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God of Magic RAW novel - Chapter 167
167
“결혼은 어머니의 소관이에요. 난 간섭할 생각 없습니다.”
헤르첼로이데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하긴, 피오르델리케 모신의 생각도 이해는 가지. 정략결혼이 연애결혼보다 훨씬 가정을 유지할 확률이 크니까.”
세상은 괴물이 없어도 안전하지 못했다.
나라끼리는 물론, 한 나라의 이웃 영지들도 서로 죽고 죽였다.
그러니, 싸움을 그만두거나 동맹을 맺으려면, 보통 방식으로는 안 되었다. 정략결혼으로, 피를 섞어 버리는 방식이 제일 확고했다. 심지어 그마저도 소용없어서, 한 가족을 인질로 삼는 일도 자주 있었으니까.
이 정략결혼은 비단 왕족이나 귀족만의 일이 아니었다.
세상이 위험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영주의 소유니, 웬만해선 태어난 곳에 그대로 머물러, 자손 대대로 가업을 물려받았다. 고향을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떠나지 못한 이들도 많았다.
물리적 이동이 힘드니, 신분 간 이동이나 직업 간 이동도 힘들었다.
예를 들어, 장인들은 같은 길드 소속끼리의 혼사를 선호했다. 그들의 딸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와 직업이 같은 남자와 결혼하도록 정해진 셈이었다. 즉, 아버지의 도제. 그래야, 작업장이 대대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까.
“정략결혼을 깨뜨리는 사람이 없다는 건 인정해.”
당연하다. 평민이라면,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진다. 왕족은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그들은 이혼이나 재혼을 해도, 역시 정략결혼이고. 그러니 상대가 바람을 피건 무슨 짓을 하건, 참고 살기 마련이다.
“연애결혼이 정략결혼보다는 변덕스럽다는 점도 인정해.”
역시 당연했다. 정략결혼에서는 사랑이 없으니까, 기대도 없다. 바람은 피워도 이혼은 하지 않는다. 작업장 상속부터 국가 간 동맹까지 복잡한 계약을 깨면, 그들도 피해가 크니까.
하지만 연애결혼은 훨씬 파국의 위험이 컸다. 그야 정략결혼한 부부도, 전쟁이 나면 인질과 인질범이 되지만, 최소한 그 전엔 서로 소가 닭 보듯 했다.
반면, 연애결혼한 부부는, 질투에 휩싸여 배우자와 배우자의 바람 상대와 자기 자신과 친자식을 해치기도 했다. 설령 금슬이 좋아도, 주변에서 가만있지 않았다.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살해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크게 노하였다. 어머니가 연애결혼보다 정략결혼을 선호하게 된 이유였다. 가정과 결혼을 더 잘 유지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연애결혼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결혼과 가정의 여신이 다른 결혼을 더 선호하고 장려한다면, 당연히 영향을 끼칠 수밖에.
“나는 다만, 연애결혼도 정략결혼처럼 잘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을 뿐이야.”
“이제 와서 무슨 수로요?”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되물었다.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으로서는,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결혼하지 못하는 일을 혐오할 법도 했다. 혹은 결혼이 사랑의 장애물이 되는 일을.
그래서 헤르첼로이데 여신은 새로운 문화를 고안해 냈다.
바로 궁정 연애. 귀부인과 기사의 뜨거운 사랑.
영혼의 사랑이라지만, 가끔은 “더 말할 수 없는” 수사학의 저 너머까지, 창을 꼬나 쥔 기사가 용맹하게 전진한다는 암시를 풀풀 풍기는 사랑.
-과거에는 무훈시에 등장하는 귀부인이라면 당연히 기사의 아내였는데, 이제는 군주의 아내가 되었지. 왕비들이 전부 전자의 작품보다 후자의 작품을 쓰는 음유 시인들을 후원하니까.
라프트레이 형이 냉철하게 지적했듯.
궁정 연애 이전에도 불륜은 있었고, 이후에도 있을 것이다. 어머니 모신도 이를 안다.
하지만 궁정 연애는 불륜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었다.
운명이 맺어 놓은 연인들,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버리는 연인들은 아름답고, 결혼은 그들의 장애물로 그려졌다.
-사랑이 아니라 결혼이 운명이어야지! 이 타락한 이들이 결혼을 타락시키는구나!
어머니는 더 크게 분노했다.
심지어 이 궁정 연애는 부유한 평민들에게까지 퍼져 나가서, 자신들을 비련의 왕비와 기사라고 생각하며 그들처럼 행동하는 이들도 늘어났다.
