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nowned Genius At My Arts High School RAW novel - Chapter (69)
69화. 출전
일주일 후. 전국대회가 열리는 토요일 아침.
집결지인 서인대학교 대운동장으로 전세버스와 봉고차, 승용차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세현예고 마크가 달린 빨간 스쿨버스 두 대도 차분하게 미끄러져 들어왔다.
치이익-.
버스 문이 열리고 조금 긴장한 얼굴을 한 애들이 차례로 내렸다.
“사람 겁나 많네.”
차윤희가 나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많긴 많네.”
이 정도 인원이 한자리에 모인 건 대학 시절 단과대 엠티를 떠나는 애들을 볼 때 정도였나.
그것도 미술대학은 아니고 인문대 정도 돼야 이만한 규모가 아니었을까.
아니지. 그보단 아주 어릴 적 어린이날 어린이대공원에 갔을 때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대충 숫자를 헤아려 보던 수현이 이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흩트렸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저쪽인가 봐!”
운동장 한쪽에 본부로 보이는 대형 텐트가 있었다. 요강에 따르면 본부에 고유번호가 적힌 참가표를 보여주고 번호를 뽑아 시험장에 입실하는 식이라 했다.
“가보자.”
애들과 함께 수현이 본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세현예고 파이팅!”
“얘들아, 잘하고 와! 긴장하지 말고!”
시험장까지 따라온 김윤수와 김여진 선생의 힘찬 응원이 애들의 머리 꼭뒤에 가깝게 와닿았다.
***
“난 51번.”
“17번.”
“오, 31번. 우리 같은 반이다.”
“그러네?”
“난 96번.”
“103번.”
“217번.”
“1032번.”
“2063번.”
잠시 후, 입장 번호를 뽑은 애들이 우르르 몰려 서로의 번호를 확인했다.
같은 시험장에 배정된 애들은 몇 없었다. 그리고 수현은,
“와, 나만 멀리 떨어졌네?”
2513번, 51번 시험장.
다른 애들과는 건물도 다른 외딴 교실에 홀로 당첨됐다.
“에이. 뭐 같이면 어떻고 따로면 또 어때. 어차피 그림 그리기 시작하면 떠들지도 못하고 아는 척도 못 할 건데. 히잉. 그래도 아쉽다, 한수현.”
덤덤한 척하던 차윤희가 한 문장을 맺기도 전에 아쉬움을 드러냈고.
“점심이나 먹자.”
수현이 싱긋 웃으며 도시락을 들어 보였다.
시험장은 12시 시험에 맞춰 개방된다고 했다. 해당 강의실 위치를 미리 확인한 애들이 긴장을 풀며 옹기종기 모여 도시락을 열었다.
번호표를 받는 데 시간이 꽤 걸릴 거라 예상해 일찌감치 출발했더니 시간은 아직 넉넉했다.
도시락 먹을 장소도 문제없었다. 운동장 스탠드와 학교 벤치, 매점이 개방돼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거다. 돗자리도 센스 있게 준비했고.
문제는 오히려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뭐야, 쟤들 세현이야?”
“그런가 봐. 딱 티 나네.”
“재수 없어. 지들이 여기 전세 냈어? 왜 우르르 떼로 몰려다녀?”
“그러게. 하, 저러면 우리가 뭐 비켜줄 줄 아나 보지?”
“짜증 나, 진짜.”
저들끼리 하는 소린지, 들으라는 얘긴지 헷갈리는 볼륨의 목소리.
그리고 이런 도발엔 넘어가는 법이 없는 차윤희가 고개를 휙 돌려 곧바로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냈다.
“어, 우리 세현인데 왜?”
“어? 나?”
“어. 너 좀 전에 세현 어쩌고 하지 않았어? 할 말 있는 거면 제대로 하지?”
“허, 너한테 한 소리 아닌데?”
“아, 그래? 엄청 크게 들려서 들으라는 건 줄 알았네.”
“……뭐야, 별꼴이야, 진짜.”
“어, 아무것도 아니면 됐고.”
“진짜 뭐야……?”
당황하며 웅성거리는 애들을 모른 척, 차윤희가 피식 웃더니 다시 도시락 테이블로 얼굴을 돌렸다.
“밥 먹자!”
태연하게 숟가락을 드는 차윤희.
애들이 통쾌하다는 듯 웃었고, 수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막상 겪어보니 생각났다.
그래, 학교 밖에선 이런 시비에 휘말리는 일이 많았지.
