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an obsessed tyrant and a sleeping cat every night RAW novel - Chapter (118)
Chapter 117
미쳤나 봐! 뒤늦게 얼굴이 화끈거려 목덜미가 얼얼할 지경이라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 순간 그가 나를 가두듯 슬며시 한 손으로 벽을 짚으며 나를 내려다봤다.
내 향유를 쓴 그의 몸에서 청량하고 상큼한 향이 확 밀려왔다.
“전하. 이, 이게 맨몸이 아니면…… 뭐가 맨몸이에요?!”
“다 벗은 건 아니잖아?”
이게 무슨 말이야?
하얀 타월을 하체에만 두른 채 상반신은 드러내 놓은 킬리언이 태연히 대꾸하며 반쯤 내리깐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을 하지.”
“이렇게까지는 아니었어요!”
짓궂은 눈빛을 띤 그가 한쪽 입가를 비뚜름하게 올리는 게 보였다.
“이렇게까지는? 그럼 보고 싶은 정도가 어디쯤이었는데?”
“네……?”
“응?”
킬리언이 나를 빤히 들여다보며 대답을 종용하듯 눈썹을 치켜들었다.
얼결에 튀어 나간 본심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아……, 그게…….”
“아무렇지 않게 옷을 갈아입고 가라는 말을 하다니. 사람 속을 얼마나 뒤집어 놓는 말인 줄도 모르고.”
“…….”
“긴장을 왜 해. 해야 할 쪽은 이쪽인데.”
그가 내 코를 톡 건드리더니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침착하기 이를 데 없는 담담한 얼굴로 나를 보고 있는 킬리언에게서는 미약한 동요조차 읽어 낼 수 없었다.
어색해하는 쪽은 오히려 내 쪽이었다.
침묵도 버겁고.
그의 시선을 피해 허공의 먼지를 좇아 움직이고 싶을 정도라 나는 억지로 정적을 깨뜨려야만 했다.
“저, 전혀 긴장한 것 같지 않으신……데요?”
“그걸 어떻게 알아.”
헛웃음을 지은 그가 가만히 나를 잡아당겼다.
“!”
스르륵 끌려간 곳에 머리가 닿는 순간 온몸에 찌르르한 작은 전율이 일었다.
피부에 닿는 맨살의 느낌이 오감을 단박에 깨우고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그의 손에 붙들린 몸이 꼭 넝쿨에 옭아매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쿵쿵쿵쿵-
그의 가슴에 맞댄 머리를 타고 터질 듯 팽창하여 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또렷이, 폭주하는 것처럼 들려왔다.
아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오싹함이 몸을 훑고 지나가더니 심장이 덩달아 빠르게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나머지 몸이 굳는데, 내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그가 살며시 머리칼을 매만지는 게 느껴졌다.
“이런 걸 그대가 어떻게 알아.”
머리 위 허공에서 킬리언의 낮은 음성이 담담하게 울려 퍼졌다.
“내 속이 어떤지, 그대는 알지 못해. 손톱만큼도.”
“…….”
“방을 따로 쓰는 것도 싫고. 침대를 따로 쓰는 건 더 질색이야.”
더 내려갈 데도 없다고 생각한 가슴이 발바닥 밑으로 쑥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내가 왜 그날 식을 저녁에라도 올릴 수 있다고 했는지,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생각은 해 봤어?”
“…….”
“그래야 같이 지낼 수 있으니까.”
“…….”
“내가 지금 얼마나 애가 타고 속이 끓는지, 그대는 짐작이나 할까.”
그가 고개를 숙여 내 머리에 입을 맞췄다.
움찔하며 떨린 몸에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퍼지는 것 같았다.
“알면 큰일 나지.”
비스듬히 웃은 그가 내 손에서 옷걸이를 빼 갔다.
“하…….”
그가 발을 돌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참고 있던 호흡이 빠져나가고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릴 뻔해 급히 콘솔을 붙잡았다.
와, 저 인간…….
나를 열기구에 태운 것처럼 하늘에 붕 뜨게 했다가 어디론가 끝없이 빨려 들어가 머릿속을 아찔하게 뒤흔들어 놓고선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가뿐히 날 내려놓는 것 같았다.
그사이 드레스룸에서 갈아입을 생각인지 킬리언이 걸음을 옮기는 게 보였다.
그렇지, 등!
“전하, 벌써 옷 다 입으셨어요?”
문을 열어젖히자 어느새 팬츠를 입고 셔츠를 입으려던 킬리언이 나를 돌아봤다.
잔근육이 발달한 등 한 곳에 사선으로 내 한 뼘 정도 되는 상처가 눈에 들어왔다.
“전하. 방금 등에…….”
