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only healer in this world RAW novel - Chapter 32
33. 놀이공원에서 일어난 일
삐잇!
신난 건 홍염이뿐이었다.
“……어제 사냥 나가지 않았어? 최유성이랑 톱니 멧돼지 잡아 왔잖아, 주인님.”
“그랬었죠……?”
“그런데 오늘은 왜 놀이공원인지 혹시…… 뭐 아는 거 있어?”
“글쎄요.”
한 가지 짚이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성좌 ‘꺼지지 않는 홍염’이 놀이공원을 가야 한다고 당신에게 강력하게 주장합니다!]홍염이의 이 메시지가 뜨는 순간.
곧장 뒤를 이어,
아주 신경 쓰이는 메시지 하나가 띠롱, 떠올랐기 때문이다.
‘뭐지, 왜 네가 지금 타이밍에 팝콘을 튀기지?’
낭패 어린 기색이 전해졌지만 알 바 아니었다.
그렇게 탐욕이를 탈탈 턴 결과.
[흔들다리 효과가 일어나는 방식 따위는 때려치우기로 했다며 성좌 ‘배고픈 탐욕’이 슬그머니 은밀하게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성좌 ‘배고픈 탐욕’이 당신에게 비밀은 엄수해주리라 굳게 믿겠다고 이야기합니다!]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우리 귀염뽀짝한 홍염이는…….
‘제 나름대로 배후성 역할을 하겠다고 노력 중이라 이거지?’
제 딴에는 자기 화신을 지키겠다고 주변 인물이 어떤 이들인지 탐색을 하는 모양이었다.
탐욕이가,
‘아니, 그거 아닌 거 같은데. 그거 오해…….’
따위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왜, 뭐. 왜.
그럼 지금 우리 홍염이가 내 생각 해준다는 게 다 거짓말이라는 거냐!
나와 내 새끼 사이를 이간질 하는 듯한 메시지에 버럭 화를 내자 팝콘 몇 개를 후원하고는 튀어버렸다.
얼추 짐작하기는 했다.
그래도 친구에게 직접 확인까지 받으니 홍염이가 더 기특하게 느껴진다.
그래. 나름대로 배후성 노릇 한다는데 장단은 맞춰줘야지.
물론 거기에 희생되는 도원재는 좀 황당한 모양이었지만.
“놀이공원?”
도원재가 자신의 복장을 내려다봤다.
온갖 무기와 장비들이 가득한 차림새.
한마디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 하나 빼놓지 않고 완전 무장한 상태다.
이러고 놀이공원에 가자고?
차라리 단신으로 전설급 게이트에 들어가라고 하는 게 더 납득이 될 지경이었다.
“아, 성좌님 진짜 쉽지 않네? 역시 주인님 배후성이라 이건가?”
삐잇!
홍염이 가슴을 부풀렸다.
귀여운 모습과는 영 딴판으로 사람 뒤통수를 거세게 친다.
“알았어. 좋아. 가자. 놀이공원. 한 번도 못 가봤지만, 이참에 가보는 거지, 뭐.”
그 말에 내 귀가 쫑긋 섰다.
“도원재 씨도 놀이공원 처음이에요?”
“음? 설마 주인님도……?”
의아한 기색이다.
“그럴 만한 사정이 좀 있었어요.”
“하긴. 각성자들이 놀이공원을 갈 일이 별로 없기는 하지. 순찰을 돌러 가는 거면 몰라도.”
아니. 그런 이유는 아닌데.
‘굳이 말하기엔 좀 어두운 주제기도 하고. 그냥 대충 넘겨야겠다.’
뭐.
또래 사이에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 얘기는 흔하디흔하다.
겉돌게 된 이유는 별거 없었다.
-해인아, 너희 엄마 아빠는 왜 너를 신경 안 써줘?
천진한 아이들이기에 더 잔인했던 물음이었다.
아마 부모님들이 그리 가르쳤을 것이다. 집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와 거리를 두라고.
지금이야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때에는 약점을 찔리기라도 한 듯 파르르 떨어댔었다.
나 스스로도 그런 또래 아이들과 거리를 둘 만큼.
어쨌든 그런고로.
‘갈 일이 없었지.’
덕분에 수학여행지로 자주 등장한다는 놀이공원도 가볼 일이 없었다.
굳이 서로가 불편한 자리에 굳이 가고 싶지도 않았고.
집에서도 내가 수학여행을 가든 가지 않든 관심조차 없었다.
슬슬 머리가 커가면서는 솔직히 말해서…….
‘굳이 뭐……. 귀찮기도 했고.’
게임폐인이라는 훌륭한 과거 전적을 보면 알지 않는가?
나는 외부 활동보다는 집에서 생활하는 것을 좀 더 즐겨 하는 타입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게이트를 사냥하게 될 줄은 또 몰랐지만…….’
어쨌거나 수학여행 불참 시, 조용한 교실에서 혼자 여유롭게 자습을 빙자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기에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놀이공원 같은 곳은 애들이나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 이 나이에, 이곳에서 갑자기 놀이공원이라니.
“거기 가기만 하면 돼?”
홍염이의 정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굳이 다른 곳이 아닌, 구체적으로 ‘놀이공원’을 지목할 이유가 분명히 있을 테니까.
“혹시 거기에 게이트가 열린다는 소식이라도 있었어? 탐욕이가 알려줬나?”
삐삣!
홍염이가 고개를 저었다.
[성좌 ‘꺼지지 않는 홍염’이 왜 그런 생각부터 하냐며 답답함에 가슴을 칩니다!]……?
그럼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데?
[놀이동산이라면 무릇 꿈과 희망이 가득 찬 즐거운 동화 속 나라를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성좌 ‘꺼지지 않는 홍염’이 황당해합니다!]뭐래.
그럼 가서 즐겁게 놀기라도 하라는 소리야?
삐약!
홍염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 분명히 그냥 대충 둘러대는 거 같은데.’
정말로 놀고 즐기라고 놀이공원에 보낸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떻게 찔러봐도 대답하지 않을 기세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죠. 일단 가봐야 뭐라도 알려줄 것 같네요.”
“그래. 우선 출발하자, 주인님. 길은 내가 안내할게.”
도원재는 솜씨 좋게 어디선가 그럴싸한 이동수단을 구해왔다.
동그란 원이 다섯 개가 겹쳐져 있는 엠블럼이 익숙하다.
“어디서 났어요?”
