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제가 할아버지께 맞고 나서도 표랑 악이가 미안하다고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괜찮으냐고 한 번을 묻지도 않은 건 일단 제쳐 놓는다 쳐요.”
오히려 백리연만 본인이 기절할 것처럼 창백한 낯빛으로 걱정했다.
“하지만 제가 걔들 눈앞에서 할아버지께 이렇게 맞았는데, 할아버지와 작은 아버지가 자리를 뜨시자마자 백리연한테 손을 휘두르다니!”
백리명이 씩씩거리며 계속 소리쳤다.
“만약 할아버지가 돌아오셨으면 또 제 탓을 하셨을 텐데! 제게 억하심정이 있는 게 아니라면 적어도 제 앞에선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그, 그런 일이······ 있었다고?”
“예! 제가 할아버지께 맞아 죽든 말든 자기들이 맞는 거 아니라고 신경도 안 쓰는 거 아니냐고요!”
화가 난 백리명이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주었다가 엎드려 신음 했다.
놀란 백리의묵이 백리명의 손을 살폈다.
“설마 아버님이 널 때려죽이시겠느냐······.”
하지만 그런 백리의묵의 말도 뒤로 갈수록 작아졌다.
고통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힌 백리명이 말을 이었다.
“연이가 착해서 아무한테도 말 안했으니 아버지도 모르시는 거죠. 만약 소우악이 멱살 잡은 게 할아버지 귀에 들어가면······.”
“······.”
백리의묵도 차마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제가 이러면 안 된다고 타이르니 뭐라는 줄 아세요? 백리연이 남궁 소가주가 계신걸 알면서 자기를 함정에 빠트린 거래요!”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남궁완을 뵈었을 때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며?”
“네.”
“거기다 의강도 남궁완이 올 줄 모르고 있었던 듯하다만, 백리 세가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백리연이 남궁완을 어떻게 알아봤단 말이냐?”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문지기들도 못 알아보고, 작은 아버지께선 남궁 소가주가 오시는 줄 몰랐는데!”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는 말을 백리명은 목구멍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일단 진정하거라. 상처에 안 좋아.”
씩씩거리는 백리명을 백리의묵이 다독였다.
“아버지, 제 친동생은 리리뿐이에요.”
“그거야 당연하지.”
“제게 백리표와 소우악은 백리연과 똑같은 사촌 동생일 뿐이란 소리예요.”
백리의묵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명아! 그게 어찌 같아!”
아버지야 고모와 같은 배에서 태어났으니 고모를 작은아버지보다 친밀하게 여기는 건 이해했다.
하지만 자신이 백리표와 소우악과 같은 배에서 태어난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백리연과 백리표 소우악은 자신에게 다 똑같은 사촌 동생일 뿐이었다.
“아버지, 한번 다시 생각해 보세요.”
백리명은 친부와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솔직히 매번 소란만 피우고 능력없는 고모보다 무공도 고강하며 명성도 높으시고 욕심도 없으신 작은아버지가 제게 훨씬 도움이 돼요.”
백리명은 아버지 곁에서 그간 보고 지낸 세월이 있었다.
아버지는 평생 고모가 피운 소란 뒤처리를 하며 지냈다.
고모가 벌인 사고를 무마하려다 곤란에 처하기도 여러 번, 할아버지께 혼나기도 여러 번이었다.
몇 번을 타이르고 달래서 얌전해져도 잠시뿐이었다. 평안하다싶으면 꼭 다시 사고를 쳤다.
고모만 아니었다면 아버지가 할아버지께 소가주로 인정받는 건 훨씬 쉬웠을 것이다.
“작은 아버지께선 사리에 밝으시고 공정하시죠. 난 배가 다르다고 차별하실 성품이 아니시잖아요.”
“······.”
“그리고 백리연도요.”
자신과 아버진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작은 아버지의 유일한 딸인 백리연은 단전도 망가졌잖아요. 아무리 잘나 봐야 무공도 못 쓰는 여자애, 할아버님께 예쁨 좀 받다가 좋은 집안으로 시집가는 게 다 아니에요?”
백리의강은 고강한 무공 덕분에 존재만으로 백리의묵의 위치를 위협했지만, 백리연은 달랐다.
내공 폐인인 백리연은 경쟁자도 될 수 없었다.
백리의강이 어떻게든 회복시키려고 노력한다지만 솔직히 가능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백리명이 보기엔 그런 검도 못쥐고 나이도 어린 동생을 경계하는 것 자체가 낭비였다.
“······네가.”
침묵하던 백리의묵이 입을 열었을 때였다.
밖에서 기척이 느껴지더니 문앞의 하인이 고했다.
“공자님, 도련님. 4공자께서 약재를 보내오셨습니다.”
“······의강이?”
짧게 침묵한 백리의묵이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예. 소인이 약재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옵고 다만 부기를 빼고 통증을 줄이는 데 좋은 약재들이라 하였습니다. 어찌할까요?”