나는 눈으로 확인하게 된 그의 상처에 긴장감이 훅 차오른 채 입을 열었다.
“등에…… 상처가 있는 것 같았어요.”
심장의 뒤편에 난 상처였다.
불그스름한 흔적이 남은 상흔을 지켜보는 나를 발견한 킬리언이 아차 싶은 얼굴로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별거 아냐. 어렸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건데.”
살짝 인상을 찡그리던 그가 상처를 보이기 싫은지 나를 향해 돌아섰다.
“의식을 못 했어.”
한 손에 셔츠를 쥔 그가 다른 빈손으로 빠르게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끔찍했지. 그렇지만 이게 전염될 걱정이나 그런 건 하지 않아도 돼. 이건 그냥…….”
전염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들려와 나도 모르게 놀란 표정이 새어 나가고 말았다.
내 안색을 본 그의 낯빛이 일순 무너질 듯 경직되나 싶더니 금세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옷 입고 나갈게.”
그런 뜻이 아닌데.
지금껏 그의 상처를 보고 그런 식으로 오해를 한 사람들이 있었던 걸까.
미약하게 미소 짓는 그를 보며, 나는 불현듯 그를 처음 맞닥뜨린 날이 떠올라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아버지의 서재로 불려가 모진 학대를 받은 다음 날 그의 등에서 확인했던 숱한 상처가 눈앞에 오버랩되면서 오랫동안 자리 잡은 그의 상처를 보며 모진 소리를 입에 담았을 사람들이 연상됐다.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재빨리 환히 웃어 보이며 그의 앞에 멈춰 섰다.
“끔찍하다뇨?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등에 붉은 상흔이 있길래. 혹시 다친 게 아닌지, 아픈 건 아닐까. 그래서 물어본 거예요. 아프진 않은 거예요? 어디에서 다친 건데 그래요.”
별일 아닌 듯 말하며 그의 등을 보려고 하자, 킬리언이 사뭇 놀란 시선으로 나를 내려다보다 문득 눈을 가늘게 떴다.
“흔적만 있다고.”
“네.”
“살이 벌어져 있지 않고…….”
“벌……어져요?”
나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그의 몸을 빙 둘러 등을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보여 주고 싶지 않은지 그가 몸을 비켜서는 바람에 그의 팔을 붙잡고 등에 손을 딱 댔다.
“이, 일부러 막 이렇게 잡은 건 아니에요. 아시죠?”
“모르겠는데.”
그가 픽 웃으며 대꾸하자 나는 귀 끝까지 달아오르는 걸 짐짓 모르는 체하며 그의 등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냥 붉은 상처가 남은 정도예요. 살이 벌어져 있었어요? 그럼 피가 났을 텐데?”
“피는 멎은 지 꽤 됐는데, 피부가 좀 벌어져 있었어.”
내게 설명하던 그가 드레스룸의 삼면경 앞에 섰다.
등을 확인하는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게 변해 갔다.
그럼 애초 상처가 벌어진 채 지냈었다는 이야기일까. 그토록 오랫동안?
“……거의 사라졌어.”
나는 그제야 엘리제가 왜 그토록 걱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가 강해짐에 따라 겨우 좋아진 정도가 살이 벌어진 채였다면, 엘리제가 그의 상처가 더욱 커질까 염려돼 자신을 숨기는 것도 당연했다.
피가 멎었다는 건 그 전엔 피도 났다는 이야기이고.
오러라는 걸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토록 무섭게 변하는 거였구나.
“…….”
거울에 비친 자신의 등을 비스듬히 바라보던 킬리언이 나에게 눈길을 던졌다.
“……그대가 한 건가.”
무어라 대답하기 어려운 내가 가만히 그를 올려다보자, 킬리언이 미간을 더욱 좁혔다.
“어머니가 그대에게 이능을 가진 자들을 치유하고 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했었지.”
내가 그에게 전한 엘리제의 말을 상기하고 있던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자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가라앉은 눈길로 거울 속 자신을 한 번 더 쳐다봤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 그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가 빠르게 치유된 셈이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가져 왔던 그 상처가 말이다.
* * *
발코니 너머 정원을 내려다보며 기둥에 기댄 기젤라 부인이 들고 있던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주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어요. 그저께엔 브륀힐트 공작 부부가 사랑스러운 딸을 성에 두고 가려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마차에서 몇 번이나 창문에 고개를 내밀고 뒤를 돌아봤었죠.”
그녀는 우수에 젖은 여인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향긋한 차를 음미했다.
“그토록 사랑하는 딸이라면 응당 데리고 가는 게 맞을 텐데, 억지로 이 먼 타지에 놓고 가다니. 참 대단한 사람들이죠? 뭐, 그래도 마음은 놓이지 않았겠죠.”