“응. 잠깐 빌렸어.”
도원재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불안했지만 아무래도 괜찮겠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원재지만 어쨌든 상대에게 값은 제대로 지불하는 편이니까.
차창 밖으로 한가로운 풍경이 지나간다.
어제부터다.
게이트, 은신처, 게이트, 은신처, 게이트……만 반복했던 일상과 뭔가 달라진 것은.
“그런데 놀이동산이 용케 유지가 되나 봐요? 게이트니 몬스터니 위험 요소가 많을 텐데요.”
기구라도 부서지면 그대로 폐장 아닌가?
“그것도 협회장이 쳐놓은 일종의 덫이지. 무조건 억제하고 단속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거든.”
사람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다루는 일은 굉장히 섬세한 방식이 필요하다.
“시민들의 안전과 즐거움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인망과 인지도 둘 다를 잡는 거군요. 다른 곳에는 없다는 희소성도 있으니 이런 메리트를 버리지 못해서 결국 계속 이곳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게 될 테고요.”
“정답이야, 주인님.”
뭐. 어쨌든 우리야 홍염이 말대로 즐기든 뭘 하든 하면 되는 것이다.
지하로 통하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다.
그러자.
‘좀 설레는 듯……?’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감화된 것처럼 점점 들뜨기 시작했다.
도원재도 마찬가지인지 가면처럼 쓰고 다니는 미소가 아닌, 진짜 미소가 눈가에 걸려있었다.
그렇게 설렘을 안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처음으로 놀이공원에 도착하는 기념비적인 그 순간.
크워어어억!
“……?”
몬스터가 우리를 맞이했다.
잠깐만.
혹시 꿈과 희망의 나라에 몬스터도 포함되는 건가?
잠깐 그런 미친 생각이 들기는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잠깐만! 꿈과 희망은 어디 갔는데?! 완전 재미있을 거라는 그 놀이동산은 대체 어디로 가고?!’
동화 나라에 온 듯한 즐거움은 어딜 갔냐구?!
와장창!
무언가 깨지고 박살나는 소리가 났다.
점점점 차올랐던 내 기대감과 설렘이 무너지는 소리 같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몬스터의 꼬리에 부딪힌 기물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였다.
물론 심정적으로는 난장판이 된 상황만큼이나 어렵사리 찾아낸 내 동심도 함께 아수라장이 된 것 같았다.
모든 것의 중심에서,
크워어억!
몬스터가 포효했다.
쿵! 쿵쿵!
꿈과 희망을 짓밟는 괴물은 아주 철저하게 모든 것을 때려 부수기 위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이어 뻥 뚫려 무너진 벽 너머로 어리바리해 보이는 각성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먼지투성이에 아주 꾀죄죄해서 입고 있는 갑옷이나 손에 든 무기가 아니었으면 각성자인 줄도 몰랐을 거다.
꿈과 희망에 쳐들어온 불청객들은 몹시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이렇게 외쳤다.
“젠장! 안쪽으로 더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도발이 안 먹힙니다, 길드장님! 스킬 삑사리 났나 봐요!”
“왜 하필 지금 타이밍에 미스가 나는 건데?!”
“원래 가끔 나잖아요!”
“환장하겠네! 경태! 지원팀은?!”
“오고 있답니다!”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불길.
쿠워어어!
목청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며 불을 뿜는 몬스터.
그 아래로 부서지는 놀이공원의 기구들.
삐익?!
[성좌 ‘꺼지지 않는 홍염’이 지금 우는 거냐며 당신을 보고 깜짝 놀라 외칩니다!]아니야. 홍염아.
언니는 이딴 걸로 울지 않는단다.
지금 언니의 눈에서 흐르는 이것은…….
그래. 땀이란다.
나는 땀이 차올라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흐르지 못하게 살짝 웃었다…….
‘이게…… 설마 홍염이가 마련한 시련일까?’
홍염이는 아니라고 우기겠지만 어제의 최유성과 오늘의 도원재를 생각하면 뻔한 이야기였다.
문제는, 그 홍염이의 수작에 나도 함께 걸려들었다는 것이다.
도원재가 들려주었던 놀이공원에 대한 이야기가 내 기대감을 무럭무럭 키워주는 데에 한몫했다.
-한번 갔다 온 사람들은 일부러 거기서 살려고 무슨 짓이든 다 하려 들더라고. 혈연인 각성자에게 일부러 부탁까지 하던데? 자기 여기 드나들 수 있게 협회에 말 좀 잘 해달라고.
표현이 ‘말 좀 잘 해달라’는 거지 결국 협회에서 개처럼 굴러서라도 자신을 이곳에 어떻게든 계속 있도록 만들어 달라는 소리다.
결국, 가족의 안전과 안녕을 바라는 각성자들은 협회 쪽에 협력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대체 얼마나 정성을 들여놨을까?’
언제 몬스터가 나타나 죽을지 모르는 거지 같은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
그런 그들이 정신적으로 커다란 위안을 삼을 수 있는 일종의 도피처인 놀이공원.
효율적인 통제 수단이기도 하며 동시에 일부 각성자들의 목줄을 옥죌 수 있는 도구를, 협회장이 허투루 만들 리가 없다.
‘디즈X 랜드보다 더 엄청날까?’
현실보다 더 달콤하고 마약보다 더 중독성 있다고 했으니…….
환상 세계를 현실로 옮겨놓았다는 디X니 랜드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지 않을까 싶은 기대감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청소부마저도 철저한 교육을 통해 마법사처럼 보이도록 만든다는 X즈니 랜드.
그뿐만인가?
진짜인지 카더라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곳의 마스코트는 현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전 세계에 퍼져있는 디X니 랜드의 퍼레이드 시간에 절대 겹치게 등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냐면 미X마우스는 다수가 아니라 단수이니까……!
‘정말이라면 지극정성인 거지!’
아무튼 그런 썰이 있을 정도로 고객들의 환상을 엄청나게 철저히 지켜주는 것이 바로 디즈X 랜드였다.
모르긴 해도 사람을 실제로 중독시킬 정도로 대단한 곳이라면 아마도 X즈니 랜드보다 뭔가 더 엄청나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이 있었다.
분명 그랬었다.
쿠워어어억……!
쿵쿵쿵쿵!
몬스터가 괴성을 지르며 다 부서진 놀이공원 안을 질주하는 순간 흔적도 찾을 수 없이 잘게 부서져 버렸지만.
