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Tyrant of a Defense Game RAW novel - Chapter 213
◈ 213. [Side Story] 마법사들 (2)
소집되었던 회의가 끝나고.
영웅들이 삼삼오오 흩어지는 때.
쥬니어가 영주 저택을 나가 자신의 호텔 방으로 향하려는데, 그 앞을 레이나가 가로막았다.
“어이, 쥬피터 딸.”
문에 비스듬히 몸을 기댄 채 길을 막은 꼬락서니가 꼭 3류 건달 같은데도, 노년의 마법사에게서는 기묘한 기품이 배어나왔다.
그게 재수 없어서 쥬니어는 눈살을 찌푸렸고, 레이나는 빙긋 웃었다.
“그 뒤로 계속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 찾아온 거야? 섭섭한데. 수명 늘리고 싶지 않아?”
“내 병은 내가 잘 알아요, 레이나 경.”
쥬니어는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그런 레이나를 휙 지나쳤다.
“수명을 늘린다니, 그런 일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알고요. 내가 이 병 나으려고 신전을 한두 군데 다녀 본 줄 알아요?”
“흐응. 신전이라.”
“무슨 속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허위광고에 속아서 속모를 상대 꿍꿍이에 빠질 만큼 바보는 아니에요.”
잰걸음으로 길을 걷는 쥬니어의 뒤를 레이나가 성큼성큼 따라붙었다. 쥬니어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다음 방어전 준비나 하시는 게 어떨까요? 세계의 뱀 요르문간드라니. 천하의 마법병단 총대장께서도 처음 상대하는 적일 듯한데.”
어떻게든 떨쳐 내려 했는데, 레이나가 갑자기 다른 소리를 시작했다.
“그거 알아, 쥬피터 딸? 일반적인 마법사는 한 가지 속성밖에 다루지 못한다는 거.”
“……?”
“하지만 간혹 드물게 여러 속성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가 나타나곤 해. 그리고 그런 다중속성 마법사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지. 뭔지 아나?”
레이나는 손으로 권총 모양을 만들며 빵야- 소리를 냈다.
“영유아기 때 마법 공격을 당한 경험이 있어.”
“…….”
“어린 시절 당한 마법 속성의 원소가 마력로인 심장에 깃들고, 강제로 그 속성 원소의 감응 능력을 각성하게 되는 거지.”
쥬니어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런 레이나를 노려보았다. 레이나는 입가에 주름을 감으며 미소했다.
“네가 어린 시절에 휩쓸렸던 마법 공격은 쥬피터의 벼락, 그리고 나의 바람. 그래서 네가 벼락과 바람을 다룰 수 있게 된 거지. 네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물 속성까지 포함해서 삼중속성 마법사가 된 거고.”
“……뭘 말하고 싶은 거죠?”
“쥬피터처럼, 나도 네 마법의 원천 중 하나라는 거지. 너의 마법적 부모……라고 할까?”
홱!
쥬니어는 자신의 지팡이를 레이나에게 겨누며 사납게 으르렁댔다.
“한 번만 더 그따위 역겨운 소리 내뱉었다간 죽여 버리겠어요.”
“워워, 진정하고 더 들어봐.”
레이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네가 마법을 쓸 때마다 피를 토하고 몸에 무리가 오는 건, 심장에 새겨진 마력의 상흔 때문이야. 정확히는 심장 안에 잔류하는 ‘타인의 마법 원소’ 때문이지. 이게 네 마력로에 계속 상처를 새기고 부담을 가하고 있어.”
“…….”
“그런데 나는 네 심장에 남은 바람 원소의 주인이지. 게다가 대륙에서 가장 세밀한 마력 컨트롤이 가능한 ‘칼바람’ 님이야. 나라면 그 찌꺼기들을 깨끗하게 치워 줄 수 있어.”
레이나는 검지를 뻗어 쥬니어의 왼쪽 가슴팍을 가리켰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마력로의 부담이 줄 테고, 네 심장도 튼튼해질 거고, 수명도 늘어나겠지. 어때, 납득했어?”
“……이해는 했어요.”
그래, 원리는 이해했다. 하지만.
“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나를 도우려 하는 거죠? 당신 말대로 마학에 종사하는 입장이라서? 아니면, 같잖은 죄책감? 알량한 선민의식? 무엇 때문에?”
레이나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일이 이 여자에게 대체 무슨 이득이 있단 말인가? 왜 도우려고 하는 건가?
레이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중요해? 당장 오늘내일 하는 주제에? 내게 이 시술을 받으면, 적어도 시금치 토마토 씹어 먹는 것보다야 확실히 네 건강에 도움이 될 텐데.”
