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후우.”
나는 난동 피우는 사이 넘어진 의자를 바로 세우고 앉았다.
다리를 꼬고 또 주먹이 올라갈 것 같아 팔짱까지 낀 후 물었다.
“그래서 몸은 좀 어때?”
부스스한 머리로 엉망인 꼴의 제갈화무가 자신의 몸을 살짝 내려다보았다.
“지병이 치료된 건 아니지만······ 일단 시간을 벌었네.”
제갈화무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뒤구르기라도 하면서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실패할 줄 알았다는 건 진심이야.”
“······”
속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본인도 본인의 감정을 제대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역대 제갈 세가주의 기억들이 본래의 몸으로 돌아갔으니, 이제 다시 정기신의 균형이 깨질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또 절맥이 빠르게 악화하여서 죽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그 역대 가주들의 기억,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겠네?”
“그렇지.”
제갈화무의 목소리는 약간 몽롱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가 제갈 세가주들의 기억을 받는 걸 얼마나 혐오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의문이 들었다.
“왜 그 전에는 진작 술법을 해제할 생각을 안 한거야?”
“이 술법을 처음 받아들인 순간부터 나는 초대 제갈 세가주의 의지를 갖게 되지. 천마가 살아 있는 한 기억을 버린다는 선택은 없어.”
누가 천마랑 똑같은 술법을 쓴거 아니랄까 봐.
강호인을 죽인다는 목표로 움직이던 천마와 다를 바 하나 없는 모습에 기분이 나빴다.
“그럼 이제는 버려도 되겠네.”
“맞아. 천마가 죽었으니, 이제 끝이야.”
“처음부터······ 이것도 계획했던 건가?”
제갈화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거양득 아니겠어? 네게 도움도 되고 기회가 된다면 내 목숨도 연장하고.”
나는 제갈화무를 노려보았다.
제갈화무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실패하게 된다면 길동무가 될 생각이었으니까.”
“······쓸데없는 짓이었네.”
“그리고 성공하지 않았다면 유언이었을 테니까. 마지막만큼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어.”
“······”
제갈화무가 무거워진 분위기를 풀듯 말했다.
“그래도 좀 재미있지 않았어?”
나는 베개를 잡아 들었다.
“아직 덜 맞았지?”
“살려주세요.”
제갈화무가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너무 그렇게 질색할 필요는 없어. 완벽하게 네가 뭘 했는지 알고 있는 건 아니거든. 잠들어 있는 의식 속에서 희미하게 의지를 읽는 느낌이었을 뿐이야.”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
내 생각 하나하나까지 다 알 수 있었다면 정말 싫었을 것이다.
나는 이마를 문지르다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그럼······.”
“말해.”
“야율이 가져간 거지, 마기는?”
제갈화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건 야율이 감당할 수 있을 만한 기운이 아니었다. 필시 주화입마에 빠졌을 것이다.
“······바보 같기는.”
아니, 아니다. 시신을 확인한 건 아니지 않은가? 살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앞의 저 인간처럼.
그런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제갈화무가 말했다.
“야율의 흔적을 찾아봐 줘?”
“······부탁해.”
발치에 흰 물체가 쓱 문지르며 지나가더니 침상 위로 뛰어올랐다. 제갈화무가 침상 위로 올라온 결이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걸 가만히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왜 야율이랑 나만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렸던 걸까?”
“글쎄.”
“······그래.”
제갈화무도 모른다면 아마 아무도 대답해 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죽어버린 천마가 아니라면.
“나도 확실히 아는 건 아니야. 시간을 돌리는 건 천마 혼자 독자적으로 벌인 일이니까. 다만······.”
“다만?”
“아마도 너희 둘이 천마와 짙게 연결되어서가 아닐까?”
“뭐라고?”
“그러니까 너희들은 천마의 행동으로 태어난 거잖아? 천마가 너희의 운명을 만들었으니, 그래서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란 거지.”
“······.”
“확실한 건 없고, 추측일 뿐이지만.”
제가화무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니까 그 녀석도 마기에 쉽게 죽지는 않았을 거야.”
“······그래.”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야율은 죽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잠시 침묵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천마가 내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 말이야, 그럼 내 전생은 어떻게 된······.”
말을 이어 가던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제갈화무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되물었다.
“전생? 그 녀석한테 목을 베여 죽은 때를 말하는 거야?”
“아니, 그것말고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네가 제갈 세가주의 기억을 많이 떠올리진 않아서 잃어버린 기억은 적겠지만, 그래도 꽤 잊어버렸을 거야.”
“뭘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니, 기분 나쁜데.”
“필요해?”
나는 잠시 고민해보았다.
“아니. 이제 필요 없어.”
전생이고 회귀 전이고 이제 정말 모두 필요 없는 기억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살날 또한 길다는 것도.
제갈화무를 바라보던 나는 문득 이 말이 하고 싶어졌다.
“이제 자유네.”
“그러게.”
제갈화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제 뭐 하고 살지?”
“이제 뭐든 할 수 있지.”
“······.”
“······.”
