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 * *
침상에 반쪽이 된 백리명이 누워 있었다.
검붉은 안색에 푹 꺼진 뺨, 그늘이 짙은 눈가. 반송장 같은 몰골이었다.
뱃가죽 부분의 미약한 움직임이 아니라면 시체라고 여겨도 손색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백리명을 석 태의가 이리저리 살피며 진찰했다.
평소의 큰아버지라면 석 태의의 진찰을 꺼렸을 터. 외부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큰아버지는 할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석 태의를 직접 찾아가 부탁했다. 석 태의 가 거절하기라도 한다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것 같은 태도였다.
평소 할머니의 말이라면 군말없이 따르는 효성스럽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할머니는 대로하여 자리를 박차셨고, 이렇게 석 태의가 백리명을 진찰하게 된 것이다.
석 태의는 주화입마에 빠졌던 나를 오랫동안 치료했던 의원이었으니 자식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판단이었다.
‘할머니가 그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닐 텐데······.’
백리명의 치료가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손자를 생각하는 할머니라고 보기엔 매우 기이한 태도였다.
석 태의가 진맥을 마쳤는지 손을 거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지켜보던 큰아버지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태의 ······ 어떻습니까?”
“운이 좋았습니다.”
“예?”
“몸에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적절한 때에 주화입마가 멈춘 듯합니다.”
가슴을 졸이던 큰아버지가 탁자를 짚으며의자에 털썩 앉았다.
“정말 아무 문제없이 무사하다고요? 그게 가능합니까?”
다그치는 듯한 목소리의 주인은 고모였다.
고모는 내가 백리명이 있는 수련장으로 들어가고 하루 지난 후에 왔다고 한다.
백리 세가 근처 친우의 집을 방문하려다가 가문에 일이 생긴 걸 알고 왔다고 했다.
그리고 당연하달까,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고 한다.
남궁류청의 말에 의하면 고모가 날 어지 믿느냐며 백리명이 있는 수련장 앞에서 큰아버지와 한참 말다툼을 했다고 한다. 차라리 자신이 돕겠다며 수련장에 억지로 들어가려고도 했다며.
석 태의가 담담히 대답했다.
“아무 문제도 없는 건 아닙니다.”
되묻는 고모의 눈이 알 수 없는 빛으로 빛났다.
“그 말은······?”
“기경팔맥부터 장기까지 상당히 상했습니다. 한동안은 움직이는 것도 삼가고 소화가 쉬운 음식만을 드려야 합니다. 운기조식도 하시면 안 되고요.”
고모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고작 그것뿐이에요? 뭐 더 없습니까? 혹시라도 문제가 될지도 모르는 부분이 있다면 가감없이 말씀해 주시지요. 주화입마에 빠졌는데 이렇게 무사하다는 게 말이 안 되지······.”
큰아버지가 피곤한 목소리로 막아섰다.
“의란, 그만하거라. 그게 무슨 말투더냐? 태의께서 어련히 말씀해 주겠지. 재촉하지 말거라.”
석 태의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대소저꼐서 조카분을 많이 아끼시는 모양이군요.”
고모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석 태의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일단 몸에 장애는 생기지 않은 듯 합니다.”
“태의 말씀은······.”
큰아버지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
“태의 말씀은 명이의 단전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지요?”
“예.”
단전이 멀쩡하다는 말에 어느새 일어난 큰아버지가 백리명의 손을 부여잡았다. 천지신명께 감사를 올리는 큰아버지의 여윈 뺨에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석 태의가 나를 한 번 보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나 이건 제가 진찰한 것뿐이니 정확한 건 백리 공자가 눈을 떠야 알 수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석 태의의 말에 큰아버지가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머 혹시 명이가 정신은 언제쯤 차릴 수 있을까요?”
“깊게 잠든 것뿐이니 곧 깨어날 겁니다.”
큰아버지의 잔뜩 충혈된 눈이 백리명을 향했다. 당장이라도 깨워서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읽혔다.
석 태의도 이를 느꼈는지 부연 설명을 붙였다.
“다만······ 깨어나면 고통이 꽤 심할 겁니다. 따지자면 내부 화상, 아니 이건 동상으로 봐야겠군요. 내부 동상을 입은 것과 같으니까요.”
큰아버지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석태의 가 말을 이었다.
“차라리 잠들어 있는 편이 좋을테니 억지로는 깨우지 말고 두십시오.”
“아, 알겠소.”
큰아버지가 바로 수그렸다. 그리곤 곧바로 물었다.
“그럼 그······ 아프지 않게 혹시 진통약도 함께 처방해 주실 수 있는지요.”
“그야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필요한 약재가 있다면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큰아버지가 하인을 불러 지필묵을 준비시키는 걸 지켜보던 고모가 다시 입을 열었다.
“굳이 진통약까지 태의께서 처방하실 필요가 있겠어요? 그 정도는 백리가 의원도 처방할 수 있잖아요?”
