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0)
Chapter 169 – 169. 가족의 시간
얘기 좀 하자.
저 말을 들었던 게 얼마나 먼 과거였는지 기억도 안 난다는 것에 데이우스는 자신의 처지를 실감한다.
좋은 말로는 마음 가는 대로, 나쁘게 말하면 막 살아가던 데이우스를 가문에서는 포기했었으니까.
다리우스는 사고만 치지 말고 브라이트 가문의 여식과 결혼하라는 말만 가끔 경고하듯 반복했을 뿐이고.
데이아는 일말의 시선조차 주지 않으며 혹시라도 같은 공간에 있으면 바로 역겹다 화를 냈었다.
당시의 자신이 그런 데이아의 반응에 감정적이고 퇴폐적으로 대응했던 것을 떠올리자 모래처럼 까칠한 후회가 밀려 들어왔다.
“오른손은 좀 괜찮나?”
상투적인 질문일 수도 있는 시작이었다. 이제는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데이우스의 오른손.
텅 빈 부분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데이우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는 살짝 욱신거리는 정도야.”
그 답에 또 잠깐의 침묵이 있었으나 결국 다리우스는 다시 질문을 이어간다.
“네가 진짜 데이우스 베르디라 이거지.”
“……어.”
짧게 답했으나 그것만으로도 이미 김신우와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느껴졌기에 다리우스는 쓴 숨소리를 내뿜으며 두꺼운 손으로 눈가를 쓸어 넘긴다.
“그래, 어쩐지 너무 갑자기 변했다 싶었다.”
이미 데이아에게 모든 상황을 전해 들은 다리우스. 그가 무슨 반응을 보일지 데이아조차 가늠이 되지 않았기에 우선은 입을 다문 채로 상황을 지켜본다.
“너는 이미…… 죽은 거냐.”
묵직하게 떨어지는 질문.
그 한마디만으로도 어찌나 서글펐는지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어, 어… 맞아.”
내뱉어지는 울먹이는 목소리.
자신의 처지가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자책이 담긴 한숨.
“어째서?”
다리우스답지 않은 차분함.
아니, 그것은 차분함이라는 가면으로 위장한 애처로움과 슬픔이었다.
“모, 모르겠어. 잠들기 전에 약…을 하기도 했고. 술도 마시고, 또…….”
여러 이유가 나열된다.
이렇게 보니 지금까지 죽지 않은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나.
그러한 말 하나하나를 들을수록 다리우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
정신없이 내뱉은 이유들을 다 듣자 다리우스는 한숨조차 내뱉지 못한다. 그저 그늘진 얼굴로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볼 뿐.
그러다 자연스럽게 데이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왜 나한테 숨겼지.”
“알아서 뭐 하려고.”
“뭐?”
팔짱을 낀 데이아는 노기를 감추지 못하는 다리우스를 상대로도 조금의 물러섬이 없었다.
“그걸 말해봤자, 저놈이 돌아와? 어차피 뒤진 놈이잖아. 근데 뒤지지 않은 것처럼 만들 수 있잖아. 당시에 쟤 죽었다고 브라이트 가문에 말하면 우리가 얼마나 곤란해지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
“데이아!”
다리우스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오며 해선 안 될 말을 내뱉은 데이아를 꾸짖지만 여전히 데이아는 물러섬이 없었다.
“뭐! 너도 좋았잖아! 그 멍청이가! 우리 가족도 아니면서, 내 오빠도 아니면서! 그러면서도 오빠보다 훨씬 나를 챙겨준 그 사람이!”
“…….”
“약에 취했든, 술에 꼴았든, 감정적으로 굴었든. 자기 핏줄한테 관계나 한번 하자면서 매일 여자 신음이나 저택에 울려대던 저 씨발놈보다!”
분을 참지 못한 데이아가 주먹을 꽉 쥔 채로 높게 치켜올렸으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듯 천천히 다시 내린다.
“훨씬, 훨씬 좋았어.”
푹 숙인 고개.
그 밑으로 떨어지는 눈물방울.
발치를 적시는 눈물과 함께 데이아는 아이처럼 흐느꼈다.
“돌려내, 개새끼야. 그 사람을. 내 진짜 오빠를…… 다시 돌려내라고.”
“…….”
“도와주러 왔다고? 그 사람을 위해서라고? 지랄하지 마. 이제야 점차 잊고 있었는데, 네 얼굴을 보면 싫고 역겨운 점보다 좋은 점이 먼저 떠오르고 있었는데.”
눈물을 닦으며 붉어진 눈으로 데이아는 그를 노려본다.
“너 같은 새끼, 필요 없어.”
어떤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다리우스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왔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남성혐오는 데이우스가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예전이었다면 바로 욕설을 날리며 더욱 음담패설이나 내뱉었을 데이우스였으나.
그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더니 땅에 머리를 박았다.
“죄송합니다.”
“……!”
