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34)
134화
“자, 연이가 이겼으니 이제는 결론을 내야지.”
백검단주의 시선이 고개를 떨군 소년을 스쳤다.
“내 제자로 한 명 받아준다하였지. 어디 봐 둔 이가 있느냐?”
“음······.”
지금 나와 친밀한 아이를 밀어넣는다면······.
나는 수련생도들이 모인 방향을 보았다. 그간 내가 챙겨줬던 아이들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제가 배움을 청하고 싶지만······.”
백검단주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안 되지, 안 돼. 가주님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계시는데 말이야.”
게다가 백리가의 직계와 일반 제자는 심법부터 검법까지 모두 달랐다.
‘뭐 내게 심법은 별로 상관없는 영역이지만.’
나는 웃으며 말했다.
“단주께서 말씀하셨잖아요. 고작 내기로 연을 맺은 사제 관계를 끊을 수 없다고요.”
“그리 말하긴 했지.”
“그런데 어떻게 고작 이 승리로 제가 단주께 사제의 연을 만들겠어요?
없던 일로 할게요!”
잠시 멈칫한 백검단주가 곧이어 호탕한웃음을 터트렸다.
백검단주의 눈에 들고 싶다면 실력으로 쟁취해야 했다.
‘운이 좋다면······ 누군가는 눈에 들 수도 있겠지. 이번 일 때문에라도 백검 단주가 저 아이들을 살필 테니.’
이곳에 있는 사람 중 머리가 좀 큰 아이라면,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리고 백리명의 표정은······.
‘음, 가관이네.’
표정 관리할 정신도 없는 모양이었다.
백검단주의 제자고 뭐고 머릿속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것이 분명했다.
잔뜩 일그러진 낯이 속내를 낱낱이 드러냈다.
백리명이 거친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왔다.
“너······! 너······! 네가 어찌······!
네가 나를 속인······.”
“제가 뭘요?”
“그때 분명히······!”
나는 고개를 갸웃하곤 방긋 웃었다.
“그보다 오라버니, 축하는 안 해주시나요?”
순간 백리명이 숨을 흡 들이켰다.
모여든 많은 사람들. 소란스럽다지만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백리명의 반응에 눈을 끔뻑이고 있었다.
백리명이 빠득 이를 악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축, 하, 한다.”
“고마워요.”
그리고 소란스러운 인파 사이에서 어느새 지켜보던 방씨 어멈이 슬그머니 몸을 돌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 *
백리명은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보였지만, 다른 일이 급하다고 생각했는지 먼저 자리를 떴다.
백검단주도 다음에 한번 놀러 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나는 내 승리를 열렬히 축하하는 상기된 표정의 아이들 앞에서 그러게 나를 믿지 그랬냐고 앞으로는 믿겠냐고 좀 뻐기다가, 갑자기 내게 아는 척하며 기웃거리는 다른 정식 제자들을 피해 도망치듯 처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소란을 들은 듯 굳은 표정의 아버지와 마주쳤다.
“잠시 얘기 좀 하자꾸나.”
아버지 뒤로 걱정스러운 표정의 언두와 금쇄가 보였다.
벌써 여기 처소까지 소문이 퍼진 모양이었다.
그렇게 방에 들어온 지 일각(15분).
“······.”
“······.”
아버지는 나를 앞에 두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뭐라고 말을 해!
나는 탁자 아래서 손발을 꼼지락거리며 몸부림을 치다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먼저 운을 뗐다.
“화나셨어요?”
“아, 잠시 생각 중이었다.”
뭐라고?
나는 황당해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는 너는 네가 잘못했다 생각하느냐?”
“······.”
롤러코스터도 아니고 사람의 얼을 빠지게 만들더니 이번엔 갑자기 폐부를 찌르는 질문이었다.
‘여기서 뭐라고 답해야······?’
아버지가 내 속내를 읽은 듯 말했다.
“사실대로 말해 주었으면 한다.”
“······아뇨.”
나는 조금 망설이다 대답했다.
“나 또한 네가 잘못했다 생각지 않는다.”
“······네?”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당연히 왕창 혼날 거라고 생각하고 머리도 미리 탁자에 박을 것처럼 수그리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네게 먼저 시비를 걸었다 들었다. 아니더냐?”
“아, 아뇨? 맞아요! 막, 다른 애들을 때리고 있어서 하지 말라고 했더니······!”
“설명은 됐다. 나도 들었으니.”
“아, 넵.”
아버지 담담히 말했다.
“잘했다.
나는 믿기지 않아 눈을 깜빡였다.
그러곤 히히 웃으며 찻잔을 들었을 때,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백리가 제자를 내기로 파문시킬 생각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리 가벼워 보이더냐?”
“자, 잘못했습니다.”
내기에 관해서는 왕창 혼났다.
