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4)
84화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됐다. 이제 더 말해 뭐 해? 서로가 부모를 모욕했으니 여기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무림인이니 입으로 떠들 것 없다. 검으로 얘기 하자.”
“뭐?”
내 말이 의외인지 장철과 천위응을 위시한 패거리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지금 비무를 청한 거야?”
장철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너 지금 비무하자고 한 거야?”
“그래.”
“하, 좋아! 받아 주지!”
장철의 입꼬리가 비틀려 올라갔다. 그야말로 악역 꿈나무의 잔악한 미소였다.
나는 저 아이가 벌써 이겼다는 생각에 기뻐하도록 약간의 시간을 두고 말을 이었다.
“누가 나설 거야?”
그러자 악동 패거리들의 시선이 천위응에게 모였다.
천위응이 조호 어린 낯으로 말했다.
“너, 내공 폐인이라 들었는데 어디 검이나 들 수 있겠어?”
“내가 나선다고 한 적 없는데.”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뭐?”
“당연한 거 아냐? 네 입으로 내가 내공 폐인이라 말했잖아. 백도 무림의 자제가 내공 폐인이랑 비무하고 이겼다고 좋아하려는······ 설마 그런 바보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니지?”
천위응이 움찔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기울였다.
“와,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이야?”
“아, 아니거든!”
덩달아 실망하는 듯하던 장철은 천위응을 보곤 다시 턱을 치켜들었다.
저 자신감도 당연했다. 천위응은 키가 나나 야율에 비해 머리 두 개는 컸다.
성인들의 싸움도 아니고 아이들의 싸움. 체격을 결정하는 나이는 절대적이었다. 모두 천위응이 질 거라 생각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장철과 달리, 천위응은 야율을 흘끔거리며 약간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는 야율에게 붙잡혔던 손목도 만지작거렸다. 아마도 붙잡혔을 때 쉽게 뿌리치지 못했던 기억때문일 것이다.
야율의 실력이 꽤 되는 것 같아 걱정하는 속내가 뻔히 보였다.
“야율이 힘이 세긴 하지.’
하지만 힘이 세다 하더라도 야율은 따로 검이나 권법을 배우진 않았다.
미래에 남궁류청과 대등하게 붙을 정도로 재능이 대단하다 한들, 어릴 때부터 검을 쥔 애들과 제대로 붙으면 밀릴 것이 뻔했다.
장철이 소리쳤다.
“그래서! 누구로 할 건데? 네 뒤에 있는 애?”
“얘도 아닌데.”
야율도 악동 패거리도 놀란 눈을 했다.
장철이 소리쳤다.
“뭐 하자는 거야? 너 지금 장난 쳐?”
“기다려 봐. 일행이 올 테니까.”
“시간 끌어 봤자 소용없어!”
“기다려 보라니까 아, 저기 오네.”
때마침이라는 말이 잘 맞았다.
이 모든 시비의 원인, 남궁류청이 서하령과 함께 걸어왔다.
내가 그냥 남궁류청 탓을 하는 게 아니다. 이 주변은 남궁 세가의 영역이었다.
그런데 남궁류청, 혼자 사는 독고다이로 이번이 첫 외출인 남궁세가의 유일한 후계자, 백도 무림의 차세대 주역인 남궁류청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니······.
호랑이가 없으면 여우가 왕이 된다는 말이 있다.
남궁 세가가 없으니 천보문의 천위응, 장가장의 장철 등이 무리를 만들어서 마치 자신들이 이곳의 왕인 것마냥 설치고 다닌 것이었다.
그러니 이 사태는 남궁류청이 끝내는 것이 맞았다.
그래야 쟤네들이 남궁류청 눈치를 보느라 다시는 이곳에서 헛짓거리 하지 않을 것이다.
‘곧 떠나게 될 나와 달리 남궁류청은 계속 이곳에서 지낼 테니까.’
이건 절대 내가 애들이랑 검 들고 쌈박질하기 귀찮아서가아니라, 이치를 따져 생각했을 때그렇다는 것이다.
남궁류청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멀리서도 이 근방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오자마자 물었다.
“무슨 일이야?”
“딱 맞게 왔네. 향유는 잘 샀어?”
서하령이 가볍게 다가왔다.
“응. 샀어. 갔더니 벌써 장사를 접으려고 하지 뭐야. 늦었으면 사저한테 혼날 뻔했어. 근데 무슨 일이야? 줄이 왜 이래? 뭐 구경할 거 있어?”
구경할 거······ 있지. 우리.
계속된 소란으로 나와 악동 패거리를 중심으로 아주 구경꾼까지 몰린 상태였다.
그때 장철이 입을 열었다.
“나, 나, 나, 남궁, 남궁 공자?”
노래 부르는 줄 알았다.
“남궁 곤자라니? 철아, 그게 무슨 소리야?”
서하령이 천위응과 장철을 보곤 인상을 찌푸렸다. 대부분 웃는 낯이던 아이가 질색하는 모습이라 놀랐다.
더 놀라운 건 남궁류청이었다.
장철을 본 남궁류청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장 공자?”
“아는 사이야?”
남궁류청이 잠시 눈을 내리떴다가 말했다.
“외가, 어머님의 9촌 조카야.”
