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제갈 세가주가 흐트러진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눈치는 빨라서.”
“기억이 많아질수록 문제가 있다고 한 거······ 이거랑 연관된 거지?”
제갈 세가주가 한숨을 내쉬며 접은 다리에 턱을 괴었다.
“맞아. 아무래도 중요치 않은 일들은 잊어버리게 되지. 음, 하필 여기서 걸릴 줄이야.”
“······잊어버린다고?”
제갈 세가주가 멋적은 듯이 웃었다.
“너 아니었으면 난 이 기억을 잊어버렸다는 사실도 몰랐을걸. 신경 쓰지 마.”
“······.”
그게 더 끔직한 거 아닌가?
제갈 세가주가 고양이에게 손을 뻗어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너랑 고양이 이름을 정한 적 있었나 봐?”
“그래.”
“그래서 그때 내가 뭐라고 했는데?”
“······얘 이름을 나한테 정해 달라고 하고, 그래서 내가 수작 부리지 말락 했어.”
“하하하, 수작이라니. 지금이라도 정해 줄래?”
장난스럽게 고개를 기울이는 모습은 전과 똑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갑자기 네가 이름, 정했다고 했어.”
“아,정했다고?”
“응.”
“그건 신기한데.”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제갈 세가주가 고개를 저었다.
“음, 역시 기억이 전혀 없네. 내가 이름을 정했다니. 뭐로 정했으려나? 그때 우리가 무슨 얘기를 더 했는데?”
“······.”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제갈 세가주는 자신의 기억이 날아갔음에도 정말로 아무렇지 않은 기색이었다.
제갈 세가주가 손을 뻗어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평소라면 바로 쳐 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넘어가 줬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어 가며 생각나는 대로 대화를 복기했다.
꽤 오래 듣기만 하던 제갈 세가주가 입을 열었다.
“아, 알겠다.”
“알겠다고?”
“응. 결이라고 붙였을 거야.”
“결?”
“응. 화결. 내 누이 이름이야.”
화사한 웃음은 일견 천진난만하게 보일 정도였다.
‘고양이한테 죽은 친누이의 이름을 붙이다니.’
제갈 세가주가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내가 또 잊어버리면 이제 네가 알려주면 되겠네.”
나는 고양이를 내려다보다 작게 말했다.
“······결아.”
아니, 이거 약간 묘한데.
제갈 세가주 누이의 이름이란 걸 아니까 함부로 부르기가 조금······으음.
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을 때 제갈 세가주가 말했다.
“나도.”
“응?”
“나도 이름 불러 줘. 응?”
나는 더욱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반말도 하고 있었다.
똑똑.
그때, 제갈 세가주의 말을 자르듯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끼어들었다.
이어 무영이 말했다.
“가주님, 소저. 대화 중에 실례합니다만, 백리 공자께서 오셨습니다.”
“······명 오라버니가 왔다고?”
내 질문에 무영이 답했다.
“예. 소저와 잠시 할 얘기가 있다고 하십니다.”
“아, 짜증 나게.”
“······응?”
예상리 못한 반응에 나는 놀라 제갈 세가주를 바라보았다.
제갈 세가주가 표정이 사라진 얼굴로 나를 보며 말했다.
“그냥 죽이는 거 어때?”
“······뭐라고?”
“살려 둬야 할 필요 있어?”
“······.”
“네가 동의만 하면 아무도 모르게 죽일 수 있어.”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이?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정말 아무도 모르게 죽일 수 있어?”
제갈 세가주가 완전히 신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야 당연히······”
“응, 안 돼.”
제갈 세가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거 참······ 아쉽네.”
네가 왜 아쉬워?
나는 차게 식은 표정으로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제갈 세가주를 바라보았다.
* * *
어느새 식은 바람이 창을 타고 들어왔다. 탕약을 들고 들어온 노복이 창을 닫고 향을 피우려 했다.
“아니, 피우지 마.”
나직한 소년의 목소리가 막아섰다.
노복은 조용히 빈 탕약 그릇을 가지고 물러났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소년이 눈꺼풀을 살짝 들었다.
“무영.”
“말씀하십시오.”
“내가 고양이 이름을 정했었대.
알고 있었어?”
“아뇨. 몰랐습니다.”
제갈화무가 숨을 깊이 내쉬었다.
눈을 감고 있다가 피식피식 웃었다.
누군가 보았다면 미친 건가 의심할 정도였다.
“내가 이래서 싫었는데 말이야.
결국 이렇게 되는군.”
제갈화무의 손이 미약하게 떨렸다. 자글자글 개미가 머릿속을 파먹는 것 같은 통증이 약 기운에 조금씩 밀려났다.
통증에서 신경을 덜듯 다른 시야에 집중했다. 흐릿한 다른 시야 속에 백리연이 사촌 오라비와 천천히 걸어가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연이 친모에 대한 건 아직도 아무런 정보도 없나?”
* * *
백리명은 이를 꽉 깨물고 자신을 따라오는 백리연을 흘끗 보았다.
처소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온 참이었다.
