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Necromanc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55)
Chapter 54 – 54. 폭풍전야
며칠 동안 왕실에 머물면서 맥을 만들기 위한 연구에 한창이었다.
왕국의 마법사들은 확실히 뛰어난 인재들인지라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성과가 나오고 있었는데.
마법사라는 특성상 미지를 향한 지적 호기심이 상당하기 때문에 따로 재촉하지 않아도 그들은 늘 연구실에 상주하며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었다.
미지를 개척한다는 만족도와는 별개로 국왕인 오르페우스가 이번 일을 해결하면 큰 상을 내리겠다 언급한 약속 또한 그들의 열정에 한 몫 단단히 했다.
나 역시 최대한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수준 높은 마법사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지식을 흡수할 수 있는 아주 귀한 시간이었으니까.
“일단은 이렇게 개념을 잡고 가는 게 어떨까요?”
연구실 중앙에 거대한 마나로 이루어진 맥의 형상이 띄워져 있다.
코끼리의 코를 가지고 있으며, 몸통은 마치 곰처럼 두껍고 듬직하다.
발톱은 범의 것처럼 날카로운 것이 인상적이고, 눈동자는 탐스럽게 뭔가를 찾고 있는 듯 보였다.
“좋군. 이렇게 가도록 하지.”
내가 알고 있는 맥의 개념과 거의 완벽할 정도로 흡사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이성적인 결과를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연구원 전체가 동일한 개념을 잡고, 동일한 요괴를 바라면서 나아가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내 대답에 몇몇 마법사들은 환호하며 작업을 다시 착수하기 시작했다.
이제 제대로 된 맥의 세분화된 설정을 짜기 위한 회의에 들어가야 했다.
악몽을 찾을 때 사용하는 코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꿈을 먹는 방식은 무엇이며, 먹은 꿈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말 그대로 창조 행위와 다름없는 영역이었기에 마법사들은 긴장하면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으나.
“데이우스!”
연구실 문이 열리며 들어온 엘레노아 공주. 그녀는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회의를 준비하려던 마법사들은 익숙하게 찾아온 쉬는 시간에 피로한 눈을 꾹꾹 누르거나, 커피를 홀짝거린다.
“현실이지?”
내가 몇 번이나 이 질문을 들으면서 느낀 게 꽤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하게 깨달은 건 공주가 흥미를 가지는 분야에 대해서였다.
“크롱. 저번에 말씀드렸던 팽귄의 친구로 몸이 녹색인 공룡입니다.”
“으음? 몸이 녹색인 공룡이라는 건 저번에 말했던 둘리 아니야?”
“그것과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나는 꽤나 여러 방면의 정보들을 공주에게 말해줬다.
역사 속 인물부터 시작해서, 어려운 이론에 관한 지식도 말해준 적 있으며.
지구에서는 당연하던 실생활에 사용되던 도구나, 인터넷 관련 밈도 입에 담았었다.
하지만 결국 공주의 흥미를 가장 끌었던 건 다름 아닌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무슨 음식 주문하듯이 지루한 이론 같은 건 집어치우고 캐릭터에 관해서 알려달라고 했을 때는 살짝 짜증도 났었다.
“비슷한데 다르다고? 잠깐 나와 봐! 가서 좀 설명해주라!”
이제는 정말로 악몽 때문이 아니라 그냥 새로운 지식이 궁금해서 나를 찾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싫다는 느낌으로 묵묵하니 버티고 서 있자 공주는 슬쩍 목소리를 높여 뒤에 있는 다른 마법사들에게 외친다.
“다들 고생하고 있어. 좀 쉬어.”
“예, 알겠습니다!”
말은 잘 듣는다.
권력을 이용해 강제로 쉬는 시간을 만든 공주는 결국 내 팔목을 잡더니 밖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를 데려간 장소는 왕궁의 정원이었다. 거대한 정원의 꽃밭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엘레노아는 내게 공책과 펜을 건넨다.
“그려주라.”
이것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노트 뒷장에는 펭귄이 모티브인 캐릭터부터 시작해서, 영원히 다섯 살인 말썽꾸러기, 주머니에서 뭐든 꺼내는 고양이로봇 등.
수많은 유명 캐릭터들이 그려져 있었다.
익숙하게 펜을 움직이고 있자니, 옆에서 숨죽이고 있던 흑령사가 조심스럽게 속삭인다.
[공주가 그림은 안 보고 당신만 보고 있는데요?]알고 있다.
그러니까 그냥 닥쳐줬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힐끔힐끔 쳐다만 보던 공주가 이제는 대놓고 빤히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캐릭터를 그려달라는 것도 그냥 구실이 아닐까 싶었다.
“요즘 악몽은 어떠십니까.”
나는 펜을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린다. 엘레노아 공주는 퍼뜩 정신을 차린 듯 다급하니 답한다.
“아? 어, 응. 최근에는 데이우스 덕분에 쉽게 알아차리고 있어. 실은 내가 알고 있는 현실이랑 꿈의 차이가 하나 더 있거든? 덕분에 그걸 들키지 않을 수 있어.”
“흐음?”
그녀가 그것을 통해서 현실과 꿈을 구분할 필요가 없으니 악몽도 꿈과 현실의 차이를 더 찾지 못해 정체상황에 놓여있었다.
“저를 따라 하진 않습니까?”
“음, 따라 해. 하지만 이미 한 번 들었던 내용을 말하거나, 뒤죽박죽으로 이상한 내용을 말해. 내 꿈속이라서 그건 당연히 내가 알고 있는 정보들이고.”
