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6)
16화
* * *
백리의강은 예상보다 늦어진 귀가에 이미 일어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딸을 떠올리며 처소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문을 넘어 이문까지 들어왔을 때 백리의강은 자신을 기다리는 아버지의 노하인을 마주쳤다.
그리고 백리의강은 처소가 아니라 수백당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주님, 4공자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라 해라.”
곧이어 의강이 굳은 얼굴로 나타났다. 그러곤 인사를 올리기도 전에 백리패혁 곁에 잠들어 있는 딸을 보고 놀랐다.
놀랐다 한들 약간 눈을 크게 뜬 정도였지만 그 정도도 백리의강에게선 자주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연아?”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기라도 한 건지 작은 입이 오물거렸다.
“놀랄 거 없다. 애가 먼저 찾아 왔느니.”
“예? 연이가요?”
백리의강의 얼굴은 계속 굳어 있었지만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는 낯이 살짝 비쳤다.
백리패혁이 의강을 흘겨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억지로 끌고 오기라도 했을 거란 말이냐?”
“아닙니다. 그저 연이가 아버지를 왜 뵈러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애가 아비보다 낫더군.”
“예?”
백리패혁이 품속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의강에게도 익숙한 손수건이었다.
의강이 몸을 숙여 이를 자세히 확인했다.
“그건 연이가 만든 것 아닙니까?”
“그래. 손이 야무지더군.”
그리고 백리의강은 백리패혁의 얼굴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자신의 친부이지만 저렇게 기분좋은 기색을 내보이는 건 드물었기 때문이다.
“내 기가 막혀서, 무인한테 토끼를 수놓아 주는 앤 처음 봤다.”
“예? 꽃과 나비 아닙니까?”
“무슨 소리냐? 봐라! 토끼지 않느냐!”
“그······ 러네요.”
백리의강은 알쏭달쏭한 얼굴로 손수건을 보았다.
“학당에 보내 줘 고맙다고 몰래 놓고 가려 했더구나. 내 다섯 손주를 모두 보냈건만 제대로 감사하다 생각하는 아이는 한 명뿐이구나!”
으스대듯 손수건을 도로 집어넣은 백리패혁이 말을 이었다.
“쯧, 여하튼 그래서 내가 밥이나 같이 먹자 했다. 나이가 드니 영 입맛이 없었는데, 애가 먹는 걸 보니 나도 입맛이 돌더구나.”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게 다더냐?”
“예?”
되묻는 아들의 모습에 백리패혁은 답답해하면서도 동시에 안도했다.
만약 다른 자식들이었다면 어떻게든 자기자식 얼굴을 한 번 더 보이겠다고 밀어 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확신했다. 손녀딸이 제게 손수건을 만들어다 준 일은 의강과 전혀 관계없는 것을.
정말 손녀딸만의 생각인 것이다.
그 사실이 백리패혁은 매우 기꺼웠다.
백리패혁이 백리연을 내려다보곤 한숨을 쉬었다. 쌔근쌔근 얕은 숨을 내쉬는 발그레한 뺨은 통통해야 할 아이답지 않게 야위어 있었다.
“제대로 챙겨 먹이는 게 맞느냐?”
“더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바늘은 놓지 말게 해.”
“예?”
“검을 쥐어야 할 아이야.”
“그······”
“혹시나 애가 원하는 길을 가게 해 줘야 한단 말 같지도 않은 말 내뱉을 거면 때려치워!”
“······.”
정말 그러려 했는지 백리의강이 살짝 시무룩한 낯으로 침묵했다.
이에 백리패혁이 혀를 끌끌 찼다.
“됐다. 이 멍청한 놈. 어서 데려 가거라.”
괜스레 욕을 얻어먹었음에도 딸을 안는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그럼 소자,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고개를 까딱인 백리패혁이 돌연 물었다.
“치료는 잘하고 있는 거지?”
“예.”
“······네가 선택한 길이니, 후회 없길 바란다.”
* * *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갔다.
며칠 지나지 않은 것 같거늘 벌써 학당에 가는 날이 되었다. 백리 세가에 들어오고 나서 대문을 넘는 첫날이기도 했다.
답답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틀에 박힌 생활이 따분하긴 했던 모양이었다. 전날 밤에 설레서 잠이 오질 않은 걸 보면.
‘요새 몸 상태도 좋고.’
중간에 수업을 빠질 정도까진 아니라 생각했지만······ 할아버지께서 일부러 신경 써 주신 것이니 그냥 네, 네, 하며 알았다고 했다.
학당 가는 길은 아버지가 직접 데려다주었다. 그러고도 걱정이 되는지 아버지의 몸종인 언두를 붙여 주기까지 했다.
학당은 외곽의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장원을 새롭게 단장한 곳이었다.
학당 뒤쪽 울창한 숲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만끽하며 본당으로 들어갔다.
수업이 시작되려면 아직 일렀지만, 이미 와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던 사이인지 벌써 삼삼오오 짝을 이뤄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였구나.’
난 전생엔 한 번도 구경해 보지못한 학당을 흥미럽게 둘러보았다.
한 단 높은 곳엔 병풍과 그 앞엔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었다.
‘저기가 선생님이 앉는 곳일 테고······ 우린 여기 앉는가 보네.’