데이아의 눈이 바들바들 떨려온다. 자신이 알던 데이우스는 절대로 남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할 인물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죽음의 문턱.
자신의 최후를 받아들이고.
김신우의 배웅을 받으며 마지막에서야 타인을 위한 결정을 했던 데이우스는 조금 변해있었다.
“지, 랄.”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가 그걸 받아들일 수 있냐는 건 당연하지만 아니었다.
이를 으득 물며, 데이아는 분을 다시금 토해내려 했으나 바닥을 타고 데이우스의 목소리가 방을 울려온다.
“나는 이미 죽었어. 하지만 떠나기 전에 가족을 위해서 뭐라도 하나 할 수 있게 해줘.”
“…….”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네가 원했던 그 사람을 위함이니까.”
“씨이……발.”
당장 꺼지라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김신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죽었던 데이우스를 다시 깨울 정도로 심각한 사안이겠지.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이해하지 못한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고 오르지만.
“네가…….”
천천히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쥔 데이아는 고개를 높게 치켜들며 눈물을 감춘다.
“나한테 준 상처들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거야.”
너무 많은 상처를 받았다.
가족이라는 너무 가까운 사이였기에 그 날선 말들과 행동들이 피할 곳 없이 날아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짙은 상처는 절대로 치유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위에.”
그러한 깊은 상처들 위로.
새로운 목소리와 기억이 덧씌워진다.
– 매일 5분만, 내게 다오.
변화된 자신을 보여주겠다며 5분만 달라던 그때가 시작이었다.
– 반대다. 내가, 데이우스의 몸을 차지한 거다.
거짓말하지 말라던 요구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던 남자.
– 그는 불쌍한 사람이었으나, 동정받을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도 최후에는 자신의 삶을 후회하면서 떠나갔다.
진짜 데이우스 베르디의 최후에 대해서 알려줬으나 그 말에도 자신을 향한 배려가 담겨 있었다.
– 너는 원치 않을 수도 있으나, 나는 네가 자랑스럽게 여길 오빠가 되기 위해 노력할 거다.
그는 알고 있을까?
예전에 함께 그레이폰드에서 식사를 했을 때 받았던 곰 인형 열쇠고리를, 실은 굉장히 소중하게 지니고 있다는걸.
“그 사람의 추억이 덮어졌으니까. 나는 너 같은 거. 용서도, 증오도, 부정도 하지 않고.”
“…….”
“잊겠어. 그게 내가 과거를 이겨내는 방법이야.”
그것만으로도.
데이우스에게는 충분히 감사한 일이었으나 입으로 내뱉진 않았다.
자신에겐 그럴 자격이 없으며, 데이아 또한 대답을 듣는 걸 원치 않았을 것이다.
이미 일그러진 관계에 대한 종지부.
서로 나름의 해답을 내놓은 걸 보며 다리우스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천천히 데이우스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툭 얹는다.
“데이아에게 네가 한 일은 분명, 용서받지 못할 일이겠지.”
“…….”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린 데이우스와 눈을 맞춘 다리우스.
“하지만 내가 너에게 한 일도 장남으로서 책임감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었다.”
“형, 님.”
“너를 옳은 길로 이끌지 못해서 미안했다.”
장남임에도 망가질 대로 망가진 동생을 보고 싶지 않다며 무시해왔던 과거를 뒤돌아보며 다리우스는 사죄를 건넨다.
“크으윽!”
눈물을 쏟아내는 남동생을 안아주는 장남을 보며 데이아는 천천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자신과 데이우스의 관계는 종지부를 찍었다고 해도 장남인 다리우스와 데이우스의 사이에 끼어들 생각은 없었다.
밖으로 나와, 문 옆 벽에 기대어 팔짱을 낀 채로 잠시 기다리는 데이아.
이럴 때 핀덴아이였으면 연초를 입에 물고 있었겠지.
시간 때우기엔 나름 적절하겠구나 싶은 마음에 팔짱을 낀 상태로 있다 보니 방 밖으로 다리우스가 나선다.
그는 데이아를 보더니 잠시 멈칫하면서도 어떤 일 때문에 기다리고 있었는지 바로 눈치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무엇을 말이냐.”
이미 알면서 되물어오는 반응에 데이아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걔 흉내 내지 마.”
“크흠.”
김신우를 따라한 걸 바로 들킨 다리우스는 어색하게 헛기침하며 고개를 휙 돌렸고 데이아는 계속 쏘아붙이듯 물어온다.
“네가 쟤를 남동생으로 인정했든 뭐든 상관없어. 나한테 둘째 오빠는 그 사람 하나밖에 없어.”
“…….”
“네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야.”
데이아의 당돌한 선언에 다리우스는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다 피식 웃으며 머리에 손을 얹고는 쓰다듬어준다.
“뭐 하는 거야!”
