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 respectable male god RAW novel - Chapter (23)
#23. 전담팀
“하찬아. 이리 와, 오빠한테.”
“커헝!”
“아이, 착하다.”
“컹!”
멀리서부터 그를 향해 잔디밭이 파이도록 힘차게 뛰어오는 하찬의 모습이 선명했다. 팔을 벌리고 그런 하찬을 기다리는 재인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동영상 촬영을 마칩니다.]줄곧 시도했지만, 계속 실패했던 하찬의 영상 촬영을 드디어 해낸 그는 만족스러웠다. 비록 시스템에 추가한 동영상 촬영 기능이라 정면 고정으로만 찍을 수 있지만, 그게 어딘가. 아예 찍지 못하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찍는 게 훨씬 나았다.
‘진짜 편리하네.’
그의 시선과 같은 각도에서만 찍을 수 있다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을 필요도 없고 따로 저장 장치를 마련할 필요도 없었다. 촬영된 영상이 파일로 변환되어 공헌도로 구매한 저장 공간에 자동저장되니 무척 편리했다.
“하찬아. 우리 촬영 한 번만 더 할까?”
“컹.”
“오빠가 저기 가서 기다릴 테니까. 아까처럼 달려오는 거야, 어때?”
“크르릉!”
“어, 그래. 싫구나.”
다른 큰 개들이랑 어울려서 공원을 뛰놀아도 될 법한데 하찬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밖에 나오면 재인의 곁에 딱 붙어서 움직였다. 마치 경호하는 것처럼 곁을 지키는 게 제법 듬직했다.
‘칫! 한 번만 더 해 주지.’
재인은 빨리 걸으라고 재촉하듯 뒤를 돌아보는 하찬을 보고 걷는 속도를 높였다. 제 속도에 맞춰 주지 않으면 성질을 부리는 녀석이라 속으로 꿍얼대면서도 걸음을 늦추진 않았다.
-Trrrr.
“하찬아, 잠깐 기다려. 오빠 통화 좀 하고. 여보세요.”
재인은 핸드폰 화면에 뜬 김 실장의 이름을 확인하고 리드 줄을 꺼냈다. 반려동물 전용 공원이라 울타리가 있어서 안전했지만, 통화하는 동안 하찬을 제어할 수 있게 가슴 줄에 고리를 걸었다.
“뭐가 이렇게 급해?”
김 실장과 짧은 통화를 마친 재인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반려동물과 산책하느라 밖에 나와 있으니 나중에 만나자는 말에도 굳이 당장 찾아오겠다니. 대체 뭐가 김 실장을 조급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서두르다 사고라도 날까 걱정스러웠다.
‘혹시 또 다른 일거리가 생긴 건가?’
자연스럽게 드는 기대였다. 뮤직비디오 출연 건은 일의 난이도에 비교해서 출연료도 괜찮게 받았고, 공헌도도 기대 이상으로 쌓을 수 있었다.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만약 김 실장이 만나러 오는 게 그런 비슷한 용건이라면 응할 마음이 충분했다.
* * *
재인은 단정한 슈트 차림에 잘 어울리는 타이까지 깔끔하게 매치한 김 실장에 묘한 표정을 지었다. 대형 반려동물 공원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차림이어서였다.
“잘 지내셨어요?”
“네, 잘 지냈어요. 실장님은, ……회복 걸어 드릴까요?”
“아니요, 아니요. 괜찮아요. 그런 수고를 끼칠 수야 없지요.”
“네.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어요?”
간절히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말리지 못했을 뿐, 재인은 솔직히 누군가를 만날 몰골이 아니었다. 하찬의 아침을 챙겨 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세수와 양치만 하고 나왔다. 옷도 전날 입고 잔 운동복 그대로였고.
“혹시 혼자 나오셨어요?”
“네, 혼자 나왔어요.”
“가능하면 그때 뵌 동생분이랑 같이 다니시는 게…….”
