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백리 세가, 남궁 세가, 무림맹.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은 모산파에 대한 기록.
정말 감쪽같았다. 만약 제갈 세가주가 말하고 쓰러진 게 아니라면 진작 망상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기억을 물려받은 거라면 제갈 세가주만 알고 있을 만해.’
더 조사해도 소용없을 확률이 높았다.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제갈 세가주가 말했다.
“백리 세가주가 모산파에 대해 알아보러 갔다지? 쓸데없는 짓이야.”
“혹시 더 아는 건 없어?”
“응. 찾아봤는데 없더라.”
“찾아봤다니?”
“기억이 완전한 게 아니라서.”
제갈 세가주가 고개를 기울였다가 손등으로 입을 막고 기침을 살짝 했다.
“기억을 물려 받는다. 이 방법이 처음에는 괜찮았지만······ 점차 문제가 생겼어.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었거든. 기억이 많아질 수록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지.”
차를 마시며 숨을 고른 제갈 세가주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안 또 고안해 냈지. 기억을 전승하더라도 필수적인 것들 빼고는 많은 부분을 봉인해 두는 걸로.”
그저 멸문했다고 나온 제갈 세가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전혀 몰랐다.
“내가 돌아왔다는 걸 어떻게 안거야?”
“네 행동이 특이했거든.”
“······.”
내가 그렇게 눈에 띄게 행동했나?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이렇게 넓은 곳에서 내 이야기까지 관심을 가졌다니. 그럼······.
‘천마도 알겠네.’
내가 깨물고 있던 입술에서 앓는 듯한 신음을 냈다.
천마는 나와 비슷하다 하였으니 회귀의 기억이 있다면 무조건 알테고, 기억이 없더라도 제갈 세가주도 눈치챈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혼잣말 같은 질문이 튀어나왔다.
“그럼 천마는 왜 가만히 있는거지?”
천마 정도면 당장 나를 손가락 비틀듯 죽일 수 있는 거 아닌가?
제갈 세가주가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야 살아 있는 넌 하찮지만, 죽은 넌 매우 귀찮거든.”
이 자식이······?
내 찌푸린 표정에 제갈 세가주가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살이 있어도 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 네가 권력이 있는 것도 힘이 있는 것도 아닌데.”
“······.”
뼈아팠다. 회귀해서 한 일이라곤 고작해야 주변을 조금 도와준 정도.
‘제일 큰 건 야율을 악인곡에 들어가지 않게 한 정도?’
그 외에는 자잘한 일들 뿐이었다.
‘제갈 세가주를 도운 건 원래 이 시기에 별문제 없던 애를 원래대로 돌려준 것에 가깝고······.’
즉, 세상의 시류를 바꾸기엔 턱없이 미약한 일이었다.
제갈 세가주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너 은근 건드리기 귀찮은 존재야.”
“음?”
“네 친부는 백리의강에 친조부는 천하 십일강이자 백리 세가의 가주인 백리패혁, 네가 갑자기 실종되거나 죽는다면 이유를 찾지 않겠어?”
“······.”
“거기다가 만신의와의 일 이후에는 계속 남궁세가에서 지냈잖아.”
“그랬지.”
“아직 전면전을 할 생각이 없나보지.”
그래도 나름 백이 든든한 느낌에 안도감이 들었다.
‘당장 날 죽이려 들진 않겠네.’
하지만 일부러 그냥 두고 있다는 제갈 세가주의 말에서 마음만 먹으면 날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 읽혔다.
제갈 세가주가 갑자기 말했다.
“10년?”
“응?”
“전면전 말이야. 10년 후 정도에 벌어졌을 것 같은데.”
“맞아.”
대답하고 잠시 생각하던 내가 말했다.
“천마와 마교에 관한 얘기······ 다른 사람에게 알리는 건 어때?”
“다른 사람?”
“응.”
“누구?”
“······남궁류청.”
제갈 세가주가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의아한 듯했다.
“걔한테 왜?”
“······.”
그야 이 소설 속 주인공이자, 천마에 대적할 자니까.
하지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것까지는 모르는 것 같은데······.’
말할까? 내가 읽은 소설 속 세상이라고······.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 상태가 조금 의심스러운 녀석이었다. 지금은 나를 도와주고 있지만, 여기가 소설 속 세상이고 네 고통과 단명이 누군가의 설정이란 걸 알면 무슨 반응을 보일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은 진실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진짜 소설 속 세상인지도 모르겠어.’
지켜보던 제갈 세가주가 채근했다.
“왜 , 남궁류청인데?”
나는 적당히 사실을 섞었다.
“천마와 싸울 때 가장 앞장서니까.”
백도 정파에 강자가 남궁류청뿐만은 아니다.
실질적인 무력만 따지자면 남궁류청은 자신의 조부이자 천하 십일강인 남궁 세가주, 친부인 남궁완, 내 할아버지 백리패혁에 비교해서도 밀렸다.
