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 * *
백리명이 있는 전각까지는 멀지 않았다.
굳게 닫힌 문 앞에는 큰아버지가 계셨다. 큰아버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문을 바라보고 계셨다.
큰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뵌 것이 할아버지를 배웅할 때였다.
그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평소 매끈하던 피부는 푸석푸석해지고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진 게 마치 대여섯 살은 더 먹은 듯한 모습이었다.
‘정말 주화입마에 한 발 담갔다 나왔나 보네.’
금안으로 보이는 몸 안의 진기도 매우 불안정 했다.
“큰아버지.”
얼마나 정신을 놓고 있었는지 내 목소리를 듣고서야 우리가 온 것을 발견했다.
“네가 어떻게, 아니 같이 온 아이들은, 예가 어딘 줄 알고······. 분명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라고······.”
횡설수설하는 목소리는 탁하게 쉬어 있었다.
“리가 저를 찾아왔어요.”
“뭐? 아니, 언제······?”
큰아버지가 손을 내저었다. 지치고 힘들어 대거리할 여력도 없어 보였다. 초조한 낯빛엔 절망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
“돌아가거라······.”
“큰아버지, 전 명 오라버니를 도우러 온 거예요.”
나는 큰아버지의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큰아버지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제가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요.”
“네가 명이를? 하, 웃기지도 않은···.”
나는 또다시 큰아버지의 말을 자르며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제 도움이 필요없다는 말 한 마디만 하시면 전 돌아갈 거예요.”
서하령과 야율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 난리를 쳐서 왔는데, 이렇게 쉽게 돌아간다고 한 것에 놀란 듯했다.
“······.”
무언가 말하려는 듯하던 큰아버지의 입술이 아교라도 칠한 듯 딱 달라붙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좋으시겠어요?”
큰아버지의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마른침을 몇 번이나 삼키고 큰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네가
어찌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어요. 그럼 이만 물러갈게요.”
나는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열 걸음 정도 뗐을 때였다.
“아니다! 아니다!”
정신없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붙잡은 큰아버지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부탁한다. 부탁해.”
“······.”
내가 아무 말이 없자 큰아버지가 갑자기 털썩 무릎을 꿇었다.
“내 이렇게 부탁한다. 명이를 살려 다오. 내 그동안 네게 못할 짓 많이 했지. 내가 잘못했다. 내가 이렇게 빌 테니 제발 우리 명이 좀 도와 다오. 제발······.”
* * *
두터운 문을 열었다.
들어서자마자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피를 몇 번 토한 듯 바닥에 핏자국과 발자국이 정신없이 흩어져 있었다.
서하령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주변을 둘러보다 물었다.
“근데 말이야.연아, 너 네 큰아버지가 반대했으면 정말 안 도와줬을 거야?”
나는 설핏 웃었다.
“도움이 필요한 건 큰아버진데, 내가 굽히고 갈 필요 없잖아?”
서하령이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분명 내가 돕겠다고 주장하면 오히려 방해하려고 들 거라 생각했을 뿐이야.”
꼬치꼬치 캐물으면서 책임을 떠넘기려 들었을 거다.
서하령이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다 계획이 있꾸나?
가만히 있길 잘했다.”
“뭐, 만약 제 아들보다 본인 자존심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라 끝까지 반대했으면······ 오라버니의 운도 거기까지였던 거지.”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자 중앙에서부터 폭주하는 진기가 피부를 찌를 듯이 느껴졌다.
서하령이 살짝 겁먹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정말 위험해 보이는데 연아, 괜찮겠어?”
나는 서하령을 돌아보며 말했다.
“부탁이 있어.”
“어떤 부탁”
“석 태의를 불러다 줘. 언두나 금쇄를 찾아가면 될 거야. 그리고······.”
나는 머뭇거렸다.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의 대화가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고 말했다.
“화무에게도 가서······.”
“화무가 누군데?”
“제갈 세가주.”
“아,맞아. 그런 이름이었지.”
“내가 부탁한 게 어떻게 되었는지 알려 달라고 하면 그쪽에서 알아서 할 거야.”
그리고 곧바로 명패를 꺼내 야율에게 내밀었다.
“너는 이걸 보여 주고 가장 좋은 말을 받아서 할아버지를 찾아가 줘.”
야율이 명패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사람을 보냈을 텐데.”
“모르는 일이지.”
나는 조소했다.
야율이 걱정스럽게 나를 보았다.
“내가 가면 너는?”
“류청이 있잖아. 남궁 세가가 어떤 가문인데 할머니도 감히 류청을 건드릴 생각을 하진 못할 거야.”
