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194)
엘레나
* * *
토네이도. 혹은 용오름.
원을 그리며 거세게 회오리치는 저 바람기둥을 본 병사들이 겁에 질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무리 오만한 사람이라도 대자연의 웅장함과 잔혹함을 마주하면 고개를 수그리기 마련이다.
지상에 솟아난 재앙에 병사들은 감히 뭘 해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저런 자연재해를 일개 개인이 일으켰다는 게 더 섬뜩할 따름이었다.
“도, 도망쳐야 해.”
“신이시여…….”
“이건 말도 안 돼.”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있건 말건. 토네이도는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거센 바람은 닿는 모두를 빨아들였다.
도로의 단단한 판석.
버려진 짐마차.
건물 기둥과 벽돌.
무겁고 가볍고를 가리지 않고, 토네이도는 닿는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토네이도에 한 번 빨려 들어간 물건은 머지않아 산산이 조각나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이는 저게 단순한 토네이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얼음 조각이 있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번들거리는 얼음 조각들이 바람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엘레나가 따로 만들어낸 칼날 얼음이었다.
‘두 가지 마법의 조합.’
엘레나의 특기.
다른 마법사는 감히 흉내 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천재적인 재능의 발로.
단단하고 날카로운 얼음 조각들은 회전하고, 또 회전해 토네이도에 빨려든 모든 것을 갈아버렸다.
그야말로 거대한 분쇄기인 셈이다.
저 괴물의 뱃속에 들어가면 누구도 형체조차 남기지 못 하리라.
다만. 그런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현상에서도 데일은 일말의 친절을 느꼈다.
‘일부러 멀리서 사용했다.’
토네이도는 성벽에서 어느 정도 거리에서 솟아올랐고,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미리 보고 도망치라고 친절하게 말해주는 것 같은 모습이다.
실제로, 굳어있던 병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허겁지겁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딜 가든 행동이 굼뜬 사람은 있는 법.
병사 하나가 창백해진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 으. 으…… 사, 사, 살려…….”
“레이나 이 멍청아! 빨리 일어나서 도망쳐!”
“다, 다, 다리가 안 움직여. 흐흑. 엄마…….”
지독한 공포에 몸이 굳어버렸다.
동료들은 그런 병사를 구하고 싶지만, 그들 역시 토네이도에 가까워질 용기는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그대로 병사가 토네이도의 영향권에 들어서려던 찰나.
데일이 달려들어 병사를 품에 안고 뒤로 훌쩍 뛰어올랐다.
순간적으로 바람이 데일을 빨아들이려 했지만, 데일의 도약력이 더 강했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병사는 갈가리 찢겨 육편이 되었으리라.
“어, 어, 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 녀석을 챙겨라.”
데일이 병사의 동료들에게 말했다.
굳어 있던 동료들이 허겁지겁 달려와 동료의 몸을 지탱했다.
데일이 지시했다.
“도시 반대편에 황실 기사단이 싸우고 있을 거다. 거기로 가서, 명령을 받아라.”
“고맙습니다!”
“데일 경 맞으시죠? 그 유명하신…… 정말 감사합니다.”
“모, 목숨을 걸고 저를…….”
데일은 감동받은 병사들에게 손을 휘휘 저은 뒤. 이내 신경을 꺼버렸다.
병사들을 구한 건 그냥 그럴 능력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엘레나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무고한 사람을 조금이라도 덜 죽이는 게 낫겠지.’
데일은 엘레나의 분노를 이해한다.
의지하던 자신이 죽었으니, 어린 마음에 복수 같은 걸 꿈꾸는 것일 터.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헤친다면, 모든 일이 끝났을 때 엘레나가 견뎌낼 수 있을까?
데일이 힘이 있지만 무고한 이들을 죽이지 않고 스스로 인간임을 유지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엘레나도 위험할 정도로 대단한 재능을 지녔지만 인간으로 남아 있길 원했다.
‘업보는 적게 쌓을수록 좋지.’
그러려면, 되도록 빨리 엘레나를 막아야 한다.
사실 상황이 여러모로 좋지 않다.
엘레나가 요새를 공격한 타이밍의 황혼의 추종자들이 요새를 공격하는 것과 겹쳐버렸다.
그래서 피해가 생각보다도 더 커져 버렸다.
전투가 끝난 이후, 엘레나에게 죄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의 말에 일리가 있기도 하고.
상황을 조금이라도 원활히 수습하려면 빨리 엘레나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대화를 하고 싶다.
하지만 대화를 하려면 저 토네이도를 뚫고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저 살벌한 바람에 목소리 따위는 모조리 흩어져버릴 것이다.
