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백리패혁이 생각에 잠긴 듯한 백리의강을 기다려 주다가 문득 떠오른 이에 인상을 찌푸렸다.
“혹여 설마 야율, 그 아이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백리의강은 당혹스러운 낯이었다.
“······아버지. 모두 아이들이지 않습니까? 전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이 다소 부담스럽고 급작스럽다는 뜻을 몇 번이나 밝히고 있었다.
백리패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혹시라도 야율 그 아이를 생각한다면 그 아이는 안 된다.”
“어째서입니까? 아, 물론 제가 야율을 생각했다는 건 아닙니다.”
“무를 추구하는 이들 중에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살아가는 이는 없다지만 그 아이는······.”
눈빛에 살기가 가득한 것이 사람의 목숨을 취급하는 데 감흥이 없는 이의 모습이었다.
‘어린아이가 어찌 그런 눈을 지니게 되었는지.’
연이 앞에서는 사람 같은 낯짝을 한다지만 언제 돌변할지 몰랐다.
백리패혁이 손을 내저으며 등받이네 몸을 기댔다.
“가정사에 문제가 있지 않으냐.
하, 벽가에 대해 알아보니 아주 가관이더구나. 벽가 놈들은 원래부터 속이 시커멨지. 제 명성 드높이려고 입적할 때는 언제고 쯧······.”
그때 서재 안을 기척을 내며 노복이 들어왔다.
“1공자님, 심 부인의 시비가 찾아왔습니다. 심 부인께서 의원을 청하셨다군요.”
백리의묵이 깜짝 놀라 바라봤다.
백리패혁이 찌푸린 낯으로 말했다.
“큰 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심한 것은 아니옵고 배앓이가 조금 있다고 합니다. 1공자님, 부인의 시비가 왔으니 직접 들어 보시지요.”
“그래. 첫째는 이만 가 보거라.”
백리의묵이 노복과 함께 황급히 방을 나섰다.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어진 후, 백리패혁이 입을 열었다.
“의강, 내가 왜 이러는지 네가 정녕 모르겠느냐?”
수염을 몇 번 쓰다듬은 백리패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바로 너 때문이다.”
“저 때문이란 말씀은······?”
“네 몸 말이다.”
“······.”
“그렇게 오래 해법을 찾았는데 실마리 하나 얻지 못했지······.”
백리연에 관해 얘기할 때는 희비가 교차하던 백리의강의 낯은 본인의 얘기가 되자 되레 담담해졌다.
“지금이야 제갈 세가주의 도움으로 악화를 막고 있지만······ 앞으로도 문제없으리란 보장은 없지 않느냐?”
“아버지께 심려를 끼쳐 죄송할 따름입니다.”
“심려? 흥, 심려를 끼친다 여겼다면 이리 행동할 수는 없지. 제 목숨 귀한 줄 모르고. 연이가 오고 나서도 벌써 세 번이나 큰 싸움을 치렀지! 만약 그때 발작이라도 일어났다면 넌 죽은 목숨이었다. 그럼 남은 연이는 어쩌느냐? 어?”
백리패혁이 피곤한 낯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버······.”
“내가 있단 말은 하지 말거라.”
백리패혁이 딱 잘라 말하자, 백리의강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내 나이가 팔순인데 내 살아봤자 얼마나 더 살겠느냐? 내가 살아 있을 때는 내가 살핀다 치더라도······
하, 됐다.”
백리패혁이 말하다 보니 목이 말랐는지 또 차를 벌컥벌컥 마셨다.
“너도 이만 가보거라. 연이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보도록 하고.”
백리의강이 천천히 일어나 백리패혁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의강아.”
서재를 빠져나가기 직전 부르는 음성에 백리의강이 뒤를 돌아보았다.
“연이 친모에 대해선 아직도 말 할 생각이 없느냐?”
“······.”
크게 한숨을 내쉰 백리패혁이 손을 내저었다.
서재를 빠져나온 백리의강은 수백당 정원을 천천히 가로지르다 백리의묵을 마주쳤다.
고개만 간단히 숙이고 지나치려는 그를 백리의묵이 불러세웠다.
“의강.
뭐가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것이냐?”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반응이 왜 그모양이야?”
백리의묵이 언짢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버지께서 일부러 신경 쓰셔서 나서시는 것임이 뻔하거늘. 아버지께서는 명이 혼사에도 이렇게 나서시진 않았다.”
“압니다.”
백리의강은 복잡한 낯이었다.
그 모습에 백리의묵은 절로 질시가 일었다.
“남궁 세가의 유일한 직계 공자다.
이보다 더 좋은 혼처가 있더냐? 그리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차라리 내게 넘기거라.”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싫으냐? 흥, 꺼릴 때는 언제고 남주기는 아까운 게냐?”
그의 친모가 사방으로 손을 써 구해 온 백리명의 혼사보다 백리연의 혼사가 훨씬 더 좋았다.
심지어 본인이 먼저 혼사를 간청한 것도 아니라, 남궁세가에서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그저 친우 잘 사귄 탓에 이런 복이 굴러들어 왔다는 게 억울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주제를 모르는 것인지 멍청한 것인지.
반은 저와 같은 피를 지닌 동생이지만 늘 머릿속이 궁금한 녀석이었다.
“그게 아니라 형님, 리리의 혼사를 그런 식으로 결정하셔도 됩니까?”
