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도와줬냐니.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아플 때 문병 한 번 온 적없는 이들이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다시 앞을 보았다.
“야율, 넌 나랑 꽤 오래 같이 지냈지. 그럼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아?”
“······그래서 안 돼.”
늘 속을 알 수 없다고 느꼈던 새카만 눈동자가 이번만큼은 단호한 속내를 내보였다.
순간 왜 저러는지 이유를 눈치챘다.
산사태에서 있었던 일. 야율은 내가 목숨을 던져가면서 백리명을 구하리라 여긴 것이다.
‘아니, 그럴 리가 있나.’
그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백리명을 내 몸 던져가며 구할 생각은 없었다.
‘거기다 얘네들 생각만큼 위험한 것도 아니고.’
서하령이 다급하게 야율 옆에 다가가 섰다.
“연아, 넌 한 번 주화입마에 빠졌던 적 있었잖아.
차라리······ 차라리 그래! 백검단주께 부탁드리자. 너보다 훨씬 경지가 높으신 분이니까······.”
“불가능해.”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서하령이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류청?”
나는 이미 다가오는 걸 알고 있었다지만, 야율은 돌아보지 않고 나만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왜 안 되는데? 백리 세가의 단주인데 연이보다 훨씬······!”
“같은 심법을 배운 자가 아니면 안 되니까.”
“뭐?”
“주화입마에 빠졌을 때는 같은 심법을 배운 자가 아니면 함부로 손대선 안 돼.”
오히려 주화입마를 더 촉진하거나 심하면 같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남궁류청이 천천히 다가오며 말을 이었다.
“보통 가문의 직계들이 배우는 내공 심법과 그 외 제자들의 심법은 결을 달리해. 백리 세가도 다를 바 없겠지. 그러니 방계인 백검단주도 백리명을 도울 수는 없을 거야.”
남궁류청의 말이 맞았다.
가문의 중심이 되는 심법은 유출을 막기 위해 직계에게만 가르친다. 심지어 어떤 가문들은 출가외인이 될 거라며 여자아이에게는 가르치지 않거나, 직계 중에서도 후계자에게만 물려주는 예도 있었다.
그리고 현재 가문에 자리를 비운 이들을 빼면 백리명과 같은 심법을 배운 이는 큰아버지, 나, 백리리 이렇게 셋뿐이었다.
남궁류청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리명 그 녀석은 나도 마음에 안 들어.”
“그래서 너도 반대한다는 거야?”
나는 입술을 깨물며 후회했다.
‘······처음부터 백리리랑 단둘이 얘기할걸.’
갈수록 첩첩산중이었다.
백리리는 훌쩍거리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남궁류청이 자못 짜증스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할 수 있는데도 나서지 않는 건 소인배나 할 짓이지.”
남궁류청이 검 손잡이를 고쳐 쥐었다.
“백리연, 동생 데리고 가.”
남궁류청이 오만한 눈빛으로 야율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천산염제의 제자라는 저 녁석 실력이 궁금했으니.”
예상치 못한 지원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야율이 그제야 천천히 남궁류청을 돌아보았다.
“······.”
야율의 낯은 어느새 표정이 싹 사라져있었다.
“뭐 해?”
채근하던 남궁류청이 돌연 몸을 틀었다. 뭔가 휙- 남궁류청이 있던 자리를 지나갔다.
“개자식! 혼자 잘난 척하지 마!”
서하령이 바닥에 뒹굴던 무기를 던진 것이었다.
“무슨 짓······!”
“그래, 너 잘났다! 우리는 연이를 걱정한 것뿐이거든! 누구한테 소인배라는 거야? 가! 가자! 대신 혼자는 못 보내!”
* * *
도착하고 나서, 백리리가 밖에 알리지 말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수련장이 딸린 전각을 둘러싼 담.
그곳에 평소 늘 열려있던 중문이 굳게 닫힌 채 그 앞을 무사들이 지키고 있었다.
백리리가 나와 함께 들어가려고 할 때였다. 무사가 검집째 들어 백리리의 앞을 막아섰다.
“뭐 하는 거야?”
백리리가 왈칵 성을 냈다.
“이거 당장 치우지 못해!”
“대부인께서 출입을 금하셨습니다.”
무사가 나와 내 뒤편의 일행들을 굳은 얼굴로 보았다.
“작은 아기씨만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언니는 도와주러 온 거야!”
“안 됩니다.”
“저리 안 비켜!”
백리리는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웠으나 호위무사들은 굳건했다.
그때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굳게 잠긴 문이 스르륵 열렸다.
열린 문틈으로 중년 여인이 나왔다.
백리리의 얼굴이 밝아졌다.
“유모! 문 열어 줬구나! 당장 비켜!”
유모라 불린 이는 정확히 말하면 고모와 쌍둥이들을 키운 유모였다.
하지만 쌍둥이들이 고계암에 유배당했을 때 백리리를 맡았는데, 당시 백리리를 맡았던 유모의 친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3년간 상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쌍둥이들이 돌아오자 백리리의 유모도 돌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원래 맡던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곽씨 어멈이 백리리를 꽉 껴안아주고는 등을 떠밀었다.
“아기씨, 어서 들어가십시오.”
얼떨떨하게 문지방을 넘은 백리리 곁으로 시비들이 다가와 붙잡았다.
“아기씨를 잘 뫼셔라.”
어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뒤늦게 사태를 깨달은 백리리의 외침이 들렸다.
“뭐야, 안 놔?! 언니!”
점점 백리리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곽씨 어멈이 남아있을 줄 몰랐네.
