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ark Knight in the Game RAW novel - Chapter (60)
상행
* * *
“자! 출발하세요!”
레베카의 외침에 상단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화물을 가득 실은 짐 마차만 수십 대였다.
맨 앞 마차가 출발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맨 뒷줄의 마차도 이동하기 시작했다.
요란한 이동에 도시 사람들도 나와서 구경했다.
몇몇은 손수건을 흔들며 여정의 안녕을 기원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마냥 호의적인 시선만 있는 건 아니었다.
데일은 몇몇 탐욕스러운 시선들이 이쪽을 향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들은 마차가 향하는 방향을 가늠한 뒤, 서둘러 인파 사이로 녹아들었다.
‘정보를 팔려는 건가.’
도시의 정보상에 대규모 마차 이동을 보고한다.
그리고 그 정보는 도시 밖의 도적들에게도 흘러 들어갈 터.
‘여길 습격할 정도로 배짱 있는 도적이 있을까 싶지만.’
데일은 고개를 돌려 이쪽의 전력을 꼼꼼히 살폈다.
큰 규모의 상행답게 병력이 출중하다.
우선 상회 직원만 80명에 달한다. 그중 과반은 저 가브리엘이라는 기사에게 훈련받은 사병이다.
심지어 사병 중 열 명은 말을 타고 있었다.
일반 상인들도 최소한의 싸움은 가능하다고 한다.
단순히 물건만 잘 팔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니까.
그 외에 고용된 용병의 숫자는 총 40이 조금 넘는다. 대부분 철패에서 동패 등급이었지만, 풋내기는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발목을 잡을만한 이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교단에서 보낸 사제가 에스델을 포함해 8명.
‘8명이라.’
전투원 10명에 사제가 하나씩 붙을 수 있다.
사제의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적어도 치유가 부족해 사람이 죽을 일은 적을 것이다.
사제는 언제나 수요가 많고, 비싼 인력이란 걸 생각하면, 레베카는 제법 좋은 고용주라 할 수 있다.
‘나쁘지 않은데.’
전체적으로 조합이 괜찮다.
상회의 사병들 절반은 활이나 쇠뇌를 메고 있고, 방패를 짊어진 이들도 많았다.
거기에 사제들까지 풍부하니.
사실상 정규군이나 다를 바 없을 구성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건…….
‘마법사가 없군.’
마법사가 있고 없고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 얼간이 같던 마법사 한스도 혼자서 강력한 화력을 뿜어대지 않았던가.
여차할 때 전쟁 마법사의 화력은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마법사는 사제보다 비싼 인력이다. 고용을 위해서는 상상 이상으로 비싼 돈을 줘야 한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믿을만한 마법사는 매우 드물다.
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문제아들은 그야말로 변수 덩어리들이다.
그들의 마법은 너무 강력해, 적보다 아군을 더 많이 죽일 때도 많았다.
레베카가 굳이 전력에서 마법사를 배제한 이유는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데일은 문득 엘레나를 떠올렸다. 전기를 머금으며 하늘을 날던 수룡을 생각하면…….
‘아쉽군.’
하지만 좋은 마법사가 곧 좋은 전쟁 마법사라는 건 아니다.
엘레나에 대해서는 차차 두고 봐야 한다. 다른 무엇보다, 엘레나는 아직 어렸다.
그런 상념을 뚫고 하켄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우. 앞으로 이 주일간 걸어 다녀야 할 거 생각하니, 벌써 무릎이 쑤시네요.”
늘어지게 하품한 하켄은 투덜거렸다. 그의 눈에는 마차를 모는 직원들의 모습이 비쳤다.
더 많은 화물을 싣기 위해. 여정에 상행에 참여한 대부분은 걸어가야만 했다.
마차에 앉거나 말 타는 걸 허용받은 건 소수의 인원들.
상회주인 레베카나 말을 타고 주위를 정찰하는 가브리엘과 기병들. 그리고 사제들뿐이다.
사실. 레베카는 데일에게도 마차 동승을 제안했었다.
하지만 데일은 거절했다.
저 피곤한 여자랑 둘이 마차 안에서 몇 주간 같이 있는 건 사양이었다.
툴툴거리는 하켄에게 핀잔이 날아왔다.
“하켄은 너무 엄살이 심합니다. 벌써부터 투덜거리면 어떡하나요.”
“으음?”
하켄은 옆에서 나란히 걷는 에스델을 흘끗 쳐다본 뒤, 말을 꺼냈다.
“근데 사제 양반은 왜 우리랑 같이 걷는 거야.”
“……그러면 안 되나요?”
에스델이 섭섭한 얼굴을 하자 하켄이 당황해하며 말했다.
“아니. 다른 사제들은 마차에 타고 있잖아. 편하게 가지, 굳이 왜 힘들게 걸어가냐 이거지.”
데일도 동의했다.
“그래. 네 친구들도 나랑 같이 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은데.”
마차에 탄 다른 사제들은 이따금 이쪽을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봤다.
