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 * *
나는 흐리게 웃었다.
‘아침 해가 뜨는 게 이렇게 아쉬운 날이 올 줄이야.’
정말로······ 정말로 많이 아쉬웠다. 꺼진 모닥불에서 희미하게 남은 불씨만 깜빡이고 있었다.
“갈까?”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남궁류청이 갑자기 내 손을 부여잡았다.
내려다보자 남궁류청이 속삭이듯 말했다.
“정말로 꼭 가야겠어?”
“······류청.”
한숨처럼 내뱉은 그의 이름에는 왜 그러냐는 타박이 담겨 있었다.
애써 밤을 새우며 밝은 얘기만 한 것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나와 남궁류청은 일부러 천마대총과 야율에 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기분 좋은, 행복한 이야기만을 말했는데······.
살짝 화도 났다. 지금까지 애써 정리한 마음을 흐트러트리는 것만 같아서.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미 말했잖아. 도망쳐도 소용없다고.”
“······”
숙인 고개에서는 아무 답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아니면 잠시나마 행복했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
말을 이어 나가던 그때 손등에 툭, 뜨거운 무언가가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대로 숨을 멈췄다.
곧이어 떨어진 것이 손등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려갔다.
“이해하려고 했어. 참아 보려고 했어. 괜찮은 척하려고 했어.”
“······.”
“그런데 못 하겠어.”
“······.”
“너무 화가 나. 이 모든 상황이 너무나······.”
“······.”
나는 피가 비칠 듯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괜찮을 리가 없었다. 나도 괜찮지가 않은데.
우리는 서로 괜찮은 척했을 뿐이다. 남궁류청은 듣고도 모른 척하고. 나 또한 뒤를 돌아보지 않으며.
나는 고개를 치켜들며 눈물이 고인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았다.
두고 떠나온 야율이 어른거렸다.
한번 둑이 터진 생각은 물결처럼 흘러갔다.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남궁류청처럼 울고 있었을까? 버려진 강아지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을까?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기에 알 수 없었다.
그가 나를 궁지에 몰았더라도 내게 해 준 것들이 다 거짓은 아니었을 텐데.
하지만 잘잘못을 하나하나 무게를 재며 저울처럼 계량할 수는 없었다.
“그래.”
그냥 갑자기 이리 말하고 싶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남궁류청을 보면서 말했다.
“지금이라도 같이 도망갈까?”
남궁류청이 고개를 확 들었다. 칠흑 같은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물기를 머금은 투명하리만큼 맑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나는 남궁류청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몸을 숙였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눈물 젖은 뺨을 감쌌다.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 말이 없었다.
“······.”
“······.”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던 남궁류청이 몸을 일으켰다.
“아니. 가자.”
* * *
나와 남궁류청의 앞에는 기이한 지형이 펼쳐져 있었다.
거인이 검으로 땅을 베어 냈다면 이렇지 않을까? 무저갱 같은 협곡 안에는 짙은 안개가 가득 차 바닥을 확인할 수 없었다.
사실 조금만 멈추는 게 늦었더라면 저 협곡에 굴러떨어지는 것은 나와 남궁류청이 되었으리라.
나는 돌을 하나 집어 협곡 아래로 던졌다.
쐐애에엑!
한참을 기다리고 기다려도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깊은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쩌지?”
“뭐가?”
말끔한 낯의 남궁류청은 좀 전의 비참한 눈물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 아래야?”
“응.”
“그럼 내려가면 되지.”
“하지만······.”
나는 걱정스럽게 남궁류청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남궁류청이 눈썹을 치켜뜨고, 조소를 머금더니 그대로 협곡 아래로 뛰어내렸다.
“야!”
협곡 안을 가득 채운 웅웅거리는 듯한 소리가 내 외침을 그대로 먹어 치웠다.
아오, 저 성질머리!
나도 뒤따라 황급히 뛰어내렸다.
내장이 진탕하는 듯한 끔찍한 고양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 찢어질듯이 펄럭이는 옷자락들과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마치 귀신의 비명처럼 들렸다.
아니, 정말 이렇게 높은 곳에서 제대로 된 대비도 없이 걱정하는 눈빛에 화나서 몸을 던져버릴 일인가? 어?
한참을 투덜거린 것 같은데도 나는 아직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끝없는 추락이 이어질 때,
콰아앙!
쿵!
우르르, 쿵, 쿠쿠쿵.
‘아주 부수네, 부숴.’
협곡에 거대한 소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남궁류청의 착지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바닥이 멀지 않았다. 본래라면 턱도 없었겠지만, 이제는 가능한 걸 알았다.
내 몸의 의지를 최대한 없애고, 정신을 집중했다. 상단전으로부터 알 수 없는 무형의 기운이 온몸을 관통했다. 온몸에 기이한 활력이 넘치며 스치는 바람 한 자락부터 모래 한 알까지 시간이 정지한 듯 느껴지는 것이, 마치 처음 천마지보를 흡수했을 때의 감각과 비슷했다.
생각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은 전능한 느낌.
‘이런 식이었구나······.’
천천히 허공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능공허도의 경지가 이런 것일까.
탁!
발을 딛는 순간 곧장 먼지가 피어올랐다. 짙은 안개에 볕 들기 어려운 협곡과 어울리지 않는 바짝 마른 바닥이었다.
습하고 땀이 나도록 덥던 위쪽과는 달리 이곳은 서늘하고 오히려 추울 정도였다.
