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83)
83화
* * *
그때 내 발치에 무언가 굴러왔
‘······철전?’
철전은 이곳의 화폐로 쓰는 동전이었다.
‘이게 왜?’
고개를 숙였던 소년이 손바닥을 내보였다.
“너 이 자식, 비겁하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붉은 자국이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
크기가 딱 철전 모양처럼 보이는 게 내 착각인 걸까? 나는 철전을 내 발로 살포시 밟으며 소리쳤다.
“자기 혼자 비명 지르면서 쓰러져 놓고 뭐라는 거야?”
“뭐? 분명 뭔가 내 손을 때렸다고!”
씩씩거리던 소년이 패거리를 향해 물었다.
“쟤가 뭐 던지지 않았어? 던졌지?”
같은 패거리의 소년들이 서로를 보며 수군거렸다.
“나, 나는 못 봤는데. 너 봤어?”
“아니, 나도 못 봤는다.”
“그럼 이게 뭔데!”
소년이 행패 부리듯 소리칠 때였다.
구경하듯 둘러싼 행인들 사이에 누군가 외쳤다.
“거 적당히 해라. 자기보다 어린 애 괴롭히면 쓰나!”
“그래! 작작 좀 해라!”
“저 망할 것들 정말 매일 소란이야!”
그 뒤로도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혀, 형.”
몰아가는 분위기에 겁이 난 듯 제일 키가 작은 아이가 소년의 옷자락을 잡았다. 소년의 눈동자도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때 뒤쪽의 다른 소년이 소리쳤다.
“시끄러워! 뭐 날아오는 거 똑똑히 봤거든! 저 여자애가 아니면 다른 놈이 던졌겠지! 누구야! 당장 나와! 장가장의 이름을 걸고 가만두지 않겠어!”
그리고 난 단어에서 익숙함을 느꼈다.
‘장가장?’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인물이 있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런데 꼭 아니겠지 하면 맞던데······.’
소년이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노려보자 한마디씩 던지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대신 목소리를 낯춘 채 수군거렸다.
“저 녀석 장가장에서도 내놓은 아들이라고······.”
“장가장이 그래도 근방의 유진데 괜히 걸리면 귀찮으이.”
“장가장주 아들이 성질머리가 고약하기로 유명······.”
불만에 차 수군거리긴 했지만 대놓고 야유하는 자들은 사라졌다. 그리고 왠지 수군거리는 말들을 들을 수록 내가 떠올린 인물이 맞는 것 같았다.
장가장의 아이가 키 큰 소년을 불렀다.
“형, 잠깐 이리······.”
나는 그 틈을 타 야율을 살폈다.
잠시 눈빛이 돌았던 때에 비하면 진정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차분한 표정 너머 눈빛은 당장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처럼 위협적이었다.
나는 야율의 꽉 쥔 손들을 토닥였다.
그때 다시 철전에 처맞았던 아이가 나섰다. 가장 덩치가 큰 것이 패거리의 행동대장 격인 모양이었다.
“너, 어느 집안 자제지? 이름이 뭐야?”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인상을 찡그리다 장가장 아이의 시선에 깨달았다.
‘내 옷차림 때문이군.’
야율의 차림이 나쁜 건 아니었다. 옷감 자체는 좋았지만, 장식이 없어서 양갓집 자제 정도였다.
하지만 그에 비하면 내 옷차림은 꽤 화려했다. 내 취향은 아니고······ 소부인의 성의가 담뿍 담긴 선물이었다.
처소에서는 너무 화려해서 입지 않았다. 흰털 장식이 잔뜩 달린 외투라니. 대체 왜 애 옷에 흰색을 쓰냔 말이다.
하지만 선물을 너무 내버려 두는 것도 무례같아 외출하는 김에 입고 나온 상태였다.
그런 내 차림새를 장가장의 아이가 알아본 모양이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내 모습을 어찌 여겼는지, 패거리가 한마디씩 뱉었다.
“왜 저리 머뭇거려?”
“왜 말이 없어? 철이 말이 틀린 거아냐?”
“사실 별 볼일 없는 천것······.”
나는 다시 튀어 나가려는 야율의 팔을 붙잡고 말했다.
“백리 세가의 백리연.”
곧장 놀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백리 세가?”
“천하 십일강 백리패혁······.”
“아니, 백리 세가가 왜 여깄어?”
놀란 소년들이 서로 쑥덕대는 소리가 들렸다.
“부친의 성함은
‘의’ 자, ‘강’ 자 이시지.”
나는 옷자락을 털고 함부로 입을 놀린 아이를 노려보았다.
“천것이라고 한 녀석 누구야?”
