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2)
52화
* * *
남궁 세가에서 내준 방은 나를 무척 신경 썼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하지만 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머리를 헤집으며 창가 의자에 앉았다.
‘또 바뀌었어.’
과거엔 남궁 세가에는 오로지 남궁완 아저씨뿐이었다.
남궁 세가주이자 천하 십일강중 하나인 남궁무철도 자리를 비우셨고, 남궁류청과 소부인이 없었으니 당연히 서하령도 없었다.
팔괘촌에서 나를 수색하던 남궁완 아저씨가 남궁세가로 돌아가셨다 했을 때 당연히 그럴만하다 여겼다.
가문을 비워 둘 수 없을 테니까.
그런데 알고보니 가문엔 남궁세가주인 남궁부철도 계시고 남궁류청까지 있었다.
‘뭐가 어디서 영향을 미친······.’
“악!”
이어지던 생각은 갑작스러운 비명에 뚝 끊겼다.
“뭐야?”
나는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익, 네가 무슨 아! 무슨 힘이, 이거 놔! 아! 아파!”
내가 앉아 있던 바로 옆 창문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열린 창으로 고개를 내밀자 야율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손목을 틀어쥔 아이, 서하령도 함께 있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둘이 뭐 하는 거야?”
“얘가 쥐새끼처럼 창문으로 엿보고 있었어.”
서하령이 발끈하여 소리쳤다.
“쥐새끼라니! 나는 그냥 궁금해서 온 것뿐, 악!”
야율이 서하령의 손목을 더 꺾어 버리자 난 놀라 말했다.
“헉, 잠깐, 살살 아니, 일단 놔줘.”
나를 바라본 야율이 서하령의 손목을 쥔 손을 풀었다.
후다닥 몇 걸음 물러난 서하령이 씩씩거리며 야율을 노려보았다.
나는 서하령과 손바닥을 옷자락에 닦고 있는 야율을 번갈아 보다 입을 열었다.
“우리 아까 인사했죠? 서 소저 손목은 괜······.”
내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서하령이 냅다 야율을 걷어차고 쪼르르 도망갔다.
기가 막혀 입을 벌린 날 향해 야율이 물었다.
“쫓을까?”
“어? 아냐, 그럴 필요 없어. 아니, 그보다 괜찮아?”
“응.”
“서 소저는 검을 배우는 앤데 손목을 그렇게 꺾으면 안 돼.”
“응.”
“서향문은 이 근방에 꽤 규모가 큰 문파로 서향문주도 유명해. 서하령은 그 서향문주의 딸이고.”
“응.”
응응거리기만 하고, 제대로 알아들은 건 맞나?
난 얕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들어와. 다리에 약 바르자.”
그때였다.
“그 전에 내 볼일 좀 보자꾸나.”
바로 옆에서 들린 목소리에 나와 야율 둘 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기척도 없었는데, 언제부터 있었던 거지?’
땅딸막한 체구의 노인은 흰 눈썹을 길게 늘어트리고 있었는데, 그 아래 눈동자의 예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기척조차 느끼지못했지만,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존재감은 이 방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단전의 빛무리 또한 내가 지금껏 본 사람 중 가장 컸다. 심지어 남궁완보다도.
‘강자다.’
그것도 엄청난.
나는 최대한 태연하게 물었다.
하지만 노인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야율을 보며 연신 갸웃거렸다.
“어허, 이 아는 뭐고?”
살짝 미간을 찌푸린 야율이 자리를 뜨려는 순간.
“누구 맘대로 움직이느냐!”
갑자기 노인이 타다닥, 야율의 몸을 점혈하더니 가슴에 손을 올렸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다급한 맘에 탁자를 밟고 올라가 그대로 창문을 넘었다.
노인은 야율에게서 손을 떼지않고 심지어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내게 전광석화처럼 손을 뻗었다.
‘뭐지?’
그리고 나는 노인이 어디를 노리는지 알 수 있었다. 정확히는 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노인의 손은 보인다고 피할 수 있는 속도가 아니었다.
그저 몸을 살짝 비틀었을 때 노인의 손이 내 쇄골 근방을 찔렀다.
“악!”
나는 그대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에 숨도 쉴 수 없었다.
“아닛! 그걸 피해?”
노인이 깜짝 놀라며 중얼거렸다.
엎드린 나의 어깨를 황급히 잡은 노인이 손가락으로 몸 이곳저곳을 찔렀다.