“연애와 결혼의 거리가 멀어진 데는, 당신의 탓도 있어요.”
“인정하니까, 지금 너와 이야기하고 있잖아?”
헤르첼로이데는 무슨 말을 하건,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 게 다 티 났다. 그런데 그래도 아름다웠다.
“나와 말해 봤자 무슨 소용이죠? 어머니와 이야기해야죠. 결혼이건 사랑이건 내 영역이 아니에요.”
“당연히 너와 이야기해야지. 너라면 사람이 행복해질 가능성을 외면하지 않을 테니까.”
“연애결혼 못 한다고 동반 자살한 사람들이, 정략결혼으로 헤어졌지만 얼마 후에 서로 다른 연인을 만나는 사람들보다 과연 더 행복할까요? 그리고 내가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들의 죄를 용납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더더욱 사람들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지 않겠어? 연애결혼도 많아져야, 정략결혼만 한 안정성을 이룰 수 있잖아.”
“그건 당신이 어머니와 의논해서 할 일이죠. 나완 상관없어요.”
“너는 여기, 이자벨 메데커의 초청을 받고 왔지. 나는 그 여자를 아주 관심 있게 보고 있어. 그 여자는 귀족에게도 쉽지 않은 정략결혼을 제법 잘 성공시켰거든. 자신이건 자식들이건.”
“어머니의 가호를 받아서겠죠.”
“그런데, 이번엔 진짜 큰 정략결혼을 노리나 보지? 그래서 피오르델리케 모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인 네게 도움을 청한 거고?”
“사업상 문제예요.”
“그렇겠지. 사업도 잘되고 결혼도 잘되고, 그게 그 여자가 가문을 그만큼 일으켜 세운 비결이니까. 어느 한쪽만 잘한 가문보다 훨씬 빠르게.”
“이야기는 들었고, 대답은 거절이에요.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축하가 늦었네. 발라흐의 수호신이 된 일을 축하해, 테오파노.”
순간, 다시 노여움이 치밀었다.
엘라디안 누나와 라비크의 사랑을, 사랑의 여신이 모를 리 없었다. 누나는 자신이 아버지의 도발에 넘어갔다고 여기지만 사랑의 여신이 관여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누나가 인정할 리는 없지만.
“고맙군요, 헤르첼로이데.”
나는 싸늘하게 말했다. 헤르첼로이데는 환하게 웃었다.
“마리우스라, 젊고 잘생기고 용맹한 국왕이라니. 연애의 대상으로나 결혼의 대상으로나 최고야. 바로 너처럼, 테오파노.”
“내 조카를 건드리면 가만있지 않겠어요.”
“네가 그렇게 아끼는 조카가, 사랑과 결혼 모두 결실을 맺어 행복해지길 바라지 않아? 부모와는 달리.”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헤르첼로이데가 나를 가련한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내가 그녀를 배신하기라도 한 듯.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도발적인 미인이었다가, 처연한 미인이었다가, 화사했다가 애잔했다가, 사랑의 여신부터가 대화 중에도 이렇게 수십 번 바뀌는데, 연애결혼의 변덕이 심한 거야 당연하지!
“벌써 가려고? 서운하지만 축하의 뜻으로 선물을 줄게.”
“거절합니다.”
“거절하기 힘든 귀한 선물인데도? 나의 권능이야. 단 한 번이지만, 네게 빌려줄게.”
나는 그만 입술을 깨물었다.
헤르첼로이데는, 사람들을 서로 사랑하게 하는 사랑의 권능을 내게 빌려주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사랑의 여신이 미친 걸까.
“너 아닌 다른 신에게는 제의한 적도 없어. 스카텔란에게마저도.”
절대 쓰면 안 되는 선물이다. 절대 유혹에 넘어가면 안 돼.
“그럼 스카텔란 형에게 줘요.”
그렇게 말한 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 나왔다. 그럼에도 도망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우리가 일어나자, 아무도 없었다. 헤르첼로이데 여신은 물론, 내 사도들을 반가이 맞이했던 사랑의 사도들도.
“다들 어디 간 거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한 명도 없어요.”
파비안과 프라비타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우리가 묵었던 금실로 짠 천막이며, 자수를 놓은 비단 침구에 보석을 박은 향로, 금은의 잔과 그릇이며, 모든 게 그대로인데, 밤을 함께 보냈던 사람들만 간 곳 없이 사라졌으니까.
“무슨 일이 난 게 분명합니다.”
“괴물의 습격이 아닐까요? 사랑의 여신과 그 사도들은 무사할까요?”
레오파라와 아타울프도 긴장해서 검을 빼 들었다. 렉스도 시무룩해서 말했다.
