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4)
54화
* * *
나는 과거 남궁류청을 처음 마주했을 때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이뤄지던 백리세가.
혼절했다 깨어난 난 여기가 소설 속인 걸 알고는 한창 혼란에 휩싸였을 때였다.
모두 내가 슬픔에 제정신이 아니라 여겨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관을 안치한 사당 앞에서 마주쳤다.
옥을 깎아 만든 듯한 수려한 얼굴의 청년이 바쯤 넋이 나간 채였다.
나를 본 청년이 눈물 젖은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이자 하얗게 질린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백리연 소저······ 맞습니까?”
그게 나와 남궁류청의 첫 만남이었다.
‘이젠 나밖에 기억 못 하는 일이지만.’
당시 성장기의 끝물이었던 남궁류청과 달리 지금 내 앞의 남궁류청은 훨씬 앳되고 싱그러웠다.
하지마나 냉막하고 오만함이 묻어나는 표정이 제 또래로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표정에서부터 이 자리를 무척 지루해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남궁류청 옆에는 정반대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서하령이 있었다.
나는 남궁무철부터 차례로 인사를 나누었다.
소부인이 나서서 말했다.
“백리 소저는 처음 보겠구나. 여긴 내 아들인 남궁류청이란다.”
남궁류청은 내게 인사하면서도 눈을 내리깐 채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남궁완이 무시무시한 낯으로 남궁류청을 노려보았으나 끄떡도 없었다.
“······.”
어색한 기류를 간드러진 목소리가 밀어냈다.
“백리 소저가 눈이 아프다 하여 빛을 최대한 줄이긴 했다만, 오는 길에 눈부시진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보통 해가 진 후 자리를 마련한다면 주변을 아주 환하게 밝히기마련이었다. 전등이 없는 이곳 세계에서는 밤에도 주변을 환히 밝힐 수 있는 것이 부의 상징이었으니까.
하지만 오는 길부터 전각 내부까지 약간 어둡다고 느낄 정도로 불빛이 은은했다.
“전혀 불편하지 않았어요! 배려에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소부인이 직접 나를 자리로 안내하며 말을 이어 갔다.
“내 성심껏 준비했지만, 음식이 입에 맞을지 잘 모르겠구나.”
“어제 저녁도 맛있었는걸요. 오늘도 기대하고 있어요.”
나는 남궁류청의 저런 모습을 예상했기에 그다지개의치 않았다.
나를 묘하게 바라보던 소부인이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갔다.
남궁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어제는 잘 쉬었느냐?”
별다를 것 없는 안부 질문이었다.
거기서 확신할 수 있었다.
‘남궁완 아저씨는 천산염제가 내게 왔다 간 사실을 몰라.’
만약 알고 있었다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물을 리 없었다.
나는 방긋 웃으며 말했다.
“네. 푹 쉬었어요. 아저씨도 푹 쉬셨어요?”
“내 집인데 당연한 말을.”
내 대답에 남궁무철이 슬쩍 미소지었다.
나는 약간 의아하게 여겼다가 계속 이어지는 대화에 남궁무철의 반응을 잊어버렸다.
소소한 담소를 나누는 새 시비들이 줄줄이 음식을 날라 왔다.
내가옆자리에 앉았을 때부터 지대한 관심을 보이던 서하령이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가 정말 백리 대협이야?”
“맞아.”
“와!”
이런 질문과 반응도 수도 없이 봤다.
‘그래도 수향문이면 백리 세가랑은 꽤 떨어진 곳인데. 아버지에 대해 알 줄이야.’
서하령은 궁금한 게 무척 많은 아이였다. 이것저것 한참 종알거리던 서하령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아, 맞아. 어제 걔는 뭐야? 너무 무서웠어.”
“걔? 아, 야율?”
“이름이 야율이야?”
서하령이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런 하인을 두는 거야? 너무 무례하지 않아? 교육 좀 해.”
“아, 걔는 하인 아냐.”
“아, 그럼 가문 호위야?”
“호위도 아냐.”
“아니라고? 그럼 왜 같이 있어?”
“그건······.”
그때 서하령의 살짝 드러난 손목을 본 난 젓가락을 떨어트릴 뻔했다.
서하령의 오른 손목에 누가 봐도 손자국 모양으로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아니, 야율 이 미친놈. 얼마나 세게 잡은 거야?’
서하령이 입을 삐죽이며 재촉했다.
“왜 같이 있냐니까?”
“어······ 그게······.”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다른 남궁세가 사람들을 흘끔 살폈다.
‘서하령이 저 상처를 따지고 들기라도 하면······’
야율에 대해서 남궁 세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테고,그래서 좋을 게 없었다. 나는 빠르게 고개 숙였다.
“내가 그 애 대신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어, 어?”
이번엔 서하령이 당황한 얼굴을 했다.
“아니, 뭐어······ 사과하라는 건 아니었는데······.”
눈을 굴리던 서하령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나, 나도 미안해.”
“응?”