“꿈과 희망 따위는 없는 거예요…….”
유리 돔 천장이 와장창 부서지는 모습이 마치 희망찬 미래와 꿈같이 밝고 긍정적인 상징이 무너져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주인님. 뭘 또 그렇게까지…….”
“도원재 씨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요?! 이건…… 이건……! 거의 계시급이라고요!”
누군가 망하라고 고사라도 지내는 것이 아닐까?
하필이면 내가! 우리가! 처음으로 놀이공원에 오는 날에 이런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이 무슨 엄청난 우연이란 말인가?
‘내 팔자에 설마 몬스터라도 껴있는 건 아니겠지?’
왠지 가능성이 있다.
그게 싫은 건 아닌데, 이런 때까지 몬스터가 끼어드는 건 좀 너무 선을 넘는 거 아니냐고?!
“진정해, 주인님.”
“도원재 씨는 실망스럽지 않아요?!”
“실망스럽기야 하지. 나도 당연히 기대했는걸. 다른 누구도 아닌 주인님과 처음으로 오는 놀이공원인데 말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침착해요?”
설마 나만 충격받은 건가?
나만 기대했던 거야?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야…… 주인님이 같이 있잖아?”
“네?”
“응?”
뺙?
잠시 영문 모를 정적이 흘렀다.
“왜, 주인님?”
도원재가 정말로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게…… 갑자기 그런 말을 하면……!”
“왜?”
내가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모르겠다는 기색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훅 들어온 예상치 못한 공격.
내가 버벅거리며 삐걱대자 도원재가 좀 쑥스럽다는 듯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목덜미를 주물렀다.
“하지만…… 진짜인데. 놀이공원이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라 지금 좀 당황스럽기는 한데…… 그렇게까지 막 실망스럽지는 않아. 어차피 어디든 주인님과 함께 간다는 게 중요했던 거라.”
그렇게 말한 도원재가 눈을 굴리더니 고개를 모로 푹 숙인다.
그 바람에 곱슬곱슬한 밝은 갈색의 머리가 그의 눈가를 가렸다.
삐잇!
몽실몽실한 머리카락을 둥지 삼아 자리 잡았던 홍염이가 거친 움직임에 항의했지만 도원재에게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오, 세상에. 맙소사.’
뭐지?
평소와는 다른 저 모습은?
‘지금…… 도원재가 수줍어하는 건가? 그 도원재가?’
평소 도원재를 묘사할 만한 단어를 몇 개 꼽자면 이렇다.
뻔뻔함.
능청스러움.
어떻게 보자면 천연덕스럽고.
어떻게 보자면 한없이 능글맞은.
마음에 없어도 살살 웃으며 사람을 쉽게 홀리고 손아귀에 올려 쥐락펴락하는 실세 중의 실세.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떤 방법이건 가리지 않고 모조리 동원하여 쟁취해낼 사람이 바로 도원재였다.
원수여도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면 생긋생긋 웃어주는 것 따위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옳지 못한 수단과 방법에 대한 죄책감 따위는 한 톨도 느끼지 못할 뻔뻔스러움이 그에게 있었다.
사람을 홀리는 눈가의 웃음은 도원재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었다.
분명 그랬는데.
“도원재 씨?”
나는 손을 내밀어 도원재의 턱에 대었다.
그리고 턱을 쥔 손에 힘을 주어 천천히 숙인 고개를 들어 올렸다.
“……너무해, 주인님. 이런 때는 모르는 척해주는 게 매너라구.”
그가 볼멘소리로 중얼거렸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왜…… 왜 안 웃는 건데?!’
평소의 눈웃음은 온데간데없이 찾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평소와 전혀 다르게 눈가를 붉히고 있는 수줍은 미남자였다.
쿠워어어억!
도원재의 뒤로 불길을 뿜는 몬스터가 쿵쿵대며 질주한다.
그 옆으로는,
“에라이, 시X! 저거 일단 멈춰야 할 거 아냐! 여기 다 부수고 나서 잡으면 그게 뭔 소용이냐고!”
“아, 도발이 안 먹히는데 어떡하라구요…….”
“그게 지금 할 소리냐? 할 소리야?!”
예의 그 각성자 길드가 구시렁구시렁 온갖 불평불만을 토해내는 소리가 서라운드로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아주 정신이 없다, 정신이.
우지끈!
와장창!
쿠당탕탕!
콰드득!
사방이 터지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오로지 단 한 곳.
도원재가 있는 곳만 고요함이 감도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도원재 씨 말을 들으니까 그런 것도 같아요.”
“응? 뭐가?”
“생각해보니 놀이공원도 궁금하긴 했는데…… 그보다는 계획이 엎어진 쪽에 더 화가 나기는 하네요.”
“계획?”
“도원재 씨도 나도 처음이잖아요. 처음인 사람끼리 같이 재미나게 놀기로 했었는데…….”
웬 몬스터들이 환영을 해주는 바람에 다 글러 버렸다.
“괜찮아. 나는 주인님만 같이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거든.”
도원재가 어깨를 으쓱했다.
뭐지.
최유성도 그렇고 도원재도 그렇고, 어제부터 자꾸 사람 마음을 자꾸 덜컹이게 만든다.
이런 데엔 면역이 없어서 영 낯설었지만 이상하게도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지금도 보라.
평소처럼 살살 눈웃음을 치고는 있지만 붉어진 저 눈가가 도원재의 미묘한 변화를 여실히 드러내준다.
그게 어째서인지 더 눈이 가고 더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한참 분위기가 묘하게 말랑말랑해졌을 때였다.
“어! 저기 있다!”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한 귀로 듣고 흘렸지만 곧 다른 목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어어! 지원 나오신 분들이죠!”
“으아! 진짜 두 명밖에 못 내준다더니 딱 두 명만 보냈네. 얼른 갑시다. 저거 지금 못 잡으면 여기 문 닫아야 해요!”
영양가 없는 소리를 잔뜩 떠들며 별 소득도 없이 쏘다니던 각성자 일행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나와 도원재에게 향해있었다.
“자, 갑시다! 어서 저 몬스터를 잡아야죠!”
***
뭐지, 이 상황은?
‘아무래도 이 사람들, 우리를 다른 사람이랑 오해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을 눈치채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홍염이를 숨기는 일이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삑!
“쉿.”
