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 * *
객잔에 빈방은 많았다.
적당한 방에 들어간 아버지가 문을 닫았다.
“앉아라.”
가리킨 곳에 앉자 아버지가 뭘 찾는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찾으세요?”
“찻주전자가 없구나.”
나는 의아해서 고개를 기울였다.
“아버지,
지금 객잔 직원이 없잖아요.”
“아, 내 정신이······.”
아버지가 머리를 살짝 짚었다.
별문제를 찾을 수 없던 객잔 주인과 직원들은 어제 마영표국을 습격하기 전에 풀어 주었다.
하지만 이미 겁을 집어먹을 대로 먹어버린 직원은 그만두겠다고 줄행랑쳐버렸다. 하루아침에 직원 둘이 사라지게 된 객잔 주인은 새 직원을 구하겠다고는 했지만,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제가 가져올게요.”
“아니, 아니다.”
나는 의자에서 내려와 문을 벌컥 열었다. 그리고 황급히 계단 아래로 몸을 숨기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딱 봐도 엿들으려다가 걸린 모습이었다.
기척 하나는 정말 제대로 숨기고 있었다. 몸놀림이 그를 못 따라가서 그렇지.
“저기요. 다 봤어요.”
“하하하······ 그, 그냥 지나가던 길이라네.”
“소개라고 하셨던가요?”
“아하하. 이름도 기억하다니.”
소개.
막개 아래에서 주로 일하는 거지가 셋 있었는데, 이름이 소개, 중개, 대개 였다. 처음에 듣고 어찌나 어이없던지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
“일 없으신 것 같은데, 차 좀 가져다주세요.”
“뭐”
“일 없으신 거 아니에요? 그럼 왜 여기 계셨던 거예요?”
“아, 아하하. 가져다주마. 주면 될 거 아냐.”
소개가 투덜거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이제 됐어요.”
“······.”
아버지가 말을 잃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니다.”
아버지가 살짝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다 쪼르르 다가가 푹 안겼다.
“······.”
침묵하던 아버지의 손이 내 등에 살짝 얹혔다. 무게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걱정했느냐.”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거늘.”
“제가 마교를 치자고 제안해 놓고 불안해하면 다른 사람들이 더 불안할 거 아니에요?”
게다가······ 남궁완 아저씨의 저런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갑자기 무서워졌다고 할까.
만약 아버지의 발작이 이번에 터졌다면······ 저렇게 누워계신 게 남궁완 아저씨뿐만이 아닐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이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정말로 다행이에요.”
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발작이 일어나거나 그러진 않는다. 그랬으면 이렇게 나서지 않았을 테다.”
“······.”
글쎄요.
전혀 몸 사리지 않다 돌아가시기까지 하신 분의 말씀은 신용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안겨 있던 나는 아버지 품에서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당혹스러운 듯한 목소리를 냈다.
“······연아?”
뭐지, 어디서 피 냄새가 나는데?
곧이어 어깨에서 찢어진 옷자락과 말라붙은 핏자국을 발견했다.
나는 눈을 부릅떴다.
“다치셨잖아요!”
“아, 그냥 좀 스친 거다.
별거 아니니라.”
아버지가 나를 조심스럽게 밀어내며 장포를 여몄다.
“갑자기 무슨······ 놀라지 않았느냐.”
“놀란 건 저거든요!”
“······.”
“빨리, 빨리, 상처 좀 봐요!”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으나 내가 이겼다. 나는 어깻죽지부터 팔까지 난 상처를 보고 말을 잃었다.
야밤에 눈에 띄지 않게 활동해야 해서 짙은 색의 옷을 입고 있던 터라 지금껏 전혀 눈치 못 챘다.
물론 자세히 살펴봤으면 알았겠으나······ 아무래도 부단주를 찾고 그러다 보니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
“이게 별거 아니라고요?”
“그래. 그다지 큰 상처는 아니다.”
“······알겠어요.”
내가 선선히 수긍하자 잠깐 멈칫한 아버지가 나를 돌아보았다.
뭔가 의심스럽다는 낯빛이었다.
나는 태연하게 품속에서 금창약을 꺼냈다.
“금창약 가지고 다니길 잘했네요. 일단 지금은 제가 약 바르고 나중에 의원님께 보여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꿰매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알겠다.”
“······.”
“좀 이상하구나.”
“뭐가요?”
눈을 몇 번 깜빡이던 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별말 없이 넘어가는 게 이상하구나.”
“아버지도 정신없으셨을 테니까요. 그리고 확실히 별거 아닌 것 같아서요.”
“······?”
“저도 다음에 이 정도의 상처는 조용히 넘어가도······.”
“연아!”
아버지와 살짝 투닥이며 상처에 천천히 금창약을 발랐다. 상처의 회복을 돕도록 자연지기도 불어넣었다.
“연아, 네가 보기에 완의 팔은 어떻더냐?”
나는 몇 번 입을 열었다 닫길 반복하다 힘없이 말했다.
“이미 기맥의 흐름이 없어요······. 그렇다는 건 아마도······.”
“네 능력으로도 안 되는 게냐?”
“······.”
