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74)
274화
야율이 말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조금도 몰랐나보네.”
“······.”
무림맹을 빠져나온 후에는 천라지망 안에서 쫓기느라 아버지와 차분히 얘기할 틈이 전혀 없었다.
어떻게든 얘기할 틈을 가지자면 가질 수 있었지만······.
내가 어머니에게 가지는 감정이 뭔지 알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체념에서 비롯한 무관심.
내게 어머니라는 존재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당연하게 없던 것이었다.
천마의 혈족이라는 것이 밝혀지고는 약간의 원망도 들었다.
‘왜 하필. 왜 하필······.’
나는 부정적으로 뻗어 나가려던 생각을 잘라 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원망해 봤자 소용없었다.
야율이 말을 이었다.
“물론 그거 가지고는 확신할 수 없었지. 그래서 직접 네 얘기를 물어봤어.”
야율은 재미있는 일이라도 겪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랬더니 날 그 자리에서 죽이려고 하던데.”
잠시 말을 잃었다.
좀 전에 그런 추문을 떠들던 자들이 모두 죽었다고 말했으면서 대체 무슨 배짱인 거야?
“날 죽이려 들려다가 내가 너와 관련 있다는 걸 알고는 내버려 두더라고.”
“······.”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 무슨 사정인지는 못 알아냈어.”
야율이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네가 왜 그걸 물어봐?”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야율이 말했다.
“네가 그렇게 말했잖아. 어머니가 널 버린 거라고.”
“뭐?”
나는 멍하니 되물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다고?”
야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이······ 그랬던 건 맞았다.
아마도 그건 전생의 영향일 터였다. 어떻게 버틸 수 있었겠는가? 매일 술 마시고 주정뱅이가 돼서 폭력을 일삼던 그런 인간······ 음?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는지 야율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방금 내가 뭘 떠올리고 있었지?
‘아, 그래. 어머니가 날 버렸다고 말한 이유를 떠올리려고 하고 있었지.’
왜 버렸다고 생각했을까?
‘어린 마음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했던 걸까?’
그러다 보니 저절로 야율과 말하다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리 말했다고 한들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라고?”
이 녀석의 목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야율이 눈을 깜빡이다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가 신경 쓸 테니까.”
“······.”
아마도 내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으리라.
그때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목소리가 객잔 한쪽에서 터져 나왔다.
“마교가 천마지보를 탈취해서 도망쳤다는데?”
“멍청하기는. 마교 놈들이 탈취해서 도망쳤으면 그놈들이 왜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겠나?”
우락부락한 체격에 허리와 등에 멘 검들. 강호인 증에서도 삼류 무사들로 보였다.
그들은 큰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들은 거랑은 다른데. 백리가의 금지옥엽이 사실은 천마의 혈육이라더군.”
“남궁 세가만 우습게 됐지. 원수의 핏줄을 그리 아꼈으니.”
“아 그거 나도 들었네! 왜 그렇게 펄펄 날뛰었나 했더니만 그것 때문이었나? 곧 천하 강자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거라던데.”
“역시 다시 남궁 세가가 중심을 잡는 건가. 백리 세가는?”
“그게 이상해. 반응이 없달까. 조용하다고 하더군.”
남궁 세가 이야기가 나온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멈추고 있던 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었다. 당연하기도 했다.
위지백은 그런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도 무림맹의 비호를 받았다.
이번에는 그 비호가 할아버지께 똑같이 펼쳐진 것이었다.
마교가 코앞까지 내려온 상황에서 내분이라니.
게다가 할아버지께서 계시는 한 감히 누가 백리 세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는가?
할아버지가 있으니 백리 세가는 굳건할 터. 걱정할 필요 없었다.
누군가 코웃음을 치며 사내들의 탁자에 앉았다.
“자네 그 말을 믿나? 마교라니. 하, 위지백 그 자식이 퍼트린 헛소문에 또 넘어가?”
“그 자리에 위지백을 욕하러 온 여인들이 다 합쳐서 여든 명 정도라는데 모두 눈이 부실 정도였다더군!”
여든 명은 맞으나 그 자리에 모두 있던 건 아니었다.
소문은 애매한 진실이 섞여 과장되게 떠벌려졌다.
“하이고, 제가 뭐 황제라도 되는 줄 안 건가? 완전 인간 말종이었군.”
“본래도 여자를 밝히는 걸로 유명하지 않았나. 그걸로도 모자라. 에잉 퉤, 더러워 죽겠군.”
“왜 색마의 무공을 이었다지 않나? 정신머리가······.”
사람들은 아주 재미난 이야기라도 된다는 듯 떠들었다.
사람들은 추문을 좋아한다. 그것도 백도 무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맹주와 관련한 추문이라면 더더욱 즐거운 안줏거리였다.
저들의 대화를 모두 신용할 수는 없지만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는데는 도움이 되었다.