데일은 마검으로 시선을 내렸다.
‘마검이라면…….’
분명 마법을 갈라낼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잠시뿐.
잠깐 바람을 갈라내도, 뒤이어 오는 바람이 그 빈자리를 채울 뿐이다.
게다가 저 토네이도의 무서운 점은 바람만이 아니다.
바람을 따라 얼음 칼날과 그 안에 빨려 들어온 암석이나 건물 잔해 따위에 얻어맞으면, 아무리 데일이라도 무사할 거라 확신할 수 없다.
‘아니면 마법 반사 망토를 쓸까?’
바이만의 보물고에서 찾은 마법 반사 망토.
악마의 마법조차도 일순간 튕겨낼 수 있는 강력한 유물.
분명 엘레나의 마법도 튕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이 반사되면 어떻게 될까?
‘엘레나가 다치는 게 아닐까?’
토네이도와 얼음 칼날이 역으로 방향을 바꿔 엘레나를 노린다면?
엘레나가 뛰어나게 대처해 힘을 상쇄한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단순히 다치는 선에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 마법의 강력함을 생각하면 엘레나가 죽을 확률이 더 높다.
그럼 위험을 감수할 생각은 없다.
결국은 남은 방법은 하나.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나?’
저 폭풍 안으로 뛰어들어, 어떻게든 헤쳐 나가, 엘레나에게 닿는다.
무식한 해결책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하지만 괜찮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지만…….’
몸이 좋으면 조금 무식해도 살만한 법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빠르게 결단을 내리는 건 데일의 장점이다.
데일은 곧장 주위를 둘러보았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는 병사들을 발견했다.
데일은 그들에게 다가가 부탁했다.
“방패를 빌려줄 수 있겠나?”
“예? 예, 예! 당연히 드려야죠!”
“나중에 찾아와라. 반드시 갚겠다.”
데일은 보는 대로 방패를 줍기 시작했다.
그 종류도 신경 쓰지 않았다.
자그마한 버클러부터 원형 방패, 사각 방패, 타워 실드까지.
팔에 걸 수 있는 건 전부 달았고, 끈을 이용해 몸 이곳저곳에 요령 좋게 붙여놨다.
병사들이 그런 데일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어, 음.”
“대체 뭘 하시려고…….”
방패를 덕지덕지 붙여놓은 데일의 모습은 우스꽝스러웠다.
어디서 광대가 왔나 생각이 들 정도.
다른 한편으로는 저 무거운 방패들을 달고 아무렇지도 않게 움직이는 게 놀랍기도 했다.
‘이 정도면 방어력은 얼추 되었나?’
모든 준비는 끝났다.
데일은 다가오는 토네이도를 향해 당당히 섰다.
휘오오오오!
폭풍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주위 모든 걸 집어삼켰고, 이제 곧 데일도 집어삼킬 것이다.
‘저 안에서는 숨도 쉬기 힘들겠지.’
호흡이 필요 없는 몸이라서.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 않는 몸이라 실로 다행스럽다.
그러지 않았다면 저 토네이도 안에 뛰어드는 미친 짓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테니.
마침내 폭풍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바람이 강하게 느껴진다.
데일은 가만히 서 있지만, 점점 폭풍의 안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
데일은 자세를 낮췄다.
마지막으로 폭풍을 올려다보았다.
어지럽게 서로 얽히고 뒤엉키는 바람의 흐름.
그 흐름을 읽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가장 적합한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순간.
타앙!
땅을 박찼다.
하늘로 뛰어오른 데일의 몸을 순식간에 폭풍이 삼켰다.
거센 기류에 데일의 몸이 더 높이 상승했다.
휘오오오!!!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데일의 몸이 마구 회전했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는 이제 알 수 없다.
균형 감각은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린다.
모래와 흙 따위가 섞여 시야마저 흐릿한 폭풍 속.
평범한 사람이라면 곧장 혼절해버리겠지만, 데일은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데일은 정신을 붙잡고 집중을 유지했다.
그리하지 않으면 금방 목숨을 잃어버릴 테니.
팍! 파각!
얼음 조각이 빠르게 날아와 몸에 부딪힌다.
챙겨온 방패에 큼직한 균열이 생겼다.
데일은 구멍 뚫린 방패의 끈을 풀었다. 방패가 폭풍에 휘말려 저 멀리 사라졌다.
‘생각보다 위력이 강하다.’
회전을 거듭한 끝에 위력이 가득 실린 얼음 조각들은 무시할만한 게 못 되었다.