백리명은 그거 보라는 듯 제 아버지를 돌아봤다.
* * *
늦은 시각임에도 백리 세가 안주인의 처소만큼은 아직 불이 환했다.
기거하는 자들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을 뜻했다.
등불을 들고 발걸음을 재촉하던 백리의묵은 방문 앞의 여인을 보고 멈춰 섰다.
“부인?”
심소청, 심 부인이었다.
“왜 들어가지 않고 그러고 있소?”
문 앞의 심 부인은 방 안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백리의묵은 방에서 흘러나오는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 소자입니다.”
“들어오너라.”
백리의묵이 부인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예상하던 바와 같이 울음 소리의 주인은 백리의란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전 절대 못 가요. 애들이랑 절대 못 떨어져요. 살려 주세요. 네? 어머니······.”
백리의란은 노부인의 무르팍을 잡고 흐느끼고 있었다.
백리의묵이 이를 지켜보다 물었다.
“표와 악이는요?”
“울다 지쳐서 곁방에 재워 두었다.”
“오라버니?”
그제야 백리의묵의 존재를 눈치 챈 백리의란이 돌아보았다.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었다.
백리의란이 바닥을 내리치며 소리쳤다.
“오라버니도 정말 너무해요! 어떻게······ 어떻게! 아버지께 말 한마디를······.”
백리의묵의 낯은 착잡했다.
“거기서 내가 뭘 어쩔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가만히 계세요?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어요! 아, 그래요, 그렇죠! 오라버니 일 아니라 이거죠?”
“의란아!”
“다들 조용히 하지 못해!”
노부인의 일갈에 백리의란과 백리의묵이 입을 다물었다.
노부인이 지친 얼굴로 백리의묵곁에 심 부인을 보았다.
“여긴 어쩐 일이냐? 급한 일이 아니면 나중에 오너라.”
내내 조용히 고개 숙이고 있던 심 부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머니, 명이가 매를 맞은 곳이 많이 부어 통증을 덜어 줄 약재를······.”
이야기를 듣던 백리의란이 버럭 소리쳤다.
“올케는 손바닥 좀 맞은 게 무슨 큰일이라고! 나중에 얘기해요! 지금 제 아이들은 쫓겨나게 생겼거든요!”
백리의란의 말에 심 부인이 가슴에 손을 올리며 충격 받은 얼굴을 했다.
백리의묵이 아내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의란, 너 그게 무슨 소리더냐!”
백리의란은 엎드려 다시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 의묵, 소리치지 말거라.”
노부인은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러게 왜 의란을 자극하느냐? 약재는 알아서 적당히 가져가면 될 것을. 그 정도야 네 맘대로 해도 되지 않느냐!”
한마디 하려는 백리의묵의 소매를 심 부인이 잡아당겼다.
하얗게 질린 안색의 심 부인이 공손히 인사를 올리며 말했다.
“예. 그럼 저는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힘없이 걸어 나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백리의묵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 * *
고모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어떻게 가문에서 나가는지 지켜볼 순 없었다. 바로 남궁 세가로의 여정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행 준비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난 그간 언두를 믿음직스러운 아버지의 충신 정도로 생각했는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부지런하면서도 일솜씨가 꼼꼼하니 열 명 몫을 능히 해냈다.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우리 구성이 단출한 것도 있었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짐을 싣고 내가 탈 마차 한 대, 말 한 필뿐이라 준비할 것이 별로 없었다.
필요한 일손은 남궁완의 사람을 빌리기로 했다.
‘만신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을 최대한 줄여야 하니까.’
언두는 남기로 했다. 처소를 관리할 사람이 없어서였다.
그간 처소는 백리 세가의 하인들이 알아서 관리하도록 두었다.
하지만 최근 여러 일로 아버지는 집안 하인들을 믿을 수 없다 여긴 모양이었다.
이런 단출한 구성원에 백리의묵이 우려를 표하며 사람을 붙여 보려 했으나 성공하진 못했다.
그리고 언두가 열심히 여행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무얼 했느냐면······.
향불 냄새가 그윽한 백리 세가 사당에서 조상들을 향해 어질어질 할 정도로 절을 올렸다.
그리고 중앙당에서 보았던 문중 장로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당당한 백리 세가의 일원으로 소개받은 것이다. 백리 가문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솔직히 제대로 인정받았다고 보긴 힘들었다.
‘아버지의 고집에 어쩔 수 없이 이름만 올린 정도?’
그런 나에게 문중 장로들은 대부분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회귀전엔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던 이들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안 계시면 인사도 안 받아 줬지.’
그랬던 자들이 내 곁에 할아버지가 계시자 마치 귀여운 조카라도 되는 듯 말을 건넸다.
그렇게 인사를 시키신 할아버지께선 비적 토벌을 마무리 짓기위해 다시 떠나셨다.
그리고 마차에 오르기 직전, 의외의 사람이 배웅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