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서하령은 영문도 모른 채 눈을 두리번거리며 창고를 구경했다.
서하령은 남궁류청을 짝사랑하던 소꿉친구였다.
‘지금은 아닌 것 같지만······.’
현재 하령이와 류청 사이에 연모의 기운 따위는 전혀 흐르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마음은 모르는 것이 아니던가? 만약 속으로 좋아하고 있는데 나와 혼담이 오가는 걸 안다면·····.
과거에 남궁류청과 함께 있던 서하령이 나를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던 것이 떠올랐다. 가슴이 선뜩한 것이 마치 송곳에 찔리는 느낌이었다.
‘그건 싫어.’
나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령아, 너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어?”
“으엉? 연아, 너 정말 어디 아파?”
서하령은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나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 류청 말이야. 너 항상 붙어 다니는데······ 혹시······?”
서하령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설마 나한테 지금 류청 좋아하냐고 물어본 거야?!”
버럭 외치는 소리에 고막이 아릴 정도였다.
나는 깜짝 놀라 손을 모은 채 눈을 깜빡였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그런 오해를 받았는데! 너도 그런 말 할 줄이야! 내가 그 싸가······ 걔를 왜 좋아해! 얼굴이 반반하면 무조건 좋아해야 하나? 아니거든!”
부끄럽거나 그런 느낌이 아니라 정말 짜증나고 진절머리 나는 느낌이었다. 그간 그런 오해를 상당히 많이 받고 다닌 모양이었다.
펄펄 날뛰던 서하령의 발에 굴러 다니던 병장기 하나가 걷어차여 짚에 박혔다 하령이가 이렇게 화를 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나는 양손을 싹싹 빌며 사과했다.
“앞으로 그런 오해, 안 했으면 좋겠어. 정말 기분 나쁘다니까! 거기다 류청 그 녀석은 너랑······!”
날뛰던 서하령이 갑자기 말을 뚝 멈췄다. 나도 눈을 깜빡이며 서하령을 바라봤다.
류청 그 녀석은 너랑······?
미안한 마음이 의심으로 뒤덮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령아,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어? 아니, 여기 덥다. 이제 나가자.”
“말해. 류청 그 녀석이 나랑 뭐?”
빠르게 눈을 깜빡인 서하령이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헤맸다.
“나는 ······ 나는 모르는 일이야.”
“너······ 알고 있었구나?”
서하령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 말도 안 해 줄 수가 있어?”
“그, 미안. 하지만 엄마가 다른 사람 혼사에 함부로 입 놀리면 절대 안 된······ 헙!”
서하령이 제 입을 막았으나 이미 들을 건 다 들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솔직히 네가 너무 아깝지. 물론 네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
“제가 고맙다고 해야 할까요?”
“하하, 하하하. 화, 화났어? 아니, 뭐 걔 성격이 좀······ 문제 있지만 그래도 얼굴은 괜찮잖아?”
서하령, 너 방금까지 얼굴 반반하면 무조건 좋아해야 하냐고 고래고래 소리쳤잖아?
내가 차게 식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서하령이 안절부절 못하다 말했다.
“그, 그리고 걔랑 잘되면 나도 자주 볼 수 있다?”
“뭐?”
“아니이이, 네가 류청이랑 혼인하면 남궁 세가에서 지낼 거 아냐? 그럼 가까운 데에 사니까······ 나랑 자주 만날 수 있잖아? 헤헤······.”
“······.”
“우음.
그래서 나는 좋은 것 같은데······.”
“그걸 말이라고 해!”
서하령이 어깨를 움츠리며 귀를 막았다.
“에이, 화내지 마.”
귀엽게 웃으며 치댔으나, 배신감에 치를 떠는 내게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어!
“아하! 그래서 나한테 류청 좋아하냐고 물어본 거구나?”
서하령이 눈을 가늑 뜨거니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얄밉게 웃었다.
“호호호 소녀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으니 소녀를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더 아는 거 있어?”
서하령이 고개를 저었다.
“그게 사실, 나는 전혀 모르다가······ 출발 전에 엄마가 할 말이 있다고 부르시더니, 조심하라고 알려주셔서 안 거야.”
“······.”
아마도 눈치 없는 서하령에게 처신 잘하라고 알려 주신 게 아닐까?
그때 서하령이 갑자기 검집을 쥐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거기 누구야!”
그 말과 동시에 집중하는 순간 창고 밖에서 흐릿한 기척이 느껴졌다.
몸을 휙 돌린 나는 금안으로 본 모습에 눈을 의심했다.
끼익. 창고의 문이 열렸다.
“뭐야, 야율?”
서하령이 날 선 목소리로 말했다.
“연이가 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 왜 여기 있는 거야?”
야율은 서하령을 무시한 채 나를 새카만 눈동자로 물끄러미 응시했다.
서하령이 살짝 당황한 듯 나와 야율을 번갈아 보았다. 입술을 질끈 깨문 서하령이 재차 입을 열려 할 때였다.
야율 옆에서 화살처럼 다른 신형이 창고로 뛰어들어 왔다.