갑작스런 손길에 확 짜증내며 툴툴거리는 데이아였으나 그렇다고 손을 밀어내진 않았다.
“아니, 우습지.”
“뭐가.”
“이 나이 먹고 남동생이 하나 더 생기다니 말이야.”
“그 말은…….”
“왜 내 아우 놈들은 하나 같이 평범하지 않은지.”
데이아의 머리에서 손을 뗀 다리우스는 무언가 흐뭇한 미소를 그리며 답했다.
“네 반이라도 좀 닮았으면 걱정거리가 줄 텐데 말이야.”
단단한 한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가는 다리우스.
그 뒷모습을 보며 데이아는 처음으로.
“우리는 가족이다.”
듬직하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데, 데이아! 이거 어떻게 하지?!”
자신의 집무실로 클락 공화국에서 보내온 초대장을 호들갑스럽게 가져온 게 아니었다면.
장남도 이제는 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텐데.
“어떻게 너는 분위기 잡는 게 반나절을 못 가냐.”
“크, 크흠!”
다리우스는 헛기침하며 억지로 못 들은 척했고 그런 데이아는 공화국의 초대장을 낚아채곤 확인한다.
“평화 협정을 위한 연회?”
그리핀 왕국과 클락 공화국의 틀어진 사이를 다시 되돌리기 위한 연회.
이번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위령사 데이우스 베르디를 초청하는 초대장.
그걸 본 데이아의 머리에 두통이 차오름을 느낀다.
“왜 이걸 왕실로 안 보내고 우리한테 직통으로 보내.”
“애초에 데이우스가 죽은 걸로 알고 있을 텐데?!”
다리우스의 말도 맞다. 이 기괴한 의미를 지닌 초대장이 클락 공화국의 일면을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하아, 바로 왕실 쪽에 연락해 봐. 이거 공화국 새끼들이 무슨 술수를 부리려는 것 같으니까.”
“알았다!”
“그리고 좀! 이 새끼야! 방금까지 묵직하게 멋있었으면 적어도 하루는 그 이미지를 유지하려는 노력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마지막은 푸념을 쏟아내는 데이아였으나 다리우스는 이미 그 외침을 무시하며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간 후였다.
“어휴.”
사적인 복잡한 고민을 이어갈 시간을 주지 않는다. 묵직하게 손에 잡힌 연회 초대장을 내려 보며 데이아는 다시금 질끈 눈을 감았다.
전 대륙에서 그리핀과 클락으로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
이걸 무시하는 건 저쪽에서 먼저 고개 숙이며 내민 평화의 손길을 무시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참석하기만 해도 많은 이점이 있을 수 있다.’
클락 공화국 측에서 무슨 꿍꿍이인지 몰라도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거니까.
또한 타 국가들에게 클락 공화국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식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석연치 않은 부분은.’
이 시기에 갑자기 고개 숙이며 연회를 벌인다는 것.
게다가 왕국 측이 아닌 베르디 가문으로 직접 초대장을 보낸 것.
또한 이미 죽은 걸로 알고 있을 데이우스 베르디를 초대한 것.
그 모든 걸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는 데이아는 초대장 끝에 적힌 문구에 눈이 간다.
언제부터 적혀 있었는지 모를.
유려한 필기체로 적혀 있는 것이 묘한 압박감을 선사한다.
– 가져가신 물건 반환하시길 바랍니다.
“물건?”
뭔가 가져온 게 있나 싶어서 잠시 고민하던 데이아는 바로 인상을 와락 구긴다.
하마터면 초대장을 구기는 실수를 할 뻔했다.
“성녀의 왼손을 돌려달라고?”
데이우스가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회수했던 전직 성녀 스텔라의 왼손에 대한 반환을 저쪽에서 요구해오고 있었다.
“하아.”
상황이 복잡하게 흘러감을 인지한 데이아는 한숨이 내쉬어진다.
클락 공화국에 대한 데이아 개인의 감상은 솔직함에 솔직함을 더해보자면.
좆같았지만.
그리핀 왕국 입장에서는 클락 공화국까지 적대적인 입장으로 둘 수는 없었다.
마리아스 대삼림 사건을 통해서 그 사막의 왕국인 제르만에서도 이쪽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음을 알게 됐으니까.
양쪽에서 협공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기에 그리핀은 우선 클락과 다시 중립적인 위치를 되찾는 게 급선무.
그렇다면 그냥 쿨하게 왼손도 돌려주고 위령사도 가서 연회에 참석하며 서로 평화적으로 가자고 하는 게 좋겠지만.
문제는.
“하아아아아!”
지금의 데이우스 베르디는 위령사가 아니지 않은가.
“저 등신한테 공화국 다녀오라고 할 수도 없잖아아!”
저쪽에서는 죽은 줄 알고 있는 데이우스 베르디가 연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을 텐데.
“개자식아아.”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천장을 바라보는 데이아는 그리움을 담아 중얼거린다.
“언제 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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