“사실 그때 엿본 거 맞아. 근데! 그냥 네가 내 또래라길래 궁금해서 인사하러 가는데 창문이 열려 있어서······ 그래서······ 그냥 나도 모르게 봤어. 미안해.”
나는 고개를 숙인 서하령을 보고 살짝 놀랐다.
‘생각보다 착한 아이인 걸지도.’
저 상처를 아무에게도 이르지 않은 걸 봐서도.
고개를 든 서하령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나 하나 궁금한 게 있어.”
“뭐?”
“너 정말로 내공 폐인이야?”
“······.”
음, 착한 아이라는 건 성급한 판단이었을지도······
그때 우리 대화 사이에 부드러운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서 소저, 백리 소저를 당황하게 하지 말아요.”
“앗, 죄송합니다.”
“역시 애들은 애들이네요. 벌써 친해진 걸 보니.”
소부인의 말에 남궁류청을 흘끔 본 남궁완이 입매를 비틀었다.
그 뒤로도 서하령은 계속 나에게 종알종알 말을 걸었다.
그리고 우리가 대화를 하는 동안 남궁류청은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나를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확실히 들은 대로네.’
남궁류청은 불세출의 천재로 오만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수준이 안 맞는 자는 상대도 하지 않았다.
내공 폐인인 난 남궁류청에게 바닥의 돌만도 못한 존재일 것이다.
서하령은 냉랭한 남궁류청의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간간이 말을 걸었다.
하지만 대화라는 건 서로 의지가 있어야 이어지는 것이다.
남궁류청은 단답형으로만 대답했고 대화는 뚝뚝 끊겼다.
남궁류청만 빼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가 거의 끝날 즈음이었다.
남궁류청이 일어났다.
소부인이 서둘러 말했다.
“류청아, 더 먹지 그러니?”
“소자, 충분합니다.”
남궁류청이 포권지례하며 말했다.
“이만 수련을 해야 하여, 먼저 물러가 보겠습니다.”
소부인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남궁류청은 바로 몸을 돌려 누각을 걸어 나갔다.
소부인이 소리없이 한숨을 내쉬고 남궁완이 낮게 “저놈이······.”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살짝 들렸다.
남궁무철은 이 상황에 개의치 않는 듯 껄껄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원래 아이는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일세.”
그때 서하령이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저, 저도 이만 가 볼게요.”
소부인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려무나.”
역시 다 가는군.
애들에게 이런 식사 자리는 재미없지, 라고 생각하던 나에게 서하령이 말했다.
“같이 가자.”
“어? 나도?”
“응!”
“나는······.”
약간 당황하며 남궁완을 돌아보았다.
“가라. 다 가!”
남궁완이 내 뜻을 어찌 해석했는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소부인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서하령의 손에 이끌려 누각 계단을 내려갔다.
서하령은 나를 잡고 남궁 세가를 익숙하게 뛰어갔다.
‘대체 어딜 가는 건데?’
끌려 가는 내 숨이 턱 끝에 차 더는 못 뛴다 생각한 순간 드디어 서하령이 멈췄다.
나는 옆구리를 쥐고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밥 먹고 바로 뛰어서 옆구리가 찢어질 것 같았다.
“류청!”
서하령의 목소리에 정신이 조금 들었다. 어딜 이리 뛰어가는지 왜 멈췄는지 의문이 한 번에 해결됐다.
남궁류청 앞으로 달려간 서하령이 발랄하게 물었다.
“어디 가?”
“좀 전에 수련 간다고 말했잖아.”
“으응?”
“용건은 그게 다야?”
남궁류청의 조숙한 말투에선 냉랭한 기운이 풀풀 풍겼다.
남궁류청의 시동으로 보이는 이가 개미만한 목소리로 “도련니임.” 하고 말리듯 말하는 것이 들렸다.
나는 열 걸음 정도 뒤에서 그들의 모습을 마치 연극 보듯 구경했다.
당황한 서하령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니! 그, 수련하러 가지 말고 우리 같이 놀자!”
“내가 왜?”
“어? 어······ 아니, 우리 오늘 새로운 친구도 있으니까······.”
남궁류청이 코웃음을 치며 서하령의 말을 잘랐다.
“누가 누구랑 친구야?”
서하령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소부인께서 같이 수련하면 좋겠다고 하셨는걸.”
“그래서 낮에 했잖아.”
“그건! 2각(30분)도 안 했잖아. 그럼 수련 같이 하자, 아니, 대련이라도 한 번만 하자······.”
남궁류청의 짜증스러운 한숨에 서하령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왜 그렇게 싫은데?”
남궁류청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 모습은 늘 인상을 찌푸리고 다니는 남궁완과 쏙 닮아 있었다.
“그야 소저와의 대련에서 내가 얻을 게 없으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남궁류청이 마치 내가 이런 말까지 해야 하냐는 태도로 말했다.
“너랑은 수준 차이 난단 뜻이야.”
“······.”
그대로 굳은 서하령에게서 고개를 돌리던 남궁류청의 눈이 순간 나와 마주쳤다.
혀를 찬 남궁류청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멀어졌다. 그리고 그 뒤를 시동이 황급히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