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오랜만이구나.”
수척해진 백리명이었다.
그간 고모와 백리표 소우악은 매일매일 떠나갈 듯 울어 젖히며 백리의묵과 할머니를 들들 볶고 있었다. 큰아버지와 처소가 가까운 백리명도 그 소란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촐한 규모의 마차를 훑는 그가 아쉬운 눈을 했다.
‘뭐지?’
의문은 바로 풀렸다.
“남궁세가에 간다고 들었다.
“네. 맞아요.”
“남궁완 선배님은 같이 안 가시느냐?”
남궁완을 찾았던 모양이었다.
‘이래서 남궁완이 밖에서 보자고 했군.’
귀찮은 일이 생길 각이 보인 것이다.
“가다가 중간에 만난다고 들었어요.”
“그렇구나. 작은아버지께서 살피시겠지만 그래도 몸조심하려무나.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기탄없이 말하고.”
자애로운 큰 오라비인 척 굴던 백리명이 이곳까지 온 목적을 꺼냈다.
“그리고 내 네게 하나 부탁할 것이 있는데······.”
백리명이 돌리고 돌려 말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남궁완에게 체면을 세울 기회를 달라.’
그 말을 길게 하고 백리명이 내 손에 뭔가를 쥐여 주었다.
“이건 우리 아버지가 네게 주라 하셨단다.”
은표였다.
여섯 살짜리에게 돈을 뇌물로 주다니!
휘둥그레 눈을 뜬 난 이를 꼭 쥐며 말했다.
“물론이죠. 잘 말씀드릴게요!”
남궁완 아저씨가 내 말을 들을지는 모르겠지만!
* * *
창밖으로 백리 세가가 차츰 멀어져 갔다.
‘드디어 가네.’
성 밖에서 미리 기다리던 남궁완과 부하들이 합류하고, 인사까지 마쳤다.
창밖의 풍경을 한참 구경하던 난 미리 챙겨 두었던 반짇고리를 열었다.
그리고 야심에 찬 각오를 다시 다졌다.
‘내가 이거 도착 전에 완성하고 만다!’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한두 시간이지 긴 여행길, 혼자 마차에 타고 있을 난 어마어마하게 심심할 걸 알았다. 그리고 그 시간동안 남궁완 아저씨에게 드릴 향낭을 완성하는 게 내 목표였다.
지루한 여행길 시간도 죽이고, 약속도 해치우고. 일석이조!
그렇게 각오를 다진 지 반나절 후.
내 입에선 시름시름 앓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거지같은 몸뚱어리!’
바늘과 실을 내팽개친 난 마차에 대자로 누워 있었다.
커가며 차차 나아지기도 했고 다 자라선 말을 탔지 마차를 타질 않아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석가약한테 멀미약이나 챙겨달라고 할걸!’
기력을 회복시키는 약?
그것도 토하지 않아야 소용이 있지 않은가?
정돈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는 마차는 자동차와 비교하면 실례였다.
하지만 이런 내 사정을 봐주며 이동할 순 없었다. 만신의가 그 마을에 언제까지 머물지 모르는 상황에선 한시라도 빨리 이동해야 했다.
그렇게 구급차 들것에 실려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긴 여행을 시작했다.
기절하듯 잠들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말을 타시던 아버지가 마차에 계셨다.
“아버지? 왜 여기 계세요?”
“······신경 쓰지 말고 눕거라.”
착잡한 얼굴의 아버지가 나를 어르며 눕혔다.
잠깐 정신을 차렸던 난 아버지 품에서 금세 늘어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왜 여기 계세요?’란 질문을 대여섯 번 반복했다고 한다. 하지만 난 기억이 나질않았다······.
마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뚱어리도 현실을 받아들이고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흔들림이 멈추고 누군가 날 조심스럽게 안아드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떴을 땐 그간 익숙해진 마차 천장이 아닌 옅은 노란빛의 침대 휘장이 날 반겼다. 그리고 손목이 간질간질하니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리자 내 손목에 손을 올린 아버지가 눈을 감고 앉아 계셨다.
아버지가 내공을 불어넣어 내 떨어진 체력을 보충해 주는 것이었다.
내가 깨어난 걸 안 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하던 아버지가 슬며시 미소 지었다.
순간 손목으로 불어넣던 내공이 뚝 끊기고 아버지의 미소도 내 착각인 것처럼 바로 사라졌다.
“일어났으면 이제 저녁을 들자.
방으로 가져다 달라 하마.”
“아뇨! 아래에서 먹을래요.”
보통 숙박시설인 객잔의 1층은 식당으로 이용했다.
“방에서 편히 먹지 그러느냐?”
“너무 마차 안에만 있었더니 바람 좀 쐬고 싶어요.”