고모를 따라간 거 아니었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저는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다고 치고, 날 왜 막는 거야?할머니께서 명 오라버니를 버린 거야? 그게 아니면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을 막는 게 말이 안 되는데.”
“허튼소리! 널 뭘 믿고 들여보낸단 말이야!”
“부인! 말이 너무한 거 아니에요?
연이느 도와주러 온 거라고요!”
뒤쪽의 서하령이 소리쳤다.
“도와줘? 흥!”
곽씨 어멈이 코웃음을 치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대부인께서 들어오지 말라면 들어오지 말 것이지 네가 뭐라고 그 말을 무시하느냐! 불효막심한 것! 가주님이 아낀다고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
곽씨 어멈이 나를 향해 손가락질 했다.
“핏줄도 알 수 없는 천것 주제에 백리가에서 받아준 것을 감사히 여겨야지!”
곽씨 어멈은 이 가문에서 나보다 더 오래 지낸 사람으로 할머니와 고모의 심복이었다. 내게 이리 굴어도 벌 받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이다.
곽씨 어멈이 내 뒤의 남궁류청과 야율, 서하령을 보고 조소했다.
“얌전히 지내진 못할망정 이리저리 사람만 꼬드기고, 감히 우리 도련님들께 누명까지 씌워 쫓았지.
그런데 이제는 작은아기씨까지 노려? 썩 물러가지 못······컥!”
순식간에 목이 잡혀 그대로 문에 처박혔다. 그리고 양쪽에서 스릉 검을 뽐는 소리가 들렸다.
문에 부딪친 곽씨 어멈이 그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숨은 쉬는 게 기절한 듯 싶었다.
양쪽에서는 남궁류청과 서하령이 검을 뽑아 호위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좀 전의 창고에서는 서로 검을 뽑고 당장 싸울 것 같더니만, 손발이 이리 잘 맞을 줄이야.
‘이게 바로 내분을 잠재우는 방법은 외부의 적을 만든다는 것인가?’
내가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 남궁류청이 말했다.
“집안 꼴이 참 대단하군.”
“이게 무슨 짓입니까1”
무사들이 당황해 검을 뽑아 들었다.
“당신들 내 몸에 손댈 자신 있나?”
무사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남궁세가의 유일한 후계자.
제압하려거든 다치지 않게 해야했다.
후일 남궁 세가주가 될 남궁류청에게 상해를 입힌다?
아무리 남궁류청이 먼저 검을 뽑았대도 그야말로 인생을 걸어야 할 것이다.
“공자님, 도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백리 세가를 어찌 보시는 겁니까! 감히 백리 세가 내에서 검을 뽑아 들어 겁박하다니요!”
“시시비비는 백리 세가주가 돌아오시면 가리시겠지. 그리고 내가 잘못한 거면 어쩔 건데? 네깟 것들이.”
남궁류청이 푸른빛의 보검을 휘두르자 무사들이 황급히 물러났다.
쾅! 야율의 발길질에 그대로 문짝이 부서졌다.
남궁류청은 나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난 괜찮으니까 먼저 가.”
입술을 깨문 난 쓰러진 곽씨 어멈을 넘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미리 봐둔 방향으로 향했다.
큰 소란에 시비와 하인들이 나와 볼만도 한데, 내부는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서하령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내 시선에 서하령이 설명했다.
“류청이 혼자 상대할 수 있다고 나보고 따라가래.”
서하령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근데, 야율 너. 저 부인 죽인 거 아니지?”
“······.”
“왜 말이 없어?!”
내가 대신 해명했다.
“아냐, 숨 쉬는 거 확인했어.”
“왜 대답을 안 해? 깜짝 놀랐잖아!”
서하령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무 이상해. 왜 도와주려는 사람을 막는 거야? 백리 세가의 대부인께서는 자기 손자가 죽어도 좋다는 거야?”
“내가 도와줄 리가 없다고 여겼던 거겠지.”
“하, 누가 저 같은 줄······ 크흠.”
“그리고 만약 구사일생으로 백리명이 살아난다면 주화입마에 빠졌던 얘기를 숨길 생각이었을 테고.”
“뭐?”
“나도 살아났잖아. 소문만 안 난다면, 가문만 입을 다문다면 어떻게 해서든 조용히 넘어갈 생각이었겠지.
“그게 가능해?”
“왜. 우리도 리가 오기 전까진 전혀 몰랐잖아.”
백리명의 무위를 앞으로 숨길 수 있을까 하는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다.
일단 소문이 퍼지는 걸 틀어막고, 주화입마에서 살아남은 후에 생각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러고 보니 네 동생은 어디까지 끌려간 거지? 아, 저깄다1”
멀리서 시비에게 붙들려 가는 백리리가 보였다.
계속 실랑이를 하고있었는지 백리리와 두 시비의 모습은 양쪽 다 엉망이었다. 시비들도 약간 이나마 무공을 익혀서 백리리가 빠져나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백리리도 나를 보았는지 화색이 도는 낯빛으로 소리쳤다.
“언니!”
시비가 놀란 틈을 탄 백리리가 시비 한 명을 걷어차곤 다른 한 명의 뺨을 날렸다.
“날 한 번만 더 붙잡으면 너희 손목을 부러트려 버릴 것이야!”
아주 포악한 기세가 흘러넘쳤다.
도와줄 생각으로 뛰어가던 서하령이 멈춰섰다.
“쟤도 성질머리가 대단한 걸.”
시비들은 더는 붙잡을 수 없닥 생각했는지 재빨리 물러났다.
“이쪽이야.”
나는 백리리를 붙잡았다.
“어딘지 알아. 그보다······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있어.”
“내가 해줘야 할 일?”
백리리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