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54)
황혼
* * *
데일은 늪 밖으로 나왔다.
울창한 나무에 가려 있던 여름 햇볕이 따갑게 내리쬈다.
데일은 인상을 찌푸렸다.
여전히 햇빛은 불쾌했다.
하지만 무르하탈과 그 언데드들은 불쾌해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다.
격 낮은 언데드들은 햇빛에 녹아 사라져가고, 무르하탈은 괴로워했다.
“주, 주인님. 햇빛이 몹시 따갑습니다. 제 언데드들은 햇빛 아래에서는 평소 힘의 절반 밖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되도록 밤에 이동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카룸. 카락.”
리자드맨은 그런 무르하탈을 비웃었다.
그들은 과시하듯이 햇살을 쬐며, 몸을 따뜻하게 덥혔다.
무르하탈은 감히 자신을 도발하는 리자드맨을 죽여서 언데드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데일이 보는 앞에서 내분을 벌일 수는 없는 법.
무르하탈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주인님 역시 낮보다는 밤을 선호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알았다. 다음부터는 되도록 밤에 다니지. 하지만 지금은 마을에 들러야 하니, 괴로워도 참아라.”
“자비로운 판단에 감사드립니다.”
데일은 하켄의 고향인 늪지 마을을 방문할 생각이었다.
거기서 소식도 좀 듣고, 돌아가는 정세도 알아봐야 한다.
‘어쩌면 하켄이 있을지도 모르니.’
마을에 들르려면 되도록 낮시간이 나았다.
만약 해가 지고 나서 흑기사가 이끄는 언데드와 리자드맨 무리가 다가온다면, 마을 사람들이 괜한 오해를 할 수도 있다.
“무르하탈. 네가 방향을 잡아라. 나는 길 찾는 데에 재주가 없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고개를 조아린 무르하탈이 앞장섰다.
데일이 그 뒤를 따랐고, 그다음에는 리저드맨 무리가.
마지막으로 무르하탈이 일으킨 언데드 군세가 느릿느릿 걸었다.
따가운 햇빛에 낙오하는 언데드가 꽤 많았지만,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게 반나절 가량을 이동하니 멀리서 늪지 마을이 보였다.
“저기인 것 같은데…… 흐음. 고요하군요.”
무르하탈의 말대로다.
늪지 마을은 깊은 정적에 감싸여 있었다.
목책도 오래도록 수리하지 않아 군데군데 무너져 있었고, 밭도 방치되어 있었다.
사람의 냄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된 건가.’
이레네가 무너지면서 대륙 중부는 무법지대가 되었다.
날뛰던 악마들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혼란을 퍼트렸을 것이다.
늪지 마을도 그 위협에서 빗겨나갈 수는 없었을 터.
데일은 늪지 마을로 들어섰다.
하켄과 같이 방문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가 한때 미치광이 마법사를 기다리던 망루가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공터가 있었으며, 다 같이 연회를 즐기던 회관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없었다.
무르하탈은 날카롭게 안광을 빛내며 주위를 관찰했다.
“시체도, 전투의 흔적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주민들이 도망간 것 같습니다.”
“그래.”
아마 하켄이 주민들을 대피시키지 않았을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럼 저는 따로 챙길 게 있나 이 일대를 수색해보겠습니다. 필요한 식량과 무기들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식량과 무기?”
“예. 주인님께서는 이제 군대를 조직하실 것 아닙니까? 혹자는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잘 훈련된 병사와 엄격한 규율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다릅니다.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보급입니다.”
데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보급 마차를 수송하는 임무에 참여했었기에, 보급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저와 제 언데드들은 딱히 식량이 필요 없지요. 하지만 숫자가 60이 넘는 저 도마뱀들은 아닙니다. 식량 확보는 필수입니다. 또, 무기 수급 역시 중요합니다. 가장 하찮은 스켈레톤에게도 무기를 쥐여주는 것과 맨손으로 싸우게 하는 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
“앞으로 군대의 규모를 키워나가실 거라면, 그 부분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규율 없는 병사들은 싸울 수 있지만, 굶주리고 무기 없는 병사들은 싸우지 못합니다.”
무르하탈의 조언을 곱씹은 데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지적이다. 무르하탈.”
