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necromancer in a fantasy game RAW novel - Chapter 77
077
“일꾼들이요? 저긴 빈집···.”
딸랑.
방울이 흔들린다. 그 뒤에 홀연히 싸늘한 바람이 일행을 훑고 지나갔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생각합니다.”
토드는 흩날리는 망토 자락을 다잡으며 속삭였다.
“하지만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여, 존재하지 않을까요?”
“북부에서 보았던 망령들과 달리, 저 폐가에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걸요. 이렇다 할 업이나 기운도.”
“그건 저들이 미약한 잡귀라 그렇습니다. 존재감이 흐릿하죠.”
사령술사는 제자에게 방울을 쥐여주곤, 허물어진 문턱을 넘어섰다.
“영혼은 물과 같습니다. 끊임없이 흘러가야만 정순함을 유지할 수 있지요. 너무 한자리에 오래 머물렀다간 고이고, 썩어버립니다.”
끼익, 끼익.
낡은 바닥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비명을 질러댔다. 그게 마치 영혼들의 울부짖음처럼 들렸는지 쇠렌은 연신 괴상한 소리를 흘리며 몸을 비틀어댔지만, 뒤에 이스라가 있었다.
“저들의 숙명은 영혼의 대해로 나아가는 것. 그래야만 삶과 죽음의 순환이 원활해집니다.”
“영혼들이 영멸하지 않고, 이승에 계속 머무르는 게 순환에 영향을 미치나요?”
“물론이죠. 당장 이 집만 하더라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쨍그랑!
돌연 찬장에 있던 유리병이 떨어지자, 쇠렌이 기겁했다.
“흐익!”
일행의 시선이 쏠리자 그는 벌벌 떨며 답했다.
“나, 난 건드리지도 않았소.”
유리병은 정확히 쇠렌이 걸어가던 경로상에 있었다. 아마 두 발자국 정도만 걸었어도 정확히 머리에 떨어졌을 거다.
이를 지켜보던 산시아가 중얼거렸다.
“어쩌면 우리가 벌집을 건드리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이들은 여기서 조용히 머무르고 있는데, 우리가 침입한 것처럼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산시아. 썩은 물가의 부패가 심화되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십니까?”
사방에 어지럽게 널린 잔해가 가득하다.
어둠이 드리운 그림자는 끊임없이 불길한 상상력을 자극해온다.
앞서 걷던 산시아조차 침을 삼켰다.
“일단 거기 있던 생물들은 절멸할 테고, 병을 퍼뜨리는 원흉이 되지 않을까요.”
토드가 미소지었다.
“훌륭합니다. 이렇게 영혼들이 모여드는 터 역시 비슷한 작용을 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폐가를 점거한 정도에서만 그치겠지만···.”
말꼬리를 흐린 토드가 향로를 휘두르자, 무언가 재빠르게 바닥을 뛰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빛이 밝힌 곳엔 먼지 쌓인 가구들만 있었다.
“사기(死氣)가 축적될수록, 명계와 물질계를 잇는 문이 열리게 됩니다. 우린 이미 북부에서 그 해악을 충분히 보고 왔잖습니까.”
“악마들이 튀어나오는 건가요.”
“하물며 판가우처럼 인구가 밀집된 곳이라면 악마뿐만 아니라, 다른 존재들도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딸랑, 딸랑. 딸랑. 딸랑!
어느 지점에 이르러 방울이 거세게 울려댔다.
“일단 여기서 멈춥시다. 보아하니 여기가 터의 중심인 듯 보이는군요.”
토드는 바닥에 향로를 내려놓고는, 일행들에게 초를 나눠줬다.
“각자 발치에 세 개씩 켜두세요. 혹시라도 불이 안 붙으면 말씀해주시고요.”
초를 건네받은 쇠렌은 허겁지겁 불을 붙이며 푸념을 흘렸다.
“젠장, 내가 살다 살다 귀신들린 집에 발을 들일 줄이야.”