고모는 석 태의의 언짢은 표정은 신경도 쓰지않고, 나를 아니꼬운 듯이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이렇게 석 태의까지 오라 가라 할 일은 아니었네요. 괜히 태의께 폐를 끼쳤네요.”
그때 큰아버지가 성난 듯 소리쳤다.
“의란이 너, 아까부터 무슨 말을 그리하는 게야!”
버럭 소리친 큰아버지가 백리명을 보았다가 목소리를 낮춘 채 윽박질렀다.
“연이가 명이를 걱정하여 태의를 모셔온 것인데, 너도 어머니처럼 반대할 거면 당장 나가거라!”
“오라버니! 저는 그저······”
큰아버지는 고모를 무시하며 태의를 향해 공수했다.
“태의, 의란의 말은 넘기시고 처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대우는 섭섭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음······.”
석 태의 가 잠시 나를 바라봤다.
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을 했으니 이제 나쁜 말을 할 차례였다.
석 태의가 다시 입을 열어 조심스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게······ 아직 다 말씀드리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공자의 단전은 무사합니다만······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큰아버지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바라보았다.
“제가 무공을 익힌 이가 아니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석 태의가 말을 꺼내기 어려운 듯 머뭇거리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공자의 단전 축기량이 현저하게 적습니다.”
“그게 무슨······?”
“아마도 내공의 대부분을 잃은 듯 합니다.”
“뭐요?”
눈을 부릅뜬 큰아버지가 비틀비틀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탁자에 걸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도 공자는 아직 젊고, 단전이 무사하니 푹 쉬고 새롭게 쌓아 가면 될 겁니다.”
다시 쌓으라니.
석 태의는 진심으로 목숨을 건지고 단전이 무사한 것에 감사하라는 태도였다.
하지만 큰아버지께는 전혀 다르게 들릴 것이다.
백리명이 걸음마를 뗄 때부터 수련해 모아 온 내공이었다. 근 20년에 가깝게 온갖 수단을 동원한 노력의 결산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결국, 큰아버지는 거의 반쯤 정신을 놓은 채 고모와 하인에게 부축을 받으며 방을 나갔다.
큰아버지는 정신을 완전히 놓고 쓰러질 수도 없었다. 심 부인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내가 주화입마에 빠진 백리명과 있는 동안 심 부인은 안타깝게도······ 아이는 지키지 못했다고 했다.
사실 심 부인의 임신은 전생에는 없던 일이었다. 그래서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무척 신기했다.
저번에는 없던 사촌 동생이 생길 거라는 기대도 약간 했는데······.
백리명의 일에 심 부인의 일까지, 저러다 쓰러지지 않나 싶었다.
석 태의 가 침구함을 열며 말했다.
“여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연이 너도 이만 가서 쉬지 그러느냐. 너도 이틀은 쉬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괜찮아요.”
나는 탁자로 걸어가 찻주전자를 들어 찻잔을 채웠다. 한 잔은 태의께 드리고 한 잔은 내가 마셨다.
“태의,
오라버니의 상태는 어떤가요?”
식은 찻물을 마시던 태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음? 다 듣지 않았느냐. 내공을 모두 잃은 것은 네가 제일 잘 알테고. 몸은 주화입마에 빠진 전형적인 상태이지. 네 상태가 더 위중했다는 것만 빼면 다를 것 전혀 없느니라.”
“역시······.”
나는 고개를 주억거리고 소매에서 작은 병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그게 무엇이냐?”
“오라버니가 먹였던 영약, 설빙보주예요.”
“영약이 남아 있었느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설명했다.
“설빙보주는 술로 된 영약이죠. 이런 영약의 특징은 몇 번에 걸쳐 나눠서 먹어도 공능이 똑같다는 거죠.”
“아, 맞다. 그리 들었다.”
동물의 내단으로 만들어졌거나, 유명 약문에서 빚어낸 영약은 나눠 먹는 걸 권장하지 않는다. 잘못 건드렸다간 공능이 확 줄어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술, 액체로 된 설빙보주는 상관없었다. 언제 어떻게 나눠 먹든 전에 먹은 영약의 기운과 쉽게 조화되었다.
“오라버니도 본인의 몸 상태는 잘 알았어요. 그래서 설빙보주를 한 번에 다 마실 생각을 하지 않았죠.”
내가 백리명에게 가기 전, 백리리에게 부탁한 것이 이것이었다.
백리명이 먹고 남은 설빙보주가 있거든 꼭 챙겨달라고.
그리고 백리리가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
“그런데 이걸 왜 꺼낸 것이냐”
“조사를 좀 부탁드릴게요.”
“조사?”
“네.”
나는 푸른 빛의 작은 자기 병을 보았다.
“이 안에 오라버니가 주화입마에 빠지게만든 원인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럴 리가. 설빙보주는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안정성이 높은 영약이거늘······”
“누군가 손을 썼다면요?”
석 태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석 태의가 백리명과 자기병을 번갈아 보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네 말은 누군가 설빙보주에 주화입마에 빠지게 만든 것을 넣었다는 것이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