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0)
30화
* * *
나는 가슴팍의 구겨진 옷자락과 머리카락들을 정돈하며 정방을 걸어 나왔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걸음으로 수백당을 벗어나자마자 내 뒤를 따라온 이가 붙잡았다.
“어떻게 한 거야?”
“뭘?”
나는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쌍둥이들에게 전음을 하고나서 하필 딱 석가약과 눈을 마주쳐버렸다.
그 뒤에 곧장 쌍둥이들이 난리를 쳤으니 석가약도 당연히 눈치 챘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증명할 것인가?
나는 당당하게 고개를 들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날 살피던 석가약이 말했다.
“한번 진맥해 봐도 돼?”
“그래.”
짧게 내 맥을 짚은 석가약이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분명히 내공은 없는데, 하지만 분명 그 모습은······ 어떻게 쓴 거지?”
당연하지. 내가 쓴 건 내공이 아니니까.
내가 그 사이 단전이 회복되어 내공을 쌓거나 그랬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건 아니었다.
내가 전음을 할 수 있는 건, 과거에 무공을 배워 보려고 몸부림친 발악의 흔적이었다.
난 어떻게든 무공을 배우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책들을 섭렵하던 중 금서에까지 손을 뻗었다.
그리고 한 금서에서 발견했다.
선천지기를 내공대신 쓸 수 있는 비법을.
선천지기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난 원기, 즉, 생명력이라고 볼 수 있다.
선천지기는 수련을 통해 쌓은 내공보다 훨씬 더 강력했는데, 무공이 경지에 이른 자들은 선천지기도 자연스럽게 다룰 수 있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선천지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선천지기는 생명력.
모두 소진하면 죽어버린다.
그리고 나는 방금 선천지기를 이용하여 전음을 했다.
“너······!”
그때 나를 보던 석가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코 아랫부분이 간지러운,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조심스레 인중을 훔친 난 한숨을 내쉬었다.
‘······전음 한 번 했다고 코피라니.’
정말 소량.
자연 회복 가능할 정도의 아주 적은 소량만 썼을 뿐인데도 몸이 버티질 못했다.
품속을 뒤지던 난 좀 전에 석가약이 내 손수건을 쓴 사실을 떠올렸다.
어쩔 수 없이 대충 소매로 막으려고 할 때 맞은편에서 다가온 손이 코 윗부분을 눌러왔다. 그리고 자신의 소매로 조심스럽게 코 아랫부분을 닦아 냈다.
나는 내가 하겠다고 석가약의 손을 떼려 했으나 꽉 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이거 네가 전음을 한 부작용이지?”
“무슨 소린지······.”
아니, 무슨 애가 이렇게 눈치가 좋아?
나는 모르는 척 했지만 통한 것 같진 않았다.
석가약이 피가 멎은 내 콧등에서 손을 내리며 말했다.
“석 태의께 기력을 회복할 수 있는 약도 부탁드려야겠네.”
* * *
수백당 백리패혁의 서재.
백리패혁은 오동나무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그건 여기에 올려놓고.
너는 앉거라.”
뒤따라온 하인이 모란 화분을 탁상 위에 올려놓고 물러갔다.
그 뒤를 이어 찻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따라온 하인을 보고 백리패혁이 인상을 찡그렸다.
“지금 내가 뜨거운 차 마시게 생겼나? 찬물 가져와!”
모란 화분을 놓고 물러간 하인이 재주 좋게 얼음물을 대령했다.
냉수를 받아 든 백리 패혁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맞은편의 백리의강이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지 않으면! 내 너에게 미리 말해 두지 않았느냐! 네 손님은 네가 직접 관리하라고!”
남궁완이 직접 연회에 참석하겠다 답해 버렸으니 백리의강이 막을 수 있는 선을 넘은 일이었다.
백리패혁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하지만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신경 쓰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변명도 없이 담담히 사과하는 아들의 모습을 본 백리패혁이 깊은 숨을 내쉬었다.
백리의강이 채운 찻잔을 들며 백리패혁이 말했다.
“······후, 일단 의란이 무슨 답을 내릴 것인지 기다려 보자꾸나.”
백리의강이 잠시 고민하다 물었다.
“그럼 소우악이는 정녕 내보내실 겁니까?”
“지금 네가 악이를 걱정하는 게냐?”
“아직 어립니다.”
백리패혁이 탁자에 찻잔을 거세게 내려놓았다.
입에 대지도 않은 뜨거운 찻물이 손등에 흘러넘쳤으나 백리패혁은 개의치않았다.
“그래도 내 피를 이은 손자니 이 정도에서 봐준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어딜 감히 소씨 가문의 아이가 백리가의 아이를 모욕한 단 말인가!”
나이가 어리니 더 문제다.
벌써 이 모양인데 앞으로 자라 백리 가문의 세를 등에 업고 얼마나 분탕을 칠지 눈에 훤했다.
형제, 심지어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로 서로 돕고 우애 깊은 건 좋고 이해 했다.
“내 지금껏 먹는 것 입는 것부터 수련에 백리 세가의 단약까지 그 애들에게 차별없이, 아끼지 않고 내줬다. 그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아?”
