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큰아버지가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저는 그저 연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다 보니, 걱정이 들어 그랬습니다.”
“걱정?”
“혼인할 것도 아닌 남자아이들과 계속 어울리면 평판에 좋지 못하거늘. 아직은 어리다지만, 언제까지 어울리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헛소리! 네 속을 모를 것 같으냐? 그래, 걱정이라면 리리는 연이와 한 살 차이인데 리리의 혼사도 생각해 둔 바 있느냐? 아니면 내 지금부터라도 알아봐 줘?”
“예? 아, 아뇨! 아닙니다.”
큰아버지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잔뜩 성난 할아버지의 시선이 백리리를 향했다.
자신의 이야기에 눈을 부릅뜨고 있던 백리리는 할아버지와 시선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푹 숙였다.
할아버지는 원래부터 아이들에게 무서운 존재였다.
쌍둥이들도 할아버지 앞에서는 고양이 앞 생쥐와 같이 굴 정도이니, 막내딸로 금지옥엽으로 자란 백리리는 말할 것도 없었다.
거기다 할아버지는 쌍둥이들 때문인지, 백리리가 제멋대로 구는 기색만 보이면 그때마다 크게 꾸짖었다. 그렇다 보니 백리리는 할아버지와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할 정도로 무서워했다.
할아버지가 큰아버지와 백리리를 번갈아 보며 못마땅한 신음을 흘렸다.
탁자 위에 주먹 쥔 백리리의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백리리를 향해 말을 건넸다.
“아, 맞아, 리야. 추오당에서 새로 나온 떡이 내게 조금 있는데, 좀 있다가 받아 가.”
백리리가 고개를 슬그머니 올리고 눈을 깜빡거렸다.
그때 옆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추오당이라니, 언제 갔다 왔느냐?”
“아, 받은 거예요.”
“받았다고? 언제?”
“······어, 잘 기억이 안 나네요.
하하하. 금쇄가 알 거예요. 하하하.”
할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연회에 들어온 선물들을 나눠 줄테니, 돌아가 확인하거라.”
아버지가 살짝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아버지께 들어온 선물이지 않습니까?”
큰아버지도 아주 효성스럽게 추임새를 넣었지만 할아버지가 손을 내저었다.
“다 쓰지도 못할 것 무덤까지 가져갈 생각 없다. 잔말 말고 특별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고 총관에게 말하도록 하고.”
휴우. 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의 말에 다행히 내게 집중되었던 아버지의 관심이 흩어졌다. 그리고 다시 혼사 얘기가 언급되지도 않았다.
나는 백리명의 울적한 낯을 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날 오후 할아버지께서 내려주신 물건을 정리할 때, 백리리가 처소를 방문했다.
나는 물건을 정리하느라 어수선한 마당을 가로질러 한달음에 다가갔다.
“어서 와.”
백리리가 느긋하게 걸어 들어왔다.
“언니 처소는 처음이네.
여기 선물이야.”
백리리를 뒤따른 시비가 내게 천으로 싼 길쭉한 상자를 내밀었다. 받고 나서 보니 저번에 정원에서 물에 쫄딱 젖은 백리리를 뒤쫓던 시비였다. 시비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내 처소는 이쪽이야. 들어와.”
나는 백리리의 손을 붙잡고 이끌었다. 그러자 백리리가 내 손을 뿌리치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놔 봐. 뭐가 그렇게 급해?
구경 좀 하자.”
나는 인내심을 가진 채 백리리가 구경하는 걸 지켜보았다.
건물과 정원을 쭉 둘러본 백리리가 정리 중인 짐을 보고 물었다.
“뭐야, 언니? 받은 영약이 고작 이것밖에 안 돼?”
“응? 아, 응. 그렇지.”
내게는 영약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내 능력과 단전의 문제는 비밀이기에 눈가림용으로 이런 식으로 영약을 받았다.
눈가림용이다 보니 좋은 걸로 받지는 않았다. 아까우니까. 당연하게도 백리리 눈에 차는 수준이 아닐 터였다.
“그거 알아? 오라버니는 설빙보주 받았어. 내가 달라고 한 건데!”
“설빙보주가 있었어?”
설빙보주는 설삼을 술로 빚어 약효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줄인 영약이었다.
“몰랐어? 하긴······.”
입술을 살짝 깨문 백리리가 투덜거렸다.
“하여튼 저 혼자 다 먹는다니까. 이 집에 오라버니만 있는 것도 아닌데. 짜증 나. 설빙보주면 음기가 강해서 오라버니보단 내게 더 잘 맞을텐데!”
“그러게. 너무하네.”
나는 적당히 맞장구쳐 주며 백리리를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둥근 걸상에 앉은 백리리를 향해 찻잔을 채워 주었다.
백리리는 내 방을 휘휘 둘러봤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끌었다.
“리야, 혹시 말이야. 큰아버지가 내 혼사에 대해서 뭔가 말씀하신거 있어?”
백리리가 눈을 깜빡이다 입을 삐죽였다.
“······그것때문에 오라고 한 거였구나? 왠지 자꾸 방으로 데려가려고 하더니만.”
“추오당 새 떡이 있는 건 진짜야. 여기 먹어 봐.”
붉은빛의 먹음직스러운 떡을 두고도 백리리는 별로 관심이 없는 기색이었다.