데일이 리자드맨과 무르하탈을 받아들인 건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그냥 데리고 다니면 악마를 상대하는 데에 쓸만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들을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숫자가 불어나면 당연히 염두에 둬야 할 것도 생긴다.
무르하탈은 그 점을 잘 지적해주었다.
“앞으로도 좋은 의견이 있으면 부탁하겠다.”
“클클클. 물론입니다. 이 무르하탈. 책사로서 주인님을 위해 지혜를 아끼지 않겠습니다.”
무르하탈은 일부러 ‘책사’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그 시퍼런 안광이 희열로 일렁였다.
무르하탈은 리자드맨들을 휙 쳐다봤다.
그러고는 비웃는듯한 어조로 지시를 내렸다.
“멍청한 도마뱀들아. 네놈들이 유일하게 잘하는, 쇳조각 찾을 시간이다.”
“카락! 카!”
리자드맨들이 항의했다.
왜 너 같은 뼈다귀가 지시를 내리냐는 불만이었다.
어째선지 도마뱀들의 말을 이해하는 무르하탈이 사악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클클. 그야, 이 몸은 주인님의 책사니 너희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이 있지.”
“카락!”
“불만이 있으면 나보다 낫다는 걸 증명해보던가!”
둘이 싸울 기미를 보이자, 데일이 한소리했다.
“적당히 사이좋게 지내라.”
“물론입니다.”
“카룸.”
리자드맨 무리와 무르하탈은 경쟁적으로 흩어졌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물건을 찾아 데일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열성이었다.
데일은 마을의 회관 안에 남았다.
귀찮은 걸 자기들이 다 해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확실히 부하가 있으니까 편하긴 하군.’
여유가 생긴 데일은 회관 안을 둘러보았다.
방치되어서 그런지 먼지가 가득했고, 곳곳에는 거미줄이 붙어 있었다.
‘고작 몇 달밖에 안 지났는데 이런 폐허가 되다니.’
데일은 주위를 둘러보다, 문득. 한 곳으로 시선이 향했다.
다른 식탁과 의자들은 한구석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유독 한 식탁만이 회관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식탁 위에 큼지막한 맥주잔 하나가 거꾸로 덮여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어딘가 부자연스럽다.
데일은 식탁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맥주잔을 들어올렸다.
펄럭.
누리끼리한 종이 한 장이 원탁 위로 흘러내렸다.
데일은 종이에 쓰인 글자를 눈에 담았다.
[만약 경께서 어딘가에 사라계신다면. 분명 이고세 들리시라 믿습니다. 저희는 서쪽으로 감니다. 꼭 찾아오시리라 믿고 있슴니다. ―하켄]그건 하켄의 편지였다.
‘글씨를 더럽게도 못쓰는군. 맞춤법도 개판이고. 나중에 글이나 가르쳐줘야겠어.’
그런 더러운 글씨와 엉망진창인 맞춤법이 도리어 이게 하켄의 편지임을 증명해주었다.
‘그래. 살아있었군.’
내심 걱정했었다.
또 다른 악마의 추격이 있었을 수도 있고, 거인이 배신했었을 수도 있으니.
다행히 하켄은 무사히 이곳까지 도달했다.
그 점이 무엇보다 안심이 되었다.
수색을 떠났던 부하들이 돌아왔다.
무르하탈이 보고했다.
“반쯤 썩은 식량과 무기로 사용할만한 농기구 몇 개. 그리고 의류를 조금 구했습니다.”
“수고했다.”
“그리고, 이건 주인님께 필요할 것 같아서 챙겨왔습니다.”
무르하탈이 가방을 내밀었다.
허리에 매는 형식의 가죽 가방이었다.
“그래. 고맙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카락! 카칵!”
리자드맨은 왜 자기들이 구해온 걸 무르하탈이 생색내냐고 화를 냈다.
데일이 리자드맨에게 말했다.
“너희도 수고 많았다. 그러니까, 이름이…….”
“카르! 카략!”
“카리악이라 불러달라고 하는군요.”
“그래. 카리악. 수고했다.”
“카룸!”
카리악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수그렸다.
데일은 배낭을 허리에 매었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비운 건 다시 채워나가면 그만이지.’
데일은 그 안에 하켄의 쪽지를 집어넣었다.
“자. 다시 이동할 시간이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데일은 주저 없이 답했다.
“서쪽으로.”
