라, 본신을 직접 끌고 나오지 않나?
그놈들을 기대해보는 수밖에.
토드는 집중을 끊고, 다시 의식을 회복했다.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니 무력감이 치밀어 올랐다.
그토록 충만하던 힘을 도로 뺏어간 기분이라, 몸이 사슬에 묶인 듯한 기분이었다.
‘이게 빙의의 여파인가. 그리 길지도 않았고, 사용한 권능도 많지 않았는데.’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공허함이었다. 그래도 애써 정신을 가다듬은 토드는 우선 의식을 하강시켰다.
층계가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다소 어수선한 느낌을 풍겼지만, 최종적으로 드레토모스를 살해하면서 층계가 39까지 단숨에 상승했다.
‘오드람의 업을 아직 거두진 못한 건가?’
분명 목숨을 거뒀음에도 그의 업은 정산되지 않은 듯한 모양새였다.
의식계에서 돌아온 토드는 곧바로 오드람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는 창백한 낯빛으로 토드를 응시했다.
【···자네, 지금. 나는······.】
오드람은 어딘가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다.
【지금, 이 육신에 남아있는 기억들은 뭔가?】
나라면 굳이 돌려 말해주느니, 차라리 담담하게 사실을 알려주는 게 나을 것이다.
“레벨 99 주술사. 오드람. 영매들의 우상으로 칭송받고, 제국에 맞서 군세를 일으킨 스칼바냐르의 대군장. 후단의 대제사장이었죠.”
토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플레이했던 바로는 그렇습니다.”
주술사의 눈이 떨렸다.
【···그런가.】
깊게 한숨을 흘린 그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다행이야.】
“무엇이요?”
【나는 줄곧 내가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해서 움직이는 건 아닌가, 진정 모든 행적이 내 의지로 결정되는 게 맞는 것인지 의심해왔다네.】
오드람이 쓴웃음을 흘렸다.
【죽음에 이른 뒤에야 그 해답을 알게 되다니.】
그에 따르면 토드가 플레이했던 주술사 캐릭터의 여정과, 오드람의 생애는 상이했다.
분명 큰 줄기는 비슷하게 맞물렸으나, 인생의 말년에 이르러선 오드람은 무력으로 스칼바냐르를 결속하는 대신, 이곳이 더 나은 삶의 터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후회되진 않습니까? 굳이 자신을 제물로 바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대체할 방법은 있었을 텐데요.”
오드람은 고개를 저었다.
【···말로 설명해봤자 뭐하겠나. 직접 보여주겠네.】
그가 토드를 향해 손짓했다.
【따라오게나. 이 밑에 요른카리의 지맥이 모여드는 곳이 있네.】
“음. 잠시만요. 챙길 분이 하나 계셔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토드는 마력을 흩뿌리다가, 붕괴된 잔해 속에서 그을린 갑옷을 찾아냈다.
사령술사가 작게 탄식했다.
“이스라.”
계약이 끊기진 않았지만, 그토록 시끄럽던 죽음의 기사는 고요했다.
이리공에게서 탈취했던 츠바이헨더는 날이 부러져 있었고, 철판은 일그러진 채로 조각났다.
끊임없이 의념을 불어 넣어봤지만, 도통 응답이 없었다. 계약으로 묶인 사자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있었다.
【자네에게 각별한 존재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토드는 어긋난 각도로 돌아간 손목을 맞춰줬다.
“막상 같이 지낸 시간이 길진 않은데, 뭔가 공들여 데리고 다녔던 것 같기도 하고요.”
【자네의 힘이라면 나를 살려냈던 것처럼, 충분히 되살릴 수 있지 않겠나.】
토드가 미간을 좁혔다.
“애매합니다. 이스라는 당신과 달리, 격이 그리 높진 않아서, 이렇게 손상의 정도가 크면 수복이 쉽지 않을 겁니다.”
손해인가? 아니. 이미 드레토모스를 처치한 업만으로도 스칼바냐르에서의 여정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더불어 앞으로 오드람의 숙원까지 이뤄준 뒤에 얻을 업까지 계산해도.
그런데 여전히 기분이 묘했다.
아직도 빙의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탓인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이스라를 내보내는 판단이 틀렸던 걸지도.
오드람이 토드의 어깨를 짚었다.
【지맥으로 가세. 나는 영매들의 맥을 봉할 테니, 자네는 거기서 사령술사들에게 행한 봉인을 풀게나.】
그는 가뿐히 이스라를 들어 올렸다.
【그러면 자네의 충직한 기사에게 뭔가 취할 만한 방법이 생길지도.】
“······.”
구겨진 투구 속은 안광 없이 캄캄했다.
토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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