특히 세현 애들을 경쟁 상대로 삼고 비교당하는 일이 많은 중앙예고 애들은 무턱대고 세현예고를 깎아내리거나 근거 없는 험담을 늘어놓거나, 싸움을 걸어오는 일이 잦았다.
수현이 슬쩍 좀 전 차윤희와 부딪쳤던 애들을 훑어보았다.
‘역시 중앙이네.’
세현 애들은 전부 사복 차림인 데에 반해 중앙예고 애들은 전원 교복 차림이었다. 그러니 수현은 얼른 중앙예고 애들을 알아볼 수 있었으나, 반대쪽에서 세현을 알아본 건 의외였다.
‘스쿨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지켜본 건가.’
하긴 70명이 우르르 다니니 눈에 띌 만도 했을 거다. 교복까지 맞춰 입고 무리 지어 다니며 시선을 휘어잡으려 했는데, 세현에 이목이 쏠리는 게 못마땅했을 수도 있고.
‘그나저나 중앙 애들도 꽤 많이 참가했나 보네’
대략 40명쯤은 돼 보였다.
만약 과거대로 사건이 흘러가고 있다면, 중앙예고는 이 전국대회에 많은 자원을 투자했을 터. 여러모로 세현이 눈엣가시일 수 있었다.
‘자극할 필욘 없겠어. 괜히 피곤해지기만 할 테니까.’
그래도 다행인 건 중앙예고 전원이 세현에 적의를 표하는 건 아니란 점이었다.
어쨌든 마찰을 일으키는 건 서로 득 될 게 없으니 얼른 밥을 먹고 조용히 흩어지는 게 좋겠다 싶었는데 차윤희도 비슷한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괜히 건드리는 거야. 우리 기분 상하게 하고 컨디션 망치려고.”
이런 상황이 제법 익숙하다며 차윤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우린 쌤들 말씀만 잘 기억하면 돼. 하던 대로만. 흔들리지 말고. 알았지?”
“그래. 우린 괜찮아.”
“어, 오히려 윤희 네가 좀 흥분한 것 같은데.”
“맞아. 윤희야, 물도 좀 마셔. 너 맨밥만 계속 떠먹어도 괜찮아?”
다행히 애들은 평정심을 유지하며 서로를 또 격려했다.
3,000명의 전국대회 참가자.
그중 30%인 1,000명 정도는 예고 출신이었다.
세현예고 70명, 중앙예고 40명, 이하 양원예고, 한민예고, 강한예고 외에 각 지역별 예고까지 20여 개 예술고에서 난다긴다하는 애들이 다 나온 거다.
일반고, 드물게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참가자 중에도 실력자는 있겠으나 애들이 주시하는 건 예고 출신, 그중에서도 상위권 학교에서 온 참가자들이었다.
시험장에 들어가기 전 서로 견제하고 신경을 긁는 게 어쩌면 당연할 수 있었고.
‘그리고, 1차 시험 후엔 여기서 1/6 정도만 남게 되겠지.’
수현이 참가자들을 둘러보며 가늠했다.
선생님들은 1차 시험에선 기본적인 드로잉 능력을 확인하는 정도일 거라 했지만 그건 세현예고 애들의 수준에 맞춘 얘기일 뿐.
대상을 포함, 최종 수상자가 11명인 전국대회에서 3,000명이나 되는 애들을 본선까지 끌고 갈 리 없었다.
지난 대회들을 봐도 본선 진출자는 대략 200~500명 내외.
이번 대회 역시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
“밥 다 먹었어?”
더 시비를 걸어오는 애들은 없었지만, 이대로 자리에 뭉개는 게 불편했는지, 도시락을 빠르게 치운 차윤희가 애들을 넘겨다보며 진도를 확인했다.
“어, 다 먹었어.”
“난 한 숟가락 남았어. 이거 마저 먹을래. 6시까지 아무것도 못 먹는다잖아.”
“걱정 마. 막상 그리다 보면 배고프단 생각, 하나도 안 들걸? 막 정신없을 텐데?”
“맞다. 물은 가져갈 수 있지? 대회 요강에 물이랑 음료는 반입 가능하다고 했던 거 같은데?”
“어, 물은 괜찮아. 근데 너무 마시지 마. 화장실 들락날락하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잖아, 쌤이.”
슬슬 식사를 마친 애들이 도시락 가방을 정리했고, 수현도 묵직한 도구 가방을 어깨에 메고 일어났다.
그리고, 잠시 후.
“쟤야?”
“헐, 진짜? 쟤가?”
“맞는 것 같은데?”
