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158
◈ 158. [STAGE 6] 지원군
– 분류 : 장검
– 공격력 : 30-40
– 내구도 : 20/20
– 근력+10 지력+10
– 중용(中庸)을 추구하는 자의 검. 빛과 어둠, 혼돈과 질서, 어느 쪽이든 치우친 상태를 먹어치우고 이를 힘으로 전환합니다.
– ‘성향 수치’를 소모해 검기(劍氣)를 생성합니다. 검기는 무기 공격력의 2배 마법 대미지를 가합니다. 해당 성향 수치가 0이 되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떴다아아아아악?!”
기겁하며 장검을 잡아챘다. 진짜냐! 여기서 카르마 이터가 뜬다고!
이 무기는 성향 수치를 먹여서 대미지를 올린다는 괴랄한 컨셉의 장비다.
제 성능을 내려면 계속 성향 수치를 먹여야 하니까 쓰기 까다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잘못 올린 성향 수치를 이 무기로 초기화가 가능하다!
부정 특성 잘못 박혀서 암흑 성향으로 가 버린 팔라딘이라든가, 실수로 축복 받고 빛이 충만해진 네크로맨서라든가…… 게임 하다 보면 이런 망캐들이 어쩔 수 없이 생성되곤 했는데.
이거 초기화시키는 방법을 못 구하면 눈물을 머금고 캐릭터들을 버려야 했다.
하지만 카르마 이터가 있다면? 쉽게 해결 가능!
이래서 게임에서는 무기로 쓰기보다는, 육성 실수해서 성향 잘못 탄 캐릭터들 구제용으로 들려주곤 했다.
‘물론 계속 성향 수치 먹여서 검기 유지해 주면 엄청난 딜을 뽑는 게 가능한 무기지만, 계속 수치 공급하는 게 말이 쉽지…….’
생각하다가 멈칫했다. 어라, 잠시만.
나는 [카르마 이터]가 먹을 수 있는 성향 수치 목록을 펼쳐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발견.
[야수 ↔ 신성]역시 있다.
인간성 성향특성 [야수화]와 [신성화].
쉽게 말해서 인간성을 버리고 짐승의 길을 걸으면 야수화 수치가 오르고, 인간성을 과도하게 획득하면 신성(神性)을 얻어 승천하게 된다.
‘어느 쪽이든 인간을 포기하는 길이지만…….’
야수화 수치가 오르면 물리공격과 물리방어에 보너스 스탯이 붙고 전용 패시브인 ‘육감(肉感)’을 획득한다.
하지만 수치가 너무 오르면 전투밖에 모르는 피에 미친 짐승이 되어 버린다.
신성화 수치가 오르면 마법공격과 마법방어에 보너스 스탯이 붙고 전용 패시브인 ‘계시(啓示)’를 획득한다.
하지만 수치가 너무 오르면 신성에 자아가 융해되고 상위 신의 꼭두각시가 되어 버린다.
캐릭터의 기본 성능에 플러스 알파를 해 주는 식이라 당장 강해지기는 하지만, 어느 쪽 루트를 타도 결국은 플레이어 컨트롤을 벗어나 버리는 금단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이 특성을 구경할 기회도 없다.
인간성을 버리는 것도 더하는 것도 말이 쉽지 보통은 이해조차 하기 힘든 개념이니까.
‘루카스 이 녀석, 어쩌다 혼자서 야수화를 각성한 거람…….’
나는 지난 방어전에서 루카스가 사용하던 야수화를 떠올렸다. 마치 한 마리 늑대처럼 일렁이던 내 기사의 모습을.
안 그래도 다시는 그거 사용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할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카르마 이터가 있다면?’
야수화를 사용해서 야수 성향 수치를 올린다→높아진 성향 수치를 카르마 이터에 먹여서 검기로 태운다→야수화를 사용해서 야수 성향 수치를 올린다…… 무한동력 가능한 거 아니야?
“으으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히 성향치 간보면서 외줄타기 하다가 홱 넘어지기라도 하면, 우리의 주인공 루카스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릴 수도 있다.
카르마 이터 먹은 김에 야수화 수치 오른 거 쫙 빼놓고 다시는 못 쓰게 해야지.
“후우.”
나는 오늘 먹은 아이템들을 쭉 정리해 보았다.
앞으로의 전선 운영이 어찌 흘러갈지 모르지만, 다들 도움이 될 것이다.
‘요긴하게 쓰마.’
이번 방어전에서 스러져간 목숨들을 한 번 더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숙였다.
너희의 목숨으로 얻은 전공, 결코 허투루 쓰지 않겠다.
‘……내 전용장비 다섯 개로 쪼개서 하나 준 건 좀 열 받지만.’
에라이, 그건 선 넘었잖아 솔직히!
***
다음 방어전까지 자유탐사는 가지 않기로 했다.
지난 전투의 부상이 아물지도 못했다.
파손된 장비도 마찬가지로 수리도 못했고. 남은 시간 동안 자유탐사까지 병행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파티원들을 휴식시키고, 망가진 장비를 고치고, 새로운 장비를 발주하고, 성벽과 아티팩트를 수리하고…….
