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 * *
“백리 소저.”
이곳에 백리 소저는 둘이지만 오늘 한 명이 나오지 않았으니 이건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나는 목소리의 주인을 돌아보았다. 화사한 옷차림의 소녀 셋이 함께 서 있었다.
“우 소저, 무슨 일이에요?”
“오늘 근방의 강에 배를 띄웠는데, 학당 친우들과 함께하기로 했거든요. 백리 소저도 함께 하시겠어요?”
나는 살짝 놀란 얼굴로 우 소저를 바라보았다.
“진작 초대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꽤 전에 계획했던 일이라서······.”
우 소저가 말끝을 흐렸다.
처음 학당에 갈 때 계획했던 인맥 만들기는 애매한 상태였다.
‘뭐, 회귀했다고 모든 미래가 성공적일 수는 없으니까.’
일단 가장 큰 문제는 내가 계속 폐관수련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이다.
학당에 나온 기간을 다 합쳐야 채 1년도 미치지 못했다. 얼굴을 봐야 친해질 텐데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
게다가 지금, 세 번째 폐관 수련을 끝내고 다시 학당에 나오기 시작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번째 원인은······.
“나랑 선약이 있어서, 그건 안 되겠는데.”
나는 한숨을 삼키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우 소저가 살짝 탄식하는 듯이 말했다.
“석 공자!”
나는 이미 기척을 느끼고 있었기에 놀랍지 않았다.
연옥빛 장포 자락이 흔들리며 대문이 만든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한낯의 볕이 백자처럼 고운 피부를 비추고, 선이 고운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어릴 적부터 싹이 남달랐던 외모는 갈수록 물이 오르고 있었다.
두 번째 원인.
석가약 때문이었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석가약을 불만스럽게 바라봤다.
이 녀석이 자꾸 자기랑 놀자고 귀찮게 군단 말이지.
‘이 녀석은 친구도 없나? 맨날 내 뒤만 쫓아다니고.’
폐관 수련을 하지 않고 학당에 나올 때는 석 태의께 의술도 조금씩 배우고 있었기에 녀석을 내 쫓기도 힘들었다.
내 불만스러운 표정에 석가약이 웃었다. 짓궂은 웃음에 천진난만함이 담겨 있었다.
다시 우 소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석 공자도 같이 가시겠어요?”
“음? 나?”
“예. 이미 거절하셨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같이 가시는 게 어떠세요?”
나는 우 소저를 돌아보았다.
석가약은 우리와 수업이 달랐기때문에 우 소저와는 친분이 깊지 않을텐데?
그때 세 소녀 중 주홍빛 경장의 가장 키 큰 소녀가 우 소저의 소맷자락을 꽉 쥔 채 뺨을 붉히고 있었다.
‘아, 이거······.’
주홍빛 경장의 소녀는 한 소저로 내 기억이 맞는다면 올해 열 다섯이 되었다.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을 나이지.’
석가약이 곤란한 것처럼 미간을 좁혔다.
“그건······”
나는 손뼉을 치며 석가약의 말을 잘랐다.
“좋아! 같이 가자. 괜찮지?”
석가약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나는 석가약을 따라 짓궂게 웃었다.
* * *
학당 뒤쪽으로 나 있는 강줄기를 쭉 따라 올라갔다.
오가는 사람도 적은 작은 선착장이었다. 차양을 친 뱃놀이용 배가 한 대 자리하고 있었다. 선착장 크기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컸다.
일부러 조용한 곳을 고른 모양이었다. 학당의 기 선생이 아이들이 사치 부리는 것을 탐탁지 않아 하는 까닭일 것이다.
우 소저를 비롯한 소녀들이 석가약을 잠시 살폈다. 석가약이 기 선생과 남달리 친밀하다는 건 학당을 다닌다면 모를 수 없었다.
석가약이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저는 모르는 일이니 걱정 마세요.”
우 소저가 안도의 숨을 내쉬고, 한 소저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석 공자의 배려에 감사해요.”
이게 감사받을 정도의 일인가?
나는 한 소저의 발그레한 얼굴을 보며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소저가 말을 이었다.
“석 공자는 뱃놀이를 좋아하시나요?”
“좋아하죠.”
“다행이네요.”
그 두어 마디가 용기를 끌어모은 것인지 한 소저가 다시 우 소저에게 바짝 붙어 앞서 나갔다.
나는 석가약을 향해 전음했다.
「 우리 가약이 인기가 많으시네요. 」
석가약이 입술을 슬쩍 깨문 채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모른 척 시선을 돌렸다.
배에 올라타고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내부는 바깥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더 호화로웠다. 거의 무슨 연회장을 옮겨다 놓았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놀란 나와 달리 석가약은 미리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무척 태연했다.
안에는 이미 많은 소년 소녀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아이들도 몇 있는 것을 보아 학당 사람들만 모인 건 아닌 듯했다.
나이대 또한 다양했는데 성년에 가까워 보이는 청녀부터 형제자매를 따라온 듯 나보다 어린 아이들도 몇 명 보였다.
나와 석가약을 알아본 몇몇이 이채 어린 눈을 했다.
그때였다.
“백리연?”
아, 이런.
생각해보니 이런 자리에 이 사람이 빠질 리 없었다. 석가약 때문에 정신이 팔려서 그만 거기까진 신경 쓰지 못했다.
나는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돌아보았다.
“오라버니.”
