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158)
#158. 섭외 제안
마지막에 돌발적으로 건네받은 시나리오 때문에 놀라긴 했어도 재인은 팬 모임에 무척 만족했다. 인원이 적어서 할 수 있는 방법인 게 아쉬울 만큼 여유롭고 편안한 만남이었다.
“이제 뭐 할 거야?”
“그러게. 뭐 할까?”
“글쎄…….”
“해변이라도 갈까? 한국은 아직 춥지만 여긴 괜찮은 것 같더라.”
“그럴까?”
“응. 오늘은 늦었으니 호텔로 가고, 내일 바닷가 가서 수영도 하고 해산물도 먹고 하자.”
멀지 않은 곳에 유명한 해변이 있는데 그냥 가기 아까웠다. 10대 휴양지로 꼽히는 곳 중 하나라 경호차 와 준 사람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터였다.
‘굳이 이렇게 보호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출국할 때마다 이십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그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움직이는 게 과하게 느껴졌다. 지난 프로모션 투어도 그렇고 이번 광고 촬영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갈 것 같은데, 다들 걱정이 지나친 것 같았다.
“팀장이랑 알렉사한테는 내가 얘기할게. 내일 해변 간다고.”
“어, 그럼 키퍼 팀장님한테는 내가 알릴게.”
키퍼 팀장에게 연락하기 전 잠깐 해성과 빌리 브라운의 얼굴이 떠올랐으나 재인은 고개를 저었다. 팬 모임이 끝나고 인사할 때 둘 다 따로 할 일이 있어 보였다. 해변으로 초대하면 방해가 될 것 같았다.
‘해성 씨는 몰라도 빌리 브라운은 빌런이니까.’
빌리 브라운의 정체를 모르는 듯 보이던 해성이 괜찮을까 슬그머니 걱정도 들었지만, 어쩐지 괜찮을 것 같았다. 비비라고 이상한 애칭을 고수하는 빌리 브라운이 일반인과 잘 어울리는 걸 봐서 그런 듯했다.
* * *
“으음.”
해변에 발을 들인 재인이 침음성을 흘렸다. 순식간에 쏠린 시선에 번거로워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매일 훈련한다더니 다들 몸이 진짜 좋구나.’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해외라고 안심하고 편하게 있었는데, 긴장해야 할 것 같았다. 재인을 알아보는 사람 때문이 아니었다. 그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었다.
조각 같은 몸매라는 말이 단순한 형용사가 아닌 듯 KH 길드원도 키퍼들도 한 몸매 했다. 얼굴도 일부러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모아서 팀을 꾸린 듯 보기 좋아서 주변의 시선이 끊기질 않았다.
“외국 해변에는 미남미녀만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
“그러게. 유명한 해변이라더니 가족 단위로 놀러 오는 곳이었나 봐.”
“역시 우리 재인 오라버님이 제일 잘생겼구나. 알렉사 너희 나라는 어때?”
“귀화했거든. 이제 한국인이거든.”
“미안. 그래서 어때?”
알렉사는 김나은의 질문에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재인으로 인해서 한껏 높아진 눈이었다. 잘생긴 사람의 기준이 이미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간 상태라 누구를 봐도 감흥이 없었다.
“차라리 이재현이 괜찮아 보인다니까.”
“그 정도야?”
“응. 한국 오기 전에 추억 쌓는다고 해변에 갔다가 눈만 버릴 뻔했어.”
“이재현이 괜찮아 보인다니, 심하네.”
심한 건 너희다! 재인은 눈으로 욕하는 재현을 보면서 키득거렸다.
KH 길드원들은 익숙해져서 그렇지, 객관적으로 봐도 재현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는 인물은 아니었다. 김 실장이 때때로 동생 분은 연예인 데뷔 안 하냐고 묻는 걸 보면 길드원의 평이 박한 게 맞았다.
‘재현이도 길드원을 박하게 평가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피장파장인가.’
언젠가 길드원 전원을 변태로 알렉사를 대왕 변태라고 칭했던 걸 떠올리면 반박할 말이 없었다. 사실 말은 험하게 하면서도 등을 맡길 만큼 사이가 좋으니 걱정할 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저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하는 길드원을 흘겨보면서도 질 나쁜 남자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닿지 않게 위치를 옮겨서 걷고 있었다.
“여기서 능력 써도 괜찮을까?”
“무슨 능력?”
“덥잖아. 아이스 슬라이드랑 풀 만들어서 놀려고 했지.”
“알렉사 너는 화염 계잖아.”
“아이, 왜 그래. 네가 해 줄 거잖아.”
원하는 대답을 얻어 낼 때까지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알렉사가 김나은한테 엉겼다. 큰 키를 이용해서 목을 조를 듯 매달리는 게 보기만 해도 더워 보였다.
