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5)
15화
‘아 몰라 그냥 토끼로 하자. 누가 알겠어?’
어찌 되었든 할아버지께 드린다는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는가?
예상치 못한 만남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더 실수할까 걱정된 난 내빼기 위해 슬금슬금 문쪽으로 향했다.
“그럼 할아버지, 전 이만 물러 가 보겠습니다.”
“거기 서거라.”
젠장.
난 최대한 귀엽게 웃는 얼굴로 돌아보았다.
웃는 얼굴에 침 안 뱉는다는데 혼내진 않겠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혼나는 것보다 더 무서운 말을 했다.
“이리 만났으니 하나 묻자꾸나.”
그리곤 의자에 앉으며 반대편 의자를 손짓했다.
“저기 앉거라.”
으아! 얼마나 말이 길어질 것이기에 앉으라고 하는 거지?
의자로 향하는 걸음이 무거웠다.
의자에 앉은 내게 할아버지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했다.
“연아.”
“네, 할아버지.”
“너는 표와 악이가 올해 3성을 넘을거라 보느냐?”
“네?”
난 황망한 얼굴로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야······ 절대 불가능하지.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그걸 제가 어찌 알겠어요?”
“하나 넌 기다렸다는 듯 폐관수련을 꺼내지 않았더냐?”
“고모님이 넘을 거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아니, 넌 알았다. 처음부터 표와 악이가 3성을 넘지 못할 걸 알고 있었어.”
“······.”
“여태껏 널 지켜본 결과 네가 무척 똑똑한 아이인 걸 안다. 네가 폐관 수련 얘기를 꺼낸 건 나를 돕기 위해서였지. 어디 내 말이 틀렸더냐?”
나는 깜짝 놀라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간 내가 설치긴 설쳤나 보다.
할아버지가 벌써 이렇게 파악하시다니.
난 잘못을 들킨 아이처럼 눈을 내리깔고 고개를 떨궜다.
“······아니요, 할아버지 말씀이 모두 맞아요.”
여기서 거짓말은 통하지 않았다. 차라리 이럴 땐 진실을 내보여야 했다. 어설픈 거짓말은 화를 돋우기만 할 테니까.
나는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오라버니들을 학당에 보내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요.”
“앞으론 나서지 마라!”
그리고 전혀 생각도 못한 호통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엄정했다.
입술을 깨문 난 씁쓸한 심경을 뒤로하며 사죄했다.
“······네. 죄송해요.”
“이해를 못 했군.”
할아버지가 가볍게 탁자를 두르렸다.
“네가 그리 나섰으니 표와 악이가 널 어찌 생각하겠느냐? 네가 자신들을 골탕먹였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 그럼 앞으로 그 애들이 어찌 나오겠어!”
할아버지가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넌 무공도 익히지 못하였고 몸도 많이 상해 있다. 만약 쌍둥이들이 작정하고 널 괴롭히면 어쩔 것 같으냐?”
다시 고개를 번쩍 든 내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닛? 할아버지가 꽤 쌍둥이들에 대해 잘 파악하고 계시잖아?’
그런 내 속마음을 모를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집안에 네 어미가 있는 것도 네 친조모가 있는 것도 아니다. 네 아비가 신경 쓴다 하더라도 애들 싸움까지 매번 끼어들 순 없을 거다. 아비가 언제까지 집에만 있을 수도 없고! 나 또한 고작 이런 일로 네 편을 들어 줄거라 꿈도 꾸지 마라!”
언뜻 들으면 마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위세를 등에 업고 멋대로 굴지 말라는 뜻 같았다.
하지만 난 알았다. 이건 날 걱정해서 한 말이었다.
‘뭐지? 갑자기 왜 이런 조언을? 날 싫어하시는 게 아니셨나? 설마······?’
그간의 일로 어쩌면 내게 미약한 정이 생긴 걸까?
그렇다면······ 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한발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 제가 원하지 않아도 싸움을 건다면요?”
“그게 무슨 소리냐?”
“표와 악 오라버니가 그랬어요. 저한테 폐품, 무공도 못 쓰는 쓰레기라고요.”
“뭐라? ······걔들이 그런 말을 했다고?”
금시초문이라는 듯 할아버지가 눈을 부릅떴다.
난 믿음을 주기 위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날 할아버지 오시기 전에 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요.”
멈칫한 할아버지가 탁자를 쾅 내리쳤다.
“어디서 그런 저급한 말버릇을!
의란은 대체 애들을 어찌 가르친 거야? 넌 네 아비한테 말하지 않고 그걸 가만 뒀느냐?”