반쯤 뒤통수에 걸쳐진 도원재의 후드를 이마까지 다시 끌어당기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 바람에 홍염이의 울음소리가 ‘삑’이 아니라 바람 빠지는 ‘픽’처럼 들렸지만 타인에게 들키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급한 불을 끄고 난 후 나는 빠르게 그 다음 상황을 파악했다.
‘아주 큰 오해를 하고 있기는 한데, 그 오해를 정정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다?’
보통 때라면 그 사실을 친절하게 알려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보통 때가 아니었다.
-저거 지금 못 잡으면 여기 문 닫아야 해요!
그 소리가 나를 움직였다.
이미 꿈과 희망 따위는 산산조각 난 것 같지만…….
‘아직 안 부서진 곳도 있으니까 어쩌면……!’
그렇다.
나는 아직 놀이공원의 로망을 완전히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생각보다 시설이 굉장히 좋기도 하고.’
괜히 중독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었다.
삭막한 바깥과는 완전히 유리된 듯한 지상 낙원이 이곳에는 존재했다.
한없이 여유롭고 한가로우며 푸르른 녹음과 생기가 넘치는 자연이 한껏 우거진.
‘완전히 유토피아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파라다이스 말이다.
부서진 잔해를 보니 놀이공원 특유의 오락적인 분위기나 기구도 놓치지 않았지만.
말이 놀이공원이지 이곳은 일종의 특권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구역이었다.
협회장이 이곳을 당근으로 알차게 써먹을 수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쿠워어엉!
몬스터는 여전히 제멋대로 날뛰며 포효했다.
“꼭 새도 하필이면 이쪽으로 새가지고……!”
“저거 빨리 안 잡으면 진짜 여기 다 망하게 생겼는데요.”
“어어? 저거 지금 중앙으로 가는 거 아닙니까? 중앙이라면 여기 유지장치가 있을 텐데……?”
“뭐?! 그럼 여기 진짜 끝장인데!”
행동할 능력은 없는데 말만은 여전히 기똥차게 잘한다.
그러니까 저 몬스터가 지금 중앙 유지장치인지 뭔지로 향하고 있는데 그걸 막아야 하는 상황이렷다?
다급한 시선들이 나, 정확히는 우리에게로 향했다.
눈동자에 하나같이 ‘다급! 다급! 다급!’ 문구가 붉은 글씨로 떠다니고 있었다.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얼른 움직이죠.”
생긋 웃은 내가 대답했다.
우연인지 뭔지.
신기하게도 꿈과 희망의 동산을 짓밟고 있는 몬스터는 전형적인 악당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해외에서는 용이 악마의 화신으로 묘사된다고 하던가?
‘용이나 공룡이나 비슷하지, 뭐.’
크워어억!
화르륵!
입 안에서 불을 뿜는 것이 조금 특이하기는 하지만, 거대 용X리나 거대 고X라를 생각하면 딱히 틀린 것도 아니다.
‘근데 좀 특이하네? 아까는 대충 스치듯이 봐서 몰랐는데 지금 잘 보니…… 좀 이상한 데가 있잖아?’
지상 낙원을 쿵쿵 질주하며 죄다 때려 부수는 몬스터의 모습 한구석이 좀 요상했다.
뭐랄까.
‘발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전형적인 육식동물의 뒷발처럼 생긴 것은 동일했지만 언뜻 육구 같은 것을 본 것 같다.
내 상식으로는 공룡, 그러니까 파충류에는 저런 말랑말랑한 젤리 같은 육구는 없다.
저건 포유류 종류한테만 달려있는 거 아냐?
잘못 본 건가?
캬아아아악!
워낙 미친 듯이 질주하며 불을 뿜어대는 통에 영 살펴보기가 힘들다.
“저 몬스터, 정확한 등급이 어떻게 돼요?”
“아, 얘기 못 듣고 오셨어요?”
내가 묻자 약간 찜찜한 어투로 자신을 이번 파견 임무의 팀장 역할을 맡고 있다고 소개한 남자가 말했다.
“네. 아시다시피 워낙 급하게 차출되어 나와서요. 이쪽으로 빨리 가라는 말밖에 못 들었습니다. 아시잖아요? 워낙 사안이 사안인지라.”
실은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지만 나는 뻔뻔하게 둘러댔다.
“이 근방에서 딱히 게이트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는 얘기도 못 들었고요. 아시다시피 이 주변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잖아요?”
그런 거 모른다.
그냥 대충 도원재가 한 말을 주워다 이리저리 조합하여 그럴듯하게 꾸며냈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또 통할 기미가 보였다.
“끄응. 진짜 급하게 아무나 보낸 모양이네. 이런 초짜를 다 보내고…….”
팀장의 눈초리가 못마땅하게 변했다.
이거 믿어도 되나, 하는 의심이 가득하다.
반쯤은 긴가민가한 기색에 나는 얼른 쐐기를 박았다.
“이 친구, A+ 등급 각성자예요. 비공식적으로는 S랭커 취급받는 인재죠.”
내가 슬쩍 눈짓하자 눈치 빠르게 도원재가 나섰다.
그는 허리춤에 달린 칼을 아무렇게나 뽑아 그대로 바닥에 꽂아 넣었다.
“……흠. 실력은 확실한 것 같긴 하네요.”
거슬리는 소리 하나 없이, 파편 하나 튀지 않고 두부 자르듯 부드럽게 두터운 콘크리트에 칼날을 박아 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단순히 칼날을 찍어 넣는 것은 누구나 가능한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도원재의 방식은 어마어마한 에너지와 그걸 섬세하게 컨트롤하는 조절 능력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어중이떠중이는 흉내 내려야 흉내 낼 수조차 없는 진기명기 쇼였다.
“헉.”
“대박적.”
박아 넣었던 칼날을 다시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고스란히 빼낸 도원재를 보며 내가 말했다.
“봤죠? 우리 이런 사람이거든요? 하도 가달라고 사정사정해서 바쁜데 기껏 왔더니만…….”
일부러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여기 와서 느낀 건데, 실력 있는 일명 랭커들은 다들 자아가 강했다.
랭커가 아니더라도 실력 좀 있고 능력 있는 각성자라면 대우에 익숙해져 있기도 하고.
“설마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냥 갖다 박고 죽으라는 소리는 아니겠죠? 아무리 우리가 능력이 좋아도 상대의 능력을 대충은 알아야 기본 공략이라도 세울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즉석에서 설정한 캐릭터에 맞춰 나는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상식적으로 여기 위치가 위치잖아요. 이렇게까지 통제되고 보호되는 곳에 출몰하는 몬스터라면 최소 신화급일 가능성도 있잖아요? 그럼 우리 둘만으로는 힘들 수도 있어요. 추가 지원이 필요할 수도 있다구요.”