“괜찮아요. 집 앞인걸요. 게다가 겨울이 코앞이라 한동안은 동생이 바빠서요.”
“아차! 벌써 그 시기군요.”
겨울이 다가오면 국가 소속이든 길드 소속이든 각성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신년과 설에 시민들이 지역 간 이동을 안전하게 할 수 있도록 담당 지역을 정리하는데 동원되기 때문이었다. KH 길드도 마찬가지여서 재현의 팀원들도 연말 대청소 임무에 동원된 상태였다.
“세레나데 뮤비는 보셨어요?”
“네. 노래도 좋고 영상도 너무 괜찮았어요.”
“괜찮았다니 다행이군요.”
“실장님.”
“아, 하하하. 긴장을 좀 해서요.”
재인은 급하게 그를 찾아온 목적이 아닌 겉도는 이야기만 하는 김 실장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하찬이 산책 끝나고 천천히 만나자는 걸 거절하고 일부러 찾아올 정도면 중요한 얘기일 텐데 딴소리만 하는 게 신경 쓰였다.
“계약 얘기를 하려고 왔는데 말이죠. 마음이 너무 급했던 모양이라…….”
“아! 확실히 여긴 좀 그렇죠?”
주변을 둘러보면서 하는 말에 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 얘기는 사방이 뚫린 반려동물 공원의 벤치에서 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사람들 시선도 부담스럽고, 혹여라도 계약 조건이 흘러나가면 그것도 난감했다.
“근처에 반려동물 동반 식당이 있거든요. 거기로 갈까요?”
“예, 부디.”
“갈 때 조금 민망하실 수도 있는데, 괜찮을까요?”
“괜찮고 말고요. 어서 가시죠.”
탁 트인 곳에서 수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으면서 중요한 계약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조금 민망한 게 나았다. 게다가 식당이라고 했으니 최소한 계약서를 올려 둘 테이블은 있지 않겠는가.
* * *
‘그래! 스타는 이런 사람이 되는 거야. 이 얼마나 대단한 신경줄이야.’
김 실장은 커다란 반려동물을 아기처럼 등에 업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재인의 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합리화를 한다고 해서 민망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에스컬레이터 탈 때는 반려동물을 안고 타게 되어 있어서요. 식당이 6층이거든요.”
“네.”
“에스컬레이터만 못 타는 거예요. 하찬이 원래는 엄청 용감하거든요. 얘가 좀 어리광쟁이기는 하지만 이건 어리광이 아니라요, 동물들은 원래 에스컬레이터 타는 걸 힘들어 한데요.”
“네, 그렇군요.”
“진짜예요. 엘리베이터는 잘 타거든요.”
재인의 어깨에 턱을 받치고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꼴이 아무리 봐도 어리광이 맞았지만, 김 실장은 어리광이 아니라고 맞장구쳐 줬다.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보통 사람인 그는 그저 한시라도 빨리 사방에서 쏟아지는 부담스러운 시선을 피하고만 싶었다.
-딸랑!
“어서 오세, 어머! 하찬이 또 업혀 왔어요?”
“안녕하세요. 네, 항상 똑같죠.”
“컹!”
“룸 비어 있어요. 거기로 안내해 드릴까요?”
“알아서 찾아갈게요.”
“네.”
재인은 직원과 인사를 나눈 뒤 식당 안을 휘적휘적 가로질렀다. 이미 여러 번 방문해서 식당의 구조는 익숙했다. 안내가 필요하진 않았다.
“자주 오셨나 봅니다.”
“네. 여기 펫 푸드 메뉴가 진짜 다양하거든요. 양도 많고요.”
“그렇군요.”
“음식 먼저 주문하고 얘기해요.”
“예.”
김 실장은 사방이 유리 벽인 룸에 한순간 아연했지만, 곧 정신을 다잡았다. 반려동물을 지켜보려면 통유리로 벽을 세우는 게 당연했다. 이런 벽으로라도 나뉜 공간이 있는 것에 감사해야 했다.
