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9)
19화
“지금 접객당에 자리가 없습니다.”
백리 세가의 손님을 맞이하는 접객당에 자리가 없을 정도라니.
가주나 안주인이 연회라도 벌인단 말인가?
헛소리에 화를 내는 대신 난 태연하게 말했다.
“괜찮아요. 접객당에 자리가 없으면 아버지 처소 청당으로 들이죠. 아버지 손님이니까요.”
“후, 이래서 어린애란. 아기씨, 제가 이런 말씀까지는 안 드리려 했습니다만, 신분이 확실치 않은자를 백리 세가에 들일 순 없습니다. 아기씨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공연한 트집에 불손하기까지 한 문지기의 태도에 언두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이봐요, 작작 하세요.”
“저리 안 가? 몸종 주제에 어딜 나서?”
“아니, 이분이······ 아오!”
언두가 말할 수 없는 사시에 답답한 가슴을 쳤다.
나야 아버지없이 백리 세가에 있는 동안 수도 없이 겪어 이미 면역이 있었지만, 아버지 몸종이었던 언두는 이런 모욕적인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저들이 왜 갑자기 미친 것처럼 날뛰는 거지?’
요새 하인들도 할아버지가 날 신경 쓴다는 소문에 눈치를······
아!
상황을 눈치챈 난 태연하게 언두를 말렸다.
“됐어. 그냥 안에 들어가서 아버지께 손님 오셨다고 전해 드려.”
문지기가 코웃음 쳤다.
“소용없습니다. 4공자님은 외출하셨거든요.”
“외출하셨다고요? 제겐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언두가 놀라 되물었다.
의심스럽게 문지기를 바라보던 언두는 저 무례한 자들의 말을 믿을 수 없는지 내게 속삭였다.
“아기씨,, 제가 안에 들어가서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응. 처소에 아버지 행선지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 봐.”
이 모든걸 지켜보던 남궁완이 화를 억누르는 목소리로 말했다.
“됐다. 너도 먼저 들어가거라. 의강이 외출했다니 나 혼자 여기서 기다리겠다! 언젠간 돌아오겠지!”
“아뇨, 저도 같이 기다릴게요.”
“뭐?”
“아버지 손님은 제 손님이기도 하니까요.”
“······.”
남궁완이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날 보았다.
“무슨 뜻인지나 알고 말하는 게냐?”
난 방긋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백리 세가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내게 하나뿐인 외동아들과 혼인하지 않겠냐 하던 사람이었다.
물론 그걸 가만히 둘 큰아버지와 고모가 아니었기에 당연히 파투났다.
‘그게 백리연에게 헛꿈을 잔뜩 불어넣어 끈질기게 남주인공 옆에 들러붙는 원인 중 하나가 되지만······.’
어쨌든 그가 호의로 그런 제안을 한 건 맞았다.
저 문지기들이 더 이상한 짓을 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아도 문지기들은 내가 남겠다는 말을 하자마자 떫은 표정을 지었다.
“네 맘대로 해라.”
언두가 안으로 들어가기 전 남궁완을 향해 말했다.
“아기씨 잘 좀 부탁드려요.”
남궁완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언두가 떠나고 날 찬찬히 살피던 남궁완이 질문했다.
“그건 무엇이냐?”
잠시 질문의 주어가 뭔지 생각한 난 품 안의 상자를 내보였다.
“이거요?”
“그래.”
상자가 화려해 눈에 띄긴 했다.
난 꼼지락거리며 상자를 열었다. 순간 싱싱한 모란향이 확 풍겼다.
“꽃이에요! 예쁘죠?”
“꽃? 그걸 왜 상자에 넣어뒀지?”
어차피 언두도 기다려야 하니 시간을 죽일 겸 설명을 이어 갔다.
“······해서 그 아이가 모란을 꺾어 줬어요. 아버지 서재에 한 송이, 제 방에 한 송이, 그리고 한 송이는 말려서 향낭을 만들 거예요!”
“향낭?”
“네. 곧 아버지 생신이신데 저때문에 바빠서 축하연도 없고, 선물도 모두 거절하실 거라고 들었어요. 저라도 챙겨 드리려고 했죠.”
말하던 내 머릿속에 순간 좋은 생각이 스쳤다.
‘괜찮은 것 같은데?’
난 최대한 어린아이처럼 천연덕스럽게 연기했다.
“아저씨, 아저씨는 아버지 친우라고 하셨죠?”
“······그래.”
“그럼 이렇게 오신 건도 인연인데, 생신 선물 챙겨 주실 거죠?”
내 아빠 선물 내놔! 라고 들릴만한 얘기지만 내가 욕심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건 아니었다.
남궁완은 이미 아버지의 선물을 준비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선물을 끝까지 거절한다.
무슨 선물인지 알 수 없지만 내가 그 사실을 아는 이유는······ 남궁완은 아버지의 거절에 화를 내고 끝내 두 분이 크게 다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뭐, 절친한 친우답게 화해하긴 한다.