“…….”
“됐고 Yes or No로만 대답해. 나도 싫다는 사람 구질구질하게 붙잡는 그런 여자 아니야.”
쥬니어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고민했다.
레이나는 그런 쥬니어를 보며 코웃음 쳤다.
“너야말로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괜한 기회를 차는 거 아니야?”
“……!”
“내가 싫은 건 이해하지만, 잠깐 굴욕을 참으면 목숨이 늘어날 수 있는데. 자존심 챙긴답시고 이런 기회를 날리는 게 더 바보 같은걸?”
레이나는 검지로 쥬니어의 이마를 톡톡 쳤다.
“마법사답게 행동해, 애송이. 마법사답게!”
“…….”
“단 하루라도 더 살아서 마법 성취를 증진시킬 수 있다면,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아서 살아야지. 그게 마법사잖아. 안 그래?”
쥬니어는 입을 꾹 다물고 그런 레이나를 불만스럽게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
……결국 레이나의 방에 왔다.
병영 3층의 장교 숙소. 혼자서 방 두 개를 차지한 레이나는 방에 들어서자마자 장교 군모를 벗더니 휘휘 돌려 아무렇게나 던졌다.
“길게 끌 거 없지. 바로 시작하자고.”
레이나의 방은 쥬피터의 그것처럼 생활감이 없었다. 방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옷가지 몇 벌과 담뱃갑이 전부였다.
‘떠돌이 군인은 다 이런 건가.’
쥬니어는 타인의 방 특유의 어색함과 불편함에 머뭇거렸다. 그런 쥬니어에게 레이나가 씩 웃으며 턱짓했다.
“거기 의자든, 소파든, 아니면 침대든 편하게 앉아. 아, 상의는 다 탈의하고.”
“네?”
“그럼 이제부터 내 마력을 네 마력로 안으로 침투시킬 건데, 옷 입고 하게? 다 걸레짝 될걸?”
“큿…….”
아무리 동성이라고 해도 벗은 몸을 남에게 보여 주는 것은 꺼려졌으나, 목숨 연장이 걸린 일이었다.
쥬니어는 마지못해 뒤돌아선 채 윗옷을 벗었다.
드러난 쥬니어의 좌반신에는 화상이 얼기설기 남아 있었다.
15년 전 그날, 쥬피터와 레이나의 폭격에 휩쓸려 남은 상처였다.
“…….”
어린 마법사의 깡마른 등에 새겨진 상처를 레이나는 무표정하게 내려다보았다.
고깔모자도 벗어 내려둔 쥬니어가 뒤를 돌아보고 눈을 흘겼다.
“그래서, 그 ‘시술’을 하실 동안 나는 뭘 하면 될까요?”
“딱 하나만 해.”
씩 웃으며 레이나는 자신의 손을 쥬니어의 왼쪽 날개뼈 위에 올렸다.
“까무러치지 않기.”
서늘한 손길에 움찔하기도 잠시, 레이나의 손끝에서부터 날카로운 칼날 같은 마력이 쥬니어의 몸 안으로 새어 들어왔다.
“크흑…….”
고통이 엄청났다. 쥬니어의 꽉 깨문 아랫입술에 피가 맺혔다.
“크하…… 아으으윽……!”
심장 주위를 수천 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했다. 쥬니어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통을 견뎌 냈다.
두 눈을 꽉 감고 세밀하게 마력을 움직여 시술을 이어가며, 레이나는 비 오듯 식은땀을 쏟아냈다.
“버텨, 쥬피터 딸. 조금만 더……!”
***
시술은 15분 만에 끝났지만, 쥬니어도 레이나도 탈진하다시피 힘을 다 써 버려서 각자 소파의 양쪽 끝에 늘어졌다.
“주…… 죽을 뻔 했어…….”
시술 마지막에 코피와 각혈이 쏟아진 탓에 쥬니어의 입가는 붉었다.
레이나 또한 극도로 세밀한 마력 운용으로 무리한 탓에 코피가 터진 상태였다. 천으로 코를 틀어막고 레이나가 말했다.
“하는 김에 네 마력로 안에 남아 있던 쥬피터의 벼락 마법 원소도 긁어 냈어. 물론 전부 다는 못했고…… 앞으로 세 번 정도만 더 하면 대충 시술이 끝날 거 같네.”
“이 짓을 세 번 더 하자고요……? 진심이에요?”
“흥. 효과를 느껴 보면 네가 먼저 더 해 달라고 매달리게 될걸.”
레이나의 핀잔에 쥬니어는 가볍게 손끝에 마력을 모아 보았다.
‘어라?’
항상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뻐근하던 왼쪽 가슴이 가벼웠다.