처소에 돌아가자마자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셨다. 백리연의 이야기를 이미 전달받고 기다리고 계신 것이었다.
잘되었다 생각하며 곧장 아버지께 하소연을 하려 했다. 하지만······ .
“백리명!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오히려 아버지는 그에게 대체 왜 그랬냐며 다그쳤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백리연이 단전을 회복한 사실을 속였냐고.
‘나도 깜빡 속은 거라고!”
아버지께 몇 번이나 자신 또한 속았다고 주장했으나, 믿으시지 않았다.
백리명은 주먹을 꽉 쥐었다.
능력도 없이 성질만 피우는 고모와 싸우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할머니와는 대립할 생각이 없었다. 분명 할머니 또한 자신이 속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결백을 증명하려면 백리연을 데려가야 했다.
백리명은 뭔가 깊게 생각에 잠긴 듯한 백리연을 다시 한번 살피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연아, 왜 그랬느냐?”
“네? 아, 맞다. 뭘요?”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난처한 지 아느냐?”
백리명과 함께 정원에 나와 놓고 같이 있던 걸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럴 만하지.’
나는 억지로 복잡한 생각들을 뒤로 밀며 백리명을 바라봤다.
“일단은 그때 제대로 축하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단전을 회복했을 줄이야. 분명 그때는 아니어서 내 당황했구나. 축하한다.”
나는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좀 전의 제갈 세가주와의 대화로 머릿속이 복잡하기 그지없거늘, 이 상황이 귀찮고 아무 의미를 느낄 수 없었다.
백리명이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때 상황때문에 조금 오해가 좀 생겼단다. 그러니 잠시 나와 같이 할머니를 좀 뵙자꾸나.”
“싫은데요.”
“뭐?”
“제가 왜요?”
“······ 너!”
버럭 소리친 백리명이 입술을 꾹 무는 것이 보였다. 머리끝까지 치솟은 화를 애써 억누르는 모습이었다.
백리명이 말을 이었다.
“내 말하지 않았느냐? 너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니······ ”
“오라버니, 저 때문이라뇨?”
나는 백리명의 말을 자르며 바라봤다.
“아니죠. 오라버니 태도 탓이죠.”
“뭐, 뭐라, 지금 네가 뭐라고?”
내 말이 믿기지 않는 듯 당황한 모습이었다. 나는 이제는 익숙해진 손짓으로 기막을 펼쳤다.
“······ !”
흠칫 놀란 백리명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기막을 알아본 듯했다.
‘다행히 머저리는 아니네.’
그래 뭐, 나름 노력파이긴 했다.
무가에서 가주를 하려면 최소 실력은 갖춰야 했으니.
“지금······ 이 무슨······ 설마?”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백리명이 주춤 물러났다. 얼굴에 경악이 가득했다.
“네가, 네가 벌써······ 벌써 검기를 발현한단 말이냐?”
착각 감사요.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검기를 발현하고 난 후 기막을 만들어내는 순서가 일반적이었다.
그 말을 반대로 한다면 내가 기막을 펼치면 당연히 검기도 낼 수 있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착각하셨던 것처럼.
“어, 어떻게······ 어떻게 벌써······ !”
나는 그저 살짝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백리명이 거의 발작하듯 숨을 가쁘게 쉬었다.
“오라버니, 아마 전 곧 폐관 수련에 들어갈 거예요.”
“······ .”
“그리고 저를 먼저 건들지 않으면 돼요.”
“거, 건들다니?”
“무슨 뜻인지 아시잖아요?”
나는 눈을 살짝 감고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제 목표는 평온하게 사는 거예요, 아버지랑.”
“······펴, 평온하게?”
“네. 평온하게.”
우울해졌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저 목이 날아가지 않길, 아버지와 평온하게 살기를 바랐는데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을 줄이야.
어느새 하루가 끝나 가고 있었다.
달도 뜨지 않은 새카만 장막에 흩뿌려진 별들은 자신의 존재를 뽐내기에만 바빴고, 지상엔 석등의 불빛만이 발치를 흐릿하게 비출 뿐이었다.
그리고 멀리 정원의 담 너머에서 어른거리는 빛이 점차 내게 다가왔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달려갔다.
“아버지!”
* * *
내 무공의 진위에 관해 꽤 소란이 일었으나 나는 모두 무시한 채, 할아버지께 서신상으로 허락을 받고 폐관 수련에 들어갔다.
백리 세가의 폐관 수련장은 백영유동이라는 동굴이었다.
온통 새하얀 돌들로 이뤄진 동굴이었는데, 은은한 빛까지 뿜어져 나오며 부드러운 기운이 가득한 곳이었다.
조금 낯설었다.
남궁세가의 폐관 수련장이었던 창궁관과 느낌이 꽤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세 적응하고 머지않아 깨달았다. 백영유동은 백리가의 무공과 특히 더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백영유동 안에 있을 때는 세상과 동떨어진 느낌으로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없었다.
내가 총 세 번의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왔을 때는 할아버지의 산수연을 앞두고 있었다.
내 나이가 열한 살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