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3)
53화
남궁 세가주가 말했다.
“공청석유를 넘기거라. 그러면 노부가 저 악종을 눈감아 주지. 어떠한가? 물론 거절한다면 목숨을 내놔야 할 것이야!”
“······.”
“······.”
눈을 꽉 감았다 뜬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율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내가 야율의 손을 빼내자 그가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내가 이래서 데리고 오는 건 반대였는데.’
나는 야율의 뒤쪽, 침상 방향으로 향했다. 그리고 숨겨 놓았던 검은 자기병을 가져왔다.
내가 자기병을 꺼낸 순간부터 노인의 시선이 떨어질 줄 몰랐다.
“가져가세요.”
노인이 내 손의 자기병을 가져가려는 순간 나는 자기병을 꽉 쥐었다.
“대신 야율의 신분을 보증해 주세요.”
“보증?”
“네. 야율의 마공이 밝혀지는 일이 벌어진다면 어르신께서 보호해 주셔야 한단 말이죠.”
노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는 제가 눈에 밟혀 야율의 마공을 눈감아 주신 거예요. 그리고 제 치료 때문에 남궁완 아저씨께도 말하지 못했던 거고요.”
“흥, 그래서?”
“남궁 세가에서 야율에 대한 것을 알더라도 아버지께 피해가 가지 않게 해 주셨으면 해요.”
노인이 눈을 가늘게 뜨고 날 바라보았다.
“효심이 아주 지극하구나. 영특하기도 하고.”
노인이 화통하게 말했다.
“알았다! 노부가 보증하지!”
그대로 자기병을 건네려던 난 다시 병을 쥐었다.
나를 노려보는 노인의 눈에서 불이 튈 것 같았다.
“지금 노부랑 장난치자는 게냐!”
“그런데 말이죠, 어르신······ 남궁 세가주 아니시죠?”
“······.”
역시나 수행이 높은 분답게 표정에선 빈틈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난 말을 이어갔다.
“생각해 보니 말이에요, 제가 공청석유를 남궁완 아저씨께 드렸거든요.”
“알고 있다.”
“공청석유가 정말 필요하다면 아드님에게 달라고 하시면 될 것을 굳이 제게 달라고 하실 이유가 없잖아요?”
남궁완 아저씨 성격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남궁세가주에게 뺏겼다는 것을 알면 남궁완 아저씨가 어찌 나올지 뻔히 보였다.
노인이 코웃음을 치며 태연하게 답했다.
“그 아이의 것은 그 아이의 것이고 내 것은 내 것이지.”
나는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이었다.
“그럼 제가 남궁완 아저씨께 가서 남궁 세가주께서 공청석유를 가져가셨으니 드린 걸 돌려 달라고 해도 상관없으신 거죠?”
“네 녀석······!”
“아저씨 것은 아저씨 거고 남궁 세가주님 것은 남궁 세가주님 것이니까요.”
노인이 나를 매섭게 노려봤다.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 물론 그럴 생각은 없지만요.”
야율때문에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나는 다시 노인에게 자기병을 내밀었다.
“어르신이 누구신지는 따져 묻지 않을게요. 다만, 야율의 신분만큼은 확실히 보증해 주시겠어요?”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그런 말을 한다는 말이냐?”
“어르신께서 말씀하셨듯이 어르신은 남궁 세가에서 마음껏 나다니실 수 있는 분이잖아요? 그렇다면 진짜 남궁 세가주 어르신과 깊은 관계이시지 않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본신의 무력이 대단하다하더라도 사방에 고수들이 가득한 남궁 세가를 이렇게 멋대로 드나들 수는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남궁 세가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받은 사람.
그리고 남궁완이 공청석유를 얻은 사실을, 내가 두 병을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나절 만에 알 수 있는, 아주 친밀한 사이.
노인이 기가 찬다는 듯 헛숨을 토했다.
“허! 영특한 게 아니라 영악했구나! 그래. 노부는 남궁 세가주가 아니니라. 하지만 노부의 이름을 걸고 저 아이는 보호해 주마. 이제 공청석유를 내놓거라!”
나는 건네던 자기병을 다시 쥐었다.
“잠시만요.”
“또 뭐!”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담긴 내력에 고막이 울릴 정도였다.
노인도 소리치곤 아차 싶었는지 주변을 살짝 둘러보았다.
“제게 하실 말씀이 있지 않으신가요?”
“쯧, 노부가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것이냐!”
나는 고개를 갸윳 기울이며 말했다.
“제게 사과하셔야죠.”
“뭐라?”
“제 사혈을 찔러 저를 죽일 뻔 하셨잖아요? 저는 어르신께서 살려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표했는데······ 설마 저를 죽일 뻔한 어르신은 그냥 넘어가시려는 거 아니겠죠?”