“알았어! 해 줄게. 더워! 저리 가!”
“해냈다. 와하하하!”
뻔뻔하게 웃는 알렉사를 매달고 걷던 김나은이 결국 못 참고 만들어 주겠다고 외쳤다.
일반인도 같이 있는 해변에서 초능력을 써도 괜찮은지는 몰라도 해수욕이 단순한 물놀이보다 더 다채로워질 것 같았다.
“이히히. 엄마 나 잡아 줘.”
“알았어. 엄마 여기서 기다릴게.”
“꼭 잡아야 해.”
“응. 꼭 잡을게.”
얼음으로 만든 슬라이드 위를 튜브를 탄 아이가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아래쪽에서 기다리는 엄마를 향해 잘 받아 달라고 외친 뒤였다. 비슷한 모습은 해변 위 거대한 얼음 성 곳곳에서 보이고 있었다.
얼음 성에 연결된 기다란 슬라이드 위에는 아이뿐 아니라 수많은 어른도 비슷한 모습이었다. 슬라이드를 타고 눈 뭉치를 던지면서 놀고 있었다. 연 평균 기온이 20도 근처인 곳에 때아닌 겨울 풍경이었다.
이런 광경은 전부 한 아이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언니. 얼음 여왕님 성도 만들 수 있어요?’
재인과 박연화의 버프를 받은 김나은이 해변에 일행이 들어가서 놀 얼음 풀과 슬라이드를 만드는 걸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다가왔다.
아빠 손을 꼭 잡고 다가온 아이는 애니메이션의 얼음 여왕이 그려진 수영복과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반짝반짝 선망과 기대에 찬 눈을 빛내는 아이는 열심히 바라는 것을 설명했다.
그 결과가 해변에 세워진 리조트에서나 볼 법한 구불구불한 슬라이드와 네댓 명은 같이 타도 될 정도로 넓은 슬라이드가 연결된 대형 얼음 성이었다.
“현서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걸.”
“그러게. 재밌게 놀았을 것 같은데 아쉽네.”
“그래도 보고 싶긴 한가 보더라. 언제 오냐고 승급 심사 때는 올 거냐고 묻더라.”
“가야지. 대망의 노란 띠 승급 심사인데. 형도 갈 거지?”
“크흐흠. 당연히 가야지. 노란 띠 승급 심사를 빠질 순 없지.”
얼음 성을 뛰어다니면서 노는 아이들을 보니 같이 오지 못한 현서가 생각났다. 김나은이 만드는 얼음을 무척 좋아하는 아이라서 오늘 같은 날 함께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여긴 각성자를 보는 시선이 한국이랑 상당히 다르다. 솔직히 히어로를 좋아하는 미국이라 좋아할 줄 알았는데 생각했던 거랑 달라.”
“나라가 큰 만큼 또라이도 많아서 그래. 각성자가 많은 이상으로 빌런도 많아서, 범죄율도 미친 듯이 높아졌거든. 능력 좋은 각성자를 연예인 보듯 신기해하는 것만큼 경계하는 분위기야.”
한국만큼 안정적으로 각성자가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 잡은 경우가 드물다는 얘기로 입을 다문 재현이 턱으로 알렉사를 가리켰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눈앞의 알렉사가 증거였다. 안전한 한국으로 온 가족을 불러들인.
KH 길드에만 해도 모국의 혼란스러운 정세를 피해서 온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귀화를 추진한 사람도 있고, 계약 후 가족을 한국으로 초대해서 생활하는 사람도 있었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안전하긴 하구나.’
키퍼도 스트라이커도 상당히 체계적이고 합리적이었다. 그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잘 몰라도 최소한 드러난 부분으로 판단했을 때는 그랬다.
최소한 저렇게 일반인들도 쉬는 해변으로 거대한 요트를 끌고 오는 미치광이는 없잖은가.
“재현아!”
“저, 저 미친 것들! 형 이리 와. 팀장!”
“알아. 나은!”
“알았어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다가오는 요트 때문에 순식간에 해변이 난장판이 되었다. 선저가 긁힐 정도로 낮은 수심은 고려치 않는지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오는 통에 높은 파도가 해변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재현은 평화롭고 즐거운 해수욕을 망친 범인이 누군지 한눈에 알아차렸다. 알 수밖에 없었다. 선체에 떡하니 GPP라고 박혀 있는데 모를 수도 없었다.
‘미친 쌍둥이들! 일반인들도 있는데!’
하찬을 안은 재인의 허리를 감싸 해변에서 물러나는 재현의 눈이 예리하게 해변을 훑었다. 재인의 또 다른 반려 몬스터 혁을 찾는 중이었다. 일반인을 대피시키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는 형이 상처받지 않는 게 중요했다.
다행히 혁은 팀원인 줄리아가 염력으로 챙긴 상태였다. 애인인 박민규와 노느라 경호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예 놀고 있진 않았나 보다.