나는 내 품으로 뛰어든 신형을 붙잡았다.
“뭐, 뭐야?”
서하령이 당혹스러운 듯 말했다.
내 심정도 같았다.
‘우리가 그간 말을 좀 텄다고 이럴 사이는 아니었잖아?’
그 심정을 내색하지 않으며 자애롭게 물었다.
“리? 무슨 일이야?”
백리리가 내 품에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헐떡거리다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당황하며 야율을 바라보았다.
“나도 몰라. 널 찾길래 데리고 온 거야.”
나는 주변을 살폈다.
백리리는 집 안에서도 절대 혼자 다니지 않고 늘 시중을 들어 줄 사람을 데리고 다녔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사람도 없었다.
백리리가 순식간에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내 팔을 꽉 부여잡았다.
“오라버니가, 오라버니가 위독해.”
“뭐라고?”
* * *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았다.
할아버지께서 출발하기 전 산수연에 들어온 선물들을 손주들에게 나눠 주었다.
무림 세가 가주에게 바친 선물이 아니랄까 봐 갖가지 귀한물건 중에는 영약도 몇개 되었다.
그중 가장 좋은 영약이 설빙보주였다. 백리명과 백리리는 서로 설빙보주를 탐냈고, 그걸로 꽤 크게 싸우기도 했다. 결국, 할아버지는 백리명에게 설빙보주를 내주었다.
하지만 백리명이 다른 영약을 섭취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영약은 너무 자주 섭취하면 좋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백리명에게 자신이 무림맹회를 끝내고 돌아오거든 설빙보주를 섭취하라고 했다. 그런데 백리명은 그때까지 기다리기 싫었던 모양이다.
거기다 그간 할머니의 성화로 정소저와 만나는 것에 불만도 켜켜이 쌓여 차라리 설빙보주를 먹고, 수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야겠다고 생각한 듯했다.
할아버지가 주의를 시켰으나, 백리명이 영약을 한두 번 먹어 보나?
큰아버지를 설득해 큰아버지와 함께 오늘 오전에 설빙보주를 가지고 수련관에 들어갔다고 한다.
백리명이 자신 넘치는 데다, 큰아버지도 함께 들어가 있으니 그냥 별일 없이 지나갈 거라여겻는데······.
“백리명이 주화입마에 빠졌다고?”
나는 얼떨떨하게 백리리를 보았다.
백리리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을 이었다.
“아빠가, 아빠가 오라버니를 진정시키려고 했는데 흡, 흐윽, 실패해서 아빠도 주화입마에 빠질 뻔하고······ 엄마도······.”
“큰어머니는 왜?”
“엄마도 오라버니 소식을 듣고 놀라서, 놀라서 쓰러지셨는데······ 피, 피가······.”
나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큰어머니, 심 부인은 임신한 지 이제 6개월이 되어 가고 있었다.
백리리의 목소리가 끊어질 듯 말듯 가느다랗다.
“모르, 모르겠어. 밖에, 밖에 알리면 안 된다고 하는데 나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이 혼미하니 살짝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대체 왜 백리명이?
“어떡해, 언니, 어떡해?
오라버니······ 죽어?
오라버니 죽는 거야? 허어어엉.”
“······.”
주화입마에 빠지면 십중팔구는 죽는다. 살아남는다 해도 평생을 누워 보내야 할 폐인이 되고.
단전 폐인으로 끝난 나는 운이 좋은 것이었다. 가진 내공이 적어서, 아니 없어서 타격이 덜했다.
몸에 지닌 내공이 많을수록 주화입마도 더 크게 오는 것이다.
바늘로 나노질당하는 것과 도끼로 난도질당하는 차이라고나 할까?
한참을 오라버니와 아버지, 어머니에 관한 걱정을 쏟아 내던 백리리가 갑자기 힘이 빠진 듯 주르르 주저앉았다. 나는 깜짝 놀라 붙잡았다. 창고인 이곳 바닥엔 녹슨 무기들이 나뒹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오열하는 백리리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가자.”
백리리가 울면서 물었다.
“어, 어딜?”
“명 오라버니께 가 봐야지. 명 오라버니 있는 곳이 어디야?”
“어, 언니······.”
그때 서하령이 내 어깨를 붙잡았다.
“연아! 네가 가서 뭘 하려고!”
같이 창고에 있던 서하령은 얼떨결에 내 옆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된 참이었다. 심각한 이야기에 숨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설마······ 아니지? 네 큰아버님도 실패하셨다잖아! 위험해!”
“실랑이할 시간 없어.”
나는 서하령의 손을 떼고 걸어갔다.
그때 야율이 슬며시 앞을 막아섰다.
비켜서 지나가려 할 때, 야율이 나를 따라 또 앞을 막아섰다.
“야율, 뭐 하는 거야?”
“하나만 물어볼게.”
“뭘 물어보려고?”
“네가 주화입마에 빠졌을 때, 백리명이 널 도왔어?”
“······”
나는 눈을 내리깐 채 바닥에 흐트러진 지푸라기들을 보았다.
창고 안에 침묵이 맴돌았다.
간헐적으로 백리리가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