일부러 조금 주저하는 모습도 섞어주었다.
무조건 내가 제일 잘났다고 으스대는 모습은 반감만 사기 딱 좋으니까.
이럴 때는 한발 물러서는 것이 상대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
“아무리 ‘윗분’들이 시켜도 나는 개죽음은 싫거든요? 우리도 할 말은 있다고요. 협조를 안 해서 못 도와줬다고 하면 우리야 뭐, 어차피 지원 역할이었으니까 큰 징계 없이 넘어갈 거고요.”
그러니 선택은 그쪽의 몫이다.
그런 뉘앙스를 풍기며 말하자 팀장의 동공이 갈대처럼 흔들렸다.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팀장이 난감한 기색으로 거칠게 머리를 벅벅 긁었다.
‘좋아. 거의 다 넘어왔군!’
중요한 건 기세다.
내가 하는 말이 진짜다.
내가 하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렇게 믿는 당당함이 전해져야 성공하는 것이다.
“뭐, 곤란하면 굳이 말 안 해도 돼요. 다 알 만한 사이에 기밀을 캐물을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럼…….”
“뭐, 그냥 가야죠.”
“간다고요?”
팀장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럼 어쩌라고요? 그냥 닥치고 돌격해서 개죽음당하라고요? 우리가 왜? 지원 나오면 다 그래야 하나?”
“저기, 어느 팀에서 나오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돌아가시면 저희는…….”
적절한 사실.
그리고 적당한 거짓말.
양념과 조미료가 적절히 배어 아주 맛깔나게 조리된 팀장이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말씀드리기 어려운 거, 아시잖아요. 아실 만한 분이…….”
“아, 그렇죠.”
나도 안 묻는데 너만 따져 묻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아무리 한 집안 식구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듯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그럼 저희에게 들었다고 어디다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아휴. 이건 진짜 극비 중의 극비인데……. 같이 사냥하는 입장에서 모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하고. 아니, 애초에 미리 알고 오셨어야 하는 일인데 워낙 급하게 요청한 저희 잘못도 있고 하니…….”
입씨름하느니 어차피 알려줄 거, 빨리 알려주고 저 몬스터를 빨리 잡아 치우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극비이면서도 더러운 일을 함께한다는 동지애가 느껴지는 시선은 덤이었다.
어쨌거나, 급조한 계획치고 훌륭한 결과였다.
‘좋아. 이걸로 더 이상 우리에 대해서도 묻지 못하게 만들어놓기도 했고.’
저들이 요청한 진짜 지원 인원이 나와 마주친다 해도 그냥 잡아떼면 그만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아무래도 저 팀인지 단체인지 조직인지 뭐시깽인지는 점조직 형태로 되어 있어서 서로를 모르는 게 분명해.’
그러니 팀장도 깊게 캐묻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물러난 것이다.
알려줘도 모르는데 뭘 묻겠는가?
‘역시 난 멋져!’
나는 열심히 자화자찬했다.
홍염이의 찬사도 들려왔다.
그 초롱초롱한 눈동자를 봐야 하는데 후드에 가려서 못 보는 게 아쉽다.
어쨌든 이런 일, 귀찮아서 안 했지 하려면 못 할 것도 없다.
내가 늘 하던 게 사람 다루는 일이었는데, 뭐.
그 뿌듯함은 곧 이어진 팀장의 수수께끼 같은 답변에 금방 다 까먹고 말았지만.
“거기서 나온 놈입니다. 그 미친놈들이 있는 곳이요.”
팀장은 아주 더러운 오물을 이야기하듯 숨길 수 없는 경멸을 담아 내뱉었다.
“각성자님도 아시죠? 그…… 인간 같지도 않은 미친놈들만 모여 있는 소굴 말입니다.”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얘기는 들어봤어요. 알다시피, 워낙 비밀스러운 곳이잖아요.”
“그렇죠. 휴…… 그런 곳은 모르는 게 나아요. 거기는…… 어휴. 몬스터가 불쌍해질 지경이라니까요.”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팀장은 왜 머뭇거렸는지 모를 정도로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내었다.
맺힌 것이 많았나 보다.
“대체 협회장님은 왜 그런 미친 사이코들까지 자애롭게 품어주실까요? 아무리 그런 치들도 나름 인류에 도움이 된다지만…… 너무 역겹잖아요? 인품이 너무 넓으신 것도 문제라면 문제예요. 그쵸?”
음.
네가 말하는 협회장이 내가 아는 그 협회장은 아니겠지?
***
꿈과 희망의 나라를 파괴한 악당.
그것의 이름은 ALD-219였다.
‘뭔가 좀 이상한데?’
내 표정을 알아챘는지 팀장이 어색하게 웃었다.
이름을 알아야 몬스터의 등급이나 특징, 그리고 고유의 습성 같은 것들을 파악할 수 있어서 물어본 건데 돌아온 게 웬 코드네임 같은 영어뿐이라니.
“그게……. 음…….”
“……?”
“아직 제대로 이름 붙일 만큼 생산화에 성공한 개체가 아니어서 그럴 겁니다.”
“네?”
“그러니까 아직은 일종의 시제품? 프로토타입? 뭐, 그런 거라고 볼 수 있겠죠……? 그 이상은 저도 잘 모릅니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요.”
“……그래서 등급은요?”
“A로 시작되니까 대충 에픽 등급 언저리로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저런 놈들 특성상 등급보다는 다른 게 더 까다로워서요.”
자신들이 무능한 게 아니라 저 몬스터가 이상하다며 팀장이 책임을 전가했다.
“알겠어요.”
일단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도원재와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상하죠?’
‘응, 주인님. 확실히 이상해.’
보통 몬스터 이름은 몬스터의 특징을 따서 짓는 경우가 대다수다.
급한 경우, 사전에 정보를 고지받지 못하더라도 이름만 듣고도 사냥에 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어떤 몬스터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인 명칭이 많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전설급이나 신화급 게이트에 출몰하는 몬스터는 아예 딱 고유 명사처럼 지칭하는 특유의 이름이 붙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공략 방식도, 대응 방식도 유일무이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부분이었다.
