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구사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남궁류청이 얼굴을 쓸어내린 후 나를 돌아보았다.
“쓸데없는 소리를 듣게 했네. 미안.”
“······괜찮아.”
“구사는 당장 돌려보내든지 할게. 이런 무례를 저지를 줄은 몰랐어.”
“아니, 나 정말 괜찮아.”
남궁류청이 나를 잠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다 들었지?”
“음, 뭐······.”
“돌아가라고 할 거면······.”
“안 할 건데?”
“······정말?”
“속고만 살았나.”
남궁류청은 믿기지 않는다는표정을 지었다.
“제갈 세가주도 갔으니, 나도 가라고 할 줄 알았지.”
“너랑 화무가 어떻게 같아?”
“······.”
남궁류청이 붉어진 얼굴을 다시 한번 쓸어내렸다.
그 모습에 순간 번개같이 무언가 떠올랐다.
‘지금이야.’
지금이 그날 미루었던 고백에 답을 할 기회였다.
모든 게 끝나면 대답하겠다고 한 것을 남궁류청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마음도 정했다. 그러니까 말하기만 하면 됐다. 네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다. 앞으로도 있어 달라. 나도 좋아한다.
그동안 다시 그 주제를 꺼내기에 애매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지금이 기회였다.
“나······.”
나는 양손을 꽉 틀어쥐었다.
“나······ 아직 아파.”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온 소리는 멍청한 소리였다.
“아직 안 나았어. 그러니까 옆에······ 옆에 더 있어.”
나는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옷자락을 잡았다.
일단 내 멍청한 소리에 창피하고, 이런 말을 하는 상황에 낯간지러워 미칠 것 같았다.
‘대체 회귀 전의 나는 어떻게 고백한 거지?’
그때의 반의 반 만큼이라도 용기라도 있었다면 이따위로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때 남궁류청이 나를 후원의 널찍한 바위에 앉히고 말했다.
“당장 의원을 불러올게.”
“······.”
순간 잔뜩 긴장했던 몸에 힘이 빠졌다. 앉아 있지 않았다면 주저앉을 뻔했다.
나는 당장 떠나려는 남궁류청의 옷자락을 잡았다.
남궁류청이 걱정스럽게 나를 바라보았다.
“왜 그래?”
나는 이를 악물었다가 말했다.
“네가 옆에 있어 주면 안 돼?”
“뭐?”
“그럼 안 아플 것 같아.”
남궁류청이 내 손을 꼭 잡고 일어났다.
“의원, 빨리 불러올게.”
“······.”
나는 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그래. 가라 가!’
눈치도 빠르면서 왜 갑자기 여기서 바보가 된 거야?
나는 후원을 빠져나가는 남궁류청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로 벌렁 누웠다.
새파란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다가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그러자 남궁류청의 기척이 좀 더 자세히 느껴졌다.
후원에 들어서는 다른 기척들도 느껴졌다. 곧이어 남궁류청과 후원에 들어서던 기척이 서로 마주쳤다. 그리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음? 누구지?’
나는 상체를 일으켜 남궁류청의 방향을 보았다. 동시에 째지는 듯한 외침이 울려 퍼졌다.
“······네가 뭔데!”
백리리의 목소리였다.
매우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그러니까, 무림맹 본단에서 본 것을 마지막으로 백리리를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다. 백리명과 큰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딱히 찾지 않았다. 그들과 만나지 않는 게 심신이 평화로우니까.
“다 알고 왔어! 오늘 제갈 세가주 배웅도 나왔다고! 언니를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닌데, 뭐? 몸이 안 좋아?”
“목소리 낮추시지요. 그리고 거짓을 말한 적 없습니다.”
“내가 그딴 말에 또 속을 것 같아? 비켜!”
“여기가 그대 처소입니까? 철부지처럼 소란 피우지 말고 돌아가시죠. 사람을 불러와야······.”
짜악!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 또한 그대로 굳어있다가 바로 튀어 나갔다.
백리리의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
“여긴 우리 집이야! 네가 뭔데 언니를 만나라 마라······!”
수풀을 헤치고 도착한 내 앞에서 백리리가 다시 손을 휘두르려 했다가 남궁류청에게 손목이 붙잡혀 그대로 꺾였다.
“아아악!”
“아가씨! 남궁 공자! 지금 이게 무슨 무롑니까!”
백리리의 시비가 다급히 소리 질렀다.
나도 황급히 다가가며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남궁류청은 굳은 낯으로, 그리고 백리리는 마치 구원자라도 되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거 놔!”
기세 등등한 백리리의 외침에 남궁류청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가 밀쳐 내듯 손을 풀었다. 비틀거리는 백리리를 시비가 붙잡았다.
“언니!”
나는 내게 다가오는 백리리를 무시한 채 남궁류청에게로 걸어갔다.
“언니?”
당황한 백리리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그의 뺨을 살폈다. 붉은 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백리리,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지? 설명해.”