그렇게 사흘 뒤.
나는 신전에 방문했다.
“주군.”
신전 내부의 수색 임무를 맡았던 루카스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카스. 좀 어땠어?”
“신전 내부를 샅샅이 수색했습니다만, 그때의 여신상 외에는 첩보행위에 쓰이는 물건은 없었습니다.”
“그렇군. 마르헤리타는?”
“그날 뒤로 사제장실에 틀어박혀 있습니다. 면밀하게 감시했습니다만, 특별히 수상한 짓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다만?”
머뭇거리던 루카스가 뒷목을 긁었다.
“계속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술을……?”
“네. ‘내가 왜 이런 신세가 되어야 하냐’ 뭐 이런 소리를 하면서…….”
“…….”
“그, 담배도…… 피우는 듯한…….”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성녀가 음주에 흡연까지 하고 있다고? 얼른 얼굴 보고 이야기 좀 해야겠군.
“조사하느라 고생 많았다, 루카스. 자, 이건 선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나저나, 선물이요?”
놀라는 루카스에게 나는 [카르마 이터]를 검집 째로 내밀었다.
루카스는 얼떨떨해하며 조심스럽게 받더니, 이윽고 환하게 웃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주군. 성은 장검에 이어서 또 이런 명검을 하사해 주시다니…… 소중하게 쓰겠습니다.”
마주 웃어 준 나는 카르마 이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사용한 ‘야수화’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검이다.”
야수화 이야기가 나오자 루카스의 어깨가 살짝 굳었다. 나는 그런 녀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툭툭 두들겼다.
“루카스. 네가 왜 그런 힘에 손을 댄 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사용하지 마라.”
“…….”
“그런 힘을 빌리지 않아도 너는 충분히 강해.”
루카스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주군, 저는…… 약합니다.”
“뭐?”
“이번에 셀렌디온을 상대로도 잠깐의 우위는 점했을지 몰라도, 결국 놈에게 압도당했습니다. 위험한 힘에 스스로 손을 뻗쳤건만, 괴물들은 여전히 저보다 강했습니다.”
검집을 쥔 루카스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저는 더 강해져야 합니다. 주군을 지키기 위해서는, 훨씬 더…….”
“루카스.”
나는 조곤조곤히 녀석을 타일렀다.
“강해지는 방법에는 여러 길이 있겠지. 하지만 나는 네가 정도(正道)를 걸었으면 한다. 느리더라도 착실하게, 조금씩 똑바로 전진했으면 한다.”
“…….”
“나를 위해서 애써 주는 건 고맙다. 하지만, 나를 위해서 너를 버려서는 안 돼. 이 점 명심해다오.”
루카스는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주군.”
정말로 내 말을 받아들인 건지, 아니면 듣는 척만 하고 앞으로도 야수화 같은 힘을 빌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카르마 이터 같은 안전장치를 걸어 두었으니 조금은 안심해도 되겠지.
“앗, 황자님! 오셨어요!”
그때 신전 안쪽에서 데미안이 쪼르륵 달려나왔다. 루카스가 데미안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사흘간 데미안이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덕분에 수색이 수월했습니다.”
“이곳 신전이 성실하고 좋은 곳이라는 사실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데미안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성녀님의 일은 유감이지만…… 다른 사제 분들은 그저 아픈 병사 분들을 치료하는 데에 전념하고 계세요. 황자님께서 부디 이 점을 알아주셨으면 해서…….”
“그래, 알았다. 알았어.”
피식 웃은 나는 [은밀한 새벽] 세트도 가방에서 꺼내서 데미안에게 건넸다.
“자, 데미안. 네 선물도 가져왔다.”
착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뿌리다 보니 어째 산타클로스라도 된 느낌인걸.
“적을 해치울 때마다 은신할 수 있는 장비다. 잘 쓰도록 해.”
“헉! 제, 제가 이렇게 좋은 걸 써도 되나요?!”
뭔 소리야, 치트 캐릭터 녀석아. 네가 우리 중에서 제일 좋은 걸 써야 한다고.
세트를 받아든 데미안이 입을 벌리고 우와아악 같은 소리를 내는 동안, 나는 데미안에게 신신당부했다.
앞으로 블랙 퀸은 세 발만 더 쏘고 그 뒤로는 사용 금지라고.
“알겠습니다! 세 발! 명심할게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데미안의 두 눈은 새 장비에 고정되어 있다. 이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방어구도 진작 맞춰줄걸 그랬군.
루카스의 도움을 받으며 데미안이 새 방어구를 착용하는 동안, 나는 신전 안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 그럼 나는 성녀님을 달래러 가 볼까?”
***
사제장실.
구석의 의자에 앉은 마르헤리타는 다크써클이 퀭한 얼굴을 테이블에 처박은 채, 술병을 입에 물고 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빈 술병 여럿과 꽉 찬 재떨이가 보인다. 아이고.
“…….”
이 처참한 모습을 보며 나는 이마를 짚었다.
마르헤리타는 언제나 게임상에서 내 주력 힐러였다.
신전을 꾸준히 이용하기만 하면 확정 채용이 가능한 데다, 다른 유틸이나 딜스킬은 없지만 힐과 실드 성능 하나는 걸출했기에 운용이 편리했다.