“빌어먹을 미친 쌍둥이들.”
“……이상한 사람들이네.”
“카오옹!”
대형 요트로 인해 생긴 거대한 파도가 해변을 덮치면 막을 만반의 준비를 사람들이 갖췄을 때였다. 해변의 모든 것이 멈춰 버렸다. 당장에라도 모래사장을 덮칠 것처럼 높이 치솟은 파도도, 감속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처럼 짓쳐 들던 요트도 멈췄다.
소음도 지운 듯 해변을 가득 메우던 사람들의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유일한 소음은 순식간에 해변에서 떨어진 재인 형제 목소리와 하찬이 내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뿐이었다.
* * *
“파이오니어호에 오르신 걸 환영합니다, 재인 씨.”
GPP 요트에 오른 재인은 환영하는 스티브 문의 인사에 떨떠름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인명 피해가 없었더라도 좀전의 위협적이었던 상황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이사님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스티브 씨.”
“등장이 요란한 건 양해 부탁드립니다. 워낙 바쁘신 분들이시라 이렇게밖에 시간을 내실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중요한 미팅을 위해 이동하시던 도중 재인 씨께서 해변에 계신다는 얘기에 목적지를 바꾸신 겁니다.”
“…….”
“웃기네. 바쁘면 순간 이동으로 움직이지, 누가 요트로 움직여? 그리고 우리 형은 뭐 안 바쁜지 알아? 대단한 양반들이 만나러 와 줬으니 감사히 생각하라는 거야 뭐야?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꼭 그렇게 티를 내야겠어?”
안 바빴다. 앞으로 한동안 안 바쁠 예정이었지만, 재인은 재현을 말리지 않았다. 까칠하고 무례하긴 했어도 그의 심정과 별다르지 않아서 말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 하, 하하.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사님들께서 재인 씨를 그만큼 뵙고 싶어 하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절대로 재인 씨를 무시하거나 고의로 휴식을 방해하려고 한 건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방해하고 무시한 꼴인데 뭐래.”
“재현아. 그만.”
“알았어.”
이미 충분히 수위가 높은 말들이 오간 상태였다. 적당히 이쪽의 불편한 입장도 전했으니 재현을 말려야 했다. 그렇지 않고 감정 실린 말들이 더 오가면 이사들을 만나기도 전에 한판 붙을 분위기였다.
“앨런 화이트예요. 반가워요, 재인.”
“난 캐럴이에요. 만나고 싶었어요.”
“이재인이에요.”
GPP 쌍둥이와 재인은 잠시 서로를 마주 본 채 말을 잊었다. 실물을 맞이한 쌍둥이는 소문이 한참은 부족했다는 걸 체감하느라, 재인은 천사 같은 외양을 한 이들이 진짜로 아까 그런 몰상식한 짓을 했나 의심스러워서였다.
‘생긴 건 딱 명화 속 천사 같은데, 풍기는 기운이나 하는 행동은 전혀 아니네.’
금가루가 묻어날 것처럼 곱게 관리된 금발과 새하얀 피부, 혈색 좋은 뺨과 푸른 눈동자. 로맨스 소설 속에서 흔히 묘사되는 주인공의 모습을 한 쌍둥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난폭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각각 스트라이커 중에서도 강한 축에 속한다는 재현과 비슷한 정도였다. 서양인이라서 나이를 정확하게 알 순 없었지만, 그보다 많아 보이진 않았다.
“앉으세요, 재인.”
“이쪽으로 앉아요.”
“실례할게요.”
쌍둥이가 권한 자리는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였으나 재인도 쌍둥이도 창밖을 보지는 않았다. 간을 보거나 말장난을 늘어놓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은 양쪽이 모두 느끼고 있었다. 풍경 감상보단 이어질 대화에 집중할 시간이었다.
“우린 재인의 능력을 높게 사고 있어요. 치유사로서 지닌 능력은 물론이고, 각성제 복용자를 식별하게 만드는 그 알 수 없는 능력도요.”
“앨런 말이 맞아요. 재인. 우린 재인 같은 뛰어난 인재를 사랑해요. 재인이 우리와 같이하길 바라요.”
“원하는 어떤 조건도 들어줄 수 있어요. 우리 손을 잡는 순간 재인은 바라는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예요.”
“재인 같은 인재는 그에 걸맞은 자리에 있어야 해요. 우리의 옆자리 같은 자리 말이죠.”
쌍둥이와의 대화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KH 길드에서 스트라이커 팀을 파견하고 키퍼 부대에서 걱정해서 팀을 차출한 이유인 인재 유출에 대한 우려, 즉 GPP의 섭외 제안이었다.
“저는…….”
재인은 쌍둥이의 푸른 눈을 마주 보며 명확하게 의사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