“······.”
노인은 어차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 * *
나는 씩씩거리며 나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보며 인사했다.
“살펴 가세요!”
나는 귀를 쫑긋 기울리고 바깥의 기척을 살폈다.
갔나? 갔나?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가리개를 풀고 맨눈을 기운까지 모두 확인했다.
정말 이곳을 떠난 걸 안 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아.”
‘한 병은 숨겨두길 잘했네.’
내가 원래 발견한 건 총 세 병이었다.
혹시나 몰라서 남궁완에게 두 병만 내보인 건데 그러길 잘했다.
‘어쩔 수 없지.’
하나는 아버지께 드리고 하나는 기회가 되면 내가 먹으려고 숨겨뒀던 건데······ 내 걸 아버지 드리는 수밖에.
뺏긴 건 눈물 나게 아까웠지만, 저 노인이 내가 예상한 사람이 맞는다면 이 정도면 무사히 넘어갔다고 볼 수도 있었다.
“이제 정말 갔나 봐.”
야율을 돌아보자 야율은 주먹을 꽉 쥔 채 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야율.”
“······.”
“야율.”
“······.”
네 번 정도 돼서야 야율이 고개를 들었다.
“나 때문에······.”
나는 야율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천산염제 구홍마.”
“······?”
“저 망할 노인네의 정체야. 네 탓이 아니란 뜻이야.”
“천산······염제?”
“응. 들어 봤지?”
야율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정파 무가 출신이면서 천산염제를 모른다고?
“어, 천하 십일강 중 한 명인데······ 정파도 사파도 아닌, 제 멋대로 사는 걸로 유명한 괴인이다.”
세상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궁세가주인 남궁무철의 의형제이기도 했다.
‘아직 천산염제도 살아 있을 시기로구나.’
천산염제 구홍마는 앞으로 몇 년 뒤 자연스레 역사 속의 이름이 된다.
심지어 제자마저 두지않아 천산염제의 무공은 전승자도 없이 그대로 사라진다.
“뺏기로 작정한 천하 십일강 중 한 명을 어떻게 막겠어? 아버지가 계셨어도 못 막았을걸. 네 탓 아냐.”
“······.”
하지만 별 위로가 되진 않아 보였다.
문득 얼마 전 야율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야율, 야율.”
나는 바닥을 바라보는 야율의 앞에 손을 흔들었다.
“그러니 이제 네 목숨에 가치없단 말은 못하겠네. 공청석유로 살린 목숨이라고.”
장난스럽게 말한 내가 하하,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야율이 나를 덮쳤다. 정확히는 끌어안았다고, 아니 안겼다고 해야 했다.
“······.”
나는 내 품에 안긴 머리통을 얼떨떨하게 보았다.
* * *
이튿날, 소부인에게 자청각에서 석찬을 하자는 초대를 받았다.
자청각은 남궁 세가에서 가장 풍광이 좋기로 세간에 명성이 자자한 곳이었다. 푸른 호수 한가운데 있는 누각이었는데 과거엔 몇 번 낮에 구경하러 오곤 했었다.
그땐 호수에 흐드러지게 핀 연꽃이 장관이었는데, 지금은 보기 힘들었다.
대신 호수에 띄워 둔 종이 등이 수면이 반짝거리는 빛을 뿌렸다. 과하지 않고 은은한 빛으로 눈가리개를 풀어도 될 정도였다.
누각 계단을 올라간 난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벌써 남궁 세가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도 일찍 나온 건데?’
나는 당황하며 인사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정중앙에 앉은 노인이 입을 열었다.
“아니다, 우리가 할 이야기가 있어 먼저 와 있었던 것뿐이니라.”
반 정도 희끗희끗한 눈썹에 아직도 부리부리한 눈매.
지금은 주름진 매서운 눈매가 남궁완 아저씨의 눈매와 딱 닮아 있었다.
이분이 진짜 남궁 세가주 남궁무철이었다.
외모만이 아니라 단전에 존재하는 빛의 크기가 천산염제와 비슷했다. 하지만 기의 색은 완전히 달랐다.
천산염제는 선홍빛에 가까운 느낌이었다면 남궁무철은 남궁완과 똑같은 상앗빛이었다.
다만 이쪽이 좀 더 밀도가 높아 보이는 상앗빛이었다.
사실 원래 천산염제처럼 색상이 눈에 띄는 기운이 오히려 독특한 것이었다.
나는 공손히 포권지례를 올렸다.
“백리 세가의 백리연이 남궁 세가의 분들께 인사 올립니다.”
남궁무철의 오른편에는 남궁완과 소부인이, 왼편에는 대망의 주인공, 남궁류청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