집중을 풀자 부풀어 올랐던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뚝 끊어지듯 흘러들어오던 모든 정보가 차단됐다. 갑자기 줄어든 오감 탓에 감각기관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다소 급하게 외쳤다.
“류청!”
“여기 있어.”
남궁류청이 흙먼지가 뒤섞인 안개를 헤치고 나타났다.
엉망인 머리카락과 뒤집어쓴 흙먼지를 뺀다면 다친곳 없이 멀쩡한 모습이었다.
“괜찮아?”
남궁류청이 옷을 탁탁 털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너 말고 이 절벽 말이야. 네가 아주 박살 내던데.”
“어, 괜찮대.”
“······.”
이럴 수가. 내가 말문이 막히는 날이 오다니.
툭하면 말문이 막히던 어릴 적 남궁류청이 아니었다.
나는 아련하게 중얼거렸다.
“어릴 땐 귀여웠는데······.”
“흥.”
남궁류청의 코웃음을 시작으로 협곡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살짝 오르막인 길은 누군가 바닥을 다듬은 것처럼 평탄했다.
와작.
그리고 걸어가는 내내 뼈다귀들이 발에 밟히고 치이기 일쑤였다.
사방에 하얗게 빛바랜 뼈다귀들이 널려 있었다.
사람의 백골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동물의 뼈였다. 아마도 저 밀림에 사는 동물들이 짙은 안개에 협곡을 알아채지 못학 떨어져 죽은 것일 게다. 혹은 운 좋게 내려왔다가 올라가지 못해서 죽었든가.
그리고 사망한 지 얼마 안 된 시신도 발견할 수 있었다.
추락사한 모습의 시신을 살피던 남궁류청이 내게 뭔가 꺼내 던졌다.
“이거.”
마교도의 척후를 나타내는 패였다. 오는 길에 몇 번 마주친 적 있기에 아주 잘 알았다.
남궁류청이 말했다.
“죽은 지는······ 사흘 정도 된 것 같군.”
“그럼 이미 여기 위치는 알려졌다고 봐야겠네.”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이미 3000여 명이 넘는 마교도가 몰려 와 있었다. 그 수라면 아무리 이런 밀림이라도 찾아내지 못할 리 없는 것이다. 약간의 희생은 치르겠지만.
정말로 이해가 가질 않았다.
대체 천마의 목적은 뭘까?
마교도들이 제멋대로 날뛰게 두는 이유가 뭘까. 좌사가 멋대로 굴었다는 것은 그만큼 교주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걸 확신했기 때문일 터다. 이대로라면 마교도 큰 타격을 받을 터였다.
교주의 생각을 전혀 짐자할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해?”
남궁류청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냥······ 상황이 너무 이상해서.”
고개를 끄덕인 남궁류청이 말했다.
“거기다 안개가 좀 옅어진 것 같아.”
남궁류청의 말대로였다.
어느새 안개가 옅어져 있었다. 원래라면 전혀 보이지 않던 협곡의 양끝과 절벽이 조금씩 보였다.
걸어 올라갈 수록 협곡의 폭이 점차 넓어지다 갑자기 확 넓어진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중앙에는 본래의 형태를 알 수 없는 건물이 있었다. 오랜유적같은 그 건물은 사람 몸통망 한 덩굴로 뒤덮여 생명의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협곡 아래 유일하게 푸른 빛이었다.
천마대총.
제대로 찾아온 걸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열기도 힘들 정도로 거대한 석문이 이 유적같은 건물의 유일한 출입구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미 열려 있었다. 누군가 먼저 온 것이다.
또한, 열린 석문 앞에 피를 뒤집어 쓴 것만 같은 붉은 인형이 서 있었다.
믿기지 않는 인물의 모습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좌사?”
죽었다고 들었는데?
나는 남궁류청과 눈을 마주쳤다.
남궁류청도 심각한 낯이었다.
좌사의 사망은 남궁류청이 나와 합류하기 전, 직접 들은 보고로 내게도 소식을 알려 줬었다.
그래서 안도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그런데 좌사의 움직임이 조금 기이했다.
뭐랄까, 제 몸을 주체를 못 하는 모습이랄까.
마치 마공의 주화입마에 빠져 이지를 잃은 듯한 느낌이었다.
대검은 어디다 가져다 버렸는지 보이질 않았고, 탁한 흑색의 진기에서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졌다.
피가 다 터져 버린 듯, 흰자위 하나 없이 붉어진 눈동자가 우리를 응시했고.
저벅.
발을 내딛는 순간,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와 남궁류청이 재빨리 벗어난 자리가 콰앙-! 거대한 소음과 함께 부서졌다.
좌사가 후려친 바닥이 부서지며 사방으로 튀었다. 무공 수위만큼은 전과 다를 바 없었다.
남궁류청이 어느새 뽑아 든 검에는 상앗빛 검기가 넘실거렸다.
쿠릉-!
패도적인 기운이 그대로 좌사를 향하고, 좌사는 무슨 생각인지 별 다른 진기도 두르지 않고 팔을 휘둘렀다.
쩌어어엉-!
그대로 베어져 나갈 줄 알았던 팔이, 남궁류청의 검을 막았다.
또한 좌사가 막아 낸 탓에 알 수 있었다. 좌사는 오른 손이 없었다.
잘려나간 단면이 그대로 보였는데, 전혀 피가 흐르지 않았다.
좌사가 초점을 알 수 없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남궁······?”
그리고 내가 아닌 남궁류청을 향해 쏘아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