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55)
55화
* * *
‘와······.’
싸가지 봐.
재수 없음이라는 단어의 현신을 본 듯한 느낌에 나는 그대로 박수를 치고 싶었다.
저런 놈을 사람으로 만들었다니.
새삼 아버지에게 감탄이 일었고 안쓰러웠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을까······?’
역시 내 아버지가 제일 대단했다. 박수갈채는 저 싸가지가 아니라 내 아버지께 보내야 한다.
그런데 소설에선 분명 서하령하고 어릴 적부터 함께한 소꿉친구라 하였는데······.
아직 아닌 걸까?
나는 서하령을 돌아보았다.
서하령은 어깨를 축 늘어트린 채 바닥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소저. 류청······남궁공자랑 수련을 같이 하고 싶은 이유가 있는거야??”
서하령은 계속 바닥을 바라보며 조그맣게 답했다.
“······친해지고 싶어서.”
“왜?”
“강하잖아.”
오,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하긴 벌써 사랑을 논하기엔 이르지.’
서하령이 입술을 꾹 깨물고 중얼거렸다.
“대련했는데 한 번도 못 이겼어.”
“한 번도?”
“응. 수향문에서 내 또래한테 져 본적 없는데.”
나는 굉장하다는 듯이 칭찬했다.
“뭐야, 너도 대단하잖아!”
“그럼 뭐해. 한 번을 제대로 상대 못하는데.”
“음······ 그건 네가 아무래도 남궁 공자보다 어리니까······.”
“그래 봤자 두 살 차이라고. 남궁 공자는 두 살이 뭐야 몇 살 더 많은 사저도 다 이겼단 말이야.”
그야 어쩔 수 없지.
남궁류청은 이 세계의 주인공이라구······
남궁류청이 생태계 파괴 수준 천재라 그렇지 서하령도 미래에 실력으로 꽤 이름을 날린다.
그런 미래를 전혀 모른 채 축 처진 모습의 아이가 안쓰러웠다.
“수향문의 검술도 대단하다고 들었어.”
“맞아! 우리 수향문 검도 대단해! 맞아! 그런데······.”
수향문 얘기에 잠깐 밝아졌던 서하령의 목소리가 점차 젖었다.
“내가······ 내가 모자라서······.
내가 모자라서······ 흑.”
“어?”
“흐윽. 흡.”
뭐, 뭐야. 지금 우는 거야? 이렇게 갑자기? 왜?
“서, 서 소저.”
“······엄마 보고싶어. 허어어엉.”
놀란 난 어쩔 줄 모르며 주변을 둘러봤다.
내가 울린 거 아냐!
남궁류청 옆에 시동이 있던 것 처럼 우리 곁에도 시비가 있었다.
남궁세가 안에선 안전하다지만 해가 진 저녁에 어린아이들만 돌아다니게 둘 리 없었다.
그림자처럼 있던 남궁 세가의 시비가 다가와 서하령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하지만 서하령은 그 손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건들지 마! 흐어엉.”
몇 번 다가가던 시비가 다가갈 수록 더 성질내는 서하령의 모습에 어떻게 해 달라는 듯 나를 보았다.
‘건드리지 말라잖아. 내가 건드린다고뭐 다르겠냐고······.’
속으로 중얼거린 나는 서하령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슬그머니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의외로 서하령은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조금 용기를 얻은 내가 다독이며 말했다.
“울지 마.”
하지만 오히려 내 말이 눈물 버튼을 눌러 버린 듯 서하령이 더 크게 울었다.
“허엉, 허엉엉.”
“그으······ 서 소저, 울지 마. 뭐, 남궁 공자가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흐어어어엉.”
아, 이게 아닌가?
나는 눈을 굴리면서 토닥이다 말했다.
“서 소저, 울지 마······. 나, 나 맞아. 서 소저 검 보고 싶은데!”
서하령이 내 말에 혹했는지 움찔했다.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응? 나 수향문 검 보고 싶어.”
“······수, 향문, 검?”
“응, 응! 보고 싶어!”
나는 열렬히 수향문의 검을 보고 싶은 아이를 연기했다.
확실히 검 이야기가 효력이 있었는지 서하령은 어느새 울음을 뚝 그쳤다.
얼굴을 벅벅 문질러 눈물을 닦은 서하령이 벌떡 일어났다.
“그래! 보여 줄게!”
서하령은 열정을 불태우며 나를 한 연무장으로 이끌고 갔다.
모두 휴식할 시간인지 연무장은 텅 비어 있었다.
연무장 곳곳에 놓인 석등도 이미 다 불이 꺼져 있어 시비가 발치를 밝히려 들고 있는 초롱불만이 유일했다.
서하령은 무섭지도 않은지 컴컴한 연무장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목검을 든 서하령이 진지한 낯을 하며 자세를 잡자 순식간에 기세가 묵직해졌다.