앉은뱅이 탁자엔 벼루와 먹, 종이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 앞엔 방석이 놓여 있었다.
둘러보던 난 순간 쌍둥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일그러진 얼굴로 날 매섭게 노려보던 쌍둥이가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쌍둥이 곁으로 다가간 어린 소녀가 묻는 목소리가 들렸다.
“왜 너희들밖에 없어? 리리는?”
“고뿔 걸렸어.”
“뭐? 하필 오늘 걸리다니, 안됐다. 빨리 나으라고 전해 줘.”
“아, 리리 고뿔이야? 정말 안 와? 보고 싶었는데, 아쉽사!”
모여 있는 아이 중 백리 세가 쌍둥이들 주변에 가장 사람이 많았다.
백리 세가의 위세를 절로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적당한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리자 하인이 나타나 여러 번 기침하며 아이들을 주목시켰다.
“선생님 오십니다.”
아이들이 정좌를 마치기가 무섭게 문이 열렸다.
* * *
대충 반 시진(1시간) 정도의 소개 시간이 끝나고 일각(15분)의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미 선생께는 언질이 되어 있었다.
학당의 안뜰은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뛰쳐나온 아이들로 소란스러웠다.
특히 담벼락 뒤편 커다란 회화나무와 수풀이 우거진 쪽에 아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었다.
“그래! 잘······ 앗! 놓쳤다! 뭐 하는 거야!”
그 중심엔 쌍둥이들이 있었다.
백리표는 허공에 기다란 막대기를 휘두르고 있었는데 마치 검술시범을 보이는 것 같았다.
무심하게 시선을 돌리던 내가 다시 쌍둥이들을 보았다.
검술 시범이 아니었다. 백리표는 허공에 막대기를 휘젓는 게 아니라 웬 새를 쫓아내고 있었다.
곧이어 소우악이 다른 아이의 등을 밟고 담벼락에 올라갔다.
한참 회화나무를 올라가 보려던 소우악은 결국 포기하고 바닥으로 내려와 화를 내며 회화나무를 걷어찼다.
‘뭐 하는 거야?’
자세히 살피자 회화나무 윗가지에서 새둥지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백리표가 휘두르는 막대기에 새는 쫓겨났다가도 다시 돌아오길 반복했다.
지켜보던 난 몸을 돌렸다.
학당을 나오자 언두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별일 없으셨지요? 수업은 어떠셨어요?”
“서로 인사만 했어.”
“하긴 첫날이니까요. 그럼 갈까요?”
앞서가던 언두가 뒤따라 오는 기색이 없자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았다.
“아기씨? 갑자기 머리는 왜 푸신 거예요?”
양쪽으로 틀어 올렸던 머리카락이 스르륵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신구라도 하고 올걸.’
선생이 사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어서 일부러 수수하게 차려입은 것이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머리끈은 옅은 옥색 비단에 금사로 연꽃을 수놓은 것이었다.
끄트머리엔 금장식도 되어있었다.
난 머리끈을 언두의 손에 올리며 몸을 숙이게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싸치발을 들고 귀에 속삭였다.
얼떨떨한 표정의 언두가 나를 바라봤다.
“부탁해.”
“어려운 일은 아니니······ 알겠습니다.”
언두가 학당으로 들어가고 난 약간의 시간을 두고 뒤따랐다.
대문을 넘자 학당 하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가세요, 들어가세요. 곧 선생님이 오십니다.”
안뜰을 시끄럽게 뛰놀던 아이들이 아쉬워하며 우르르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모두 들어간 걸 확인한 하인이 마지막으로 들어서며 문을 닫았다.
재빠르게 다가온 언두가 말했다.
“아기씨, 시키신 대로 했습니다. 무슨 일인 겁니까?”
난 언두에게 따라오라 손짓하며 쌍둥이들이 있던 나무 근처로 갔다.
나무를 올려다보자 새둥지는 무사했다. 아비인지 어미인지 모를 새는 지쳤는지 날아오르지 않고 둥지에서 고개만 내밀어 경계했다.
“다행이네. 돌아가······”
그때였다.
어딘지 모를 가까운 곳에서 뺙뺙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게 무슨 소리죠? 이쪽에서 나는 것 같은데.”
언두가 몸을 숙여 귀를 기울였다.
한참 수풀 사이를 살피던 언두가 외쳤다.
“아기씨! 여기 새끼가 떨어져있습니다. 저 둥지에서 떨어졌나 본데요?”
언두가 가리킨 곳에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새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운 좋게 수풀로 떨어져 산 듯 싶네요.”
언두가 집어 들려는 걸 황급히 막으며 손수건을 내밀었다.
‘솔직히 손수건도 불안하지만······.’
맨손보다 나을 거라 믿는 수밖엔 없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자 뺙뺙거리던 새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꾸물꾸물 손수건 위에서 움직이는 새를 보던 내가 나무 위를 보고 물었다.
“둥지에 넣을 수 있을까?”
“씁, 나무 타 본 지 한 5년쯤 된 거 같은데 뭐, 까짓것 해 보죠, 뭐.”
“소용없어.”
바로 옆에서 들린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나와 언두 둘 다 깜짝 놀라 돌아봤다.
언제 곁에 왔는지 모를 사내아이가 한 명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