“뭐 어떠냐? 나는 솔직히 말해 배가 아플 정도다. 정말 거절할 생각이라면 내게 넘기거라.”
“······그건 제가 마음대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남궁 세가의 뜻이 중요하지요.”
백리의묵이 코웃음을 쳤다.
“리리가 연이에 비해 부족한 게 뭐가 있단 말이냐? 남궁 세가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
“남궁 세가와 사돈을 맺으면 든든한 동맹 관계가 될 테니 우리 가문에게도 큰 도움이 되겠지. 뭐······.”
백리의묵이 조소 어린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너야 연이만 생각하느라 가문은 뒷전이겠지만 말이다.”
“형님.”
“왜 내 말이 틀렸······.”
그때 백리의강이 갑자기 손을 들어 백리의묵의 말을 막았다.
손이 올라온 순간 흠칫 놀랐던 백리의묵이 얼굴을 찌푸리고 살짝 역정을 냈다.
“지금 뭐 하는 것이냐?”
백리의강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 있었다.
수백당 다실로 이어진 정원로.
곧바로 그곳에 나타난 인물을 본 백리의묵이 당황해 중얼거렸다.
“남궁 공자?”
곧게 걸어오던 남궁류청이 백리의묵과 백리의강을 향해 양손을 모아 인사 올렸다.
당황한 백리의묵이 안절부절 못 하는 모습으로 눈치를 보다가 말했다.
“그······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가주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멍청한 질문이었다. 수백당에 백리 세가주가 부른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아, 그래. 이만 가 보거라.”
고개를 숙인 남궁류청이 다시 걸음을 옮기려 할 때였다.
“류청아.”
백리의강이 그를 불렀다.
“······혹시 들었느냐?”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
차분한 표정으로 눈을 마주하는 남궁류청을 응시하던 백리의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형님, 저희도 이만 가죠.”
“그래, 이만 가자.”
남궁류청은 멀어지는 백리의강과 백리의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를 하인이 의아하게 보았다.
“공자님?”
재촉하는 음색에 다시 걸음을 떼는 남궁류청의 귓가가 조금 붉어져 있었다.
* * *
퍽! 퍽! 퍽!
부드러운 것을 둔탁하게 내려치는 소리가 들렸다.
방 밖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언두가 걱정스러운 눈을 했다.
“요새 아기씨
왜 저러시는 건지 알아?”
“휴, 저도 모르겠어요.
물어봐도 아무 말씀 없으시고.”
“소녹, 너는 알아?”
심부름을 가다 붙잡힌 소녹이 눈을 깜빡이다가 느리게 고개를 저었다.
금쇄가 한숨을 내쉬었다.
“4공자님이 어서
돌아오셔야 할텐데.”
“떠나신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돌아오시려면 한참 남았는데.”
언두가 걱정스레 말을 이었다.
“저번에는 내가 해가 져서 창문을 닫아 드리려고 가니까 침상에서 펄떡거리고 계시기도 했어. 활어처럼.”
금쇄가 들고 있던 부채를 집어 던지며 벌떡 일어났다.
“활어라니. 어떻게 아기씨를 물고기에 비유할 수가 있어요?”
그런 바깥의 소란은 무시한 채, 나는 방금까지 내려치던 이불에 풀썩 쓰러지며 얼굴을 묻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저번에도 남궁류청과 혼담이 나오긴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였다고!’
나를 안쓰럽게 여긴 남궁완 아저씨가 무리해서 혼담을 넣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이번에는 혼담이 나오지 않을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혼담이라니!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찾아가 대놓고 말했다.
“할아버지, 전 아직 혼인할 생각 없어요!”
할아버지는 어울리지 않게 인자하게 웃으며,
“어디서 이상하 소리를 듣고 온게야? 이 할애비가 네가 싫어하는 일을 시킬 것 같으냐?”
그렇게 말했다.
아이의 철없는 투정 취급에 몇 번이나 말을 꺼내도 소용이 없었다.
거기다 할아버지는 맹회 출발 준비로 바쁘셔서 나를 상대하실 시간도 없으셨다.
그렇게 속절없이 사흘이 지나 버렸고, 제대로 해결하기도 전에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무림맹으로 떠나 버렸다!
“하아······.”
저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왠지 할아버지가 자꾸 류청을 부르더라니······.’
나는 그저 무공을 봐주는 거라고 별생각 없이 넘겼는데 사실은 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이다.
‘백리명의 맞선을 보면서 실실댈 때가 아니었는데······!’
산수연은 내 맞선장이기도 했던 것이다! 거기다 아버지는 후······.
“걱정말거라. 확실히 정해지 건 아무것도 없느니라.”
그 말은 아버지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느낌만 주었다.
‘아버지, 확실히 정해지고 나면 늦는다고요!’
내가 끝까지 싫다고 하면 아버지가 혼인을 강요하시겠는가? 절대 그런 분은 아니셨다.
하지만 이미 서로 의견을 맞춰 놓은 상태에서, 내가 싫다고 반대해 혼사를 깼다 치자.
‘그럼 앞으로 내가 남궁완 아저씨와 소부인을 어떻게 볼 수 있겠어!’
미리 알았더라면 어떻게 막기라도 했을 텐데. 시간이 너무 없었다.
그때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기씨, 손님 오셨습니다.”
“누군데?”
“제갈 세가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