“9촌 조카······?”
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뭐냐, 그거 너랑 나 사이 아냐?”
“······.”
“남이라고.”
“푸핫!”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서하령이 불의의 일격을 당한 것마냥 웃음을 터트렸다.
배를 감싸 안고 웃는 서하령을 남궁류청이 흘겼다. 마지막에 노려보는 건 역시 나였다.
“진짜 짜증 나.”
아직도 웃음이 남은 목소리로 서하령이 물었다.
“쟤네랑 여기서 뭐 해?”
“쟤가, 장 공자가 나한테 대뜸 천것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네 아비 입이 더 천것이라 했지. 더 말해 못 하겠어? 검으로 승부 내자고 했어.”
내 짧은 요약에 서하령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했다.
천것이란 소리를 들었다 할땐 인상이 잔뜩 일그러졌다가, 내가 장 공자 아비가 천것이라 말했다 할 땐 입을 쩍 벌리며 경악했다가 마지막에 웃음기가 싹 사라진 낯으로 천 공자 일행을 보았다.
남궁류청도 비스했다. 날카롭게 치뜬 눈이 서늘함을 뽐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나는 검도 없고, 비무할 몸 상태도 아니니 너흴 기다렸지.”
나는 장철을 돌아봤다.
창백하게 질린 낯이 조금 신기했다.
남궁세가의 명성이 드높고 남궁류청이 천하의 기재로 유명하더라도 보통 저 나이의 사내아이들은 눈앞의 실력을 들이밀기 전엔 믿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장철의 하얗다 못해 퍼렇게 질린 낯은 마치 이미 한 번 두들겨 맞아 본 것 같았다.
천위응이 성큼 다가오며 믿으라는 듯 소리쳤다.
“남궁 공자가 뭐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장철, 뭘 겁먹고 그래? 네가 이렇게 겁쟁이일 줄 몰랐네!”
그래. 보통 천위응같은 반응이 정상이었다.
천위응의 말에 다른 일행들도 살짝 긴장이 풀린 걸처럼 피식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속으로 혀를 찼다.
꼭 바보들은 눈앞에 검을 들이밀어야 정신을 차렸다.
남궁류청이 앞으로 나섰다.
애한테 지금 대체 뭘 시키느냐는 대한민국 상식을 지닌 영혼이 나무랐지만, 여긴 아동 인권이란 단어가 없는 세계였다.
열 살이 새파란 진검을 들고 다녀도 아무런 제지가 없는, 그런 세상이었다.
남궁류청이 익숙한 손길로 검을 뽑아 들었다.
남궁류청과 함께 나오기로 했을 때, 그가 검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대체 어린애가 무슨 검이냐고 불안하게 보았다.
그런데 지금 남궁류청의 뒷모습을 보니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나는 천보문의······.”
자기소개 하는 천위응의 말을 남궁류청이 잘랐다.
“궁금하지 않다. 와라.”
탄식을 불러일으키는 싸가지가 같은 편이 되었을 땐 박수가 절로 나왔다.
‘씁, 살짝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서하령이 남궁류청을 보는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런데 왠지······ 선망이라기보단 질투에 가까운 것 같은데?’
그사이 모욕을 받은 천우응이 펄펄 날뛰며 검을 뽑았다.
“이 자식이! 네가 남궁 세가면 단 줄 알아? 집구석에 박혀서 나오지도 않은 겁쟁이 주제에!”
천위응은 못 해도 열셋에서 열 다섯.
남궁류청은 열 살.
금안으로 보이는 내공을 따졌을 땐 남궁류청이 약간 더 앞섰다.
‘와, 남궁류청 좋은 거 많이 먹고 자랐네.’
자신보다 나이 많은 무가 자제보다 내공이 앞서다니.
이런 차이가 세가라고 불리는 가문의 저력이었다.
그 사실을 모를 천위응이 자신만만하게 선공을 했다.
나는 당황했다.
‘보통 이 정도 나이 차이면 나이 많은 사람이 어린 사람한테 선공을 양보해 주지 않니?’
백도 무림인이라는 것이 무색한 치졸의 극치였다.
천위응의 검은 무게감 있는 중검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정직하게 내려쳤는데, 검격에 담긴 힘이 또래 아이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썩어도 준치. 어릴 적부터 제대로 검을 배운 자의 검격이었다.
천위응과 같은 체격의 아이도 받아 내기 어려울 힘이었다.
하지만 막을 수 없다면······ 안 막으면 된다.
남궁류청은 몸을 크게 틀지도 않았다. 아주 살짝 어깨를 틀어 검을 피했다.
“······미친.”
탄식? 탄성?
아버지가 남궁류청의 검을 피하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몇 번 본 걸 벌써 따라서······.’
그 재능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1격, 2격, 3격.
세 번의 검을 막아 낸 남궁류청이 왼손을 주먹 쥐었다. 어디로 뻗을 것인지 경로가 눈에 보였다.
‘명치.’
상앗빛 내공을 잔뜩 머금은 주먹이 퍽 소리와 함께 천위응의 명치에 제대로 꽂혔다.
“······!”
천위응은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몸을 숙여 웅크렸다.
달그랑. 대신 천위응의 검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했다.
“······.”
“······.”
“다음은 누가 나올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