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 * *
“수심이 깊어 보이네.”
나는 말없이 찻잔을 채웠다.
“고모도 해결했고 쌍둥이도 없으니 집안이 평화로울 텐데 뭐가 이렇게 네 심기를 상하게 했을까나?”
“······.”
나는 잠시 고민했다.
‘말을 해, 말아?’
하지만 비밀로 해봤자 제갈화무라면 금세 알아낼 거라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남궁 세가에서······.”
그런데 내 입으로 꺼내려고 하니 왠지 모르게 어려웠다.
진짜 확정이 나는 기분이랄까?
‘백리리에게 물어볼 때만 해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나는 말을 멈추고 혀끝을 잘근잘근 씹었다.
“더워? 얼굴이 붉어졌네.”
제갈화무가 부채를 펴 내 얼굴을 향해 살살 바람을 부쳐 줬다.
나는 한숨을 내쉬듯 내뱉었다.
“남궁 세가에서 나한테 혼담을 넣었대.”
그러자 바람이 멈췄다.
제갈화무가 눈을 깜빡이더니 느리게 말했다.
“아······ 혼인? 벌써? 아직 열한 살이잖아?”
“그니까!”
나는 울적한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식사 자리에서 울적한 모습을 내보이던 백리명이 떠올랐다.
그 모습이 지금의 나와 똑같다는 것을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인생······.’
남의 불행을 즐기지 말자.
교훈을 또 하나 얻었다.
제갈 화무가 가늘고 긴 세 손가락으로 찻잔을 살짝 받쳐 들었다.
“남궁류청 정도면 좋은 혼처지.”
“아니, 너도 그렇게 말할 거야?”
열한 살의 나이에 혼사 때문에 골머리 앓는 이 비극에 공감해 주진 못할 망정!
“가족도 단출하고 가풍도 바르고, 널 지켜 줄 힘도 있을 테고 네 능력을 꺼리지도 않고.”
“······.”
“거기다 네가 혼인하게 되면 남궁 세가와 백리 세가의 동맹을 공고히 할 수 있게 되지.”
제갈화무 이 자식 할아버지께 뇌물이라도 받아먹었나?
“무림맹이라는 연합에 함께 있지만 결국 그 안에서도 서로 가문의 이익을 위해 충돌할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혼인 동맹을 맺으면 말이 달라지지.”
길게 이어진 말에 제갈화무가 차로 목을 축인 후 다시 말을 이어갔다.
“거기다 무림맹 내에서 발언권도 훨씬 강해질 테고. 움직일 수 있는 수단도 훨씬 많아지겠지.”
짜증날 정도로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일부러 생각하고 있지않은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너도 내가 혼인하는 게 좋다는 뜻이야?”
“네가 이런 반응인 것을 봐서 저번에는 없었던 일인가 봐?”
“······전혀 없었던 일은 아냐.”
“흐음, 그런데 그땐 어떻게 됐는데?”
“그땐 아버지도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도 내게 관심 없었거든. 그리고····.”
나는 입술을 감쳐 물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 혼담이 탐났는지 할머니랑 큰아버지가 나 대신 백리리를 들이밀어서······ 파투 났지.”
“이번에는 백리 세가주가 동의하셨나 보네.”
하여간 귀신같이 정답을 말하곤 했다.
“하아, 맞아.”
이번에는 할아버지께서 직접 내 혼담에 나섰으니, 감히 백리리를 들이밀 생각은 하지 못 할 것이다.
“너는 어떤데?”
“글쎄. 혼인이라······.”
나는 턱을 괴고 창밖을 보았다.
수풀이 바람에 흔들렸다.
내 목표는 살아남는 것이었다. 살아남은 이후는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부부가 된다니······.
“모르겠어. 그런 미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어서.”
“오, 그건 나랑 같네.”
청회색 눈동자가 나를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오래전에 마음을 정리한 이의 눈이었다.
아니, 잠깐만.
그때 스치듯 한 생각이 떠올랐다.
‘남궁류청 그 녀석이 순순히 혼인하려 들 리가 없잖아?’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당시 남궁류청과 혼사가 이뤄지지 못한 것은 가문에서 나 대신 백리리를 내민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남궁류청이 원치 않아서였다.
‘그래!’
순간 앞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너는 무슨 일로 온 거야?”
“야, 네 고모가 소가장에서 나왔어.”
다시 기분이 바닥에 처박혔다. 누가 보면 조울증을 의심하지 않을까.
나는 싸늘하게 뇌까렸다.
“그동안 아무 움직임 없더니만.”
“딱히 눈에 띄는 인물이 들락날락라진 않았고, 쌍둥이들도 함께 움직이고 있어.”
“할아버지께 가는 거야? 무림맹?”
“아니, 여기로 오던걸.”
“뭐?”
하아. 바퀴벌레도 아니고 죽지도 않고 또 오네. 대체 무슨 짓을 꾸미고 있길래?
“알았어, 고마워.”
그때 제갈화무가 소매로 입가를 가리더니 밭은기침을 했다. 꽤 오랜만의 모습이라 놀란 나는 서둘러 따뜻한 차를 다시 채워 줬다.
다행히 금세 기침을 멈춘 제갈화무가 찻잔을 쥐었다. 몇 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상태가 조금씩 나빠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거 마래 주러 온 거야? 서신으로 전하지 그랬어? 몸을 아껴야지.”