【자네는 온갖 상황을 겪은 것치곤, 유별나게 이런 걸 두려워하는군?】
“말도 마쇼. 난 어려서부터 기가 허했다고. 맨날 주술사들이 눈 까뒤집고 제자리에서 방방 뛰는 꼬라지를 볼 때마다 까무러치는 게 일상이었는데.”
【하, 하! 하. 뭐하러 실체도 없는 허깨비들을 두려워하나? 그래 봤자 생전에 인간이 아니었던가.】
가슴팍을 두들긴 이스라는 토드가 내민 양초도 마다했다.
【올 테면 와보라지!! 그깟 유령 나부랭이들 따위!! 기사도 정신에 입각하면 기백으로 퇴치할 수 있다네!!】
그러면서 옛 기사단 군가를 제창하며 발을 구르는 것이, 여간 시끄러운 고성방가가 아니었다.
“옘병, 귀 떨어지겠소! 기사 양반! 이러다가 괜히 가만히 잠들어 있던 놈들까지 죄다 뛰쳐나오겠구만!”
문득 이스라를 응시하던 쇠렌은 의심스러운 투로 물었다.
“혹시 겁나니까 일부러 그러는 거 아뇨?”
대번에 투구 속 안광이 흔들렸다. 파멸의 기사가 그를 향해 호통쳤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북부에서 전사들과 거인, 악마까지 베고 돌아왔거늘! 왜 내가 겁을 낼 거라 생각하나?】
“이, 이거 보쇼! 평소엔 자기를 본인이라고 지칭하더니, 말투에서 본심이 드러나지 않소!”
둘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토드는 손바닥에 단검을 그었다. 핏방울을 그러쥐고, 향로의 불을 꺼트린다.
치익···.
주변의 어둠이 짙어진다.
발치에 놓인 초는 6개.
이것만으론 불빛이 너무 희미했다.
시끄럽게 떠들어대던 둘은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눈치를 살피다가 은근슬쩍 쇠렌의 초가 있는 곳으로 발을 옮기는 이스라였다.
“산시아. 지금부터 제가 행하는 의식을 잘 보고 배우세요. 저는 이 터에 머무르는 영가들을 불러낼 겁니다.”
“스승님은 구마 의식을 행하시려는 건가요?”
“구마, 혹은 퇴마는 결국 영을 퇴치하거나 간곡히 달래서 내보내는 데 그칩니다. 하수의 임시방편이죠.”
토드가 오묘한 미소를 흘렸다.
“우리는 그 이상을 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염원을 품고 우리에게 순응하는 자들은 자비를 베풀어 눈물 거두나···.”
어디선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속삭임에 쇠렌이 움찔댔다.
“우리의 부름을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거부하는 자들은 피로 굴종하여 전송할 겁니다.”
귓가를 간질이던 미세한 소음이 점차 웅성거림으로 바뀌자, 절로 이빨이 딱딱 부딪쳤다.
방울을 집어 든 토드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내가 너희들을 부르노라. 잠들어있던 망혼. 음지에 기거하는 그림자. 버려진 처소에 깃든 떠돌이.”
불이 꺼진 향로에서 끊임없이 향연이 피어오른다. 안개처럼 깔린 연기는 생자와 사자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하나둘씩 형체를 갖고, 손짓하며, 때론 목소리를 내어 답한다.
“내가 여기 왔노라. 나는 사령술사 토드다.”
어느새인가 일행의 주변을 온통 희끄무레한 존재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가택 곳곳, 심지어 바닥과 천장을 뚫고 나오는 형체들을 보고 쇠렌은 졸도할 뻔했다.
“씨이발··· 폐가에 많이들 있다고 이야기는 익히 들었는데, 이건, 완전 귀신 소굴이잖아.”
이스라는 말없이 안광을 불태우며 유령들과 바짝 눈싸움을 벌였으나, 예상보다 많은 숫자에 사뭇 압도되었다.
