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8)
18화
* * *
석가약은 손안의 연옥색 머리끈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귀한 집 아이들이 쓸 만한 자수 장식에 약간의 장신구가 달린 평범한 끈이었다.
“갔습니까?”
“네.”
“안일하셨습니다. 의강 공자가 계시는데 따님을 데려오시다니요.”
“그러게요. 제가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마구간 지나다가 물어봤을 땐 진짜 깜짝 놀랐어요.”
깜짝 놀랐다면서 웃는 낯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어하는 모습이었다.
이곳에 온 이후 내내 그저 조용히 쥐 죽은 듯 하루하루를 보내던 소년이 처음 내보이는 활기였다.
“······의강 공자님껜 제가 일단 잘 설명하겠습니다. 앞으론 조심해 주십시오.”
한숨을 내쉰 석 태의가 무심코 말했다.
“안쓰러운 부녀입니다.”
“석 태의도 측은지심이란 게 있었네요?”
뼈가 있는 듯한 석가약의 말에 석 태의가 입을 일자로 다물었다.
석가약은 백리연이 쌍둥이들을 지켜볼 때부터 있었다.
마르고 병약해 보이는 소녀.
그 소녀는 쌍둥이들의 행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없이 떠났다.
‘백리의강의 딸이라더니 별거 아니군.’이라고 생각하곤 스승을 뵈러 갈 때였다.
갑자기 기 선생님의 하인이 뜰의 학생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갔다.
아직 쉬는 시간이 상당히 남아있어 하인의 행동은 갑작스러웠다.
석가약은 왠지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어 뜰을 지켜봤다.
곧이어 조용해진 마당에 방금 빠져나갔던 소녀가 되돌아왔다.
학당을 나갈 때까지만 해도 예쁘게 묶고 있던 머리를 푼 모습으로 말이다.
그제야 알았다. 학생들을 들여보낸 건 저 소녀였다.
기 선생님의 하인에게 머리끈을 주며 들어가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그리고······
“그럼 죽겠네. 불쌍해라.”
말하는 어조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았지만, 눈매는 말라 있었다.
“······그 아이가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네. 재밌네요.”
* * *
덜컹덜컹.
흔들리는 마차 안이었다.
피곤함에 눈을 감고 있던 내게 창밖의 언두가 말을 건넸다.
“아기씨 무겁지 않아요?제가 들게요.”
“아냐. 괜찮아.”
길게 하품을 하는 내 품엔 상자 하나가 있었다. 나비와 당초 문양 자개 장식이 화려한 흑목 상자였다.
‘일단 아버지 서재에 하나 장식하고······.’
간소한 것도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너무 삭막하니 꽃 한 송이 정도 있으면 풍취가 좋을 것이다.
‘한 송이는 내 방에, 그리고 한 송이는 잘 말려서 향낭으로 만들어야지. 딱 좋네.’
이 꽃들은 내게 석가약이 가져가라고 꺾어 준 것들이었다.
가는 길에 상하지 말라고 이렇게 상자까지 마련해 주었다.
꽃이 어찌나 크고 화사한지 세 송이만으로도 상자가 꽉 찼다.
‘수상쩍긴 한데 그래도 나쁜 애는 아닌 것 같긴 하고······.’
마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백리 세가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천천히 내리던 난 왠지 소란스러운 느낌에 대문 방향을 보았다.
“아, 안 된다니까 그러시네.”
“제대로 확인해 보시오.”
“아, 봐도 소용없다고! 이 사람 끈질기네.”
“······백리 세가에선 손님을 이런 식으로 맞이하는가?”
“신분도 증명 못 하는 놈팡이가 무슨 손님? 좋은 말로 할 때 당장 가시지?”
어떤 미친놈이 백리 세가 앞에서 소란이지?
백리 세가엔 하루에도 수많은 손님들이 들락날락한다.
하지만 소란이 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문을 지키는 문지기부터 백리 세가에서 무공을 배운 무인이기 때문이다.
“아기씨, 저쪽으로 돌아갈까요?”
그리고 백리 세가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미친놈과 아가씨가 엮일까 조심스레 물어본 언두는 뒤를 돌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모시는 아기씨가 어느새 소란이 일어난 곳에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끌어내기 전에 당장 꺼지지 못해?”
“할 수 있으면 해 보아라.”
사내가 천으로 감싼 검을 쥐었다.
문지기가 빈정거리며 창을 꼬아쥔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 그들 사이에 태연하다 못해 태평하게까지 들리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무슨 일이죠?”
사내와 문지기가 동시에 날 돌아보았다.
날 알아본 문지기가 왈칵 인상을 찡그렸고, 사내의 표정은 확인할 수 없었다.
