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7)
17화
버드나무 가지 문양을 수놓은 감색 비단옷과 허리를 조인 요대에는 옆은 하늘색의 옥조각과 강옥 구슬 장식이 아이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렸다.
기다란 속눈썹 아래 반짝이는 눈을 샐쭉 접은 아이가 말했다.
“놀랐어? 미안해.”
아기씨께 무례하다고 말하려던 언두는 사내아이에게서 풍기는 고고한 분위기에 눈치 빠르게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나는 소년을 살피다 물었다.
“······왜 소용없는데?”
“여기 날개가 부러졌어.”
소년이 가리킨 곳을 자세히 보자 한쪽 날개가 살짝 틀어져 있었다.
야생에서 날개가 부러진 새끼 새라니.
“······그럼 죽겠네. 불쌍해라.”
새끼 새는 제 처지도 모르는지 한쪽 날개를 축 늘어트린 채 계속 해 뺙뺙 거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제 새끼들을 보호하려던 부모 새들이 이 소릴 듣고 날아올 만도 했는데, 이미 부모 새들도 이 새끼는 포기했는지 둥지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때 소년이 물었다.
“왜 그렇게 했어?”
“뭘?”
“학당 하인 시켜서 애들 일찍 들여보낸 거잖아.”
소년의 시선이 흐트러진 검은 머리칼로 향했다.
“머리끈 줘서.”
그걸 다 지켜보고 있었단 말이야?
소년은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물었다.
“그렇게 할 필요 있어? 그냥 말리면 되지 않아? 너 백리 세가 쌍둥이랑 사촌 아냐?”
난 무심코 조소할 뻔했다.
‘내가 말리면 걔들이 듣겠어? 오히려 더 난리를 피우면 피웠지.’
하지만 이런 사실을 오늘 처음만난, 누군지도 알 수도 없는 소년에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난 생긋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들은 경쟁의식이 높아서 내가 말렸다면 오히려 더 잡으려 들었을 거야.”
“경쟁······의식?”
내 말이 의외인지 눈을 크게 뜬 소년이 웃음을 터트렸다.
무척 낭랑한 웃음소리였다.
멍하니 이를 보던 내가 퍼특 정신을 차리고 언두를 향해 말했다.
“이만 가자.”
“어? 벌써 가게?”
아직도 웃음기 남은 소년의 말을 무시하고 몸을 돌렸다.
언두가 손을 내려다보았다.
“얘는 어쩔까요?”
입술을 살짝 깨문 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수풀에 다시 내려놔.”
“어······.”
“어차피 둥지에 넣어도······ 죽을 테니까.”
난 힘없이 말했다.
방도가 없었다.
괜히 둥지를 건드렸다가 부모새가 다른 새끼들을 함께 포기하게 될 수도 있었고, 만약 내가 데려간다면 평생을 돌봐 줘야 할텐데 난 자신 없었다.
‘백리 세가에선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들어서······.’
그때 소년이 나섰다.
“내가 치료할 수 있어, 날개.”
멈칫한 내가 소년을 돌아보았다.
“이제 돌아보네.”
빙그레 웃은 소년이 대나무처럼 빼어난 자태로 예를 갖춰 인사했다.
“내 소개를 안 했네. 내 이름은 석 가약. 석 태의의 먼 친척으로 얼마 전에 이곳에 왔어.”
* * *
난 푸른 담벼락과 기와, 그리고 중후하면서 기세가 남다른 건물들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태의가 이렇게 돈을 잘 버는 직업이었나?’
백리 세가에 비할 규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정교하고 아름다운 화원부터 공손한 태도의 하인들의 옷가지까지 깔끔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다.
이리저리 살피며 감탄하는 내 곁에서 수려한 소년이 말했다.
“모란을 좋아하나 봐.”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석가약이었다.
‘석가약······.’
전생에 마주친 적도 없고, 작중에서도 언급된 적 없는 아이였다.
“백리 세가 정원은 흰 모란이 대부분이거든. 이 색은 처음 봐.”
“백리 세가의 이화 정원도 아름답기로 유명하지.”
난 열심히 저택을 구경하며 석가약을 따라가던 중 돌연 걸음을 멈췄다.
석가약이 의아하게 날 돌아봤다.
“무슨 일이야?”
“······혹시 우리 아버지 여기 계셔?”
“아니, 안 계시는데.”
“그래?”
고개를 갸웃거린 난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마굿간이 있는 방향을 보았다.
‘아버지 말이 보인 것 같은데······?’
하지만 스치듯 지나간 말을 다시 찾을 수는 없었다.
“내가 잘못 봤나 봐.”
