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73)
273화
* * *
턱!
묵직한 소리가 상념을 깨트렸다.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사람은 장철이었다.
장철이 말했다.
“무림맹 후발대가 오고 있어. 2각 (30분)정도 걸릴 듯한데.”
서하령이 투덜거리듯 말했다.
“느림보들. 잡을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맹의 본 전력은 마교가 펼친 천라지망에 묶여 있잖아. 므려 터진 건 어쩔 수 없지.”
“우리도 빨리 그쪽으로 가 봐야 하는데.”
“가서 뭐 해? 이미 우리 요주의 인물인 거 알지?”
“그래서 흥, 무섭냐? 집안에 피해갈까 봐? 그럼 가. 너한테 도와 달라고 한 적 없어.”
“그건 아니고······.”
말을 흐리던 장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예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백리 소저는 몸 속에 혈고가 있는 사람을 알아낼 수 있다 하지 않았어?”
서하령이 눈을 치켜떴다.
“뭐야, 그래서 너는 지금 연이가 일부러 말 안 했다는 거야? 너도 연이가 지금 배신자라는 거냐고!”
서하령 허리춤의 빈 검집이 덜렁거렸다.
장철이 움찔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 누가 의심한대? 그냥 이번에는 이렇게 알아내지 못한 이유가 뭔가 있지 않겠냐고!”
“그걸 어떻게 알아내? 숙주가 죽으면 혈고도 죽어 버리는데, 숙주가 살아 있는 한 혈고를 꺼내는 방법도 없고······.”
남궁류청이 조용히 말했다.
“달라.”
“응?”
“이번 혈고는 다르다고.”
“어떻게?”
“진기가 달라.”
서하령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아니 진기가 어떤 방식으로 다른 거냐고!”
남궁류청이 눈썹을 치켜들고 말했다.
“혈고가 활동하는 순간, 그냥 전과 다른데 모르겠어?”
“······천재 놈들이란.”
서하령이 입을 열려는 순간.
남궁류청이 손을 들어 조용히 하도록 했다.
다들 기척을 죽인 채 각기 모습을 감추었다. 얼마 뒤 열 명정도 되는 검을 찬 사람들이 조용히 접근했다.
“큰 소리가 났던 게 이쪽이었지?”
“하, 아직 무슨 일인지 살피지도 않았는데 입을 열면 어쩌자는 거야?”
“뭐 어때, 백리연과 백리의강 그놈은 다른 방향인데.”
“다행인 줄 알아. 우리 측 피해가 엄청나다더군.”
서하령과 장철이 눈을 부릅떴다. 마교도들이었다. 그들도 모르는 새 마교의 천라지망에 접근한 것이었다.
첩자 놈이 언제 여기까지 끌고 왔는지, 서하령은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장철은 검을 휘두르기에는 아직 뼈가 다 붙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전력은 그녀와 남궁류청뿐이었다. 느껴지기에 그리 고수로 보이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상대는 열 명이나 되는 인원. 저 자들이 천라지망의 일부라면 호각 한 번에 수십 명의 고수가 달려올 것이었다.
“그리고 안심하긴 일러. 언제 이쪽으로 올지 몰라. 결국, 둘을 찢어 내는 데 성공했다니.”
숨죽여 대화를 듣던 서하령이 그대로 멈췄다.
“차라리 죽이는 거라면 둘을 찢을 필요도 없이 진즉 성공했을 텐데, 왜 산 채로 잡으라는······”
그 순간이었다.
퍽!
퍼 퍼 퍽, 퍽!
섬광같은 빛이 순식간에 열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때려 눕혔다.
신음조차 내지 못한 채 대다수가 정신을 잃었다.
“그 얘기 다시 해 봐. 지금, 연이가 혼자 떨어졌다는 말인가?”
* * *
천산염제의 사당에서 남궁류청을 만나 거절했던 그날. 연못가를 아버지와 함께 걸었다.
그때, 어머니에 대해 여쭤볼 기회라고 느껴 질문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처음으로 내 어머니에 관해 이야기하셨다.
“억지로 잇는다고 인연이 아닌 것을 이을 수는 없더구나.”
연못에 뜬 달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표정은 체념 어린 씁쓸한 낯. 무언가 더 말씀해 주시지 않을까 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분명 기회라고 느꼈는데.’
아니, 기회였기에 저 정도라도 들을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저것 또한 나와 남궁류청의 인연에 관해 넌지시 뜻을 드러낸 것에 가까웠다.
그 뒤로는 아버지께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절대 말씀해 주시지 않을 거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모든 걸 이해했다.
아버지가 결코 입을 열지 않으셨던 이유를.
천천히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을 잃기 전 온몸을 두들기는 것 같던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쏴아아아아 -.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세상 모든 소리를 묻을 듯이 쏟아지는 장대비 소리였다.
그 다음에는 나를 내려다보는 눈동자를 마주했다.
살짝 치켜 올라간 눈매 아래 선명한 점이 보이고, 어깨의 맨살에 서늘한 바람이 느껴졌다.
“······!”