나는 백리명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백리명은 이제 거의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벌써 혼인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하였다.
백리명이 말했다.
“네가 여긴 웬일이냐?”
“초대받아서 왔어요.”
“누구에게?”
목소리에 못마땅함이 배어 있었다. 그건 나만 느낀 것이 아닌 듯 우 소저가 백리명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저예요. 왜 그러시나요?”
우 소저의 말에 백리명이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했다.
백리명이 웃으며 말했다.
“아니, 연이가 원래 이런 곳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요. 대체 누가 무슨 묘기를 부려 데려왔는지 궁금해서 그랬습니다. 거기다 석공자도 초대를 거절했었으니까요.”
표정을 푼 우 소저가 백리명에게 나를 초대한 상황을 가볍게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들은 후, 백리명이 나를 돌아보고 웃었다.
“그래. 그렇게 된 거구나. 이왕 온 것 재미있는 시간 되길 바란다.”
“네.”
말은 그리하면서도 눈빛만큼은 경계심을 숨기지 못했다.
나는 멀어지는 백리명을 꽤 오랫동안 응시했다.
석가약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뭐 해?”
“몸 상태가 별로인 것 같아서.”
“네가?”
석가약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나는 고개를 젓고 멀어지는 백리명을 고갯짓했다.
“놀랐잖아.”
석가약이 안도한 것처럼 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주변에 들리지 않게 매우 낮춘 목소리였다.
“영약이란 영약은 다 찾아다 먹고 있다고 들었는데. 영약도 적당히 먹어야지. 저러다가 정말 큰일 나는 거 아닌가 몰라.”
백리 세가 정도면 최그급까진 힘들지라도 적당히 괜찮은 영약은 계속 공급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백리명의 몸에는 미처 흡수해 내지 못한 여러 영약의 흔적이 짙게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최근 또 무리해서 영약을 먹은 모양이었다.
몸에 좋은 약이라도 적당히, 라는 게 있는 것이다. 내공 증진에 도움이 되는 영약도 마찬가지였다.
“너 폐관 수련 중에는 영약 관련해서 태의도 몇 번 찾아 왔어.”
석 태의가 나와 한패라 여겨 무척 경계할 텐데, 그보다는 실력 좋은 것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었다.
‘뭐, 내가 걱정해서 뭐 하겠어?’
저 무리를 하게 된 원인이 나인데.
내가 몸을 사리라고 해 봤자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었다.
“소저! 공자! 이쪽으로 와요!”
우 소저가 소리쳤다.
배는 선착장에 머물다가 몇 사람을 더 태우고 출발했다.
내가 앉은 자리는 모두 무가의 자제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석가약은 이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한 소저를 비롯한 두어 명의 소저들이 그를 둘러싸고 신이 난 것처럼 말을 붙이고 있어서 딱히 동떨어져 있진 않았다.
‘곤란하게는 보이지만.’
소저 한 명이 진맥해달라고 손목을 재미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꽤 많은 얘깃거리가 오갔다.
‘무림판 가십거리라고 해야 할까?’
회귀 전 이때의 나는 얘기하는 사람이라고는 시비인 당금뿐으로 친구도 없었다. 그렇게 칩거나 다름없는 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부부느 처음 듣는 이야기로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검후께서 작년에 제자를 들이셨다는데 나이가······.”
“이번 용봉지회에서 무림 공적중에······.”
“화산파에서 친선전을 여는데······.”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에 나는 와! 세상에! 진짜요? 등의 추임새를 담당했다.
한참 재미있게 듣고 있을 때였다.
“맞아. 그거 들었어요? 이번에 남궁 공자가 광무종의 후계자를 서른 합 만에 패배시킨 거.”
내가 들고 있던 찻잔이 움찔 떨렸다.
찻물을 머금고 있었더라면 그대로 뿜었을지도 몰랐다.
“광무종 후계자 연배가 남궁공자보다 열은 더 많지 않아요?”
“에이 그 정도는 아니고요. 다섯 정도 될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광무종 후계자면·····.”
“그런데 왜 광무종과 남궁 공자가 싸운 거죠?”
“사파 쓰레기를 치는 데 이유가 있나요?”
“전후 관계가 궁금하다는 거죠.”
싸움과 결과까진 전해졌어도 그 내용까지 전해지기엔 먼 거리였다.
그 내용은 간단했다.
서하령과 남궁류청의 관계 개선에 관한 스토리였다.
사파의 한 축을 담당하는 광무종과 수향문 사이에 알력 다툼이 생겼다. 사파와 정파의 알력 다툼이야 늘 있는 것이지만 이번 일은 좀 심각했다. 알력 다툼이 거의 전쟁까지 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서하령과 남궁류청이 서로를 도우며 가까워지는 그런 얘기 인 것이다. 원래는 저 이야기에 아버지도 끼어 있어야 했다. 남궁류청의 스승이 되었었으니.
하지만 이번에는 스승이 되는 일이 없었기에 아버지 이야기는 빠졌다. 그래서 혹시나 내가 알던 미래와 틀어질까 봐 꽤 걱정되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아버지의 역할을 남궁완 아저씨가 대신 하면서 내가 기억하는 스토리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그걸로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바꾼 것들이 있더라도 큰 틀에서의 미래는 현상을 유지 한다는 것을.
광무종과의 싸움에서 내 아버지의 역할을 남궁완 아저씨가 한것처럼.
‘그럼 남궁류청의 인성은 누가 담당하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