“언니! 언니도 봤잖아, 저 자식이 내 손을 꺾는 거!”
“그게 뭐?”
“뭐?”
“네가 먼저 뺨을 날리지만 않았어도 류청이 그럴 이유가 있었겠어?”
백리리가 헛숨을 들이켰다. 그리고는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나는······ 나는 저 자식이 계속 막아서 그동안 언니 얼굴도 볼 수 없었다고. 아프다고 안 된다고해서 믿었는데······.”
“그게 지금 네가 류청의 뺨을 때릴 이유가 된다는 거야?”
“그래! 왜 안 되는데?여긴 내 집이야! 저 녀석은 손님일 뿐이고! 쟤가 뭐라고! 저 자식은 남이고, 나는 언니랑 혈육이라고! 나는 계속 참았어. 몇 개월 동안!”
“그래서?”
“뭐?”
“따지고 싶으면 아버지한테 따져. 내가 정신 잃고 있는 사이에 내 신병에 대한 전권을 남궁류청에게 맡겨 놓은 건 아버지잖아.”
내가 정신을 잃은 동안, 아버지도 바닥까지 쓴 진기 덕에 몸 상태가 극히 좋지 않았다. 아버지 또한 회복에 전념해야 했기에, 그간 내 신병에 대한 전권을 남궁류청에게 맡겨 놓은 상태였다.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네 말대로 네가 내 혈육이지. 그런데 네가 얼마나 믿음직스럽지 못했으면 내 신병을 네가 아니라 남궁류청에게 맡겼겠니?”
“······.”
백리리가 충격과 서러움이 가득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왜 저 자식 편을 들어? 내 언니잖아!”
“그래. 네 언니지. 네가 나 아니었으면 남궁 세가의 유일한 후계자인 남궁류청의 뺨을 칠 생각을 감히 할 수나 있겠어?”
“······.”
나는 싸늘하게 말했다.
“사과해.”
언제 차올랐는지 백리리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낯으로 이를 악물더니 몸을 휙 돌려 뛰었다. 그 뒤를 시비가 황급히 뒤쫓았다.
“아가씨!”
발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돌아보지 않는 그들을 노려보다가 그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 뒤를 휙 돌아보았다.
남궁류청은 좀 바보같은 표정이었다.
“너는 왜 그걸 맞아 주고 있어!”
분명 그래, 맞아 ‘준’ 것이다. 남궁류청이 백리리의 손찌검을 피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백리리는 실력이 형편없었으니까.
남궁류청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쪽이 먼저 손대야 내가 손대기 쉬우니까.”
“그래서 일부러 맞았다고? 뺨 한대 맞고 치우려고 했다 이거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네가 깨어났는데도 못 만나게 막은 게 맞기도 하고. 지금 주변이······ 하여간 꽤 예민한 상황이기도 해서. 네 동생이기도 하니까.”
“류청, 나는 백리리보다 네가 더 중요해.”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며 양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속상했다. 내가 아니었으면 겪을 일도 아니었을 터.
‘백리리, 철부지인 건 알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정말 정신이 나가 버린 거야?’
남궁류청이 말했다.
“······울어?”
“울면 어쩔 건데!”
나는 손을 팍 내렸다. 눈물 따위는 없었다.
내 멀쩡한 모습에 살짝 안도한 듯한 남궁류청은 왠지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가 물었다.
“너······ 기분 좋아 보인다?”
“음? 아니라고는 할 수 없군.”
“······?”
뺨을 잘못 맞기라도 한 건가?
나는 진심으로 남궁류청의 정신이 걱정되었다.
“약 발라줄게. 가자.”
* * *
이튿날, 백리명이 찾아왔다.
“어제 리리의 일은 내가 대신 사죄하오.”
나는 방을 나가지 않고 삐뚜름히 기대어 앉은 채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얇은 나무 벽은 방음이라고는 전혀 되지 않았기에 대화를 선명히 엿들을 수 있었다.
“리리가 철이 아직 없어서 그렇고. 부디 아량을 발휘해 넓은 마음으로······.”
“철이 없으면 사람의 뺨을 때려도 된단 겁니까? 백리세가에서는 그리 가르칩니까?”
“······.”
“게다가 연이와 고작 한 살 차이인 걸로 압니다만, 대체 몇 살이 되어야 철이 든단 말입니까?”
나는 피식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남궁류청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보아하니 왜 철이 없는지를 알겠습니다. 공자 같은 오라비가 있으니 철들 필요가 없었겠지요. 사과는 받겠습니다. 선물은 필요 없으니 가져가십시오.”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고 남궁류청이 싸늘한 목소리로 축객령을 내렸다.
“더 하실 말씀이 남으셨습니까? 그런 게 아니라면 돌아가시지요.”
한참 머뭇거리던 백리명이 말을 꺼냈다.
“그······ 연이는 어떻습니까? 잘 지냅니까?”
“예.”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단답.
결국, 백리명이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사과의 말을 한 번 더 건네고는 처소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