‘확실히······.’
수향문에서 또래에 비견할 자가 없다는 건 거짓이 아닌 듯했다.
서하령의 실력은 내 상상력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나는 서하령이 검법을 시연하는 걸 정신없이 바라봤다.
‘뭐야, 이게?’
빛으로 이뤄진 시야.
기를 보여 주는 눈.
그 눈은 내 예상보다 더 대단했다.
서하령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공격이 어떤 식으로 올지, 예상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천산염제의 손가락이 찌르려던 곳을 예상한 게 우연이 아니었어.’
심지어 서하령이 검을 휘두를때마다 빛이 빈 공간들. 그곳이 약점인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후우.”
어느새 시연을 마친 서하령이 숨을 몰아쉬며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박수 쳤다.
“와 대단한데!”
“진짜?”
“응. 한 번 더 보여 줄 수 있어?”
내가 본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러자 목검을 껴안고 있던 서하령이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좋아!”
* * *
“하아, 하아, 하아.”
컴컴한 연무장에 거친 숨소리가 울렸다.
“나, 더는 못 해!”
소리친 서하령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더니 그대로 흙바닥에 드러누웠다.
나는 깜짝 놀라 다가갔다.
“알았어. 그만 부탁할게. 일어나. 흙바닥에 앉으면 어떡해?”
“몰라, 몰라. 못 일어나! 쉴래!”
나도 모르게 정신없이 계속 부탁하고 있었다. 한 번만 해도 피곤할 텐데 열 번이나 했으니 이렇게 지치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서하령 옆에 같이 앉으며 물었다.
“남궁 세가엔 얼마나 있어?”
“석 달. 이제 한 달 지났으니까, 두 달 남았어.”
“수향문이면 여기서 멀지 않은데 그냥 돌아가면 되지 않아?”
“하지만······ 나 말고는 다들 여기서 배우는 거 많다고 좋아하는 걸.”
“너 말고?”
“응. 수향문 다른 제자들.”
“아, 검술 교류로 온 거야?”
“응. 내가 돌아간다고 하면 사형이랑 사저들도 돌아가야 하잖아.”
“그렇구나.”
남궁 세가와 검술 교류라니.
수향문이라도 흔치 않은 기회였으니 최대한 오래 머물다 돌아가는 것이 좋을 터였다.
잠시 생각하던 내가 말했다.
“내 동갑 쌍둥이 사촌이 있는데, 네가 걔네들보다 훨씬 실력 좋아. 그러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마.”
“정말? 네 사촌이면 백리 세가 사람 아냐?”
“그렇지.”
벌떡 일어나서 좋아하던 서하령이 입을 삐죽이며 드러누웠다.
“그럼 뭐 해? 류청은······.”
서하령이 풀썩 눕는 바람에 흙먼지가 일었다.
“콜록, 콜록.”
“헉, 맞다. 너 허약하잖아.”
아니, 그냥 흙먼지 때문인데? 그리고 허약하다고 할 필요까지 있어?
서하령이 벌떡 일어나 내 팔을 잡아 일으켰다.
“이렇게 바닥에 앉으면 안 되지!
들어가자 !”
나는 그런 서하령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아까 보니까 어깨가 계속 비더라.”
“어? 어, 어떻게 알았어? 나 매번 지적받던 건데.”
나는 놀란 듯 토끼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서하령을 보았다.
‘뭐······ 이 정도 조언은 해도 되겠지.’
“그럼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때?”
하나를 고치면 또 하나의 문제가 생겼고, 그걸 고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역시 잘 모르면서 나서는 거 아니야.’
나는 길게 하품을 하며 연무장에 딸린 건물 밖으로 나왔다.
피곤해 죽어 가는 나와 달리 서하령은 아직도 기운이 펄펄 넘쳤다.
‘검법 시연을 한 건 쟤인데 왜 내가 더 피곤한 거지?’
서하령은 깡충깡충 뛰어가다 나를 돌아봤다.
“내 처소는 이쪽이야! 그럼 잘 가, 내일 봐!”
내일도 보자고?
“어? 으응. 잘 가.”
당황한 속내를 감추며 손을 마주 흔들었다.
그렇게 내 시야에서 서하령이 사라졌을 때였다.
“백리 소저.”
뒤쪽에서 나이 지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깔끔하게 차려입은 노인이 나를 보고 있었다. 계속 건물 밖에서 어른거리던 기운의 주인이었다.
“저는 남궁 세가주를 모시는 노복입니다. 가주님께서 차를 한잔 함께 하자고 하십니다.”
가주라면 남궁무철?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놀라 노복을 바라봤다.
노복이 공손히 말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피곤하시다면 내일 오셔도 됩니다.”
“······아뇨! 괜찮아요. 가죠.”
이대로 돌아가면 궁금증에 잠을 설칠 게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