어쨌거나 그런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몬스터 네이밍은 일종의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런데.
‘시제품. 프로토타입.’
팀장이 어물어물하며 꺼낸 단어부터가 영 꺼림칙하다.
대체 몬스터에게 이런 수식어가 붙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거기에 한 가지 더.
‘실험체.’
눈 감고 코 막고 귀 막은 사람이 아닌 이상,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을 거다.
‘이거…… 구린 냄새가 난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구린 냄새가……!’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니야. 내가 너무 음모론에 심취한 걸지도?’
사람이 너무 말도 안 되는 큰 진실을 맞닥뜨리면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진다더니.
지금 내 상태가 그랬다.
‘설마하니 내가 생각하는 그런 미친 전개는 아니겠지.’
그런데 왠지 하나씩 하나씩 맞춰지는 조각이 내 예상이 맞았다고 알려주는 것만 같다.
‘아무리 협회장이 미쳤어도 그렇게까지 미쳤겠어?’
협회장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 때문에 생긴 편견은 아닐까?
솔직히 생각해보라.
어쨌거나 협회장은 대외적으로 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수호하는 선봉장 자리에 선 자다.
내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그는 몇십 년간 나름대로 제 역할을 다했다.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따지자면 한없이 말이 길어지기는 하겠지만서도.
게다가, 사람에게는 정도라는 게 존재한다.
더구나 그는 협회장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미 쥐고 있는 것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상태라는 것.
선량하고 강직한 이미지 뒤로 꿀 빨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그 모든 것을 위협할 만한 미친 짓을 벌이고 있다고?
‘왜?’
생각의 끝에 떠오른 것은 단 하나의 단어였다.
내 모든 의심이 실제라고 가정하자.
왜 협회장이 그런 짓을 벌여야 하는가?
‘일을 벌이기 위해서는 동기가 필요한 법이지.’
어떤 일이든 그냥 일어나지는 않는다.
특히 자기 자신의 목줄을 단박에 날릴 정도로 위험한 일을 협회장같이 신중한 자가 함부로 벌일 리가 없다.
밝혀지면 그저 그런 수준의 스캔들이 아니라 아예 사회가 뒤집어질 만한 문제라면 더욱 더.
‘혹은……. 자신감일 수도 있지. 웬만해서는 들킬 리 없다는 그런 자신감.’
그렇다면 문제는 생각보다 더 심각해진다.
내 생각보다 협회장이란 인물의 위험도가 수직상승하기 때문이다.
‘그냥 나쁜 놈 수준이 아닐 것 같은데……?’
거의 끝판왕이나 다름없다.
이거…… 잘못하다가는 내가 역으로 잡아먹히게 생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계속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협회장이 대체 왜?’
여전히 동기가 이해되지 않았다.
협회장씩이나 되는 양반이.
지금도 남부럽지 않은 자리에 앉아서 모든 각성자들을 제 입맛대로 주무르는 양반이.
대체 뭐가 부족해서 그런 끔찍한 일을 계획한단 말인가?
‘우선은…… 의심으로 놔두자.’
이쯤 되면 심증으로 놔두기도 애매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게까지 막장을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지금 신경 써야 하는 일은 따로 있었다.
크워어억!
입에서 불을 뿜어대는 몬스터.
정확한 이름도 알 수 없이 시험작, 프로토타입이라는 애매모호한 설명을 달고 있는 주인공.
바로 ALD-219이었다.
***
ALD-219, 부르기 어려우니 줄여서 공룡은 상당히 까다로운 개체였다.
우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정보가 없는 게 가장 최악이었다.
“그게…… 다 파괴됐거든요.”
“아.”
공룡이 탈주하면서 데스크탑을 포함한 모든 전자기기가 망가졌단다.
다행히 백업 데이터가 있어서 복구 중이라지만, 언제 될지는 모른다고.
그래서 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룡의 정보는 정말로 오리무중이었다.
‘그럼 사람이라도 많이 데려오든가.’
한데 그건 또 안 된단다.
모든 것이 극비리에 진행되기에 정보 유출의 위험이 있어 인력을 많이 쓰지 못한다고.
지원도 단 두 명만 나오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뒷목을 잡을 뻔했다.
아니, 그럼 놀이공원에 있던 사람들이 다치는 건?!
“가끔 이런 식으로 주기적인 몬스터 대피 훈련을 하거든요.”
둘러대는 방식도 아주 수준급이었다.
“일단 몰이를 합시다.”
팀장이 의견을 내놨다.
“지역 피해를 최소화할 필요도 있고, 일단 사람들의 눈에도 최대한 덜 띄게 해야 하니까요.”
물론 쉽지는 않았다.
“아, 미친!”
“파충류 아니었냐? 무슨 점프를 저렇게 잘해?!”
“그러게 아까 놓친 건 내가 놓친 게 아니라니까요?! 저 미친 몬스터가 저렇게 뛰는데 내가 어떻게 어그로를 끄냐고요!”
낡고 지친 팀원들이 우르르 몰려가 어그로를 끌고 몰이를 시도했지만.
그르르르륵……!
목구멍에서 불길을 태우던 공룡이 세로로 갈라진 동공을 희번덕대더니 펄떡거리며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그리고는 몸을 훌쩍 날려 각성자들을 지나쳐 쿵쿵거리며 반대편을 향해 질주했다.
나는 그 모습을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며 머릿속에 차곡차곡 담았다.
저길 저렇게 뛰어 다닌다고?
움직임이 격한 뒷다리와는 달리 앞다리는 딱히 별로 쓸모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저건 공룡 특유의 앞발 그대로기는 하네.’
또 다른 특이점 하나.
다들 미친 점프력에만 놀라고 있지만 꼬리의 사용도 만만치 않게 능숙했다.
내가 봤던 쥬X기 시리즈에 나오는 공룡들은 꼬리를 그냥 휘두르기용으로 썼던 것 같은데.
‘쟤는 무슨 코끼리 코처럼 사용하는데?’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인 것만은 확실했다.
“아, 저거 어떡해!”
“일단 가서 다시 스킬 날려봐!”
“최대한 중앙으로 못 가게 해! 안 그러면 우리 죄다 모가지야!”
심지어 공룡은 두뇌 회전도 제법 빠른 듯 약삭빠르게 움직였다.
방금처럼 잡힐 듯 말 듯 하면서 각성자들을 유인하더니 가공할 만한 점프력으로 따돌렸다.