“뭐, 됐어. 나도 궁금했으니까. 근데 나 아는 거 별로 없는데.”
“들은 것만이라도 얘기해 주면 돼.”
나는 귀를 쫑긋 세우며 백리리 말에 집중했다.
“아빠가 말하길 할아버지랑 작은 아버지가 맹호에 가셔서 남궁 소가주랑 언니 혼담을 얘기할 거라고했어.”
“······.”
“이미 넌지시 말을 맞춘 상태라던데. 이만큼 좋은 혼담 없다고도 하고.
언니, 진짜 남궁 공자랑 혼약하는거야?”
* * *
그 시각 수백당의 서재에 은은한 차향이 퍼졌다.
“이만한 혼담 없다.”
백리패혁이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제 앞의 아들들을 보았다.
한 명은 명석하진 않았으나 우둔하지도 않아 아주 평이했고, 다른 한 명은 믿음직스러웠으나 다소 미련했다.
“명이의 혼처도 거의 정해졌고, 리리에게는 제 조모도 있고 친모도 있으니 걱정할 것 없지. 연이만이 걱정이지.”
백리패혁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내 눈을 감기 전에 연이 혼사는 끝내고 갈 것이다.”
백리의묵과 백리의강 둘 다 깜짝 놀라 말했다.
“아버지!”
“아버지는 아직 정정하십니다.
말씀 거둬 주십시오.”
“내 나이가 팔순이다.”
백리패혁은 잠시 천산염제를 떠올렸다가 이내 털어 냈다.
“가문의 세, 재력, 명예, 모두 남궁만 한 곳이 어디 있느냐? 거기다 남궁 소가주와 소부인 모두 연이를 아끼고, 특히 소가주는 연이의 사정도 잘 알지.”
친모가 없는 백리연의 가정사와 단전 문제, 금안의 능력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 연이는 아직 어립니다. 굳이 이렇게 빨리 혼처를 정할 필요가 있습니까?”
“남궁 공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쟈?”
“제 마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연이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지요.”
“그럼 연이가 남궁 공자를 싫어하느냐?”
“······아니요.”
백리의강이 말을 마친 듯하다가 다소 급하게 덧붙였다.
“하지만 연정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순간 백리의묵이 터진 웃음을 재빨리 기침으로 꾸며 냈다.
백리패혁의 시선에 백리의묵이 고개를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백리패혁이 한숨을 길게 내쉬고 말했다.
“너희들도 머리가 굵었으니 이젠 알겠지. 내 혼인 생활이 평탄치 못했기에 너희들의 혼사는 최대한 관여치 않았다. 본인의 의지를 존중해 주었지.”
백리의묵이 백리의강을 흘끔 보았다.
백리패혁은 권위적인 가장으로 백리의강의 혼사를 몇 번이나 종용하긴 했다. 하지만 백리의강이 원치 않자 혼사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평소 백리패혁의 태도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결과를 봐라!”
“······.”
“어느 날 갑자기 딸이라며 연이를 데려왔지!”
그때만 생각하면 백리패혁은 속이 쓰렸다.
백리의강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를 노려보던 백리패혁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는 연이가 너처럼 사는 꼴은 절대 두고보지 못한다!”
백리의강이 미간을 모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건······너무 큰 비약입니다.”
“비약? 흥! 연이가 사리에 밝고 성품이 바르니 다행이지. 너 혼자 돌봤는데 이리 자란 것이 기적이니라!”
백리패혁이 화가 나는지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백리의묵이 재빨리 백리패혁의 찻잔을 채워 주며 백리의강을 나무랐다.
“아버지 말씀을 새겨 듣거라.
너야 홀아비로 살아도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연이도 그렇게 만들어서야 쓰겠느냐?”
“······.”
“거기다 남궁가에 직계라고는 류청 그 아이뿐인데 남궁가에서 당연히 이른 혼사를 원하겠지! 그러니 이번 산수연에 류청을 보내서 우리가 살펴볼 수 있도록 한 것이고.”
“그래. 의묵이 오랜만에 옳은 말을 하는군. 혼인도 안 한 주제에 네가 뭘 안단 말이냐! 의묵이 연이 혼사에 관해 말할 수 있어도 너는 아니 돼!”
백리패혁이 김이 나는 찻잔을 쥐며 말했다.
“그리고 너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지 않았느냐? 이제 와서 전혀 모르는 것처럼 굴지 말거라.”
“저는 그저······ 천천히 두고 볼 생각이었습니다.”
백리의강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그 모습에 백리패혁이 다소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했다.
“그간 남궁 공자를 쭉 살펴보니 능력과 외견 모두 뛰어나니 괜찮더군. 성품이 다소 오만하고 고집스럽긴 하지만······ 무를 추구하는 이에게 그 정도 고집은 있어야지. 그리고 연이한테는 잘하더군.”
쌍둥이들과 백리연의 다툼을 보고 받은 백리패혁은 남궁류청을 불러 그 이야기를 물어보았다.
남궁류청은 기다렸다는 듯이 열렬하게 백리연의 편을 들었다.
쌍둥이들의 행동은 다분히 고의적이었으며 백리연은 전혀 잘못이 없다고.
그 모습에서 백리연을 생각하는 진심어린 염려를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