굳이 혼자서 걷는 걸 고집한 에스델 때문에 불편한 것인지, 아니면 이교도인 데일과 함께 있는 게 불편한 것인지.
굳이 따지자면 후자의 비중이 더 클 것이다.
에스델은 잠시 표정을 굳히더니, 이내 당당히 말했다.
“다른 분들이 모두 힘들게 걸어가는데, 제가 뭐라고 앉아 가겠어요. 그리고 누구랑 함께 걷든, 그건 제 자유니까요.”
“음.”
데일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당당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건 분명 좋은 장점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천하는 것도 훌륭하다.
단지, 때로는 그런 올곧음이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가령. 에스델이 걷기로 결심하면, 앉아서 가는 다른 사제들의 입장은 어찌 되겠는가.
그런 부분에서 에스델은 처세가 부족했다.
‘역시 피곤한 타입이야.’
데일은 신경 쓰지 않았다.
교단에서 주목하는 유망주라니, 알아서 잘하려니 싶었다.
“그보다.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마리아 자매님이 드린 반지를 부숴 먹은 거에 대한 해명을 저는 아직 듣지 못했는데…….”
데일은 쫑알거리는 에스들에게서 신경을 끄고 주위 펼쳐진 풍경을 구경했다.
넓게 펼쳐진 평원에 바람이 불자, 키 낮은 풀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평화롭다.
이 평화가 달갑냐 묻는다면 모르겠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어서 싸움이 벌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새로운 무기를 시험해보고 싶고, 더 많은 성장을 이뤄내고 싶다.
크리스틴과의 싸움 이후 데일은 많은 걸 느꼈다.
그 싸움에서 데일은 분명 죽을 뻔했다. 패배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때, 데일은 두려움을 느꼈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아니다.
사람이 아닌 언데드로서 죽는 게 두려웠다.
데일은 생과 사가 갈리는 그 순간에, 몸 안을 가득 채웠던 거친 충동을 기억한다.
거기서 버티지 못했다면 데일은 폭주했을 수도 있다. 구경하던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먹었겠지.
그런 경험은 두 번 다시 싶지 않다. 위기를 겪는 건 사양이다.
그러기 위해서 데일이 할 수 있는 건 하나.
‘강해져야한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별개로, 주위는 너무나도 평화롭다.
데일은 어느새 싸움을 바라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몸뚱이에 너무 적응해버린 모양이다.
* * *
상행을 출발하고.
첫 닷새간은 별일 없이 평화롭게 지나갔다.
가끔 들판의 맹수가 다가와 기웃거리다, 줄지어 이동하는 이쪽을 보고 화들짝 놀라 달아날 뿐.
몬스터나 도적은 보이지 않았다.
사실,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규모에 무장도 출중한 집단을 습격한다는 건, 아무리 흉포한 몬스터라도 많은 각오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건 엿새째 저녁이었다.
“정지. 오늘은 여기서 밤을 지낼 거예요.”
레베카의 명령에 상회의 직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야영을 준비했다.
근처 냇가에서 물을 길어왔고, 마른 풀과 나뭇가지로 불을 피웠다.
오래 합을 맞춰온 만큼 그 속도가 매우 빨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켄도 용병들에게 외쳤다.
“우리도 질 수 없지! 당장 준비하자고!”
대체 뭘 질 수 없다는 걸까.
어쨌건, 상회 직원들이 능숙하게 야영 준비를 하는 걸 보고 경쟁의식을 느낀 것 같다.
야영과 노숙은 용병들의 단짝이니. 이쪽은 이쪽 나름대로 매우 빨랐다.
데일은……. 그냥 가만히 있었다.
하켄이라는 좋은 하인이 있는데 왜 굳이 몸을 쓰겠는가.
야영 준비는 하인의 일이다.
그렇게 들판에 모닥불이 하나둘 완성이 되고. 커다란 솥에 여러 재료를 때려 넣은 수프가 하나둘 완성되어 갔다.
솔직히 수프의 겉모습이 보기 좋은 건 아니지만, 확실히 냄새 하나는 좋았다.
그리고 그런 냄새를 쫓아온 건지. 아니면 모닥불의 빛을 따라온 건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판을 가로질러 이쪽으로 다가왔다.
가브리엘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즉시 검을 뽑으며 외쳤다.
“일어나라!”
갓 만든 수프를 입에 넣으려던 사병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표정에는 불만과 짜증이 가득하였다.
행복한 식사 시간이 방해받으면, 누구라도 화가 나기 마련이다.
“준비해!”
활과 쇠뇌를 든 사병들이 사격을 준비했다. 그러자 다가오던 무리가 우뚝 멈췄다.
그들은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더니, 이내 그중에서 한 명이 걸어 나왔다.
꾀죄죄한 몰골의 중년 사내였다.
그는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양손을 번쩍 들었다.
가브리엘이 레베카에게 시선을 주었다. 레베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브리엘이 말을 몰아 앞으로 향했다.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저쪽에서 겁에 질린 듯한 화답이 돌아왔다.