-내가 찾아봤는데, 아무도 없어.
내가 한숨 쉬며 대답했다.
“이것이 사랑이다.”
“네?”
“사랑이 깊으면, 다음 날이 와도 떠나지 않지. 밤을 보냈듯 아침도 보낸다. 하지만, 막 시작하는 사랑, 아직 사랑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감정이라면 그렇지 않지. 그리하여 자취도 없이 떠나간 사랑의 씨앗을 그리워하고 갈망한 나머지, 다시 만날 때까지 찾고 또 찾게 된다.”
사도들이 눈을 깜박이며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데, 헛소리를 해서 미안할 지경이었다. 또 나만 나쁜 놈이 된 기분이었다. 헤르첼로이데의 가르침을 그대로 읊었을 뿐인데.
“나, 낭만적이군요…….”
억지로라도 좋게 말해 주는 아타울프가 너무 착해서 눈물이 날 뻔했다.
“낭만은 무슨! 잠깐만요, 저는 실제로 같이, 바, 밤을 보내지 않았어요. 그, 그런 의미로는요! 저, 저는 지, 진짜 아니에요!”
얼굴이 새빨개진 파비안이 펄쩍 뛰었다. 프라비타도 억울해했다.
“저도요! 진짜, 실제로 잤으면 억울하지나 않죠!”
“야,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자긴 누구랑 자는데? 말 다 했어?”
“네가 뭔 참견인데? 별꼴이야, 아타울프!”
“왜 어제 마음에 둔 사랑의 사도라도 있었는데, 놓쳐서 안타깝냐? 그럼 쫓아가든지!”
안 돼, 쫓아가면 그게 바로 그들이 바라는 거라고!
“둘 다 헛소리 작작해! 다음에 사랑의 사도들 만나면 정신 똑바로 차려!”
-레오파라는 왜 그렇게 소리 질러 대? 시끄러워.
“렉스 말이 맞아요. 왜 소리 질러요? 난 그 사람들 다시 만나면 아는 체도 안 할 거예요! 진짜 아무 일도 없었는데, 말도 안 하고 가 버리고, 너무해요!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어야 했다면 미리 언질이라도 주든가요!”
허망한 기분에 휩싸여 애달픈 가슴을 태우며, 그 사이 좋던 내 사도들은 싸우고…….
그냥 내가 사랑과 미의 여신과 대판 싸워서, 여신이 앙갚음하는 거라고 말할 걸 그랬다. 그 편이 차라리 낫지. 우리 형도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할 수도 없고.
나는 이것이 본래 사랑의 여신이 만나고 헤어지는 방식이며, 사랑의 신비와 애틋함을 나타내는 그녀만의 불가해한 표현이라고 애써 설명했다.
우리가 잘못한 건 없고, 이렇게 했건 저렇게 했건 결과는 같았으리라고 강조하면서. 누구나 그들과 깊은 사이가 되기 전에는 겪는 일이라고.
“그런 식이면, 만일 어제 우리 중 그들과 진짜 연인인 사람이 있었다면, 그러니까 하룻밤만의 사이가 아니라요. 그 사람은 뒤에 남기라도 하나요? 자기 교와 떨어져서라도?”
“바로 그렇다.”
회의 어린 눈으로 물어본 프라비타는 내 대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진짜, 관심이 아주 끈질기네. 궁금한 것도 많아.”
“닥쳐.”
“둘 다 닥쳐.”
“너나 닥쳐.”
“테오파노 님, 죄송하지만, 하나도 이해 가지 않아요…….”
파비안이 풀 죽어서 말했다.
“그게 정상이다. 사랑을 이해하려 드는 순간, 파멸의 지름길이다.”
“사랑의 명언이네요. 테오파노 님, 사랑의 여신과 영역 다툼을 벌이셔서, 사랑의 신이 되셔요. 그리고 다음엔 우리가 먼저 사라지는 거예요. 그것도 한밤중에!”
프라비타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사도가 미친 게 분명했다. 이게 다 헤르첼로이데의 잘못이었다.
“난 사랑의 신이 되기 싫다.”
“저도 싫습니다. 절대로 사랑의 신은 하지 마세요.”
“네가 뭐라고 반대하는데, 레오파라?”
우리 교는 그렇게 싸우고 투덜대고 짜증 내면서, 라트랑에 도착했다. 마치 사랑에 단체로 실연당한 느낌이라서 정말로 짜증났다.
다들 이미 불쾌한 기분으로 라트랑의 성문을 통과하는데, 거기서도 불쾌한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