* * *
데일 일행은 여행자들이 자주 다니는 큰길로 들어섰다.
‘세상이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을 거야. 군단도 건재하고, 각지의 성들도 있으니까.’
물론 4개의 군단이 아군의 편이냐 묻는다면 그건 확신할 수 없다.
‘그래도 전부 배신하지는 않았을 거야.’
당장 4군단에서도 적에게 돌아선 건 전체 병력의 절반이었다.
여전히 이쪽에 우호적인 군단과 병사들이 있을 거다.
어쩌면 성을 하늘로 띄워 올린 황제가 그들과 접촉할지도 모를 일이고.
어쨌건.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다.
지금 데일에게 당장 필요한 건 정보다.
그리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굳이 큰길로 당당히 걷는 이유였다.
아무래도 큰길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마련이고, 큰길을 따라 형성된 마을을 마주칠 수도 있었다.
‘근데…… 좀처럼 보기가 힘들군.’
벌써 하루를 꼬박 이동했건만.
사람은커녕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무르하탈도 당황했다.
“허. 정말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했답니까. 아무리 늪 근처가 대륙의 오지라지만,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없군요.”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던 참이다.”
“정말 무슨 일인지…….”
잠시 머리를 굴리던 데일은 이내 무언가를 알아챘다.
“아.”
“왜 그러십니까?”
“우리는 사람을 마주치기 위해 큰길을 사용하고 있다.”
“그렇죠.”
“오히려 그 때문에 사람을 마주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아!”
데일의 의중을 이해한 듯, 무르하탈도 탄성을 내질렀다.
데일이 말을 이었다.
“예를 들어 악마가 이 근방을 주름잡고 있다고 치면 그 하수인와 추종자들도 돌아다니겠지. 그리고 놈들이 사용할 길은…….”
“큰길이군요!”
악마 숭배자와 하수인에게 사람이란 먹잇감이다.
그렇다면 그 먹이를 경쟁자보다 빠르게 잡아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큰길에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큰길을 끼고 있는 마을도 많아. 그러니 사람을 잡아먹고 싶은 하수인들은 큰길을 위주로 돌았을 거야.’
데일과 정확히 같은 이유로 큰길을 순찰했을 것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스스로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잘 닦인 길 대신 산이나 숲으로 숨어들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악마 하수인 역시 큰길을 이용하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먹이가 줄어들면 자연히 사냥꾼도 줄어드는 법이니까.’
늪지대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무르하탈이 데일의 추측에 고개를 끄덕였다.
“허. 그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주인님은 총명하시군요. 이 무르하탈. 감읍, 또 감읍했습니다!”
“아부는 그만 떨고.”
지금이라도 산이나 숲으로 들어가야 할까?
‘그건 그것대로 썩 효율적이지 못한데.’
고민하던 데일은 결론을 내렸다.
“계속 이 길로 간다.”
“오오.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일단 아부부터 내뱉은 무르하탈이 물었다.
“혹시 이유도 설명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이제 와서 무작정 산이나 숲을 뒤지는 것도 못 할 짓이야. 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그래도 악마의 끄나풀 하나둘 정도는 마주치지 않겠나?”
“그렇……죠?”
“그러면 그놈들을 붙잡아 사람들이 사는 곳을 물어볼 생각이다.”
“과연. 근데. 생각 있는 놈들은 이쪽의 숫자를 보면 일단 도망치지 않을까요?”
“그것도 그렇군. 그렇다면…….”
데일은 로브 하나를 무르하탈에게 건네주었다.
“입어. 그리고 혼자 앞으로 나가라.”
“……예?”
“멀리서 보면 몸도 앙상하니, 여성처럼 보이겠지. 그리고 악마의 끄나풀들은 혼자 다니는 인간 여자를 절대 지나치지 않는다.”
일종의 미인계라 해야 할까.
“……진심이십니까?”
“내가 너랑 농담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나?”
무르하탈이 발끈했다.
“이, 이건 말도 안 되는 계획입니다! 분명 실패할 거라고요! 애초에 저를 보고 여자로 착각한다니! 이 무르하탈에게서 흘러나오는 음산한 기운에 겁을 집어먹고 도망칠 겁니다. 내기해도 좋습니다!!”
* * *
“여자다! 잡아!!”
“킬킬. 운이 좋군!”
“…….”
습격자들이 가녀린 무르하탈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