“저, 저희는 파이도 마을 피난민입니다.”
“피난민?”
가브리엘이 인상을 찌푸렸다. 뒤쪽에서 듣고 있던 레베카가 앞으로 나섰다.
“파이도 마을이면 제법 큰 마을이잖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사내는 침중한 어조로 답했다.
“그게……. 도적 떼에게 당했습니다.”
레베카는 미간을 좁혔다.
“도적? 파이도 마을이 고작 도적 떼에게 당할만한 마을은 아닌 거로 기억하는데.”
마을이 크면 당연히 방비도 삼엄해지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하켄의 고향인 늪지 마을만 해도 나무로 지은 목책에 조잡하지만 망루도 있었다.
만약 마을에 야트막한 성벽이라도 있다? 그렇다면 수비는 몇 배로 유리해진다.
하지만 마을을 습격했다던 도적들. 평범한 녀석들이 아닌 모양이다.
“아주. 아주아주 사나운 놈들이었습니다. 마치 이야기 속 엘프처럼요.”
“잠깐. 엘프들이 습격했다고?”
레베카가 민감하게 반응하자 피난민이 황급히 부인했다.
“아, 아뇨. 그만큼 사납다는 겁니다. 잔인하고, 숫자도 많았어요! 어림짐작해도 삼백 명은 넘는 듯한…….”
“그랬단 말이지.”
수백 명의 도적 떼.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말이 안 되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피난민이 이어 말했다.
“저희 마을은 제대로 저항도 못 해보고 놈들에게 완전히 유린당했습니다. 저희는 혼란 와중에 가까스로 탈출했죠…….”
피난민은 뒤쪽의 무리를 가리켰다. 30명 정도로 보이는 피난민들은 하나같이 남루한 복장이었다.
피난민은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부디, 저희들을 도와주시겠습니까? 근처 도시로 갈 때까지만 함께 걷게 해주십시오. 가진 것 없이 도망쳐 나와서, 저희는 이대로 가면 모두 굶어 죽거나 도적들한테 추격당해 죽을 겁니다!”
“으음.”
레베카는 곤란한 기색을 내비쳤다. 피난민 30명. 감당 자체는 가능하다.
하지만 중요한 상행인 만큼, 레베카는 변수를 짊어지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어. 우리도 도와줄 여력이 없어.”
“그, 그런.”
한순간 좌절한 피난민은 다시 고개를 들고는 간절히 부탁했다.
“그렇다면 오늘 밤만이라도 같이 묵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하루면 됩니다. 다들 도망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습니다…….”
레베카도 차마 이것마저 거절하지는 못했다.
“그래. 저녁밥이랑 오늘 밤 잠자리 정도는 내주도록 할게.”
“저,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겠죠 가브리엘 경?”
가브리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별문제 없을 것 같소. 어서 동료들을 모아와라. 상회주께서 친절을 베푸셨으니, 고마워하고.”
“아, 알겠습니다.”
피난민이 서둘러 돌아가려던 찰나. 덤덤한 목소리가 그를 잡아 세웠다.
“잠깐.”
“?”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데일이 차분히 걸어 나왔다. 그러자 가브리엘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누가 너보고 앞으로 나서도 된다고 허락…….”
“잠깐만요. 일단 지켜보죠.”
레베카가 말리자 가브리엘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데일은 천천히 걸어가 피난민 앞에 섰다.
커다란 덩치의 흑기사가 다가오자 피난민은 움찔했다.
“왜, 왜 그러시는지…….”
“너. 피 냄새가 나는군.”
몸에 배어 있는 은은한 혈향. 아무리 깔끔히 씻는다 해도, 살인을 업으로 삼는 이들은 그 특유의 미약한 피 냄새를 풍긴다.
이 냄새는 잘 감추기만 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속일 수 있다.
하지만 피에 민감한 흑기사. 그리고 짐승의 코만큼은 속일 수 없다.
데일의 옆에 따라온 하티가 피난민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며 낮게 울었다.
겁에 질린 피난민이 잡아뗐다.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전 모르겠…… 억.”
더 들을 것도 없다.
데일은 그대로 사내의 멱살을 쥐었다. 그리고 허공에 들어 올린 뒤, 짤짤 흔들었다.
퉁. 투퉁.
한번 흔들어 줄 때마다 돈주머니나 무기 따위가 후두둑 떨어졌다.
흔드는 재미가 있는 사내였다.
데일은 더는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을 때까지 사내를 마구 흔들었다.
잡다한 물건이 바닥에 쌓였다.
그리고 그중에는 피 묻은 단검도 있었다.
굳은 지 얼마 안 된 피였다.
“…….”
데일과 사내의 시선이 마주쳤다.
사내가 슬그머니 시선을 돌렸다. 데일은 사내의 이마를 붙잡고, 강제로 자신에게 향하게 돌렸다.
그리고 멀찍이서 지켜보는 무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친구들도 이곳으로 데려와라.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