하지만 결국 천마와 부딪치는 건 남궁류청이었다.
제갈 세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럴 만하지. 걔 정도면 뭐, 대적자로 나쁘진 않겠네.”
“그리고 믿을 수도 있고.”
“······.”
제갈세가주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나는 좀 더 강하게 말했다.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제갈 세가주가 샐쭉 웃었다.
“싫어.”
“어?”
“도움이 될 거라니까?”
“그렇겠지.”
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왜? 왜, 싫다는 거야? 천마를 막는 게 네 목적 아니었어?”
“그건 내 목적이 아니라, 내 선조의 목적이었지. 그리고 나는 선조들······ 별로 안 좋아해.”
아주 짧은 순간, 비틀리는 입매와 낮게 가라앉은 눈빛. 별로 안 좋아한다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남궁류청 마음에 안 들어.”
“나쁘지 않다며?”
“마음이 바뀌었어.”
기가 막혀 입을 벌린 채 바라보다 고개를 내저었다.
“알겠어.”
“오, 쉽게 포기하네.”
“싫다며. 어쩔 수 없지.”
아쉽지만, 그래도 내가 알고 있으니까. 이만큼 알려 준 게 어딘가 싶었다.
이 정도의 정보를 지닌 제갈 세가주가 저번 생에는 그냥 조용히 살다 떠났다.
도울 생각이었다면 진작에 돕고도 남지 않았을까.
그때 고개를 튼 제갈 세가주가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내뱉었다. 좀 전보다 기침 소리가 더 깊어진 것이 느껴졌다.
‘거기다 솔직히······ 10년 후면······.’
내가 죽은 뒤엔 세상이 망하든지 말든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럼, 쉬어.”
나도 생각 좀 정리해야······.
그때 갑자기 제갈 세가주가 옷자락을 붙잡았다. 기침을 멈춘 그가 찻물을 마시고 말했다.
“지금 아픈 사람을 두고 가는거야?
이렇게 매정할 수가.”
“뭐라는 거야, 진짜. 쉬라고 나가주는 거잖아.”
뿌리치고 나가려 할 때 또다시 기침이 터졌다.
한숨을 내쉰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제갈 세가주를 부축해 침상으로 향했다.
제갈 세가주가 누웠을 때였다.
침상 근처 창문으로 휙 작은 빛덩어리가 뛰어올랐다. 제갈 세가주의 고양이였다.
아까 내가 정식 제자와 싸울 때 연무장에 딸린 창고 지붕에서 보이다 사라지더니만, 이제 돌아온 모양이었다
나를 본 고양이가 창틀에서 그대로 제갈 세가주 몸 위로 뛰어내렸다.
“억.”
밟힌 제갈 세가주가 신음했다.
아무거나 다 먹어서 돼지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기도 하지만, 몸무게도 돼지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녀석이었다.
“녀석, 잘했어.”
“······너무하네.”
나는 고양이의 엉덩이를 팡팡 두들겨 주다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고양이 이름이 뭐야? 이제 좀 알려 줘. 없으니까 불편해.”
“없어.”
“응?”
“어차피 내가 먼저 떠날 텐데, 이름을 붙여서 뭐 해?”
“뭐라고?”
나는 고양이를 쓰다듬던 것도 멈추고 제갈 세가주를 보았다.
제갈 세가주가 고개를 살짝 틀며 고양이를 무심한 눈빛으로 보았다.
“내가 죽으면 불러 줄 사람도 없을 텐데.”
나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이 말······ 저번에 한 말 아닌가? 뭐지?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왜 그렇게 놀랐어?”
제갈 세가주는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그럼 네가 지어 줄래? 얘가 널 많이 따르던데. 돼지 말고.”
“······.”
이 대화마저도 비슷했다.
대화 전문을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거의 똑같다고 봐도 될 것이다.
처음 든 생각은 사람이 바뀐 건가, 였다.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지는 세계니까. 영종문에 위장하고 있던 천귀조처럼.
하지만 금세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어떻게 제갈 세가주의 겉모습과 성격을 따라 한다 치더라도 내겐 금안이 있었다.
절맥의 몸 상태까지 흉내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사람이 바뀐 게 아니라면······.
‘기억 상실증? 아니, 그것도 아냐.’
기억 상실증이라고 하기에는 제갈 세가주는 그날 밤하늘 아래서 얘기한 아버지의 내공의 문제점과 모산파 얘기까진 기억했다.
‘이 고양이 관련한 대화만 잊어버린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있나?
내가 너무 오래 침묵해서일까, 제갈 세가주가 나를 불렀다.
“연아?”
“······.”
나는 대답하는 대신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고개를 살짝 튼 제갈 세가주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상에 앉았다.
제갈 세가주의 입가에서 미소가 점차 사라지고 표정이 사라졌다.
제갈 세가주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 벌써 들킨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