하지만 어쨌던 다투지 않는 게 더 좋지 않겠는가?
“아버지가 아마 아저씨 선물을 거절할 거예요.그래도 화내지 마시고 꼭 주실 수 있죠?”
참고로 남궁완이 준비했다던 대단한 선물이 탐나서 그런 건 절대, 절대 아니었다.
남궁완이 기가 막힌다는 어조로 말했다.
“백리 세가 대문 앞에서 강도를 만날 줄이야.”
“강도라뇨······.”
내가 민망하다는 듯 헤헤 웃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을 것처럼 손을 뻗던 그가 멈칫하더니 팔짱을 꼈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던 남궁완이 입을 열었다.
“향낭을 만든댔지?”
“네!”
“내 것도 만들거라.”
“네에에에?”
“그럼 내 무슨 일이 있어도 네 아버지 선물을 챙기마.”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렸다.
이를 본 남궁완의 눈가에 웃음이 서렸다.
“바느질은 할 줄 아느냐?”
빨리도 물어본다.
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 좀 봐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남궁완을 올려보았다.
“잘은 못해요.”
“그래도 네가 직접 만든 것이어야 한다. 내 나중에 따져 볼 것이야.”
“······.”
다른 사람을 시킬 생각은 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저리 당부하니 왜 더 다른 사람을 시키고 싶어지는 걸까?
아니, 아버지라면 내 실력을 아니 귀엽게라도 봐주실 거다.
하지만 남궁완에게 진짜 엉망진창인 걸 주면 그건 좀 얼굴 팔리지 않는가?
난 우물우물 말했다.
“그······ 제가 바느질을 할 줄 알기는 하는데 정말 엉망이거든요. 만드는 데 시간이 오 – 래, 아주 오오오래 걸릴 거예요.”
“기다리마.”
젠장, 괜히 일만 벌였잖아.
그래도 뭐 내 향낭 하나에 두 분이 다투는 일을 막는다면 싼값이지, 하고 생각할 때였다.
“뭐야?”
아주 불길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 반편이가 왜 여깄어?”
“아파서 수업고 못 받겠다더니 멀쩡하네. 꾀병 아냐?”
쌍둥이인 소우악과 백리표였다.
그 뒤엔 이제 막 마차에서 내리는 백리명도 함께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백리명은 난감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쌍둥이들을 말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 내 뒤에 있는 사내에게는 시선 한 번 제대로 주지 않았다. 남궁완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슬렁슬렁 다가온 백리표가 내가 들고 있던 상자를 가리켰다.
“그건 뭐야?”
“······꽃이야.”
“그래? 한번 봐 봐.”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백리표가 곧장 소리쳤다.
“뭐야? 왜 못 열어? 꽃 아닌 거 아냐? 이리 줘 봐. 못 열겠으면 내가 열어 볼 테니까.”
열지 않으면 열 때까지 들들 볶을 것이 눈에 선했다.
한숨을 내쉰 내가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을 들여다 본 백리표가 노골적으로 실망한 얼굴을 했다.
“뭐야? 진짜 꽃이잖아?”
“꽃이라고 했잖아.”
“에이씨, 뭐 이딴 걸 상자에 넣어놔? 좋다 말았네.”
짜증스레 흙바닥을 걷어찬 백리표 뒤에 소우악이 나타났다.
“왜? 예쁜데.”
“갑자기 뭐라는 거야? 어디 아프냐?”
백리표의 타박에도 실실 웃던 소우악이 모란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하나 줘.”
소우악이 내게 손을 뻗었다.
“리리한테 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오늘 리리가 아파서 학당도 못 왔잖아.”
늘 같이 말썽 부리던 쌍둥이답게 백리표는 소우악의 속셈을 깨달았다.
사악하게 웃은 백리표가 곧장 태도를 바꿔 윽박질렀다.
“그러네. 설마 꽃 한 송이 주는것도 싫다고 하진 않겠지?”
“맞아, 맞아. 아까운 거 아니지?”
그리고 이 모든 걸 지켜보던 백리명이 드디어 처음으로 말했다.
“표야, 악아. 너무 다그치지 말렴. 연이도 다 알아들었을 거다. 연아, 사촌이잖니. 좋은 건 서로 나눠야지.”
후, 내가 마주쳤을 때부터 불길하더니만.
난 남궁완을 힐끗 보았다.
두건 속에 가려진 표정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검집을 쥔 손등에 핏줄이 바짝 서 있었다.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요. 오라버니들이 꽃에 관심 있는 줄은 몰랐네.”
난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한 송이를 꺼내 들었다.
한 송이 정도야 뭐······ 어쩔 수 없지 하는 생각으로 건네는 순간 백리표 손에 들린 모란이 툭 떨어졌다.
뒤이어 내디딘 발이 떨어진 모란을 짓밟았다.
연분홍 화사한 모란이 처참한 모습이 되어 나뒹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