“알겠다.”
아버지가 날 자연스럽게 안아들었다.
아버지 목을 껴안은 채 복도로 나오자 앞이 확 트이면서 1층 식당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얼굴이 익숙해진 남궁 세가의 무인들이 식당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미 식사를 마친 그들은 술 한잔을 걸치고 있었다.
우리가 내려온 것을 먼저 알아 챈 남궁완의 부관, 심지평이 얼큰히 취한 얼굴로 아는 척했다.
“백리 공자님, 오셨습니까? 오, 아기씨도 일어나셨군요. 여기서 저녁 드시게요? 이제 괜찮으신겁니까?”
“네! 괜찮아요!”
아버지는 남궁 세가의 무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을 살펴보던 내가 물었다.
“남궁완 아저씨는요?”
“나갔다.”
곧바로 객잔 점소이가 다가왔다.
“뭘 드릴까요?”
“난 간단한 것으로. 아이는 속이 안 좋으니 죽 가능한가?”
또 죽?
“그야 물론이죠.”
점원이 물러가려 할 때 아버지 옷자락을 잡았다.
“왜?”
“나 만두 먹고 싶은데······.”
남궁 세가 무인들의 식탁 위에 오른 만두는 갓 쪄 냈는지 김이 솔솔 나는 것이 맛있어 보였다.
“속에 안 좋다.”
“먹고 싶은데······.”
“······만두도 하나 가져오게.”
“헤헤.”
잠시 후 쟁반에 음식을 들고 온 점소이가 넉살 좋게 말했다.
“죽은 따님 앞에 놓으면 될까요?”
아버지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휴, 따님은 어디 큰 병 앓는 줄 알았네요. 들어오실 때 어찌나 안색이 창백한지!”
나머지 음식들도 식탁에 내려놓은 점소이는 떠나지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공자님 검을 보니 강호분이신거죠?”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기색에 내가 재빨리 대답했다.
“맞아요! 아버지 멋지죠? 이름을 들으면 아실 거예요!”
“연아.”
아버지가 날 나무랐으나 점소이는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그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라면 검 좀 휘두르시겠죠?”
“네!”
“그렇다면 걱정할 필욘 없겠네요. 일행도 많으시고. 그래도 흠······ 따님이 있으시니······.”
날 언급하자 그제야 아버지가 점소이의 말에 관심을 가졌다.
계속 말하라는 듯한 아버지의 시선에 점소이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어갔다.
“요새 이 근방에 아이 실종이 잦으니 조심하세요.”
“실종이라니?”
“실종이요?”
아버지가 되물었고 난 한껏 놀란 얼굴을 했다.
“아니, 납치라고 해야 하려나? 하여튼 유달리 인신매매가 기승이니 조심하셔요. 잠시 눈만 떼면 사라진다니까요. 망할 놈들, 멀쩡한 양민 아이를 잡아다가. 쯧쯧.”
“······자세히 설명 부탁하네.”
아버지의 관심에 점소이는 신이 난 듯 말을 이었다.
“그야 물론입죠. 처음에 실종된 건 어린 거지들이었습니다.”
아버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동냥하던 어린 거지들이 하나 둘 사라졌는데, 누가 거지들을 신경 쓰겠어요? 원래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니 좀 더 동냥 잘되는 곳으로 떠나거나 죽었다 여겼지요.”
난 속으로 고개를 주억거렸고, 아버지의 표정은 굳은 걸 넘어 싸늘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 멀쩡히 부모가 있는 양민 아이들도 한둘씩 실종되기 시작한 거죠!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사람들이 수소문해보니 어린 거지들이 떠난 게 아니더군요! 사라진 거였어요. 사라진 그 아이들을 다시 본 자도 없고요. 큼.”
목이 탄 듯 식탁의 차를 눈치껏 마신 점소이가 말을 이었다.
“이젠 아이가 있는 집은 해만지면 문을 걸어 잠그고 절대 못 나가게 하고 있습죠. 벌써 1년은 족히 넘었죠.”
점소이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부모들이 그렇게 아이들을 단속하는데도 귀신같이 사라지고 있습니다요. 공자님도 조심하셔요.”
“관에선 뭐라던가?”
양민이 얽혔다면 관이 나서야 했다.
“관이요? 어휴, 글렀어요. 애들 조금 사라진 것 갖고 난리 피우지 말라고만 하더군요. 아이 잃은 부모 몇이 소란을 피우자 오히려 곤장을 때려 쫓아냈습니다.”
점소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역시······.’
저번과 똑같은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방에만 있었다면 난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저번 생처럼.
‘피곤해도 꾸역꾸역 식당으로 내려오길 잘했네.’
이제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이것만 들어서는 나와 이 실종 사건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 사건은, 내가 만신의에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