사내는 무채색의 더러운 여행복 차림으로 검조차 천으로 둘둘 감싸 신분을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심지어 콧등까지 올라온 두건이 얼굴의 반을 가리고 죽립까지 깊게 눌러써 보이는 곳이라곤 짙은 빛깔의 두 눈밖에 없었다.
나 매우 의심스러운 사람이오 라고 백 리 밖에서도 주장하는 차림새였다.
하지만 난 눈을 본 순간 누군지 알았다.
아버지의 절친한 친우.
하지만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인 제공자.
10대 세가 중 하나인 대남궁 세가의 소가주이며, 이 소설의 남주인공인 남궁류청의 친부, 남궁완!
‘이 분이 왜 여기서 이러고 계셔?’
내가 알아봤는데 아버지 몸종인 언두가 모를 리 없었다.
허겁지겁 나를 뒤따라오던 언두가 눈을 홉떴다.
“남······!”
무언가 소리치려던 언두가 그대로 굳었다.
곧이어 천천히 입을 다문 언두가 눈알을 가만히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렸다.
“언두? 왜 그래?”
“그, 그······ 그게, 아기씨, 그게요.”
언두가 남궁완을 계속해 힐끗거렸다.
그 모습에 상황을 파악했다.
‘남궁완이 전음을 썼나?’
전음이란 내공을 사용해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은밀하게 말을 전하는 무공이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사람이면 대부분 쓸 줄 알았다.
하지만 소리가 없더라도 전음을 쓰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입 모양과 목울대다.
전음을 쓰기 위해선 말하는 흉내라도 조금이라도 내야 했다.
그래서 보통 입 모양이나 목울대를 통해 전음을 하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입과 목울대를 두건으로 가린 남궁완이 전음을 썼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남궁완이 막은 것이 아니라면 언두가 저렇게 말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차마 입을 열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여하튼 난 아직 남궁완을 몰라.’
나는 그저 외부인을 보고 놀란것 처럼 자연스럽게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소란스러워 와 봤는데, 무슨 일이신가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으면 도와드릴게요.”
“그쪽은?”
난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
“백리 세가의 백리연이에요.”
남궁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 것이 보였다. 그때 문지기가 끼어들었다.
“아기씨가 상관하실 일이 아닙니다. 너도 이만 썩 물러가지 못해?”
남궁완이 매섭게 문지기를 노려보았다. 그 기색에 움찔한 문지기가 네 놈이 뭘 어찌할 거냐는 듯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여긴 백리 세가의 장원이었다.
감히 백리 세가의 무사인 자신을 어찌할 수 없을 걸 아는 자의 몸짓이었다.
‘저거 나중에 후회할 텐데······.’
당장이라도 뽑을 것처럼 검집을 꽉 쥐었던 남궁완이 나를 흘끔보곤 크게 숨을 내쉬었다.
두건 아래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담담히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가관이었다.
옷차림에서 알 수 있듯 남궁완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백리 세가에 들어서려 했다.
물론 그가 그냥 들어가겠다고 우긴 건 아니었다. 남궁완은 자신의 신분패 대신 아버지의 초대 서신으로 신분을 증명하려 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문지기들이 아버지의 서신인 걸 확신할 수 없다며 남궁완을 막아 선 것이다.
문지기들이 아버지의 서체와 낙관을 확인 못 하는 게 미친 것 같지만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그러면 서체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을 안에서 데리고 나오기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문지기들은 사람을 불러 확인하는 대신 돌아가라 윽박질렀다.
“······해서 이리 된 거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난 문지기들을 기가 막힌 시선으로 보았다.
문지기들은 모르는 척 시선을 피했다.
“서신 제가 한번 볼게요.”
“네가?”
남궁완의 눈이 가늘어졌다.
난 믿어 달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제 아버지 서체 정도는 알아요.”
저번 생에도 남궁완은 이 시기에 방문했다.
‘하지만 이런 소란이 있었다곤 못 들었는데······.’
내가 처소에 박혀 있어 듣지 못했던 걸까?
난 서신을 꼼꼼이 훑었다.
역시 아버지의 필체가 맞았다.
간단한 초대 서신으로 수신자는 익명.
하지만 아버지의 인장은 제대로 찍혀 있었다.
이런 서신은 자신의 신분을 알리고 싶지 않은 객을 초대할 때 많이 썼다.
그리고 남궁완은 뭘 알고 저러는 건지, 진지하게 서신을 훑는 밤톨만 한 머리가 왠지 웃긴다고 생각했다.
다시 서신을 곱게 접어 남궁완에게 내밀며 말했다.
“제 아버지 서체와 인장이 맞네요. 들어가죠.”
그렇게 앞장서려는 순간 문지기가 막아섰다.
“안 됩니다.”
왜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