가슴의 통증에 뭘 하는지 거의 느껴지지도 않았다.
“가만, 가만 있거라! 사혈을 찔렀으니 지금 당장 풀지 못하면 죽는다!”
뭐라고? 사혈?
사혈이란 침 하나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혈 자리였다.
노인의 목소리가 아득해졌다.
내가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땐 눈을 가리던 가리개도 사라진 채 맨 천장이 보였다.
‘아, 죽다 살아났네.’
온몸도 식은땀으로 축축한 가운데 가슴을 쥐어짜던 통증은 그쳤다.
다만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기라도 한지 은은히 아렸다.
“눈떴으면 퍼뜩 일어나거라.”
노인의 목소리에 난 바로 몸을 일으켰다.
“괜찮아?”
내 곁에 있었는지 야율이 나를 곧바로 부축하며 물었다.
야율의 가슴팍에 손을 올리던 노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야율을 빠르게 훑었다.
‘안······ 들킨 건가?’
나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나는 야율을 향해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을 바라봤다.
“노부가 널 살린 것인데 감사를 표하지는 못할망정 눈초리가 아주 불손하구나.”
“······.”
아니, 자기가 사혈을 찔러서 사람 골로 보낼 뻔해 놓고?
나는 노인의 단전에 있는 주먹만 한 빛 덩어리를 보고 말했다.
“어르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래, 그래.”
노인이 뻔뻔하게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르신은 누구세요?”
“노부가 누구일 것 같으냐?”
“네?”
“이 집안을 마음껏 나다닐 수 있는 노인이 누구겠느냐? 이 정도면 충분히 단서를 준 것 같다만. 아직도 짐작을 못 하겠느냐?”
지금 나보고 알아맞히라는 건가?
나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설마······ 남궁 세가주이신가요?”
“흐음.”
노인이 만족스러운 낯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일어서서 인사하려고 하자 노인이 말했다.
“되었다. 편히 있거라.”
나는 잠시 눈치를 보다 입을 열었다.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
남궁 세가주는 턱을 치켜들고 방을 쭉 훑어본 후 입을 열었다.
“공청석유를 내게 넘기거라.”
“!”
너무 어처구니가 없으면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기분이었다.
“······.”
“······.”
“없다고 할 생각은 말거라. 이미 다 알고 왔으니!”
입술을 깨문 내가 말했다.
“제가 가지고 있다 치더라도, 그걸 왜 남궁 세가주님께 드려야 하죠?”
남궁 세가주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좋은 말로 할 때 넘기는 게 좋을 것이다.”
양아치야?
남궁 세가주가 이런 사람이었어 아니, 소설에선 전혀 이렇지 않았는데?
남궁 세가주가 말했다.
“어차피 너 또한 만신의에게서 훔쳐 온 것이 아니냐?”
“아니요, 전 만신의에게 허락받았어요.”
난 만신의에게 이 능력도 받았으니 후인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럼 다 내 것 맞지, 뭐.’
만신의는 죽었는데 진실 따위 누가 알까?
하지만 남궁 세가주는 내 말에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하하하하! 만신의가 네게 그걸 넘겼다고? 하하하하!”
한참을 그리 웃은 남궁 세가주가 눈을 부릅뜨고 바닥을 내리쳤다.
“네 녀석이 아주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남궁 세가에 마공을 익힌 자를 데리고 온 것도 모자라 나를 속이려 들어?”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과 동시에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들켰구나.’
하긴 모를 리가 없었다.
남궁 세가주가 호통쳤다.
“좋은 말로 할 때 썩 내놓거라!”
입술을 깨문 내가 말했다.
“야율은 마교도가 아니에요. 그저 어쩔 수 없이 마공을 익혔을 뿐이······.”
“내 알 바 아니다!”
내 팔을 쥐고 있던 야율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노부가 여기서 너희 둘을 찢어 죽인대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야율을 내 뒤로 숨겼다.
“백리 세가와 전쟁이라도 하시려고요?”
“흥, 네가 백리 세가에서 제대로 된 취급도 못 받는 것을 노부가 모를 것 같으냐?”
“······.”
말문이 막혔다.
할아버지는 내 죽음에 분노하실거다.
떠나기 저에 내게 잘해 주시던 모습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 분노가 남궁 세가와 전쟁을 각오할 만큼이나 될까?
나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