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나는 바로 벌떡 일어났다. 그제야 내가 남궁류청의 무릎을 베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고 안정적이라 생각했던 것이 남궁류청의 허벅지였다니!
분명 적당히 잎이 달린 나뭇가지들을 꺾어 마련한 자리에서 자고 있었는데!
“이게, 무, 무슨, 무슨 짓이야?”
버럭 화를 내고 싶었는데 목소리가 무슨 염소처럼 떨려 나와서 전혀 화를 내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남궁류청이 왜 그러냐는 듯 말했다.
“네가 먼저 손을 뻗었잖아.”
“······.”
아니, 아니.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억울해 팔짝 뛸 지경이었다. 이건 봉변이었다!
“내가 손을 뻗긴 했는데, 그런 의미가 아니었어! 네 무릎 베고 있는 줄도 몰랐다고! 알았으면 내가 손을 뻗었겠어? 대체 언제······!”
이어진 남궁류청의 말에 나는 화를 내려던 것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냥 네가 편했으면 좋겠어서.”
“뭐?”
“불편해 보여서. 너 자는 내내 끙끙거리길래, 조금이나마.”
“······.”
“게다가 눈떠서 고맙다고 하고 다시 잤었어. 그래서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
나는 말을 잃고 잠자리와 남궁류청의 길게 뻗은 다리를 보았다.
끙끙거렸다니.
내가 원래 꿈을 많이 꾸는 편이긴 했다. 아버지도 내가 꿈꾸는 소리에 가끔 일어나 나를 깨우러 오실 때도 있을 정도였다.
그래서 무심결에 아버지가 내 잠자리를 봐주러 온 것이라 여겨 고맙다고 한 게 아닐까······.
남궁류청이 손을 뻗어 내 엉킨 머리를 빗어 내렸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에 나는 움찔 떨었으나, 물러나지 못했다.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심장이 아플 정도로 벌렁벌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해야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돌리는 정도였다. 그러면 마치 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처럼.
고개를 돌린 내 시야에 나를 덮고 있던 옷자락이 보였다. 남궁류청의 장포였다.
더운 날씨 탓에 소매가 없는 형식의 얇은 장포였는데, 살짝 들추자 쌉쌀한 향이 났다. 남궁류청에게 안겼을 때 맡았던 향이었다.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나 얼마나 잔 거야?”
“안개 때문에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지만, 느낌상 두 시진은 안 됐을 거야.”
“뭐? 그렇게나 오래 잤다고?”
몸이 개운한 이유가 있었다.
“깨우지 그랬어? 이제 내가 불침번 설 테니 너도 자.”
남궁류청에게 장포를 돌려주는데, 갑자기 옷자락에서 무언가가 툭 떨어졌다.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비단 주머니였다.
별 생각없이 주운 후, 흙을 탁탁 털며 확인해보니 향낭이었다.
‘밀림에 향낭까지 챙기고 다니다니. 도련님 아니랄까 봐.’
남궁류청에게서 느껴지던 쌉싸름한 향이 여기서 나는 것이었던 모양이었다.
무심히 건네주려 손을 뻗던 나는 남궁류청이 받기 전에 다시 확 가져왔다.
“뭐야 이거?”
자수가 무척 익숙했다.
서툰 기색이 역력한 분홍색 모란 자수.
“이거 내가 남궁완 아저씨한테 드린 건데 왜 네가 가지고 있어?”
“······.”
인상을 팍 찌푸린 남궁류청이 향낭을 뺏어 가려는 듯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당황한 것도 아니고 정신 멀쩡한 내가 이런 걸 쉽게 뺏길 리 없었다.
나는 남궁류청이 뺏어 가지 못하게 막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어······ 그러니까 아버지 선물이라고 만들다가 남궁완 아저씨가 본인 것도 하나 만들어서 달라고 반협박을 했고, 백련정강으로 된 비수까지 받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수를 놓아야 했다.
아버지한테는 정성이 중요하니 못난 자수여도 상관없지만, 아저씨한테도 엉망인 걸 드리긴 좀 그렇고, 당시 또 손도 다쳤고······ 너무 하기 싫기도 해서······.
“게다가 이거 사실 거의 네가 만든 거잖아.”
“그래. 내가 만든 거 내가 가지겠다는데 무슨 문제라도?”
새침한 대답에 눈을 가늘게 뜨고 남궁류청을 바라보았다.
남궁류청의 귀가 붉었다.
주홍빛 불빛이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었다. 목덜미도 살짝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이를 꽉 깨물고 웃음이 터지려는걸 참았다.
‘하, 정말 왜 이러지?’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왜 더 괴롭히고 싶은 비뚤어진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나는 모르는 척 말했다.
“그럼 나 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네가 만들었으니까 가지고 싶어서. 나 줘. 넌 또 만들면 되잖아.”
“······.”
남궁류청이 뭐라고 대답 못 하고 입을 꾹 닫았다.
나는 조금 시간을 두고 답을 기다리다 채근했다.
“응? 나 줘. 설마 내가 달라는데 안 줄거야?”
“······.”
침묵하던 남궁류청이 말했다.