그때 점소이가 음식이 가득한 쟁반을 들고 다가왔다.
“조금 오래 걸렸지요? 오늘 거위 한 마리가 있어서요. 통째로 요리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이건 저희 여관만의 특제 양념이에요.”
야율이 음식을 내려놓는 점소이를 향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칼잡이들이 많이 보이던데, 무슨 일 있나?”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점소이가 의아하게 우리를 바라보았다.
“강호인들 아니셨어요? 당연히 무림맹에 지원하러 오신 줄 알았는데.”
“지원?”
“예. 지금 무림맹에서 용병을 모집 중이잖아요. 무공을 쓸 수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다 지원 가능할걸요. 지금 객잔에 있는 분들도 다 대부분 무한으로 가는 강호인들이에요.”
점소이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정마 대전이 벌어질지도 모른대요.”
점소이는 별로 놀라지 않는 우리를 바라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 뒤로 음식에 대해 몇 가지를 설명한 점소이가 물러갔다.
탁자 위의 음식은 다른 탁자의 손님들이 흘끗거릴 정도로 군침이 도는 냄새를 풍겼다. 하지만 별로 입맛이 돌지 않았다.
분명 비상식량만 먹으며 도망 다니고, 며칠 동안 정신까지 잃고 있었으니 배가 고파야 마땅한데 기이할 정도로 몸 상태는 좋았다. 정신을 잃기 전보다 활력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야율이 내 앞에 음식을 덜어주며 물었다.
“왜 그렇게 바라봤어?”
“뭘?”
“점소이한테 물어보는데 신기하다는 듯이 봤잖아.”
“······다른 사람하고도 이제 곧잘 얘기하길래.”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내가 기억하던 야율의 모습과는 달랐다.
야율이 나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네가 궁금해할 것 같아서, 아니야?”
하지만······ 이렇게 나를 맹목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 모든 행동이 나를 위해서였다는 거야?”
“응.”
나는 다시 전음으로 말했다.
「고모한테 흡성마공을 쓴 것도 나를 위해서였다?」
야율이 입꼬리를 끌어올려웃었다.
“널 괴롭혔잖아.”
당연히 죽어도 싸다는 낯이었다.
“본래도 적당한 때 죽이려고 했는데, 눈치는 빨라서 먼저 알아채고 몸을 숨겨버려서······.”
“······.”
나야 고모에 대한 정이 한 톨도 남아 있지 않지만, 자식의 끔찍한 마지막을 보았을 할아버지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야율이 가장 처음 죽인 위구중 또한 나와 충돌이 있었지······’
야율이 내 눈치를 보며 전음했다.
「······그리고 나 흡성마공으론 마교 놈들 진기만 흡수했어.」
「무슨 소리야?」
「천귀조처럼 애들 것 뺏는 짓은 안 했어. 그럼 네가 싫어할 테니까.」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천귀조가 야율에게 흡성마공을 가르쳐 후일 야율의 진기를 갈취할 계획을 세웠었다. 마교였다면 흡성마공을 원류로 파생된 마공이 산재했을 테니, 먹잇감은 많았으리라.
「그럼 남궁류청한테는 왜 그런 거야?」
남궁류청은 비무장에서 내게 다가올 수 없었다. 정확히는 다가오려고 했지만 올 수 없었다. 연막이 터진 후, 그를 집요하게 노리던 놈들이 있엇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그런 거잖아. 남궁류청을 공격한 사람들 네가 시킨 거지?」
“아, 봤어?”
야율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반응했다.
“바빴을 텐데 그런 것까지 신경쓰고.”
야율이 잠시 시선을 내렸다.
“하기야 넌 예전부터 걔를 신경썼지.”
눈살을 찌푸린 내가 말하려 할 때, 야율이 먼저 말을 이었다.
“맞아. 내가 그놈을 비무장에 붙잡아놨어.”
“왜?”
“괜한 사고치면 안 되니까. 괜히 다치면 네가 슬퍼할 거 아니야?”
“그래서 붙잡아 놓은 거였다고?”
야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살짝 웃으며 몸을 기울였다.
“그런데 내가 막지 않았더라도 걔가 너를 따라올 수 있었을까?”
“······.”
“나는 걔한테 변명의 기회를 준 것뿐이야.”
“······”
아무리 다르게 생각해 보려고 해도 솔직히 한 가지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물어볼까, 말까?’
짧은 사이 수십 번을 고민했다.
모른 척 넘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언제까지 모른 척할 수 있을까? 그리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 않나?
“네가 한 모든 행동이 나를 위해서라고.”
야율이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이해했냐는 표정이었다.
나는 이어서 물었다.
“날 좋아하기라도 한다는 거야?”
야율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나를 보았다. 그리고 되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날 지켜 준다고 했잖아.”
“······.”
“네 옆에 있어도 된다고 했잖아.”
야율이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이제는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