만약 백검단주 제자까지 추천했으면 내일까지 혼났을 것만 같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저······무백신공 2성에 대해 알려진 건 뭐라고 안 하시나요?”
“내가 왜?”
아버지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애초에 비밀로 하려던 것은 네가 다른 사람의 기대 어린 시선이 무서워서라고 하지 않았느냐?”
“네! 맞아요.”
“이제는 괜찮아졌으니 알린 거겠지.”
아버지가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버지에게서는 오로지 내가 상처 받지 않은 것에 다행이라는 느낌밖에 읽을 수 없었다.
“어차피 숨기기도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다만 다음에는 아비에게도 미리 알려 주거라.”
나는 아버지가 내 머리에서 손을 떼려는 것을 붙잡았다.
의아하게 보는 아버지의 눈빛을 받으며 손을 꽉 잡았다.
나를 응시하던 아버지가 마침 떠올랐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구나.
제갈 세가주에게서 사람이 왔다.”
“아, 끝났대요?”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얘기할 여유가 있는가 보더구나.”
제갈 세가주는 내가 준 공청석유의 내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느라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밥도 사흘에 한 번씩 먹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으니 깨어났다 한들 그때 잠깐 나와 눈이 마주친 이후로 마주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제갈 세가주와 대화를 나눌 만한 상태가 된 것이다.
“지금 가 볼 테냐?”
“네.”
물어볼 것들이 아주 많았다.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연아. 혹시 예전에 네가······.”
아버지가 말을 흐리다 침묵했다.
“아버지?”
나는 말씀하시라는 듯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눈빛이었다.
이내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니다. 가 보거라.”
* * *
“그냥 들어가시면 됩니다.”
나는 무영을 의아하게 바라봤다.
무영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가주님께서 소저는 언제든 들여보내라 하셨습니다.”
“······그렇군요.”
나는 무영 곁의 막추를 향해 말했다.
“그럼 차는 그걸로 부탁드릴게요.”
막추가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멀어졌다. 나는 제갈 세가주 방문 앞에서 기척을 내고 들어갔다.
제갈 세가주는 창가 침상에 앉아 눈을 반쯤 감고 볕을 쬐고 있었다.
‘덥지도 않나?’
거의 보름 만의 만남이었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긴 했지만, 매일같이 만나다가 보름만에 만나니 뭔가 정말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기척을 냈는데도 모르는 듯한 모습에 어쩔 수 없이 헛기침했다.
그제야 제갈 세가주가 나를 돌아보았다.
“아, 왔어? 앉아.”
나는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몸은 어때?”
“음······나쁘진 않아.”
그래. 석 달을 누워 있었는데 이 정도로 멀쩡하다는 것이 신기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내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었다. 제갈 세가주가 희미하게 웃었다.
“한 10년은 더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
공청석유의 내공을 전해 받고도 늘어난 수명이 고작 10년뿐이라니.
‘연비가 너무 안 좋은 거 아닌가?’
물론 밖으로 꺼낼 수는 없는 말이었다. 10년이라니. 그래봤자 20대 중반이었다 가장 빛날 나이.
잠깐. 생각해 보니 나는 그 20대 중반도 되지 못하고 죽었다.
‘남 걱정할 때가 아니었네.’
나는 목덜미를 만졌다.
이번 생에 야율에게 목이 날아갈 일은 없으리라 보지만······.
저번 생도 나름 살려고 발버둥친 결과가 그거였다.
“후, 사는 게 참 힘들어.”
마침 찻주전자와 간식거리를 갖고 들어오던 막추가 내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웃음을 살짝 터트렸다.
“그 나이에 벌써 힘드시면 어찌합니까.”
“에효, 그러게요.”
제갈 세가주는 그런 우리의 대화를 들으며 말없이 살짝 미소지을 뿐이었다.
막추가 물러가고 제갈 세가주가 차를 따르자 향긋한 복숭아 향이 방 안의 짙은 약 향 사이로 퍼져나갔다.
제갈 세가주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도화차?”
뜨거운 물 사이로 분홍색 복숭아 꽃망울이 펼쳐졌다.
잘 마시지 않는 차다 보니 저런 반응도 이상할 것 없었다.
“내가 내오라고 했어.”
“도화차를 좋아했어?”
“아니. 네가 좋아하잖아.”
“······내가?”
제갈 세가주의 흐린 색의 눈이 깜빡였다.
“응.”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 안 나?”
“······모르겠는데.”
‘정신을 잃고 있을 때 고양이의 경험, 시야는 공유가 안 되는 모양이네.’
만약 기억했다면 이 복숭아꽃 얘기를 모를 리 없었다.
제갈 세가주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네가 그렇다고 하니까 앞으로 그러지 뭐.”
그 모습이 뭔가 예전과는 달라 보였다.
‘뭔가 좀······ 변한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