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3)
23화
흔들리는 눈으로 각패를 살피던 의강이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이 각패, 자네 것이 아니지?”
“역시 자네의 눈은 피할 수 없군. 맞네. 아버님의 것이지.”
남궁완의 아버지는 남궁 세가주 남궁무철로 천하십일강 중 한 명이었다.
“그렇다면······”
남궁완이 손을 들어 백리의강의 말을 막았다.
“걱정할 필요 없네. 이미 아버님껜 허락을 맡았으니.”
“······.”
“어차피 만신의가 모습을 감췄을 때 이 각패를 쓸 날은 없을거라 여겼네. 이번에 찾은 만신의가 또 몸을 감춘다면 언제 쓸 수 있겠는가?”
남궁완이 탁자를 향해 몸을 바짝 숙였다.
“의강, 이건 둘도 없는 기회일세. 내가 부하들에게 만신의를 지켜보라 하였으나, 만신의는 언제 다시 떠날지 몰라.”
“······.”
한숨을 내쉰 남궁완이 몸을 바로 앉았다.
“선택은 자네 몫이지. 강요하진 않겠네.”
주먹을 얼마나 꽉 쥐었는지 탁자 위에 놓인 백리의강의 손등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나도 자네에게 공으로 내줄 생각은 없어.”
백리의강이 무슨 뜻이냐는 눈으로 남궁완을 보았다.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네.”
“부탁?”
깊게 숨을 내쉰 남궁완이 저도 모르게 양 눈썹 끝을 꾹꾹 눌렀다.
“내 아들······ 류청에 관한 일이라네.”
“자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백리의강이 놀라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닐세. 오히려 아무 일도 없어 문제지.”
백리의강은 그 모습에 오히려 의문을 가지고 보았다.
그때였다.
“도련님, 도련님.”
문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백리의강이 얼굴을 굳히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이야기 중에 죄송합니다만, 그······ 마님께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백리의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분명 언두에게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언질을 줬다. 그런데도 언두가 보고한다는 건 찾아온 사람이 무척 끈질기게 굴었고, 억지를 피웠단 뜻이었다.
백리의강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밖에서 맞이할 테니 기다리라고 전하게.”
“뭘 그럴 것까지.”
어느새 거만한 얼굴로 돌아온 남궁완이 몸을 뒤로 젖힌 채 고개를 까딱였다.
“들어오라 해. 하하, 과연 무슨 말을 할지 매우 궁금하군.”
* * *
화사한 비단옷을 입은 아이들이 휘적휘적 걸어갔다.
이를 마주치는 자들 모두 재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 주변이 익숙한 듯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떠들기 바빴다.
“아, 진짜 지루해 죽는 줄 알았어. 할아버지는 왜 학당에 가라는 거야?”
“할아버진 다 우릴 생각해서 가라고 하신 거다.”
백리명의 말에 백리표가 소리쳤다.
“형도 가기 싫어했으면서!”
“뭐, 난 괜찮은 것 같던데.”
“뭐야 이 배신자. 명이 형! 이제 뭐 할 거야? 나 완전 몸 근질근질 한데, 대련하자!”
며칠 전부터 쌍둥이와 백리 세가의 제자들의 대련 시각과 횟수가 정해졌다.
처음엔 누구 마음대로 그러냐고 버럭버럭 소리쳤으나 백리의강의 뜻임을 알게 된 순간 바로 꼬리를 말았다.
그런 쌍둥이들을 향해 백리명이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리리한테 가 봐야 해서 안 돼.”
“또? 걔는 언제까지 그렇게 삐져 있을 거래?”
“그러니까. 형도 짜증 나겠다.
아니, 고작 그거 가지고 며칠을 난리 피우는 거야? 나 같으면 콱······!”
“표야.”
“쳇. 알았어.”
“동생이잖니. 아껴 주렴.”
자애로운 표정의 백리명이 백리표의 어깨를 다독였다.
소우악이 실실 웃으며 양손을 뒷머리에 깍지 끼고 중얼거렸다.
“하긴 리리는 걔에 비하면 귀엽지.”
“아 백리연 걔 요새 왜 이렇게 눈에 띄어? 진짜 짜증 나.”
“자기가 진짜 백리 세가 사람인 줄 아나 봐. 미쳤지. 무공조 못쓰는 폐품 주제에 어딜?”
“그러니까! 걔는 학당에 왜 나오는거야? 제정신인가? 같은 가문 사람 취급받기 싫다고!”
“표야. 악아.”
백리명이 경고하듯 쌍둥이들을 불렀다. 그러곤 주변을 살짝 눈짓했다.
뜨끔한 백리표가 입을 다물고 소우악이 약간 걱정된다는 듯 입을 열었다.
“형, 문지기들······.”
“괜찮아.”
문지기들 모두 할머니의 사람이었다.
백리명의 답에 소우악이 눈에 띄게 안심했다.