“와, 쟤래. 쟤.”
홀로 떨어져 51반 시험장 앞 복도에 선 수현은 수군거리는 애들이 신경 쓰여 미칠 지경이었다.
처음엔 대회 내용을 생각하느라 듣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수군거리는 말소리가 귀에 와 콕콕 박혔다.
“세현예고 신의 손?”
“미술전시회 그랑프리?”
“와, 그게 쟤야?”
“얼굴만 봐도 느낌 있다. 그림 엄청 잘 그릴 것 같아.”
“아니, 저런 애가 나오면 우리 같은 애들은 완전히 들러리 아니냐?”
차윤희처럼 대놓고 내 얘길 왜 하느냐고 묻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자리를 떠날 수도 없고.
무표정하게 계속 안 들리는 척 서 있으려니 곤욕이었다.
놀랍기도 했다.
세현예고 안에서나 통하는 별명, 세현예고 안에서 있던 이벤트들을 다른 학교 애들이 어떻게 꿰고 있는 건지.
‘하여튼, 신기한 동네라니까. 말들도 많고.’
수현이 손목시계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이제 11시 42분.
입실은 45분부터 시작이니 3분만 더 버티면 되겠구나.
속으로 180까지 천천히 숫자나 세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수현에게 뜻밖의 사건이 일어났다.
“저, 안녕?”
오른쪽 뒤편에서 들려오는 수줍은 남자애의 목소리.
“어?”
무심코 뒤돌아본 수현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아, 안녕. 난 김민준이라고 해. 중앙예고 미술과 2학년.”
수현은 그저 말문이 막혔다.
김민준. 이 아이와 이런 식으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물론 전국대회에 나올 거란 건 짐작하고 있었다. 다만 먼저 다가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과거 수현은 대학에 진학한 후, 동아리 활동을 통해 김민준을 알게 됐다. 그러니 지금은 아무 접점도 없는 시기.
그런데 김민준은 어떻게 나를 알고 접근한 걸까.
“너, 한수현이지?”
스포일러는 당사자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나, 네 그림 본 적 있어.”
“내 그림을?”
“작년 세현예고 미술과 전시회. 거기 출품한 그림.”
“아. 그래.”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생글거리는 김민준. 조금 앳돼 보이기는 했으나 느낌은 예전 그대로였다.
무해하게 보이는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주던 그 시절과 같은 서늘하고 음침한 느낌.
“신기하네.”
수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림에 내 사진을 붙여놓은 것도 아닌데, 그 그림을 그린 게 나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어?”
불쑥 물어보는 말에 김민준이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보통의 아이라면 무심코 넘어갈 말이었다. 무엇보다 상대가 호감을 표하며 다가오고, 제법 괜찮은 외모에 실력까지 갖췄는데 의심의 눈길로 따지는 일은 흔하지 않은 법.
그러나 수현은 김민준이 어떻게 자신을 알고 접근한 건지 진위를 따져 묻고 있었다.
“미안. 내가 아는 척해서 혹시 기분 나빴니?”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김민준은 분위기를 자기 쪽으로 몰아가는 데에 탁월했다.
수현에게 바로 사과하며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화제를 돌렸다. 정작 수현이 던진 질문은 슬쩍 피하면서.
“아, 혹시 전시회에 왔던 건가? 아니다. 경매 행사 때 온 모양이구나?”
그러나 고작 고등학생인 김민준에게 페이스를 잃을 수현이 아니었다.
한 번 더, 고집스럽게 자신을 알게 된 경로를 묻자 김민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경매 때 갔었어. 우연히 네 그림도 보고, 너도 그때 스치듯 봤거든. 애들이 널 두고 말들을 많이 해서 기억하고 있었지.”
“아. 그래. 그랬구나.”
잠시 어색한 공기가 흐르던 때였다.
띠리링.
입실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이제 들어가야겠는데?”
“아, 넌 51반이야? 난 바로 옆 반이야. 52반.”
“그래.”
“어. 시험 잘 봐. 한수현.”
“응. 고마워.”
수현이 고개를 끄덕이곤 자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왜 거짓말을 하는 거지?’
그리고 수현은 잠시 고개를 기울였다.
김민준이 경매에 왔을 리가 없었다. 세현예고 전시는 그야말로 가족적인 분위기, 외부인이 찾는 건 극히 드문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경매 행사는 학부모와 미술계 주요 인사들 외에 초대받지 못한 손님은 입장이 불가했다.
아무래도 김민준이 수현을 알게 된 배경에는 말 못 할 찜찜한 이유가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