하지만 날 때부터 계속 둘이 붙어 지내서인지 저 둘만이 세상 전부였고, 자신들 말고는 모두 깔봤다. 심지어 백리 세가까지!
이번엔 고작 모란이었지만 다음엔 무슨 사고를 칠지.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나면 늦었다.
적어도 일단 둘을 떼어 놓아야 했다.
그때 백리패혁의 눈에 하인이 탁자에 가져다 놓은 모란 화분이 띄었다.
“이걸 가져온 아이가 석 태의의 조카인 석가약이랬나?”
“예.”
“이상한 이는 아니겠지?”
“예?”
“큼, 연이가 처음 사귄 친우가 아니더냐? 아이에게 친우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성품이 바른지 집안은 어떤지······ 아니, 됐다.”
“······?”
백리의강은 영문을 파악하지 못한 눈빛이었다. 직접 나서서 알아보는 것이 속 터질 일 없고 편할 것이다.
“그래서 넌 무슨 일로 날 찾았느냐?”
짧게 침묵한 백리의강이 입을 열었다.
“······연이를 데리고 잠시 남궁세가에 다녀올까 합니다.”
* * *
백리의묵의 부인, 심소청은 작은 마님 혹은 심 부인으로 불리었다.
심 부인은 얌전하고 온유한 성품이었지만 무가의 안주인을 하기에는 다소 유약한 심성의 소유자기도 했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심 부인이 젖은 눈가를 소매로 꾹꾹 눌러냈다.
“명아, 이를 어째? 흐윽. 이렇게 부어서야.”
“어머니, 전 괜찮아요. 할아버지께서 많이 화나셨는데 이 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지요.”
담담한 백리명의 말은 오히려 심 부인을 더 자극했는지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이내 문 너머로 불빛이 일렁이더니 등롱을 쥔 백리의묵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명아, 손은 어떠냐?”
“괜찮습니다.”
남편이 들어오자 소매를 들어 얼굴을 가린 심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리명이 따라 일어나려 하자 심 부인이 이를 말렸다.
“일어나지 말고 누워 있거라. 저, 저는 어머님께 가 약재를 좀 달라 해야겠습니다.”
“······그리하시오.”
어머니가 나가는 걸 확인한 백리명이 아버지께 물었다.
“오래 걸리셨네요. 할아버지께서 아버지께도 많이 화내셨어요?”
“네가 지금 누굴 걱정하느냐? 네 몸부터 돌보거라. 그보다 내가 늦은 건 다른 일 때문이다.”
“무슨 일이 또 있어요?”
“의강이 제 딸과 남궁 세가에 다녀올 거라더구나.”
백리의묵이 옷자락을 정돈하며 자리에 앉았다.
“작은아버지가 백리연이랑 남궁세가에요?”
“그래.”
“허, 그 몸으로 갈 수는 있대요?”
“아버님께서 허락하셨고 며칠내로 준비를 마치면 바로 떠날거라더구나.”
“갑자기 거긴 왜 간다는 거예요?”
“정확히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 소우악과 백리표와 잠시 떼어 놓으려는 생각 아닐까 싶다. 그만 묻고 어디 상처나 좀 보자꾸나.”
손을 내미는 백리명의 낯빛이 가라앉았다.
자신은 앞으로 남궁완의 얼굴을 어찌 봐야 할지도 알 수 없는데 백리연은 남궁 소가주와 함께 남궁 세가로 향하다니.
아쉽고 부러웠다가 종래엔 화가났다.
“남궁 세가로 출발하기 전에 연이를 한번 만나야겠어요.”
백리의묵이 반사적으로 인상을 찡그리며물었다.
“그 아이를 왜?”
“남궁 소가주께 얘기 좀 잘해 달라고 부탁해야죠.”
“걔가 잘도 해 주겠구나. 헛소리 말아라.”
“그야 말해 보기 전엔 모르죠.”
백리의묵이 코웃음을 쳤으나 백리명은 태연히 답했다.
“······너 정말 만나려고?”
“네. 안 될 거 없잖아요? 제 동생인걸요.”
“동생이라고?”
아들의 말에 담긴 뜻에 백리의묵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바라보았다.
백리명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오늘 보니 표랑 악이보다 연이가 훨씬 낫던걸요.”
백리의묵이 저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고, 나무라듯 말했다.
“명아! 그게 무슨 소리냐? 네가 오늘 많이 실망했을 것 안다. 하지만 그런 허튼 생각 말아라.”
아버지의 말에 이를 악문 백리명이 몸을 일으켜 반듯이 앉아 말했다.
“아버지, 이제야 말씀드리지만, 저랑 표랑 악이랑 연이 이렇게 넷만 남았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세요? 악이가 갑자기 연이 멱살을 잡으면서 덤벼들더군요!”
“뭐라고?”
금시초문인 얘기에 백리의묵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때를 떠올린 백리명이 이를 아득 물었다.
소우악이 먼저 백리연의 멱살을 잡고 뒤이어 백리표가 덤벼들었다. 석가약과 같이 있어 천운이었다. 만약 저 혼자만 있었다면 쌍둥이들을 막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백리연이 한 대 맞기라도 했다면······.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아득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