제갈화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연히 네 얼굴을 보고 싶어서 온 거지.”
“······.”
원래라면 그냥 장난이라고 여기고 넘어갈 말이었다. 제갈화무가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워낙 제멋대로에 장난기가 많았기에.
하지만 최근 혼사로 골머리를 앓아선지, 왠지 와닿는 느낌이 달랐다.
‘설마······ 아니겠지? 백리연, 정신 차려. 네가 뭐라고? 남궁 세가에서 너한테 혼담을 넣었다고 도끼병에라도 걸린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확실히 하기 위해 말했다.
“나 류청만으로도 머리 복잡해.
장난치지 마.”
나는 제갈화무의 청회색 눈동자를 파헤치듯 들여다보았다.
“······.”
“······.”
나는 벌떡 일어났다.
쿠당탕. 내 뒤로 의자가 나뒹구는 게 느껴졌다.
“너······ 언제부터?”
제갈화무가 입을 연 순간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아니! 말하지 마!”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렸다.
아니 진짜로?
나는 한참 입을 뻐끔거리다 말했다.
“근데 너······ 너, 방금 남궁류청이랑 혼사에 찬성했잖아!”
제갈화무가 소매를 정돈하며 눈을 내리깔았다.
“상대의 행복을 바라는 게, 진실한 마음 아니겠어?”
시한부인 자신은 이뤄 줄 수 없는 행복이었다. 제갈화무가 나를 보며 미소지었다.
“그런데 역시 네가 혼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 *
그 뒤로 나는 혼이 빠진 채 며칠을 보냈다.
“몸은 괜찮아?”
“응?”
남궁류청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내가 있는 곳은 백검단의 연무장이었다. 나는 연무장에 딸린 전각 계단에 앉아 있었고, 남궁류청은 아랫 계단에 서 있었다.
“아직도 안 좋은 거 아냐?”
나는 근래 며칠을 방에 틀어박혀 모든 방문을 거절했다. 이를 시비들이 내 몸이 좋지 않다고 둘러댄 모양이었다.
남궁류청이 손을 뻗어 스스럼없이 내 이마를 짚었다.
“······괜찮은 것 같은데.”
나는 뒤늦게 화들짝 놀라며 남궁류청의 손을 떼어냈다.
“뭐 하는 거야?”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남궁류청이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봤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연무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백검단원 두 명과 서하령이 함께 야율을 공격하고 있었다.
잠시 그곳을 응시하는 척하다가 다시 남궁류청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살짝 놀랐다. 남궁류청의 시선이 계속 나를 향해 있던 것이다.
놀란 기색을 억누르며 나 또한 남궁류청을 마주 응시했다.
‘정말 잘생기긴 했네.’
남궁류청의 외모는 나날이 절세미남이라는 묘사에 충실해지고 있었다.
연회 자리에 류청이 나타나기만 하면 소녀들의 눈길이 그야말로 쏟아졌다. 류청에게 연심을 품은 게 분명해 보이는 소녀들을 내가 본 것만 해도 여럿이었다.
그의 얼굴을 감상하듯 살피다 대뜸 물었다.
“너는 혼인한다면 어떤 사람이랑 하고 싶어?
남궁류청이 미간을 좁혔다.
내가 물어보았지만, 당연히 남궁류청이 무시하며 헛소리로 치부하겠거니 생각했다.
남궁류청이 딱딱한 목소리로 답했다.
“혼사는 응당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야지.”
“허?”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아니······ 네가 언제부터 부모님 말씀을 잘 들었다고?
언제부터 효자였다고······!
‘이 자식이 왜 그래? 뭘 잘못 먹은 거야?’
기가 막혀 노려볼 때였다. 갑자기 뺨이 붉어진 남궁류청이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나는 그런 남궁류청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너, 그 말 진심이야?”
“뭐가 진심이야?”
어느새 대련이 끝난 서하령이랑 야율이 류청 뒤쪽으로 다가왔다.
“응? 뭐가 진심이야?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야율이 차갑게 말했다.
“연이한테 손 떼.”
“내가 쟤 편들기는 싫은데 이건 연이가 류청을 잡은 거 아니냐······.”
남궁류청은 내 손을 뿌리칠 것처럼 굴다가 갑자기 멈췄다.
“······?”
의아하게 본 내가 손에 힘을 풀고 나서야 남궁류청이 손목을 거뒀다.
남궁류청이 몸을 돌려 연무장 중앙으로 향했다.
“후우, 이제 조금씩 덥다.”
서하령의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반면 야율의 얼굴에선 한 방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쟤랑 대련해서 더 땀이 나는 것 같아. 하 여름에 싸우기 정말 싫겠다.”
억지로 상대해야 했던 야율의 표정은 대충 난 지금도 싫다, 이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그때 진진이 물이 송골송골 맺쳐 있는 놋쇠 주전자와 잔을 가져왔다.
“여기 얼음물이에요!”
“아, 고마워.”
꿀꺽꿀꺽 마신 서하령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나는 서하령의 손목을 붙잡으며 벌떡 일어났다.
“하령아.”
“응?”
“나랑 얘기 좀 하자.”
내가 서하령을 데려간 곳은 수련장 구석에 딸린 작은 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