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2)
22화
쓰게 웃은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렇다면 받아 두거라.”
영 찝찝한 느낌을 뒤로하며 단검을 꼭 쥔 내가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귀한 선물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히 여길게요.”
아이의 다소곳하고 예의 바른 인사에 남궁완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아버지가 진지한 얼굴로 당부했다.
“좋은 검이니 허투루 내보이지마라. 함부로 휘둘러서도 절대 안 될 것이야. 특히 연이 너는 ······.”
그렇게 아버지의 일장연설이 시작되었다.
듣다 못한 남궁완이 가슴을 두드리곤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러니 정말 조심하거라.”
“네!”
남궁완과는 정반대로 난 성실하고 좋은 학생의 태도로 연신 고개를 끄덕이다 힘차게 답했다.
“이제 끝났나?”
다리를 꼬고 몸을 비튼 채 탁자에 팔을 올리고 턱을 기댄 아주 불량한 자세로 창밖을 내다보던 남궁완이 물었다.
“자네도, 새겨듣게.”
“알겠네, 알겠어.”
“자세도 그게 무엇인가?”
질린 얼굴로 손을 내저은 남궁완이 나를 쭉 훑어봤다.
“됐고, 연이 몸을 내가 좀 살필 수 있겠나?”
“내공?”
남궁완이 고개를 까딱였다.
난 놀라서 남궁완을 보았다.
무림인들 사이에서 다른 사람의 내공을 살피겠다는 건 무척 무례한 말이었다.
상대의 경지를 파악하겠다는 뜻인데······ 성적표는 부모님한테도 보여주기 싫은 법이다.
그런데 생판 남이 보여 달라는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나?
‘거기다 위험하고.’
내공을 넣어 살피는 쪽, 받아들이는 쪽 둘 다 상당히 위험했다.
그런데도 남궁완이 나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내가 아버지를 보자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아버지, 남궁완은 곧바로 방 안의 널찍한 공간으로 향했다.
푹신한 양털 가죽에 비단 발과 두툼한 방석들이 늘어져 있는 이곳은 내가 보통 뒹굴며 노는 장소였다.
내가 운기조식을 할 때처럼 자세를 잡고 앉자 내 뒤에 남궁완이 앉았다.
호법은 아버지가 섰다.
등에 손을 올린 남궁완이 “시작하마.” 라는 말과 함께 내공을 넣기 시작했다.
처음엔 살짝 따끔한,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것이 내 몸을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금세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그렇게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때였다.
남궁완이 조심스레 내 등에서 손을 떼는 느낌이 들었다.
“어······ 벌써 끝났어요?”
“반 시진이 지났단다.”
“네에?”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한 시간이 지났다고?
놀란 내가 아버지를 돌아보려는 순간 눈앞에 어질어질하니 온몸을 짓누르는 듯한 피로감이 느껴졌다. 이어 마치 술을 진탕 마신 다음 날처럼 속이 메슥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날 아버지가 안아 들었다.
“연이를 눕히고 오겠네.”
남궁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딸을 데리고 나간 백리의강이 돌아온 것은 언두가 식은 찻주전자를 세 번째 데우러 갈 때였다.
“미안하네. 연이가 잠에 못 들고 계속 뒤척여서.”
남궁완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큰 상처를 입었던 몸이다. 익숙지않은 내공을 받아들였으니 몸이 놀란 것도 당연했다.
거기에 결과도 좋지 못했다. 내공 한 줌을 찾아볼 수 없고 단전은 산산이부서져 있었다.
정말 딱 목숨만 건진 상태였다.
백리연의 상태는 누구보다 백리의강이 잘 알 것이다.
착잡한 얼굴의 백리의강을 보며 남궁완이 느리게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딸이 생겼단 소문을 들었을 때 난 웃었네. 자네 명성을 시기한 멍청이가 악의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퍼트렸다고 말했지.”
그 소문을 가져온 부하를 머저리 취급하면서 헛소문에 휘둘릴거면 때려치우라고 빈정거렸다.
그리고 그 부하는 지금 상여금을 받고 승진했다······.
“그런데 하! 내 얼마나 기가 막혔는지 아는가?”
진짜로 딸이 있었고, 심지어 그 딸이 주화입마에 빠져 단전이 부서졌다는 소식.
그리고 혹시 단전의 회복 방법을 알거나, 도와줄 수 있겠냐는 서신을 받고 믿기지 않아 몇 번을 다시 확인했다. 정말로 백리의강에게 온 서신이 맞는지.
“어쩌다 이리 된 건가?”
심지어 백리의강은 딸을 매우 아끼고 있었다.
남궁완이 지금껏 본 백리의강의 미소보다 오늘 본 것이 더 많았다고 단언할 수 있었다.