무심히 넘어가던 난 문득 석가약의 태도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쟤는 아버지가 여기에 안 계신 걸 어떻게 확신하지?’
석가약과 나는 방금 이 저택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내 말을 들었을 때 의문을 가지거나, 적어도 하인에게 손님이 오셨냐고 물어보기라도 해야지 않나?
하지만 석가약은 일언지하에 없다고 단언했다.
‘······뭘 숨기는 거지?’
하지만 아버지가 여기 계신 걸 딸인 나에게 비밀로 해야 할 이유가 대체 뭐가 있던 말인가?
피어오르는 의심을 뒤로한 채 안내한 방 안에 들어갔다.
방 안은 밖보다 더 화려했다.
금과 은으로 장식한 화려한 가구들이 가득했다.
금사로 포도 문양 자수를 놓은 푹신한 방석 위에 앉자 석가약이 몸종에게서 쟁반을 받아 들었다.
하얀 찻잔이 내 앞에 놓이고 석가약이 쪼르륵 내 앞에 찻잔을 채웠다.
찻물은 맑은 연분홍빛이었다.
“몸의 열기를 빼내 주는 차야.”
내가 주화입마에 빠져 입은 내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석 태의 친척이라기에 의심은 내려 뒀지만 그래도 경계심은 들었다.
“석 태의께서······ 네게 그런 얘기도 하셔?”
“석 태의의 약제 처방 정리를 가끔 도와드리는데 며칠 전에 천화분, 곡정초, 목단피······ 심한 내상의 열기를 빼내어 주는 처방이 있었어. 그리고 네 눈가가 붉고 입술이 말라 미열이 있어 보이니 그 약재의 주인이 너인 걸 알았지.”
“아.”
그래. 명색이 태의였는데 남의 건강 정보를 뿌리고 다니진 않겠지. 다행이었다.
하지만 석가약의 말에도 의심스러운 건 여전했다.
‘······저게 보통 내 또래의 태도라고?’
쌍둥이들과 백리리가 보통 아이의 모습 아니었나?
똑똑한 것도 똑똑한 것이었지만 눈치나 태도 자체가 남달랐다.
“의술을 배운 거야?”
“응.”
“넌 그럼 학당 안 다녀?”
“다녀.”
난 갸웃 고개를 기울였다.
“못 봤는데.”
“오전반이니 당연히 못 봤을 거야. 난 어릴 적부터 기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았거든.”
나랑 비슷한 또래인데 벌써 중급반이라고?
감탄하는 날 보며 석가약이 탁자에 팔꿈치를 기댔다.
“선생님 휴식 시간에 잠시 질문할 것이 있어 뵈러 왔는데······.”
석가약이 마치 재미있는 걸 보았다는 듯 눈을 빛내며 나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난 떨떠름할 뿐이었다.
이를 읽었는지 석가약이 벌떡 일어났다.
“하하, 그럼 잠깐 기다리고 있어.”
석가약이 따라 준 차는 약간 시고 달았다.
홀짝이며 얼마나 기다렸을까, 예상보다 빠르게 석가약이 돌아왔다.
“일단 고정은 해 놨어. 어떻게 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아. 뭐, 날게 되더라도 사람 손을 타서 둥지로 되돌려 보낼 순 없지만.”
“잘 부탁해.”
그런 날 석가약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보았다.
“왜 안 키우겠다는 거야?”
“······.”
난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과거 내가 길렀던 동물들은 매번 죽었다. 쌍둥이들의 실수로. 혹은 이유없이.
거기다 과거 벌어진 일들에 따르면 조금 뒤에 난 한동안 처소를 비우게 될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얘기할 순 없었다.
난 한껏 슬픈 표정을 꾸며 내 말했다.
“의술을 배웠더니 알겠지만 난 내 몸 돌보기도 힘들어. 그런 내가 아픈 새를 어떻게 돌보겠어?”
“백리 세가에 하인이 부족할 리 없을 텐데?”
“······.”
“하하, 굳이 거짓말할 필요 없어.”
뭐야, 다 알고 있으면서 물었단 말이야?
아니, 알고 있다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난 꾸며 낸 표정을 싹 지우며 말했다.
“집안의 흠은 자고로 바깥에 보이지 않는 게 좋댔어. 난 너랑 오늘 처음 봤는걸.”
그러니까 무례하게 캐묻지 말고, 난 말할 생각 없다는 뜻이었다.
‘똑똑한 아이라면 이 정도 의미는 파악하겠지.’
찻잔은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슬슬 돌아가야겠다.
고개를 들던 난 나를 지켜보던 석가약과 시선이 마주쳤다.
석가약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리 왠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