“······.”
입술 달라붙은 것마냥 조용했다.
나는 살짝 떨리는 손을 숨겼다.
아버지의 배경을 파는 건 난생 처음이었다.
회귀전에는 누군가 내게 아버지의 이름을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라면 아버지 성함을 먼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그래도 모든 사람이 나를 알았지만, 내 입으로 밝힌 경우는 정식으로 소개하는 자리 말고서야 없었다.
그때 떨리는 손을 감싸 쥐는 뜨거운 온기가 느껴졌다.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았다.
“혀, 형.”
패거리 중 한 명의 중얼거림에 덩치 큰 소년이 당혹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배, 백리 세가 소저라니.”
갑자기 정중해진 어조였다. 재빠른 태세 전환에 허탈감이 밀려왔다.
소년이 포권지례하며 인사했다.
“나는 천보문의 천위응이오.”
천보문.
들어 본 적 있었다. 원래 알던 건 아니고 서하령과 잡담하다 나온 문파였다.
‘근방의 꽤 세가 큰 백도 문파라고 들었는데······.’
천위응을 시작으로 허둥거리며 한 명씩 자기소개를 했다.
천것이라고 한 녀석의 가문은 들어 본 적 없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장가장의 장철.”
장철.
역시 그놈이 맞았다. 소설 속 남궁류청을 자잘하게 괴롭히던 악역 조연이었다.
‘와, 여기서 이렇게 만나네.’
어린아이지만 벌써 얼굴에 심술궂음이 잔뜩 묻어 나왔다.
천우응이 떨떠름함을 감추지 못한 채 사과했다.
“그, 소저를 알아보지 못하고 소란 피운 건 미안하게 됐소.”
머리 좀 컸다고 어른의 말투를 따라 하고 있었다.
‘남궁류청이 저럴 땐 귀여웠는데 저 놈이 그러니 왜이렇게 중2병 걸린 것 같고 소름 돋지?’
역시 말투도 외모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분명했다.
천위응은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표정이었다.
“그,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
그때였다.
뭘 하는지 홀로 생각에 잠겨 있던 장철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형, 쫄지 마.”
“철아, 너 갑자기 왜 그래?”
천위응은 내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나 기억났어.”
“뭘?”
장철의 얼굴엔 비웃음이 가득했다.
“백리 대협께 내공 폐인이 된 딸이 하나 있다고 들었거든. 그게 쟤야.”
나는 깨달았다.
이 녀석은 악역 조연이 문제가 아니라, 어릴 적부터 그냥 싹수가 노란 아이라는 걸.
“뭐? 내공 폐인?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아빠한테 들었어!
백리 대협이 갑자기 웬 계집애를 딸이라고 데려왔는데, 심지어 주화입마에 빠져서 내공 폐인 됐대. 반편이라고!”
실실 웃는 얼굴은 신난 기색이 역력했다.
“내공······ 폐인이라고?”
순식간에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한심, 경멸, 깔보는 느낌이 어렸다.
아주 익숙한 느낌이었다.
아플 정도로 내 손을 꽉 쥐는 뜨거운 손이 느껴지지 않았다면, 정말 회귀한 게 맞는지 의심했을 정도였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하, 이래서 문제라니까.무림인들은 내공이 없으면 사람 취급을 안 해요.”
또다시 태세 전환한 천위응이 내게 눈을 부라렸다.
“어디 내공 폐인 주제에 잘난 척······.”
나는 천위응의 말을 대충 자르며 말했다.
“자기네들이 물어보길래 이름도 알려 주고 집안도 알려 줬는데 잘난 척이라네.”
천위응은 순간 말문이 막힌 듯 했다.
나는 말을 이어 나갔다.
“그리고. 너희 말대로 내가 내공 폐인이면 너넨 지금 무공도 못 배우는 일반인을 핍박하는 거 아냐? 장가자이 어딘진 모르겠는데, 백도가 아니라 흑도였어?”
사실 뭐 백리 성을 받은 이상 일반인은 아니지만, 애들 머리로 이걸 따지고 들 논리는 없을 터였다.
역시나 천위응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는 듯 입만 뻐끔거렸다.
장철이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이익······! 너,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르는 천것 주제에 감히 우리 집을 모욕해?”
너무 수준이 낮은 말이라 그런지 화도 나지 않고 오히려 피식 웃음이 터졌다.
“글쎄. 네 아비 말이 천박하기 그지없는데 천것은 네 아버지 아닌지?”
“뭐, 뭐라고!”
“하긴 새치기할 때부터 알아봤어. 아비 수준이 그 모양이니 자식도 같지.”
장철은 정신이 혼미한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