백이릐강이 자신보다 온화한 성품인 걸 남궁완도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웃음이 헤픈 인간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딱딱하고 말이 안 통하는 벽창호에 가까웠다.
굳은 표정의 백리의강이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연이는······ 그러니까 연이를 돌보던 유모가 있었던 모양일세. 그 유모가 병에 걸려 죽기 전 내게 서신을 보냈네.”
“잠깐. 친모는?”
“······.”
백리의강의 낯을 본 남궁완이 침음성을 내며 말했다.
“계속 얘기해 보게.”
“······유모의 서신을 받았을 땐 일이 꼬여 유모의 예상보다 석달이 넘게 소요됐네. 내가 연이를 찾았을 땐······ 유모는 죽은지 오래로······ 연이는 이미 한 달을 넘게 길거리를 헤매고 다녔더군.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남궁완도 이 뒷이야기는 처음 알았다. 그 또한 동요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하늘이 도왔군.”
한 달이 넘게 길에서 어린아이가 살아남은 건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연이를 본 처음엔 미안하고 그 다음엔 당황스러웠지.”
백리의강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졌다.
“급하게 찾아오느라 무림맹의 임무도 처리하지 못했고. 일단은 일을 마친 후에 천천히······ 아니, 다 핑계일세.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아이를 두고 떠나면 안 됐어.”
“입적하여 가문에 맡기지 않았나. 나쁜 판단은 아니었어.”
“아니, 아닐세. 이건 내 실수야.”
“······사람이니 실수할 수도 있네.”
백리의강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백리의강을 바라보던 남궁완이 느리게 말했다.
“그럼 만약 그 실수를 돌이킬 방법이 있다면 어찌할 건가?”
즉시 백리의강의 시선이 남궁완을 향했다.
남궁완도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내게 자네 딸을 치료할 방법이 있네.”
“······.”
백리의강은 그대로 석상이 되어버린 듯했다. 굳었던 안색에 핏기가 돌며 지친 기색이 단숨에 날아갔다.
“정말인가!”
“그럼 내가 왜 왔다고 생각했나?”
차를 한 모금 넘기고 남궁완이 입을 열고 이야길 시작했다.
“여기서 말을 타고 한 달 정도 걸리는 팔괘촌이라는 아주 작은 마을이 있네. 지난해 그곳에 큰 산사태가 일어나 마을의 8할 이상이 쓸려 내려가고, 남은 자들도 크게 다치거나 반신불수가 되었지.”
단전 치료와는 전혀 연관 없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백리의강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의원이라곤 열흘을 걸어가야 하는 궁벽한 벽촌인데 심지어 또다시 산사태가 일어나 유일한 길마저 끊겨 버렸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거라 여겼네.”
“······ 안타까운 일이로군.”
“그리고 반년 뒤 벽촌에 친지가 있던 옆 고을의 사람이 혹시나 살아남은 자가 있을까 하고 길을 내어 찾아가 보았더니······ 반신불수였던 사람이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더군.”
남궁완이 긴말로 마른 입을 차로 축이고 말했다.
“만신의였다네.”
“······!”
백리의강이 눈을 부릅떴다.
“자네도 들어 봤겠지? 만신의가 내공 폐인이 된 자를 치료했던 일을.”
“당연히······!”
전설에 가까운 그 소문을 무림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당장 일어날 것처럼 주먹을 꽉 쥐었던 백리의강이 이내 힘을 풀었다.
백리의강은 전보다 더 고통스러운 낯이었다.
“하나 만신의는 이제 더는 무림인과 엮이지 않겠다고······.”
천지신명께 맹세하고 은거에 들어간 자였다.
그런 자가 맹세를 깨고 백리연을 치료해 줄 것인가?
그때 남궁완이 품속에서 붉은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에 자수 장식하나 없는 밋밋한 비단 주머니였다.
달칵.
탁자에 놓이는 소리를 보아 안에 들어 있는 것이 딱딱한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열어 보게.”
백리의강이 주머니를 받아 열자 글자가 새겨진 납작한 패 하나가 나왔다.
패에 달린 붉은색 술은 색이 바래 거의 연분홍색에 가까웠다.
적어도 10년 이상, 오래된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이건 각패지 않나?”
“맞네.”
각패란 보통 신분을 나타내는 호패, 신분증이었다. 남궁완이 백리 세가에 들어오기 전 내보였던 것이기도 했다.
“만신의의 각패일세.”
백리의강이 숨을 들이켰다.
무림인들이 각패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각패를 받은 자가 도움을 요청할 경우 각패의 주인은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도와준다는 의미다.
이건 그 사람의 신의와 명예가 달린 절대적인 약속이었다. 그리고 남궁완이 만신의의 각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남궁완은 만신의에게 어떠한 요구라도 할 수 있다는 말과 다름 없었다!
“이 각패라면 만신의도 자네 딸을 치료해 줄 수밖에 없을 거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