지옥철인 클리어 회차에서도 마지막까지 활약한 고정 멤버였다.
그동안 이곳 크로스로드에서도 항상 엄하고 반듯한 얼굴로 환자들을 치유하던…… 그야말로 ‘성녀’에 걸맞은 이미지였는데. 어쩌다 이리 되셨수.
“저는 그냥 순수하게, 다친 사람들을 치유하고 싶었습니다…….”
술에 취해 딸꾹거리는 목소리로 마르헤리타가 웅얼거렸다.
“그게 여신께서 제게 치유능력을 내려 주신 이유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딸꾹!”
“…….”
“그런데 대신전에서는 저를 막무가내로 사제장으로 승진시키더니…… 이곳 크로스로드로 발령시키고…… 그래도 사람들 치료하겠다고 왔는데, 난데없이 첩보활동을 시키질 않나, 전하께서는 괴수랑 싸우라고 성벽에 올리질 않나…….”
“……저기, 성녀님.”
“그러다가 첩보활동 발각당하고…… 다들 의심스러운 눈으로 나 쳐다보고…… 떠그럴, 진짜, 그러니까 이런 거 못한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개 같은 중앙 놈들…….”
“그, 성녀님. 일단 진정하시고.”
“이제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집에나 보내주십시오. 딸꾹. 성녀고 뭐고 때려치우고 퇴직시켜줘어…….”
“…….”
테이블에 이마를 쿵쿵 박기 시작하는 마르헤리타의 옆 의자에 나는 조심스럽게 앉았다.
“성녀님. 진정하시고 제 말 들어보세요. 어차피 이제 우리끼리 잘 해야 해요.”
“전하는 저를 성벽 위에 올릴 거잖습니까…… 싫어요, 괴수 무섭단 말입니다…… 절루가…….”
“괴수 문제는 미뤄 두고, 생각해 보세요 성녀님. 성녀님은 첩자였다는 사실이 적발당한 상황이에요. 심지어 첩보 수단까지 발각 당했죠.”
마르헤리타는 눈만 데구루루 굴려서 내 쪽을 봤다. 나는 싱긋 웃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대신전이고 암부고 전부 난리가 났을 겁니다. 전 대륙의 사제 첩보망이 전체 점검에 들어갔을 거예요. 어쩌면 암부가 그동안 구축해온 첩보 시스템 자체를 갈아엎고 있을 수도 있고.”
“……!”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성녀님이 저에게 걸렸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에요. 암부가 성녀님께 책임을 묻지 않을 리 없잖아요?”
얼굴이 하얗게 질린 마르헤리타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럼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최악의 경우,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당하겠죠.”
“허어억.”
“그러니까, 우리는 한 배에 탔다는 겁니다.”
고개를 가까이 한 나는 부드럽게 속삭였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완전히 제 편에 붙으세요. 성녀님. 중앙도 대신전도 아닌, 3황자 애쉬의 세력에 들어오세요. 그러면 안전하게 지켜드릴게요.”
“…….”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내 사람은 잘 챙겨 주거든.”
성벽 위에 세우기는 하지만 말이지.
눈앞의 괴수냐, 등 뒤의 인간이냐. 더 무서운 쪽을 피해서 선택할 시간이었다.
“어때요?”
내 제안에 마르헤리타는 울상이 된 얼굴로 웅얼거렸다.
“……어차피 제게는 다른 방도가 없잖습니까, 전하…….”
나는 빙그레 미소했다.
게임에서 항상 내 주력 힐러였잖아요, 마르헤리타. 이런저런 일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도 서로 잘 해봅시다.
***
그렇게 내홍(內訌)도 얼추 정리하고. 계속해서 방어전 준비를 거듭해나가서.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 나흘 뒤.
방어전 당일의 아침이 밝았다.
지난 일주일간 열심히 준비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여전히 영웅들은 잔부상을 입은 채였고, 발주한 장비는 제작이 덜 됐고, 성벽의 수리는 완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괴물들은 인간들의 사정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놈들이 옵니다-!”
척후병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나는 망원경을 치켜들고 남쪽 하늘을 보았다.
흐린 하늘을 가르고 수백 마리의 와이번들이 날개를 활짝 펼친 채 나타났다.
괴물의 편대가 일순 태양광을 가린 탓에 일대가 어둑해졌다.
씨발. 존나 많아.
영 안 내켰지만, 나는 옆에 선 루카스에게 물었다.
“황도로부터 지원군은?”
루카스도 영 안 내킨다는 듯 조심스레 대답했다.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여기서 ‘소식이 없다’ 함은, 북쪽으로 보낸 정찰병이 누구도 지원군이 오는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지원군의 규모가 크든 작든 육로로 온다면 내 정찰대가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런데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인 것이다.
나는 이를 까득 갈았다.
이 망할 중앙 새끼들……! 망할 둘째형!
‘지원군은 거짓이었나? 이렇게 나를 엿먹인다고?’
이러는 동안에도 와이번 군단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크로스로드를 향해 날아들어 오고 있었다.
이제 바로 코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