침묵이 내려앉고, 얌전히 제갈화무의 쓰다듬을 받던 결이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그의 뺨을 핥았다. 언제 흘러내렸는지 모를 눈물이 여윈 뺨을 적시고 있었다.
* * *
열흘 후, 제갈화무가 제 가문으로 돌아가겠다고 알렸다.
나는 너무 이르지 않느냐며 몸이 회복할 때까지 더 머물러도 된다고 하였지만, 제갈화무는 거절했다.
“궁금한 게 좀 많아서 말이야. 앞으로의 일도 좀 생각해 봐야 하고.”
나는 이미 출발준비를 마친 주변을 살폈다. 호남성내에서는 백검단이 함께 호위하지만, 벗어나면 제갈화무의 호위대뿐이었다.
“아직 마교 잔당이 남아 있을 수 있는데, 정말 괜찮겠어?”
“하하, 걱정하는 거야?”
“겨우 살았는데 길에서 객사하면 내 꿈자리가 뒤숭숭할 거 아니냐.”
나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몸으로 진짜 괜찮겠어?”
“연아, 난 이보다 더 몸 상태가 나쁠 때도 돌아다녔어.”
그의 낯빛은 초췌했지만, 눈빛만큼은 예리하게 빛났다. 그를 늘 감싸던 음울한 분위기와 걸핏하면 나오던 조소는 이제 더는 없었다.
제갈화무가 웃음기 어린 낯으로 말했다.
“너도 아파 봐서 잘 알지 않아? 밤낮으로 누워 있는 것도 힘들어. 바깥에서 바람이라도 쐬는 게나아.”
“글쎄. 난 마차 멀미가 지독해서 더 죽을 것 같았는데.”
“아, 그랬던가?”
예전에 말한 적 있던 얘기였다.
어깨를 으쓱하고 제갈화무가 말했다.
“근처에 오면 얼굴이나 보러 와. 언제든지 환영할 테니.”
“······그래.”
과연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몇 년 뒤에나 볼 수도 있었다.
“결이는 두고 갈게. 나보다 널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
“······.”
마차 안에서 뛰어내린 결이가 내 발에 몸을 비비며 걸어 다녔다.
결이가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제갈화무가 나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모두 잊었을 거라고, 기억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이를 다시 표할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안녕.”
나는 마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홀가분하면서도 알 수 없이 허전한 기분을 느꼈다. 결이가 그런 나를 위로하듯 몸을 비볐다.
나는 결이를 안아 들었다.
역시 동물이 최고였다. 이 따끈한 느낌과 부드러운 털. 마음에 깊은 충족감을 줬다.
제갈화무가 깨어난 후에도 결이와 이어진 느낌은 남아 있었다. 아주 흐릿하게.
당연히 완전히 끊어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 무 자르듯 뚝 끊을 수 있는 게 아닌 듯 싶었다.
그렇게 결이와 함께 처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후원 방향에 남궁류청의 기운이 보였다.
‘뭐야, 제갈화무 배웅에도 안 오더니 저기서 뭘 하는 거야?’
다가가던 나는 높아진 목소리에 발을 멈췄다.
“제발 무슨 말씀이라도 해 주십시오!”
남궁류청의 몸종인 구사의 목소리였다.
남궁류청이 백리 세가에 머물면서 남궁 세가의 사람들 몇이 찾아 온 상태였다. 그 중 한 명이 구사였다.
“도련님! 대체 언제까지 여기 머무실 생각이십니까? 이제 백리 소저가 깨어나신 지 시일도 꽤 지났으니, 이만 돌아가셔야죠! 오늘 또 재촉 서신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화가 잔뜩 나셨다고요.”
나는 가만히 서서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남궁류청은 입을 열지 않았다.
구사는 그 뒤로도 한참을 애걸복걸하다가 으름장을 놓았다.
“소가주님께서 이번 서신에도 제대로 된 답이 없을 시 각오하라고 하셨습니다.”
현재 남궁류청과 나의 관계는 애매했다.
내가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남궁류청은 내내 나를 간호했다.
이미 주변은 나와 남궁류청을 연인 관계로 인정한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연인이 아니라면 외간 남자가 여인의 처소에 이렇게 들락날락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됐기 때문이다.
‘소녹과 금쇄의 관리 덕에 하인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는 듣지 않았지만······.’
깨어난 뒤로도 한동안은 그의 고백에 제대로 답을 줄 정신이 없었고, 그나마 좀 괜찮아졌다 싶자 바로 제갈화무의 일이 터진 것이다.
나는 기척을 내며 다가왔다.
“류청! 왜 안 오나 했더니, 여기서 뭐 해? 화무 방금 떠났어.”
남궁류청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아, 잠시 잊어버렸어.”
그때 구사가 나를 향해 말했다.
“소저! 도련님께 집으로 돌아가시라고 말씀 좀 드려 주세요. 이대로 가면 소가주님께서······!”
나는 놀라 멈칫했다.
남궁류청이 버럭 소리쳤다.
“구사! 입 다물지 못해?”
“하지만······!”
입을 열었던 구사가 남궁류청의 매서운 눈길에 결국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당장 꺼져!”
저렇게 소리 지르는 모습은 정말 남궁완 아저씨랑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