“계약서 먼저 보시죠.”
주문한 메뉴를 직원이 트롤리 두 대에 가득 싣고 와서 하찬의 앞에 차려 주고 난 뒤에야 대화할 시간이 생겼다. 김 실장은 그제야 고이 품고 있던 계약서를 재인에게 내밀었다.
“어? 실장님 이거 제대로 주신 거 맞아요?”
“맞습니다.”
“잘못 주신 거 같은데요.”
“재인 씨 계약서가 맞으니, 찬찬히 살펴보세요.”
김 실장은 기대한 반응을 보이는 재인에 안심했다. 그가 봐도 신인에겐 과할 정도로 후한 조건이긴 했지만, 상대는 재인이었다. 뭐가 됐든, 어디를 가든 최고의 대접을 받아 마땅한. 그 가치에 비하면 사실 계약 조건이 아주 후한 편은 아니었다. 클로버로선 최선을 다했지만 말이다.
“흐음. 계약금도 기간도 숫자가 이상한데요.”
“보시는 그 숫자가 맞습니다.”
“!”
재인은 계약서와 김 실장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놀란 표정 안에 의심이 서려 있었다. 그 정도로 계약서상의 숫자들은 이상했다.
계약금 3억, 계약 기간 3년+2년, 정산 비율 7:3.
연예인 계약은 잘 모르지만, 이 조건이 신인이 받기 힘든 계약이라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이쪽 세상이 원래 세상보다 후한 건가? 얼마 전에 무슨 배우가 계약금 없이 7:3으로 계약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은데…….’
이름은 몰라도 사진을 보거나 출연한 작품을 말하면 알 정도의 배우였다. 그런 배우가 소속사를 옮기면서 계약금 없이 3년에 7:3 정산 비율로 전속 계약했다는 기사를 봤었다.
재인이 받은 조건은 그것과 비슷했다. 총 계약 기간이 5년으로 달랐지만, 3년 뒤에 정산 비율을 협의, 조정하겠다고 계약서에 명시해 둔 것을 보면, 나중에는 더 좋은 조건으로 바뀔 수도 있었다.
“궁금한 점이나 추가하고 싶은 조건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꺼내세요.”
“지금은 없, 아! 치유 능력 말인데요.”
“네.”
“가끔 치유사로 일하고 싶은데요. 가능할까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특정한 요일을 지정하는 건 어렵지만, 한 달에 며칠을 정해 놓고 빼는 건 가능합니다.”
한 달에 며칠을 개인 일정을 위해 빼 달라는 조건 정도는 쉽게 들어줄 수 있었다. 클로버에는 이미 그런 선례가 많았다. 누구는 자기 계발을 위해서, 누구는 봉사 활동을 위해서 비슷한 조건을 요구했었고, 클로버에서는 그것을 전부 수용했었다.
“더 원하시는 건요?”
“그거 외엔 없어요.”
“아이고, 재인 씨.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왜 이리 욕심이 없어요? 이럴 때 욕심을 부려야죠. 탁 까놓고 말해서 지금 재인 씨가 스트라이커로도 활동한다고 해도 회사에서는 들어드릴 거란 말이에요.”
“네?”
“그 정도로 회사가 재인 씨를 원한다는 얘기예요. 업계 최고의 스태프를 붙여 달라. 영화 몇 편, 드라마 몇 편 출연을 약속해 달라. 이렇게 요구를 하셔야지요.”
김 실장은 답답했다. 입을 닫고 조용히 있으려고 했지만, 눈앞에서 손해를 자처하는 재인을 보니 참을 수 없었다. 이쪽 업계에 대해 잘 모르니 손해를 손해라고 인지하지 못해서 그런 걸 테지만,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게 안타까웠다.
‘회사야 돈 벌 구석이 쌔고 쌨으니, 다른 데서 벌라고 하지 뭐.’