야율이 주먹을 꽉 쥐었다가 내 명패를 받아 갔다.
“······ 알겠어.”
“고마워.”
야율과 서하령이 나가고 문이 굳게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백리명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금안으로 그의 폭주가 어떤 식인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가 폭주한 형태는 내겐 매우 익숙한 모습이었다.
나는 이를 두 눈에 똑똑히 담아 놓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제 말 들려요?”
“······.”
“상황이 참 웃기게 됐어요. 그쵸?”
“······”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부들부들 떨리는 몸에서는 희미하게 아지랑이마저 피어오르는 모습이었다.
이미 피투성이인 입가에 또다시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백리명은 어떻게든 억누르기 위해 악전고투 하고 있었다.
나는 백리명 등 뒤에 털썩 주저앉았다. 설빙보주로 인한 주화입마여서인지 진기도 냉랭한 느낌이었다.
“도와주겠다고 들어왔지만, 어떻게 될지는 하늘에 달렸어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날 원망 마요.”
나는 백리명의 등, 명문혈에 손을 올렸다.
손끝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느낌과 함께 폭주하는 진기의 흐름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날뛰는 진기의 주도권을 뺏기 시작했다.
내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자연지기를 다루는 것 자체가 늘 내가 제어권을 뺏어오는 일이었기 때문에.
내가 당당하게 주화입마를 돕겠다고 나온 이유 중 하나였다.
‘이미 기맥이 상했네.’
더 지체했더라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타격을 입었으리라.
조금씩 뻗어 나가는 내 감각 사이에서 느껴졌다.
‘이것 때문에 주화입마가 시작됐구나.’
내공이란 본질적으로 아주 예민하고 통제가 힘든 것이었다.
한 번 제어를 벗어나기 시작하는 순간, 삽시간에 폭주하기 시작한다. 운기조식을 할 때 누군가 옆에서 호법을 서주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작은 충격, 미약한 자극만으로도 제어를 잃고 순식간에 폭주할 수 있는 위험이 있어서였다.
그 말은 다른 뜻으로 해석하면 약간의 자극만 주면 주화입마에 빠트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몸에 안착시킨 내공도 그런 위험성을 지녔는데 영약, 외부의 기운을 내 몸에 넣어 안착시키는 과정은 어떻겠는가.
일반적인 운기조식보다 위험했다.
큰아버지가 백리명이 영약을 먹자 곁을 지켜주던 이유였다.
그렇게 큰아버지가 외부의 위험에서 백리명을 지켰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부의 위험에서까지 지켜주진 못했다.
나는 천천히 호흡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백리명은 고개를 푹 숙인 상태로 앉아 있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진기의 흐름은 이제 잔잔하게 안정되어 있었다.
나는 마무리를 짓고 손을 뗐다.
그러자 백리명의 몸이 앞으로 푹 고꾸라졌다.
“엇!”
백리명이 바닥에 머리를 박기직전, 길쭉한 다리가 툭 막아섰다.
남궁류청이었다.
“끝났어?”
“응.”
남궁류청이 백리명을 바닥에 천천히 눕혔다. 아, 물론 손은 쓰지않고 발만 까딱거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네가 호법을 선 거야?”
남궁류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지났어?”
“이틀 정도.”
“피곤하겠네.”
“누가 할 소리를.”
“어디 다친 데는 없지?”
“하.”
“백리 세가의 무사들을 새로 뽑야야 겠어. 순 겁쟁이들뿐이더군.”
“하하.”
살짝 웃으며 내민 손을 잡고 가볍게 일어났다.
“그리고 걱정은 오히려 내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음?”
남궁류청이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뭐야, 걱정했어?”
나서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더니만, 걱정했다니.
밖에 나오니 하늘이 어두운 것이
해시(21~23시)에 가까워 보였다.
덜컹. 갑작스러운 소리에 돌아보자 문 바로 옆에 가져다 놓은 의자와 큰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홀로 다른 시간을 사는 듯, 또 몇 살을 먹은 듯한 모습이었다.
핏줄 터진 눈동자와 얼굴에서 그간의 마음고생이 훤히 보였다.
“연아······”
큰아버지는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내게서 나올 답이 두려워 차마 묻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내가 먼저 선선히 말해 주었다.
“목숨은 건졌어요. 들어가 보세요.”
큰아버지가 정신없이 뛰어들어갔다.
밤이 되어 서늘해진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이제 끝났으니 가서 쉬어.”
“글쎄······.”
이제부터 시작일 텐데.
의아한 낯의 남궁류청을 돌아보며 물었다.
“석 태의는 어디 모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