“미안하구나. 내가 괜한 부담을 주었어. 이 정도면 됐다.”
아버지가 다시 옷자락을 올려 여몄다.
“일단
다른 의원들의 말을 들어 봐요.”
“그래야지.”
방 안은 무거운 침묵으로 가득찼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방법이 없을 리 없어요. 저도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렇게 무공도 쓸 수 있게 됐잖아요?”
나를 본 아버지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나는 아버지를 잠시 응시하다 물었다.
“아버지,
천귀조는 어찌 하실 거예요?”
천귀조는 잡히자마자 단전을 부수고 팔다리의 힘줄도 잘라 놨다.
이미 수도 없이 많은 백도 무림인과 양민들을 죽여 댄 자였다.
당연한 처사였다.
죽이지 않은 것은 그에게서 얻어내야 할 정보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버지께 불리한 이야기도 있었다.
“정말 무림맹으로 데려가실 생각이세요? 어차피 지금 무림맹은 제구실도 못 할 텐데······ 굳이 그렇게 수고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무림맹에는 지부가 많다. 네가 걱정할 정도는 아니니라.”
“······.”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인데 돌려 말할 필요없겠지.’
“천귀조가 야율 이야기를 하면 어떡해요?”
아버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담담하게 말했다.
“하겠지.”
“어떻게······ 괜찮은 거예요?”
흡성마공은 그 이름만으로도 무림인들이 경기를 일으키는 무공이었다. 야율이 흡성마공을 익히고, 이를 아버지가 숨겨 줬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같은 죄인 취급을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변함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천귀조는
이번 습격의 중요 증인이다.
붙잡지 못했다면 모를까, 내 사적인 일로 그를 처리할 수는 없느니라.”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정론은 정론이었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걸까?
그냥 지금여기서 죽이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오는 걸 겨우 억눌렀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처럼 백호단 단주로 지낼 수는 없겠지. 돌아가면 바로 단주자리도 내려놓을 생각이다.”
나는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아버지는 백호단에 상당히 애정을 가지고 계셨다. 답답한 가문을 벗어나 인정받던 곳이어서 그럴 거라 생각했다.
애정을 가졌기에 내가 주화입마에 빠진 후 그만 두려했고, 또 애정을 가졌기에 정말로 그만두지 못했다. 미련이 남았던 것이다. 그런데 야율의 일 때문에 결국 내려놓는 것이다.
허탈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그렇지,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셨지.’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래서 너를 불렀느니라.”
나는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아버지를보았다.
“야율이 너무 겁먹지 않게 잘 다독이거라.”
“······예?”
잠시 제대로 이해가되지 않았다.
뒤늦게 되물었다.
“겁이요? 야율이 겁을 먹는다고요?”
“아직 아이지 않느냐.”
“아······ 뭐······ 예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내 표정을 보았을 텐데도 아버지는 웃음기 한 점 없이 진지한 낯으로 말을 이었다.
“그 아이는 네 옆에 있고 싶어하지 않느냐?”
이건 또 정확했다. 아버지가 야율을 잘 안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고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흡성마공을 익힌 사실이 알려진다면 네 옆에 있기 힘들겠지.”
“······.”
“천산염제께서 계시니 당장 큰 문제가 생기진 않을 터다.”
하지만 천산염제는 곧······.
그러고보면 남궁세가로 떠난다고 한 뒤 연락이 없었다.
“게다가······.”
갑자기 아버지가 하던 말을 멈췄다.
꽤 긴 침묵이 이어진 후 아버지가 말했다.
“너도 좀 전에 막개에게 들었다시피 현재 백도 무림의 전력은 크게 약화했다. 백도 무림의 큰 전력이 될 수 있는 아이를 쉽게 내치진 않을테다.”
“······.”
“일단은 그렇게 주장해 볼 생각이다.”
나는 살짝, 아니 꽤 놀라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하셨다고?’
저 말뜻은 마교로 인해 궁지에 몰린 무림맹의 상황을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음모라고 할 정도도 못 되는 것이었지만······ 아버지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내겐 충격이었다.
“물론 이것만으로 야율이 안심할 수는 없겠지. 그래서 네게 부탁하는 것이니라.”
나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그에게 알려 주겠지만, 그래도 네가 괜찮을 거라고 말해 주는 게 제일 믿을 수 있겠지. 그 아이는 널 많이 좋아하니.”
대화가 약간 부끄러워지는 내용이었는데, 아버지의 목소리가 뒤로 갈수록 왠지 모르게 언짢은 듯이 들렸다.
잠시 침묵하더니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영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절 좋아한다는 게요?”
“널 아끼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니라.”
“네? 아, 그, 그렇군요. 그럼 뭐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그런 게 있느니라.”
나는 부끄러움에 속으로 몸부림치다가 말을 돌리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대체 차를 가져오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죠?”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고 할까, 아버지가 먼저 문을 돌아보셨고 그다음 나도 문 앞에 다가온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드디어 차를 가지고 왔나봐요.”
“들어오너라.”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온 자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네가 온 거야?”
“차 심부름을 시켰다고 하길래 내가 간다고 했어.”
제 말을 듣고 온 호랑이는 거지가 아니라 야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