백리명은 그 모습에 한심한 속내를 삼켰다.
문지기들이 누구의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그런 짓을 벌였단 말인가?
잠시 생각하던 백리명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연이 뒤에 있던 그······ 죽립을 쓴 호위는 누군지 알아?”
호위 무사 한 명의 고자질로는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얼마든지 반론 가능할 정도로 행동했으니.
하지만 확인차 물었다.
“호위 아냐.”
“맞아, 아닐걸. 백리연 걔 학당올 때 하인 하나랑 삼촌이랑 왔어.”
“그래? 그럼 그냥 손님인가?”
“별 볼일 없는 사람 아냐?”
“맞아.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래.”
별 볼일 없는 손님이라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
백리명은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쌍둥이들을 보자 새삼 머리가 아팠다.
“앞으론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러면 안 돼.알았지?”
“걔가 내 눈에 안 띄면.”
“백리표.”
입을 삐죽인 백리표가 혼자 뛰어나가고 소우악이 소리쳤다.
“야 어디 가!”
한숨을 쉰 백리명이 고개를 내저었다.
백리명이 뒤편의 하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거 이리 주거라.”
쌍둥이들의 책보를 등에 멘 하인의 손에 나전 장식의 흑목 상자가 있었다. 백리연이 백리표에게 넘겼던 상자였다.
하인이 넘겨주려던 상자를 소우악이 가로챘다.
백리명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소우악을 바라봤다.
움찔한 소우악이 설명했다.
“아니, 이딴 쓰레길 뭐 하러 가져가? 차라리 내가 리리한테 조금 있다가 장난감 가지고 직접 갈게.”
“······그래. 알았다.”
내심 가져다 주고 싶지 않았던 백리명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야, 이거 가져다 버려.”
소우악이 뒤따르던 하인을 향해 상자를 던지는 걸 본 백리명이 몸을 돌렸다.
이화나무와 백모란이 만발한 정원을 지나친 백리명이 흰 담벼락의 동그란 문을 넘어갔다.
화려한 건물 앞 돌계단을 쓸고 있던 하인이 백리명을 보고 재빨리 고개 숙였다.
“어머니는요?”
“마님께 가셨습니다.’
“리리는요?”
“유모와 시동과 함께 계십니다.”
고개를 끄덕인 백리명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백리명이 도착한 방엔 중년의 부인과 두 명의 여아가 있었다.
부인 품에 안겨 있는 고운 옷의 여아는 구슬을 가지고 노느라 바빠 열린 문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중년의 부인만 공손히 인사하곤 여아를 향해 말했다.
“아기씨, 도련님 오셨어요.”
“리리야.”
백리명이 이름을 부르기 무섭게 백리리가 몸을 팩 돌렸다.
백리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리리야. 리야, 오라버니 방금 학당에서 돌아왔는데 얼굴도 안 보여 줄 거야?”
입을 삐죽이며 백리명을 잠시 본 백리리가 금세 고개를 돌렸다.
그 옆에 앉은 백리명이 다정히 말했다.
“리리야, 오라버니가 오늘 학당에서 누굴 봤게?”
“······.”
“홍이랑 영영이랑 아, 조아도 봤단다.”
백리리가 다시 슬그머니 백리명을 보았다.
“특히 조아가 널 못 봐서 아쉬워했어.”
백리리의 가장 친한 친구인 강조아 이야기를 하자 백리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러나 이내 볼을 불퉁거리며 중얼거렸다.
“그, 그래도 안 갈 거야.”
백리리는 몇 날 며칠을 떠나갈듯 울며 학당에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백리의묵은 그날 소리친 것이 미안했기에 백리리에게 강하게 나가질 못했고, 소란을 키울수도 없었다.
괜히 할아버지의 귀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백리리의 입장만 더 난처해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백리리를 계속 아프다는 핑계로 학당을 빠지게 둘 수도 없었다. 백리리가 학당에 나가지 않는다면 자연히 백리연이 득세하지 않겠는가!
백리명은 수업이 끝나고 친우들과 모임을 가졌다. 모두 명문가의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 중 몇은 벌써 소문만 무성하던 백리연에게 관심을 가졌다.
폐인이 된 백리연은 보잘것 없더라도, 작은아버지인 백리의강은 유명한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걸 가만히 두고 볼 순 없었다.
백리명이 그렇게 한참 리리를 달래고 있을 때였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중년의 부인이 돌아왔다.
“작은 도련님, 아기씨, 큰 마님께서 찾으십니다.”
“할머니께서요?”
“네.”
백리명이 백리리를 돌아보자 리리가 고개를 팩 돌렸다.
“난 안 갈 거야.”
“리리야.”
“싫어. 가면 또 거기 가라고 할 거잖아. 안 가!”
이미 한참을 달랬기에 피곤했던 백리명은 한숨을 내쉰 뒤 홀로 몸을 일으켰다.
“그래, 알았어. 조금 이따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