“애들 싸움인걸요.”
할아버지가 허를 찔린 얼굴을 했다.
난 재빨리 준비한 말을 꺼냈다.
그러며 약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할아버지, 제가 저 말을 듣고도 싸우지 않는다면 나중에 몸이 낫더라도 제게 검을 들 자격이 있을까요?”
“······.”
“저는 자신에게 당당해지고 싶어요.”
어떤 역경에도 꺾이지 않는 당당함.
그야말로 무인이 가장 좋아하는 태도이지 않나? 그리고 내 진심이기도 했다.
* * *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난 숟가락을 든 채로 앞에 차려진 산해진미를 멍하니 바라봤다.
“안 들고 뭐 해?”
이건 다 완자조림 때문이다!
돌아가려던 날 붙잡은 할아버지가 밥이나 먹고 가라고 했다. 거절하려던 난 완자조림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멈칫했고······.
결과는 이 식사 자리였다.
할아버지와 단둘이 식사했다는 사실을 들은 사촌들이 난리 칠것이 눈에 선했다.
‘하지만 맛있는걸······.’
완자를 입에 문 난 내가 만족스럽게 발을 까딱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좀 팍팍 좀 먹거라! 그러니 이리 비리비리 하지. 이것도 한번 먹어 보아라. 노루 고기다.”
“노루요?”
“그래. 넌 본 적 없겠군. 황갈색으로 어린 소와 비슷하게 생겼다.”
양념에 절인 얇은 고기를 집어 들었다.
‘맛있어!’
너무 맛있어서 억울할 정도였다.
그런 내 표정을 어찌 해석했는지 할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맛있는 걸 먹고 왜 울상이야?”
“너무 맛있어서······.”
웅얼거리던 내가 재빨리 덧붙였다.
“아버지도 같이 못 먹어서 아쉬워요.”
“별걸 두고 울상이구나. 네 아비 것도 충분하니 신경쓰지 말고 먹거라!”
“감사해요, 할아버지!”
“말끝마다 아비 타령이군. 그리 좋으냐?”
난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의강이는 요새 어찌 지내느냐?”
난 뜻을 알 수 없는 질문에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냥 평소에 어찌 지내냔 뜻이다. 종일 붙어 있지 않느냐?”
하지만 백리 세가에 할아버지 귀와 눈이 없는 곳이 있을 리가?
어찌 지내느냐 말 한마디면 그날 먹은 식단부터 젓가락질을 몇 번 했는지까지 나올 텐데 내게 질문한 의미를 잘 알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셔서 간단하게 수련하시고, 서책 살피다가 저 낮잠 잘 때 잠깐 일 보시고 오시고······.”
“그런 것 말고······ 아니, 아니다.”
뭐지?
할아버지가 애한테 말해 뭐하냔 표정으로 말을 하다 말았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할아버지 앞에 노루 고기를 내려놓았다.
“할아버지도 드세요.”
때늦은 점심을 배불리 먹어서일까, 잠이 미친듯이 쏟아졌다.
‘그러고 보니 낮잠 식나도 걸렀네······.’
어린아이의 몸은 이게 문제였다. 의지가 있어도 몸이 버티질 못했다.
난 좋은 차를 앞에 두고도 입을 가리며 연신 하품을 하기 바빴다.
혀를 끌끌 찬 할아버지가 말했다.
“졸리면 예서 좀 자거라.”
“하지만······.”
“그 꼴로 돌아가다 길바닥에서 잠들겠다만.”
“할아버지도 참, 제가 앤가요?”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가 어차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으나 난 이미 반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럼 네가 애지, 어른이냐?”
“그렇지만······.”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에 – 라고 생각하며 몇 번이나 노력했으나 갈수록 머리 가누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럼 염치불구하고······.”
“허참,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난 노하인의 손에 이끌려 어딘가에 누웠다.
두툼한 이불이 몸을 덮자 안정감이 들었다. 난 순식간에 수마에 빠져들었다.
“하나만 묻자.”
머리맡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말씀하세요.”
“네 어미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
“으음······.”
돌이켜 생각하면 매우 진지한 주제였다. 아마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이 질문을 하고 싶어 내게 밥을 먹고 가라 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시 반쯤 잠에 빠져든 난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몽롱하게 답했다.
“몰라요. 아무 말도 안, 안 해 줬어요. 하지만······ 내가 바본가?”
“바보?”
“하하······ 어떻게 몰라······? 엄마가 날 버린 걸······.”
내 말에 할아버지가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나는 그 얼굴을 보지 못한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