외곽을 빙빙 도는 것 같지만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목적지는 명확했다.
중앙에 있다는 유지장치.
‘목적의식도 뚜렷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법 잔머리도 굴릴 줄 알아.’
지금까지 사냥해왔던 A등급 몬스터와는 느낌이 달랐다.
뭐랄까.
머리를 굴리는 모양새가 꼭…….
‘S등급 몬스터를 보는 것 같은데?’
수준은 좀 떨어지긴 하지만, 아주 잠깐이나마 리치를 떠오르게 했을 정도다.
‘대충 어떤 식으로 따돌리려 드는지 경로는 보이니까 그 앞을 몇 번 차단하면 되겠어.’
일단 발부터 묶어두고 퇴로를 없앤다.
영리한 몬스터인 만큼 몇 번 번번이 방해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쪽을 경계하느라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될 터.
사방팔방 불을 지르는 것도 아무렇게나 내지르는 게 아니었다.
“저놈의 불 때문에 접근이 어렵잖아! 수철이, 빨리 불 꺼!”
“옙.”
교묘하게 화염의 방향을 틀어 각성자들의 접근을 방해하고 있었다.
각성자 팀이 쩔쩔매는 사이.
“주인님.”
도원재가 은밀하게 속삭였다.
“정말로 저 인간들이랑 움직일 거야?”
음.
이렇게 속삭이니 정말로 무슨 첩보 요원이 된 것 같다.
“네. 그럴 건데요. 몬스터, 잡아야 하잖아요?”
“아니, 주인님이 몬스터에 미쳐있는 건 알고 있기는 했지만…….”
듣다 보니 좀 억울했다.
누굴 몬스터 사냥에 혈안이 된 사람으로 알고.
……맞기는 하지만.
“여기, 협회장이 공들인 곳이라고? 협회장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망하면 좋아해야 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난 고소할 것 같은데. 그냥 놔뒀으면 싶기도 하고.”
그것도 맞는 말이기는 했다.
이곳을 지켜주는 건 사실 협회장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아깝잖아요.”
“응?”
“여기, 도원재 씨랑 아직 제대로 만끽하지도 못했는데 벌써 없어져버리면…… 뭔가 좀 억울하지 않아요?”
“……!”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도원재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목덜미에서부터 붉은빛이 번졌다.
“와.”
그게 은근히 또 장관이었다.
[성좌 ‘눈을 가린 밤’이 이 상황을 몹시 흥미로워합니다.]게다가 웬만해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전혀 드러내지 않던 도원재의 배후성까지 메시지를 띄웠다.
서로 애틋한 최유성과 은둔자와 달리 도원재와 성좌 눈을 가린 밤은 굉장히 건조하다 못해 삭막한 관계였다.
평소에 오가는 메시지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며 ‘배후성이 자기 화신을 이렇게 방치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신경을 안 썼다.
그런데 그 양반이 갑자기 반응할 정도라니?
하지만 그 마음도 이해했다.
‘무슨 꽃이 피는 것 같네.’
최유성이 청초한 미인이라면 도원재는 화려한 독화 같은 미인이었다.
뭐랄까.
사람을 정신없이 홀려대는 요염함이 있다고나 할까?
한없이 여유롭게 움직이면서 상대를 안달복달 내게 만드는 분위기가, 도원재에게는 존재했다.
항상 그린 듯이 미소 짓고 있는 표정도 한 몫 했다.
화려한 얼굴로 누군가를 홀리듯 미소를 짓고 있으면 빠져들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언제나 여유가 넘치는 그런 느낌이었던 도원재가 이렇게 갑자기 날것의 반응을 보이는 것은 몹시 드문 일이었다.
‘오늘 무슨 날인가? 이런 진귀한 모습을 벌써 두 번이나 보다니……!’
뭔가 계를 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혹시 다른 사람이 없으니 이런 솔직한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아무튼 그래요. 그래서 일단은 저것부터 잡고 보려고요. 왔으니 누려야죠.”
“그. 응. 알았어. 주인님 생각이 그렇다면야.”
도원재는 말을 조금 더듬었지만 빠르게 수긍해주었다.
“늘 하던 대로만 해줘요.”
“응. 적당히 들키지 않게 스킬 변형해서 사용하면 되는 거지?”
“네.”
의외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무섭다.
특히 도원재씩이나 되는 랭커라면 더욱더.
도원재의 트레이드마크인 S랭크 스킬, 춤추는 칼날.
스킬로 생성한 검날을 복제하여 원하는 타이밍에 광역딜을 사방을 향해 쑤셔 넣는 스킬이다.
만들어낼 수 있는 칼날의 개수와 더불어 사거리 범위, 그리고 타격 범위까지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사기적인 스킬이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의 뇌리에 콱 틀어박힌다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었다.
그럼 알아보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오히려 활동하기 어렵지 않겠냐고?
‘천만의 말씀!’
고정관념이 아주 잘 박혀준 덕에 허를 찌르기만 하면 의심은 아주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실제로 지금의 내가 그랬다.
“미쳤다, 미쳤어. 지금 랭크 측정하면 분명히 두 단계 위로 나올 거예요.”
“와, 씨. 에너지 고갈 직전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채워지는 기적이……!”
놀라움과 환희, 그리고 경악에 찬 눈동자가 내게로 향한다.
“두 명만 지원 나왔다 해서 이번 작전은 진짜 텄나 싶었는데…… 두 명만 나온 이유가 있었네요.”
팀원 중 하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서해인표 버프를 로스 타임 없이 계속해서 받고 있었으니까.
아마 모르긴 해도 오장육부가 깨끗해지고 두 눈이 맑아지며 새로 태어난 그런 느낌일 것이다.
“와……. 진짜 버퍼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각성자님은 진짜 어나더 클래스네요.”
“혹시 무슨 체력 회복, 이런 버프도 있어요? 에너지도 전혀 안 떨어지는 거 같은데?”
그야 회복 스킬도 쓰고 있으니까 그렇지.
각성자들은 지금 나를 비주류 보조 클래스인 버퍼로 알고 있었다.
허를 찌르는 방법은 간단했다.
영국 사태 때 나를 유명하게 만들어 준 것은 다름 아닌 치유 스킬과 성역 스킬이었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깔끔하게 제외했다.
거기에 또 한 가지 도움이 더해지자 내 위장은 완벽해졌다.
띠링!