밝게 웃으며 엘레노아는 흐뭇해한다.
“데이우스처럼 참신하게 처음 듣는 걸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
크롱에 대해서 대강 그려준 나는 그녀에게 노트를 건넨다.
엘레노아 공주는 크롱을 보더니 환하게 웃으면서 좋아한다.
“나, 이거 마음에 들어.”
평소보다 더 좋아하는 공주에게 나는 나름의 가설을 내민다.
“녀석은 공주님의 모든 걸 공유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만약 생각과 말을 전부 듣고 있다면 애초에 꿈을 통해 하나씩 현실과의 차이를 파악해갈 필요도 없다.
“또한 무지합니다. 세상의 기본적인 골자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죠.”
대표적으로 향기와 마나를 꿈속에서 재현하지 않은 것.
그런 기본적이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녀석은 모르고 있었다.
“창의력도 썩 떨어집니다. 모방은 할 수 있으나 그것을 통해 스스로 뭔가를 재창조하지는 못합니다.”
“음.”
엘레노아 공주는 뭔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으나,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간다.
“녀석은 지금 초조할 겁니다. 그러니 본인의 욕망을 손쉽게 드러내겠죠. 어떠십니까? 따로 녀석의 목표나 행동 원리가 보이진 않으십니까?”
“으음.”
팔짱을 끼며 잠시 고민하던 엘레노아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혹시 싶다며 조심스레 의견을 낸다.
“나를 따라 하는 걸 좋아해. 예법을 따라 하거나, 주변 사람들 대하는 말투, 걸음걸이 같은 거.”
“…….”
[대놓고 엘레노아가 되겠다는 심보네요.]흑령사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엘레노아가 되겠다는 맞지만 뭔가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듯했다.
어쨌든 이제는 확실해졌다.
‘게임에서 만났던 엘레노아는 이미 몸을 빼앗긴 상태였다.’
지금 내가 보는 엘레노아 공주와 게임 속 엘레노아 공주는 비슷하면서도 확연한 차이가 있었으니까.
엘레노아가 썩 이런 주제로 대화하는 걸 원치 않아 보였기에 자연스레 주제를 돌린다.
“최근에도 잠은 잘 못 주무십니까?”
“이제는 익숙해졌어. 덕분에 쉬지 않고 계속 공부할 수 있으니까 나쁘지 않으려나.”
그리 말하는 눈가에는 살짝 그늘져 있었다. 하지만 나를 휙 보더니 걱정 말라는 듯 웃어준다.
“다행이지? 로베른 아카데미로 돌아가도 진도를 따라갈 필요는 없으니까. 오히려 예습이 철저해서 이번에야말로 1등을 할 수도?”
“…….”
“공주인데 쪽팔리게 성적이 뒤에 있을 수는 없잖아.”
굳이 답해주진 않았다.
나는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왕족의 의무에 성적 또한 포함되어 있는 듯했다.
“그리고 데이우스. 나랑 약속 안 지킬 거야?”
“…….”
약속?
무슨 약속을 말하는 거냐고 그녀를 바라보자, 엘레노아는 심통을 부린다.
“암호 말이야. 네가 나를 먼저 보면 물어보기 전에 먼저 얘기해주기로 했잖아.”
아무래도 아까부터 언짢은 기색이었던 이유가 이것이었던 듯하다.
“공주님께서 매번 저를 찾아오시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당연히 내가 먼저 말할 기회가 없다. 그렇게 말하니 또 할 말 없다며 공주는 팔짱을 끼고는 툴툴거린다.
“쳇, 대답도 준비해뒀는데.”
“……하아.”
볼을 빵빵하게 부풀린 모습을 보면 정말로 내가 알던 공주가 맞나 싶다.
주인공인 아리아 리아스는 게임 속 모습에 비해 너무 성숙한 게 문제였는데, 보스 중 하나인 엘레노아는 너무 어리광을 부려서 문제다.
나는 엘레노아 공주가 좋아할 법한 이야기를 입에 담는다.
“마법소녀라는 것이 있습니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소녀들이 신기한 힘을 가진 동물을 만나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악을 물리치는 내용이지요.”
“……!”
그녀가 묻기도 전에, 내가 먼저 정보를 풀어준다. 이걸 원하지 않았냐고 슬쩍 눈짓하자 엘레노아는 헛기침하며 목을 풀었고.
본인이 준비해뒀다는 대사를 의기양양하게 친다.
“여긴 당연히 현실이지!”
“……고작 그걸 말씀하고 싶었던 겁니까?”
“응! 데이우스가 아니라 내가 직접 확실하다고 선언하고 싶었거든.”
기분 좋다면 웃는 엘레노아는 바로 다시 내게 공책을 내민다.
“근데 마법소녀? 그건 또 뭐야? 엄청 재밌어 보이는데?”
딱 공주가 좋아할 것 같은 내용이었기에 입에 담았다. 어렸을 적에 할머니 집에서 TV만 봤던 나였기에 마법소녀도 알고 있었다.
솔직히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악당을 물리친다는 건 마음에 들었다.
대게 마법소녀들은 유령 같은 걸 물리칠 때가 많았고, 나는 그걸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으니까.
“설명해주라!”
“……자세하게는 못 드립니다.”
어렸을 적 기억이다.
나는 대강 떠오르는 걸 설명하기 시작했고.
엘레노아는 엄청 재밌다고 방방 뛰고 좋아하다가 문득, 나를 보며 묻는다.
“근데 데이우스, 이런 거 좋아해?”
“…….”
괜히 말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