장미정원 근처 양산을 받치고 서 있는 사용인들과 그 아래 담요를 깔고 피크닉을 즐기는 귀부인들이 그녀의 시야에 들어왔다.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생각들 할 테니.”
그녀는 쓴웃음을 머금은 채 발코니로 나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정원사들이 성 바로 앞에 자리 잡은 나무를 손질하고 상한 꽃잎이 없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기젤라는 찻잔에 담긴 뜨거운 찻물을 정원을 향해 조르륵 따랐다.
“캐서린 하먼 기젤라는 레네트 라인하르트에 10체티(10m) 반경 내의 접근을 금지한다. 만일 황태자비 레네트 라인하르트에게 피해를 입힌 사실이 입증될 시, 그에 합당한 처벌을. 설령 그게 사형일지라도. 마땅히 내릴 것이다.”
자신을 두고 작성된 문서를 읊조리며 발코니 난간 너머로 찻잔을 가볍게 떨어뜨리자 밑에서 으악! 하는 정원사의 비명이 들려왔다.
기젤라 부인은 발코니에서 몸을 돌리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브륀힐트 부부는 결혼식을 올릴 때 즈음에 다시 오겠다며 브륀힐트 사용인들을 남겨 두고 떠났어요. 위페르 전역은 황태자 전하의 혼인을 반기며 축제 같은 분위기에 휩싸였고요. 온 성은 떠들썩하게 심혈을 기울여 황태자 부부의 결혼식을 준비하는 중이죠. 어찌나 웃음이 끊이지 않던지.”
“…….”
“거기다 위페르의 걸작이라 불리던 고고하고 거만하신 우리 황태자께서 황태자비를 무척이나, 혀를 내두를 만큼 과보호하고 계신다는 사실은. 여기 사는 모두가 알 정도랍니다.”
그녀가 푸른 눈을 번뜩이며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장관님. 요즘 제게 찾아오는 자들이 별 볼 일 없는 벌레 같은 것들이라고 말했었던가요?”
말미에 비릿한 웃음을 지은 그녀가 맥클런을 쏘아봤다.
잠자코 차를 마시던 맥클런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황태자가 아카데미를 재개했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기젤라 부인은 입술을 짓씹은 채 소파에 앉아 있는 맥클런에게 다가갔다.
그는 곧 있을 개관식의 초대 명부에 자신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마법사들을 양성하는 아카데미 재개라고는 하나 지금껏 소외당해 온 윙스턴 출신의 마법사들이 대다수였다.
맥클런의 제자들은 대부분 황실 마법사로 임명돼 있어 아카데미에 소속될 수 없었다.
“언제 이 일을 다 준비한 건지. 아돌프가 이 일을 비호해 준 건가? 황제는 분명 마법을 경멸하던 자였는데.”
심기가 불편해 보이는 얼굴로 맥클런이 그녀를 보자, 기젤라 부인은 자신이 킬리언의 아카데미 재개 건에 대해 찬성을 하며 아돌프를 부추기다시피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진실을 감춘 채 저도 도통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괜한 소리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나야 모르죠. 아돌프의 변덕이 죽 끓듯 한다는 건 당신도 잘 알지 않아요?”
“정신에 더 문제가 생겼다는 소리인가?”
“그런 지는 꽤 됐잖아요?”
“킬리언은 약이 들지 않는다는 거고.”
“안 드는 게 아니라 그 계집애한테 미쳐서 이쪽 말을 듣지 않는다고 말했잖아요!”
기젤라 부인이 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러니까 내놓으란 말이에요. 그 계집애를 죽일 수 있는 건 무엇이든! 지금 당장……! 허억!”
테이블을 막 돌아가려는 찰나 기젤라 부인이 놀란 눈으로 제 발목을 내려다봤다.
거뭇한 뱀 같은 형체의 무언가가 그녀의 발목부터 빠르게 휘감아 턱밑까지 올라와 위협하고 있었다.
맥클런이 느물거리는 눈길로 거슬러 올라와 그녀를 쳐다보더니 마시던 찻잔을 다시 입에 댔다.
“건방은 아돌프에게 떨어. 어린 계집 하나 상대 못 해 도움이나 청하는 게 어디 감히…….”
그는 점잖은 어조로 말한 후 소파에 기댔다.
미끄덩한 무언가가 살갗을 지나 파고들 것처럼 그녀의 목덜미를 쿡쿡 찔러 댔다.
“그년이 죽어야 파비앙 넬라스의 물건을 준다고 분명히 말했어.”
“그 계집이라면 이제 곧 죽어.”
맥클런의 대답에 기젤라 부인의 눈이 삽시간에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