[쉿! 당신의 정체를 적에게 알리지 말라!]난데없는 시스템 알림이 떴을 때였다.
왠지 내가 존경하는 위인의 마지막 유언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였다.
[화려한 스킬 이펙트가 부담스러우시다고요?] [그렇다면 지금 여기!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이펙트 오프’만 설정해주면 어디서든 당신을 따라다니는 명함 같은 스킬 이펙트는 이제 안녕~!]뭐지?
이 홈쇼핑에서나 나올 것 같은 문구들은?
어쨌든 주는 건 마다하지 않는다.
평소라면 이펙트가 왜 부담스럽냐고, 왜 이펙트를 강화하지는 못할망정 끄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고?
‘힐러는 화려한 게 최고니까!’
지금까지는 전혀 필요 없는 기능이었던 것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손가락 부서져라 힐 해봤자 인정해주는 사람 따위는 없다.
-아ㅡㅡ 힐러님 힐 좀ㅡㅡ
이따위 혈압 올리는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이지.
그러나 지금은 엄청나게 쓸모 있는 기능이 맞았다.
나는 바로 스킬 이펙트를 꺼버렸다.
눈을 화려하게 했던 반짝거림이 모두 사라졌다…….
‘근데 왜 갑자기 시스템이 나서고 난리지? 게다가 문구가 뭔가 좀…… 인간적인 느낌인데?’
예전에는 좀 더 딱딱한 기계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뭐랄까, 격이 없어졌다.
꾀죄죄하게 찡찡거리던 각성자 팀은 내 버프와 간간이 넣어주는 치유 스킬로 펄펄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이 기세등등해질수록,
캬아아아악!
구석에 몰린 몬스터의 발악은 점점 거세져갔다.
“아우. 저쪽 딜러님도 아주 칼 같으시고. 저 미꾸라지처럼 도망치던 놈이 옴짝달싹 못 하는 게 아주 속이 다 시원하네요, 속이!”
도원재가 점프하려는 공룡을 막아서고 일부러 꼬리로 쥘 것이 없는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보통 탱커가 어그로를 잡으면 근딜이 뒤쪽이나 옆으로 돌아가 딜을 넣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절대 뒤 잡지 마세요.”
꼬리를 눈여겨본 내가 그렇게 경고했다.
처음 각성자 팀은 귀담아듣지 않았지만 궁지에 몰린 공룡이 몇 번 꼬리로 근딜의 발목을 휘감아 인질 삼아 흔들던 것을 구출해내자 바로 태도가 달라졌다.
“버퍼님은 리딩도 잘하시네요. 눈썰미도 좋으시고. 혹시 길드장 출신이세요?”
공대장 출신이기는 하지.
그것도 서버 1위 공대.
한번 승기를 잡자 사냥은 나름대로 수월하게 흘러갔다.
‘저놈, 자기가 불을 쓰면서도 불에 가까이 가지를 않네?’
레이드는 몬스터를 때려잡는 게 전부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찰이다.
“화염 계열 각성자 있죠? 무조건 화염부터 쏟아부어요.”
모든 이동을 막고 공격을 전부 봉쇄하자 사냥은 수월하게 흘러갔다.
특히 한 번씩 뛰려고 할 때마다 도원재의 칼날이 퇴로를 차단하고 화염이 사방에 넘실거리자 녀석은 모든 것을 포기한 것처럼 굴었다.
그리고 나는…….
‘왜 약점이 안 보이지?’
모든 몬스터에는 약점이 존재한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이상한 것은 약점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공격이 유효하게 먹혀 들어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예상치 못한 돌발 패턴.
파악하기 어려운 고유의 공격 방식.
그리고 다른 몬스터보다 더 영악하게 돌아가는 지능을 제외한다면 몬스터 자체는 그리 어려운 수준은 아니었다.
뭐, 사실 그걸 파악하는 것부터 전부 통틀어야만 제대로 된 몬스터 사냥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키에엑…….
마지막 단말마의 비명을 내뱉은 몬스터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마침내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휴. 두 분 아니었으면 우리만으로는 불가능했겠네요.”
“일단 꼬리에서 세 명쯤 저세상에 갔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리저리 끌려만 다니다가 마침내 처리해서인지 각성자 팀의 표정이 밝았다.
“그나저나 정말 버퍼에 대한 시야가 확 달라졌습니다. 진짜 치유 받는 느낌이었다니까요?”
한 각성자가 말했다.
응. 그거 실제로 회복 맞다.
너무 급격한 변화를 느끼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치유 스킬을 섞어 사용했으니까.
“이 정도면 소문의 그 성자 안 부러운 거 아니에요? 아니, 성자보다 여기 계신 이 버퍼님이 더 대단하신데!”
응. 여기 그 성자 있음.
팀장은 진지했다.
“이런 능력이 있으시면서 왜 지금까지 힘을 숨기고 계셨습니까? 이 정도라면 훨씬 유명해질 수 있으셨을 텐데…….”
나는 대충 둘러댔다.
“유명해져서 뭐 하나요? 유명세가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오히려 거추장스럽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그러자 팀장이 크게 감명받은 얼굴을 했다.
“하긴……! 우리 같은 사람이 있기도 해야죠. 그래야 이 사회가 돌아가는 거니까요!”
내 판단이 옳았다.
이 사람들은 협회장에게 심히 감화된 게 분명했다.
자기들이 무언가 엄청난 대업을 돕는다는 자부심이나 뿌듯함 같은 것이 있어 보였는데 내 대답이 그들의 그런 부분을 잘 건드려준 모양이었다.
‘음. 비밀결사대 좋네. 뭐만 해도 비밀이라고 하면 넘어가 주니까.’
알아서 착각해 넘어가 줘서 다행이다.
오해는 계속되었다.
“저희랑 같이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좀 더 있다 가려고요.”
“아……! 재건 팀과 같이 오시려는 거군요! 사냥뿐 아니라 재건까지……!”
이런 착한 사람들!
그런 오해가 가득한 것이 보였다.
‘음. 알아서 오해하도록 놔두자.’
몬스터 사체를 각성자 팀이 수거해가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건 어쩔 수 없었다.
협회장에 대한 다른 단서들을 잡은 것으로 우선은 만족하는 수밖에.
마침내 각성자 팀이 몬스터 사체를 싣고 놀이공원을 떠났다.
다행히 최대한 몰이를 한 덕분에 공원의 반절은 무사했다.
나는 도원재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끼리 진짜로 즐겨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