고육지책으로 챙겨온 방패들의 소모도 예상보다 빨랐다.
‘쳐낼 수 있는 건 쳐내야 해.’
데일은 감각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얼음 조각을 정확히 감지해야 한다.
폭풍 속에서는 시각도. 청각도 제한되지만, 해내야만 한다.
휘오오오!!
바람이 절규하는 소리가 자꾸만 방해한다.
하지만 데일은 그 안에서 쓸모없는 정보와 필요한 정보를 분리하고, 빠르게 머릿속에 계산해냈다.
집중에 집중을 거듭하던 그때.
어느 순간. 주위 풍경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마치 데일이 평소에 꿈을 꿀 때와 비슷한 광경이다.
날아오는 얼음 조각들이 마치 예리한 검날처럼 보인다.
천 명이 넘는 검사들이 파괴적이고 날카로운 검로를 그리며 데일을 노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두려움도. 주저도 일절 없는 냉혹한 검사들.
데일은 마검을 들어 아래로 내려쳤다.
투퉁! 퉁!
첫 번째 얼음 조각을 베어냈다.
정확히 반으로 쪼개진 얼음 조각이 힘없이 날아가버렸다.
완벽한 방어.
하지만 만족할 시간은 없다.
곧바로 두 번째. 세 번째 얼음 조각이 날아들었다.
데일은 바람의 흐름에 이리저리 뒤집히면서, 사방에서 덮쳐오는 얼음 조각들을 베어냈다.
물론. 모든 얼음 조각을 쳐낼 수는 없었다.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놀라운 기량으로, 상당히 많은 얼음 조각들을 쳐낼 수 있었다.
‘생각보다 수월하다. 왜일까?’
데일은 고민했고, 머지않아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황실 기사단 전체와의 결투.’
기사단의 기사들은 하나하나가 자신의 특기가 있었으며, 각자의 개성이 확실했다.
저 불규칙하고, 크기마저 제각각인 얼음 조각들에서 데일은 기사단의 움직임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데일은 결투에서 생각보다 많은 걸 배운 모양이다.
그리고 이 얼음조각들을 쳐내면서, 그때 얻은 배움을 빠르게 몸에 체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처 쳐내지 못한 얼음 조각들은 꾸준히 데일을 베었고, 이미 챙겨온 방패는 모조리 소모되었다.
갑옷에도 깊숙한 상처가 곳곳에 있다.
몇몇 파편은 제대로 틀어박혀, 차가운 피가 흘러내렸다.
이미 온몸이 넝마 짝이다.
‘슬슬 한계인데.’
이 혼란스러운 폭풍 속에서 사투를 벌이면서도, 데일은 꾸준히 자신의 위치를 계산하고 있었다.
토네이도의 큰 흐름을 따라 빙글 몇 바퀴 돌다보니, 점점 그가 어느 위치에서 날아다니고 있는지 감이 오기 시작했다.
‘기회는 아마도 한 번. 폭풍의 중앙에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 단번에 낙하한다.’
머지않아 그 시간이 왔다.
기류의 불안정한 흐름에 데일의 몸이 폭풍의 중심에 가까워졌다.
절호의 기회.
데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거대한 대리석 원통이 날아다니는 게 눈에 보인다.
건물의 기둥이었을까?
운이 좋다.
데일은 몸을 크게 회전한 뒤, 기둥을 힘껏 걷어찼다.
쿵!
균열이 가득하던 대리석 기둥이 산산이 조각나고. 데일의 몸이 총알처럼 튀어 나갔다.
데일은 마검을 앞세워 폭풍의 중심을 향해 빠르게 가까워졌다.
이제 방어는 불가능하다.
얼음 조각이 온 갑옷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데일은 묵묵히 버텨냈다.
데일이 폭풍의 중심까지 닿는 게 빠를까? 아니면 온몸이 난도질당하는 게 빠를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엘레나가 못 본 새에 몰라보게 실력이 늘었군.’
일단 만나서 꾸중이나 좀 할까 생각했는데, 생각이 좀 바뀌었다.
아무래도 엘레나가 이제 다 큰 모양이다.
절대 마법의 위력에 놀라 생각을 고쳐먹은 게 아니다.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데일은 계속 떨어져내렸고…….
툭.
비로소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폭풍의 눈.
주위 기류와는 상관없이 너무나 포근하고 조용한 공간에 엘레나와 프라우가 서 있었다.
둘은 이 아늑한 공간으로 침투해온 존재를 보며 경악했다.
온몸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데일이 둘을 보며 인사했다.
“오랜만이다. 둘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