“가로되, 그대들 가운데 여길 다스리는 터주는 누구인가?”
유령들이 일제히 좌우로 갈라진다.
동시에 산시아와 쇠렌의 초가 하나씩 꺼졌다.
가장 형체가 뚜렷한 개체가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나다.】
제법 강력한 영가다.
선원들이나 입을 법한 복장을 걸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판가우의 배경을 감안하면 생전에 해적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령술사라고.】
“그렇습니다.”
왼쪽 눈에는 찢겨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너덜거리는 살점 위에 새파란 안광이 흩날린다.
【잠들어 있던 혼령들의 안식을 방해한 저의가 뭐냐.】
이에 토드는 당당히 주변을 가리켰다.
“이 가택을 청소해주셨으면 합니다. 거미줄은 걷어내고, 먼지도 좀 털고요.”
다소 황당한 요구에 영가는 우두커니 부유하다가, 폭소를 터뜨렸다. 덩달아 주변에 몰려든 유령들까지 요란하게 웃었다.
수십 기의 유령들이 흘리는 웃음소리는 실로 섬뜩했다. 산시아도 안색이 파리하게 질릴 정도.
치이익.
촛대가 두 개밖에 남지 않았다.
눈가를 훔친 영가는 위아래로 토드를 훑어내렸다. 비리비리해 보이는 몸뚱이에 의욕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흐리멍덩한 눈동자.
토드를 낮잡아본 영가가 낄낄댔다.
【어처구니가 없군! 보아하니 풋내기 흑마법사나 영매 정도로 보이는데, 네깟 놈이 우리 모두를 부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영가의 머리가 수직으로 비틀렸다. 다른 유령들 역시 기괴하게 사지를 뒤틀며 으르렁거린다.
기어코 쇠렌의 몸이 기울어지자, 이스라가 그를 부여잡았다.
【이런! 이 작자가 정말!】
급기야 초를 걷어차면서 쇠렌과 이스라 쪽엔 어둠이 내려앉는다. 그래도 이글거리는 이스라의 안광 덕인지 유령들이 쉽사리 접근하진 않았다.
【겁도 없이 내 거점에 기어들어 와놓곤, 기껏 하는 소리가 잡일을 시키겠다니. 흐흐!】
“당신의 거점이라고요? 이제부터 여긴 제 겁니다. 집도 돌아봤으니, 돌아가서 계약만 하면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셈이죠.”
【이제 보니 겁이 없는 게 아니라, 정신이 나간 놈이었구나.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를 불러낼 수도 없지.】
이에 토드도 응수했다.
“판가우 자유시에선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주택의 권리를 양도받습니다. 도장을 찍은 건 제가 될 테니, 엄연히 당신은 남의 집에 기생하는 불법 침입자인 셈이죠.”
품에서 흐릿한 칼을 뽑아 든 영가가 속삭였다.
【그렇다면 네놈을 살려 보낼 필요가 없겠구나. 여기서 그 건방진 혓바닥을 뽑고, 손발을 자르면, 계약을 할 수도 없을 테니.】
“흠. 제안을 거절하시는 겁니까?”
【제안이고 자시고, 난 여기서 13년 동안 터줏대감으로 군림해왔다. 이 일대의 유령들이 내게 굴종하는데, 감히 내 앞에서 이리 건방지게 굴어?】
유령들의 시선이 닿은 피부가 따끔거린다.
“13년이면 지박령치고 오래 묵긴 했네요. 빨리 성불이나 할 것이지, 귀신들 골목대장 노릇이나 하려고 여기 머무르는 걸까요.”
샤아악···!
바람 휘날리는 소리와 더불어 유령의 칼이 날아든다. 곧장 쇠렌을 내팽개친 이스라가 난입했다.
카앙!
검녹색 휘광이 흐릿한 칼날을 막아 세웠다.
이스라를 마주한 영가는 사뭇 놀란 기색이었다.