“그건 좀 오래돼서 낡았으니까, 새 걸로 하나 만들어 줄게. 그건 돌려줘.”
“난 이게 가지고 싶은데.”
“······.”
나는 입안의 살을 꽉 깨물었다.
하, 내가 생각해도 나 너무 얄미운 것 같았다.
“······.”
“······.”
“그래, 가져.”
침묵 끝에 나온 답이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
남궁류청이 잔뜩 성질난 눈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향낭을 돌려주자 노려보던 남궁류청이 조금 다급한 손놀림으로 가져갔다. 그래 놓고 말했다.
“가지고 싶으면 가져.”
“아하하하하!”
안개 속에 높다란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간신히 웃음을 참고 눈가를 닦아 냈다.
“아니야, 정말 가지고 싶던 건 아니었어. 장난이었어. 미안해. 그냥······ 그냥 네가······.”
내 부탁을 어디까지 들어주는지 궁금했을 뿐이야. 내뱉지 않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그래. 그런 것 같았어.”
남궁류청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짜증 3할 안도감 7할 정도로 느껴지는 한숨이었다.
나는 방글방글 웃으며 말했다.
“너 날 정말 좋아하는구나?”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그도 그러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 말했다.
“다음에 하나 만들어 주는 건 약속한 거야?”
“하아.”
남궁류청이 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알았다고 답했다.
“아하하하!”
이렇게 크게 웃은 지가 언젠지.
왠지 모르게 가슴이 탁 트이며 청량감이 가득했다.
나는 다리를 끌어모아 안았다.
“이제 너도 좀 자. 내가 불침번 설게.”
“됐어. 안 졸려.”
그럴 리가 없었다. 나를 쫓아야 했으니 내가 못 잔 만큼 남궁류청도 못 잤으리라.
하지만 왜 잠을 안 자겠다고 말하는지 알았다. 제가 잠든 사이에 내가 혼자 떠날까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
작게 피운 불빛이 어른거렸다.
편안한 침묵이 흐르고,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류청.”
날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아니, 남궁류청은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직은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내가 널 좋아하는 건지 외로운 건지, 그냥 의지하고 싶은 건지, 도망가고 싶은 건지······.”
나는 회귀한 후 남궁류청을 사랑하지 않으려고 10년 넘게 노력했다. 그게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성공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모든 게 다 끝나면 그때 말할게.”
“결국, 가야겠다는 뜻이야?”
나는 살짝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너한테 말해 줄 게 있어.”
나는 턱을 괸채 짙은 안개로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이곳은 천기도 들여다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기 위한 안개였으니까. 천마대총 주변을 둘러싼 안개거늘, 그저 짙기만 하고 아무 능력도 없는 이유였다.
“사실 나는 회귀했어.”
남궁류청의 숨소리가 미약하게 달라졌다.
“분명 죽었는데, 눈을 떠보니 과거로 돌아와 있더라고.”
그가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시간을 두었다.
이내 남궁류청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야율이 네 목을 쳤다는 얘기가······ 네가 정말 겪은 일인 거야?”
회귀가 가능하냐, 진짜냐 거짓이냐 어떻게 되돌아왔냐, 그런 게 아니라 이것부터 물어볼 줄이야.
“맞아.”
“그 개자식을 살려둬선 안 됐는데······!!”
“믿어 주는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해? 왜 그딴 놈을 곁에 둔 거야? 넌 정말 무슨 생각이야! 대협도 알고 계셨어?!”
“아니 아버지는 모르셔.”
분노를 토해내는 남궁류청은 야율이 눈앞에 있었더라면 생사결이라도 신청했을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너한테 처음 말한 거야. 먼저 알아낸 사람 빼고는.”
“뭐? 그 개자식은 어떻게 알아낸 거지?”
남궁류청이 눈빛에 질투가 넘실거렸다.
질투할 게 없어서 이런 걸 질투하나 싶었지만, 그 눈빛에 왜 기분이 좋아지는지 알 수 없었다.
왠지 남궁류청의 뺨을 만지고 싶어졌다.
손끝을 움찔거리던 나는 손을 뻗는 대신 남궁류청이 분명 좋아할 말을 했다.
“나는 만약 말하게 된다면 아버지한테 가장 먼저 말할 줄 알았어.”
“그래?”
남궁류청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숨기려고 한 듯 싶지만, 남궁류청을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이 정도는 빤했다.
좋아할 줄 알았으면서도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게 좋아?”
남궁류청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너한텐 아버지가 1순위잖아. 내가 이겼다는 건 내가 1순위란 뜻 아냐? 나는 성인이 된 후로 한 번도 져 본 적 없어.”
나는 코웃음을 쳤다.
“뭐래, 비무 대회 우승자는 나거든?”
“너한텐 져도 돼. 네가 내 1순위니까.”
“······”
순간 말을 잃었다.
“왜?”
“······와, 바람둥이.”
“내가?”
남궁류청이 눈썹을 치켜들었다.
나와 남궁류청은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어릴적 기억 등 별 가치 없는 시시한 이야기들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의 안온함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걸 알았다.
점차 아나개 속에 빛이 들어왔다.
날이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