수없이 수련한 대로 저절로 금나수가 뻗어져 나갔다.
탁!
야율은 목덜미를 틀어 잡히고도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았다. 호신진기를 끌어올리는 모습조차 없었다.
완전히 무방비한 모습에 나는 한쪽 눈을 찡그리고 진정했다.
옷자락이 한 쪽만 벗겨져 있다는 걸 가장 먼저 깨달았다. 그러니까 태고 진인의 검에 베여 상처를 입었던 곳이었다.
목덜미를 부여잡은 팔에서도 붕대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아마도 붕대를 풀고 있던 모양이었다.
나는 야율의 목을 쥐었던 손을 내려놓았다.
“미안.”
야율이 입꼬리를 올렸다.
“괜찮아.”
나는 팔을 내리며 상처를 살폈다.
“거의 다 나았어.”
“······.”
꽤 깊었는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치유력이었다.
“오늘까지 못 일어나면 다른 데로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여기가······ 어디야?”
꽤 널찍한 동굴로, 수풀로 가려진 바깥에서는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기억 안 나? 여기 오고 나서 쓰러졌는데.”
나는 옷자락을 정돈하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며칠이나 지났어?”
“정신 잃고 지금 나흘 째 아침이야.”
혼란 속에서 무림맹을 빠져나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막아서는 이들도 있긴 했지만 그만큼 우리를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다.
-무림맹 총사들의 비밀 통로예요. 본단 밖의 남동쪽에 있는 마른 우물로 나가게 되죠.-
-네 아비에게 알려진다면 너 또한 크게 질책을 받을 텐데.-
-소저가 절 도왔으니 저도 소저를 돕는 것뿐이죠.-
공손월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빠져나갈 수 있게 비밀 통로를 마련해 주었다.
-야, 너 옷 좀 벗어 봐.-
-도련님?-
-너도 벗어. 그리고 다들 여기서 본 건 잊도록.-
악중해 오라버니는 부하들의 옷을 넘겨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우리가 간 방향을 반대로 알려 주었다.
우연히 만난 서하령은 내 검이 부러진 것을 알고 자신의 검을 던져 주었다.
그 바보가 검만 던져 줘서 지금 검집이 없었다. 다행히 내 검집에 서하령의 검이 들어가긴 했지만 맞물리지 않고 헐렁거렸다.
나는 검집을 내려다보다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이 나오는 짧은 순간까지 긴장에 심장이 조여드는 듯했다.
“일단 대협이 잡혔다는 이야기는 없었어.”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무림맹을 빠져나가는 것보다는 마교의 병력이 문제였다.
그들은 마치 우리가 무림맹을 빠져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아버지를 향해 천라지망을 펼쳤다.
야율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천라지망을 빠져나오긴 불가능했을 것이다.
덕분에 야율이 비무대를 날려 버렸던 절기의 온전한 힘을 볼 수 있었다.
간신히 천라지망을 빠져나오고 한참을 도망친 기억이 끝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아래 잔뜩 깔려 있던 나뭇잎들이 옷자락에 붙었다 떨어졌다.
야율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야율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일단 장소를 옮기자.”
무엇보다 혹시 모를 추적자와 멀어지는 것이 먼저였다.
* * *
오전 나절을 달려 한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은 여관 두세 개 정도가 있는 마을이었다.
나와 야율은 역용을 한 채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은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에 검을 찬 사람들도 상당했다.
여관에 들어가자 점소이가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객실이 모두 다 찼어요.”
“방이 하나도 없다고?”
“예. 죄송합니다.”
“······그럼 그냥 식사만은 가능한가?”
“물론이죠.”
“몸보신에 좋은 음식으로.”
뒤따라오는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야율이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야율에게서 은 조각을 받은 점소이가 환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뒤따라온 야율이 맞은편에 앉았다.
“대체 너······ 무슨 생각인 거야?”
“네 친모를 실제로 뵌 적 있어.”
나는 눈을 부릅떴다.
“너랑 눈매가 닮았어.”
탁자 아래, 다리 위에 놓여 있던 손으로 옷자락을 꽉 쥐었다.
그때 꿈속에서 익숙하다고 느꼈던 눈매.
나 또한 그걸로 나를 감옥에서 구해 주었던 정체불명의 여인이 내 친모인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남궁완 아저씨께 죽임을 당했던 마교 3공자의 기묘했던 태도. 그도 나를 본 순간 내 어머니에 대해 눈치 챈 것이다.
나는 전음으로 말했다.
「눈이 닮아서 안 거야?」
「응. 눈이 닮아서 알았어. 근데 소문도 있었어.」
「무슨 소문?」
「바깥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
「······.」
나는 왈칵 인상을 찡그렸다.
「네 어머님께서 임무를 나갔는데······ 임무 기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은 적이 있었대.」
그 일로 살짝 소란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에는 돌아왔는데, 그 뒤로 정혼자와 파혼하게 되었다고 하더군. 그 일로 불결한 소문이 돌았다고 하더라고. 그런 말을 떠들던 자들은 모두 다 처형당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