【너 또한 죽은 놈이로군. 어찌 죽은 자가 산 자를 섬기고 있나?】
【본인은 기사로서 사령술사 토드를 따르고 있노라. 네놈이 함부로 손대는 걸 불허하겠다!】
검을 거둬들인 이스라는 곧바로 발을 구르며 영가를 밀어냈다. 보통 혼령들은 오랫동안 존재를 유지하기 어려운데, 10년 넘게 한 자리에서 머물렀다는 건 꽤 강력한 영체라는 방증이다.
다만 칼을 섞을수록, 점점 이스라가 몰아붙이는 양상이었다.
【하, 하! 하. 이놈! 폼만 잡을 줄 알지, 막상 검술 실력은 별거 없구나!】
파멸의 기사는 영가를 상대로 압도적 우위를 점했다. 그동안 실전을 겪으면서 이스라의 기량도 물이 올랐다.
‘성장했구나. 괜히 내가 다 뿌듯하네.’
혀를 찬 영가가 눈을 번뜩였다.
【덤벼드는 꼴이 광견과 다를 바 없군.】
【뭐라!】
발끈한 이스라가 검을 내지르자, 순간 영가의 신형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이스라는 당황해서 주변을 두리번대다가, 별안간 아무것도 없는 구석으로 달려갔다.
【이놈! 같잖은 요술을 부리다니! 그래 봤자 내 검 앞에선 무용하다!】
콰직, 우지끈!
이스라는 애꿎은 탁자와 판자들을 부수고,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둘러댔다.
【하, 하! 하. 내 검이 어떠냐! 설령 유령이라 하더라도, 꺾이지 않는 불패의 정신만 있다면 능히 베어낼 수···】
‘음. 정신 공격 쪽에 취약하다는 걸 미처 생각 못 했네.’
대개 망자들은 환영에 영향을 받지 않지만, 지성이 존재하는 고위 망자들은 생전의 인식 체계를 답습하려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갑주에 있던 문양도 악마가 죄다 박살 냈지. 저것도 다시 맞춰줘야 하나.’
파멸의 기사가 되면서 어느 정도 물리 내성은 갖춰졌으니, 주문 내성과 관련된 문양을 물색해봐야겠다.
어차피 쾨흘링과 스칼바냐르를 거치면서 수중에 자금은 넉넉했으니.
어느새 곁에 다가온 영가가 음침하게 웃었다.
【그리 자신만만하게 굴더니. 꼴이 우습구나. 사령술사.】
마지막으로 남은 촛불이 위태로이 흔들린다.
불이 거의 잦아 들어갈 즈음, 영가가 속삭였다.
【내가 살아있을 적에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해주마. 살점을 하나하나 떠가며, 죽지 않을 정도로 발려내는 게 주특기였지.】
토드가 빙긋 웃었다.
“그렇군요. 그럼 앞으로 발골 작업은 그쪽이 도맡아서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크흐, 제대로 정신 나간 놈이군. 아직도 떠들어댈 여력이 있다니.】
촛불이 꺼졌다.
어둠이 내려앉고, 주변의 유령들이 다가온다.
산시아가 발톱을 뽑아 들려는데, 그녀를 만류한 토드는 의념을 흘렸다.
‘마르커스.’
쿵!
어디선가 포탄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관짝이 바닥에 요란하게 뒹굴었다.
‘여기에 악령들이 득실거립니다.’
그리고 쏜살같이 달려온 빛줄기가 어두운 가택을 환히 밝혔다.
회색 갑주를 차려입은 성전사가 검을 겨눴다.
【악령?! 아니, 제기랄! 이 망할 몸뚱이가 또 지 멋대로···.】
표정을 일그러트린 마르커스가 자꾸만 구시렁대자, 왼손이 머리통을 뽑아버렸다.
그리곤 제멋대로 턱을 움직이며 소리쳤다.
【솔마르시여!! 여기 악령들이 가득하구나!! 불길한 존재들, 구주의 이름으로 모두 징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