회사는 한 달에 며칠만 빼 달라는 조건으로 계약하면 얼씨구나 좋다고 쾌재를 부를 테지만, 재인의 처지에서 보면 손해였다. 최대한 챙길 걸 챙겨 둬야 남은 앞날이 편한데, 너무 욕심이 없었다.
“투자한 게 많아야 푸시도 잘해 줘요, 이쪽 업계는. 뭐, 다른 곳이라고 다르지야 않겠지만. 그러니까 작은 것이라도 빼놓지 말고 다 요구하세요.”
“네. 그러면 실장님 저는요…….”
“네. 말씀하세요, 재인 씨.”
“실장님이 저를 맡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재인은 김 실장이 마음에 들었다. 말이 많은 게 걸리긴 했지만, 소속 연예인을 대하는 태도는 만족스러웠다. 최현 사진작가한테 막무가내로 굴다 욕을 먹었던 일도 입장이 반대였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날 위해서도 욕먹는 역할을 자처할 사람이야.’
라나가 열이 나서 쓰러졌을 때 빠르게 현장을 정리하던 모습도 나쁘지 않았다. 점심으로 샐러드를 준 건 별로였지만.
김 실장은 매니지먼트 본부의 가수 1팀을 맡고 있었다. 재인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이렇게 계약 테이블까지 데려오긴 했지만, 만약 클로버와 계약한다면 그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본분인 가수들 관리를 위해 복귀해야 했다.
“아! 하하하! 그럴까요?”
“네.”
“그럼 배우 팀으로 가지 말고, 전담 팀을 꾸려 달라고 요구하죠. 제가 팀장을 맡고요. 전에 보셨던 직원은 어떠셨어요? 최상호라고 아침에 픽업하러 갔던 직원이요. 사람이 성실하고 성격도 침착해서 보여 드렸는데.”
“괜찮았어요.”
“그럼 상호를 매니저로 하고, 로드도 하나 붙여 달라고 해야겠네요.”
스타일리스트 팀 구성은 시간이 걸리니 한동안은 이 샘 숍에 스타일리스트 출장을 부탁하자는 말로 김 실장이 대략적인 전담 팀 구성을 마쳤다.
그사이 재인은 계약서의 제일 마지막 장을 펼쳐서 사인할 채비를 마쳤다.
“그럼, 여기 사인하면 될까요?”
“네? 아이고, 재인 씨. 사인을 왜 벌써 하려고 드세요.”
“조건도 괜찮고, 김 실장님도 급하신 것 같아서요.”
“급하기야 급하죠. 그래서 이렇게 일찍 재인 씨를 만나러 왔잖아요.”
재인이 계약 의사를 확실하게 드러내서 그런가, 김 실장의 태도가 바뀌었다. 친근하게 굴어도 선을 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조언하길 꺼리지 않았다.
“당연히 재인 씨가 변호사랑 상담할 시간을 드리려는 거였죠.”
“계약금, 계약 기간, 정산 비율, 다 마음에 들어요. 계약서는 문제없어 보는데요?”
“몇 날 며칠을 고심해서 작성한 계약선데요. 문제야 당연히 없죠. 저야 재인 씨 상대로 장난질 칠 마음이 요만큼도, 정말 요만큼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세상에 저 같은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교묘하게 말 꼬아서 함정에 빠뜨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재인 씨 계약할 때는…….”
친한 척하는 사람은 너무 믿으면 안 된다. 좀 더 사람을 주의해야 한다. 계약서는 한 문장, 한 문장 꼼꼼하게 따져 봐야 한다. 변호사가 필요하면 소개해 주겠다. 조언을 가장한 김 실장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계약서를 잘 써오지를 마시지. 이상한 점이 하나도 없길래 사인하려 했더니.’
귀가 얼얼해지는 게 전담 팀 제안을 물려야 할지 고민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