가슴을 답답하게 압박해 오던 이물감도 훨씬 줄어들었다. 쥬니어는 손끝에 맺힌 마력을 이리저리 옮겨 보며 작게 입을 벌렸다.
‘마력 운용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몸에 가해지는 부담이 현저하게 줄어 있었다. 레이나의 시술은 정말로 효과가 있었다.
“이제 좀 내 말을 믿겠어?”
의기양양하게 미소하는 레이나에게 쥬니어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정말로…… 효과가 있네요. 고맙습니다.”
“이제 은혜를 갚아야겠지?”
“네?”
“그럼 이 힘든 시술을 공짜로 받으려고 했어? 그건 너무 양심 없잖아?”
레이나의 뻔뻔한 미소가 짙어졌다. 쥬니어는 배알이 뒤틀렸다.
아니, 확실히 효과도 좋고 고맙기야 한데, 애초에 몸이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레이나였잖은가.
그래 놓고는 강매하듯 등 떠밀어 시술을 받게 하고, 바로 대가를 운운하는 레이나가 곱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생각보다 가벼운 것이었다.
치익-
담배를 입에 물고 성냥으로 불을 붙인 레이나가 툭 내뱉었다.
“이야기나 좀 해 줘.”
“네? 이야기?”
“그 뒤로 어떻게 살았는지. 쥬피터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들어오게 됐는지.”
후우-
길게 연기를 뿜어내는 늙은 마법사의 옆얼굴은 깊은 회한에 잠겨 있었다.
“내가 모르는 너와 네 엄마의 15년을, 알려 줘.”
“…….”
잠시 할 말을 잃었던 쥬니어가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그거면 되나요?”
“그거면 돼.”
“……당신을 잘 이해할 수가 없네요.”
“이해할 필요 없어.”
레이나는 입술로 담배 끝을 뭉개며 쓰게 웃었다.
“나도 잘 모르겠거든. 이제 와서 왜 이러는지…… 나이 먹을 만큼 먹으니까 감성적이 되는 건지.”
“…….”
“늙은 아줌마의 주책이라고 생각해도 되니까…… 어때?”
치익-
쥬니어는 곰방대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약초 내음이 곰방대 끝에서 몽글몽글 피어 올랐다.
“좋아요. 대신, 나한테도 말해 줘요.”
“뭘?”
“우리 엄마의 젊었던 시절에 대해서요.”
쥬니어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내뱉었다.
“당신이 겪었던, 젊고 어렸던 쥬피터에 대한 이야기를요.”
“…….”
레이나는 빙그레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꺼이 그러도록 하지. 쥬피터 쥬니어.”
***
같은 시간. 병영 1층.
형벌부대가 머무르는 숙소.
“그런데 정말로 그렇게 거대한 뱀이 존재할까요?”
“저번에는 엄청 커다란 슬라임한테 삼켜졌잖아! 그 끈적거리던 위장 기억해? 그렇게 큰 젤리도 있는데, 뱀이라고 없겠어?”
“그런 뱀의 위에 올라타서 사흘간 전투를 벌인다니…… 정말 우리가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못 해내면 우리의 고향까지 위험해진다고 하니까…….”
쿠일란의 파티 5인이 둘러앉아 이번 방어전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쾅-!
느닷없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숙소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기겁한 쿠일란과 휘하 산적들이 그쪽을 보자,
“나와.”
무표정한 얼굴로 루카스가 서 있었다.
그 뒤에는 에반젤린이 품에 목검 여러 자루를 든 채,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두 눈을 반짝이며 이쪽을 살피는 중이고.
당황한 쿠일란이 물었다.
“나오라니? 어디로 나오라는 거요, 기사님?”
“이쪽으로 나오면 연무장 있잖아. 그쪽으로 오라고.”
“아니, 느닷없이 연무장은 왜…….”
쿠일란이 무어라 더 말하기도 전에,
부웅!
루카스가 손에 들린 목검을 대뜸 내리쳤다.
“우왓?! 뭐하는 짓거리야, 기사님?!”
투학!
기겁한 쿠일란이 가까스로 주먹을 휘둘러 그 목검을 걷어냈다.
당황하는 쿠일란 파티에게 에반젤린이 각자 목검을 하나씩 던져 주었다.
어리둥절해하며 목검을 쥐는 산적들에게 루카스가 으르렁댔다.
“연무장까지 안 나올 거면, 여기서 하는 수밖에.”
“하, 하다니, 대체 뭘…….”
부우웅!
문답무용.
루카스는 설명 대신 목검을 거칠게 휘둘렀고, 산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가까스로 그 공격을 피해 냈다.
“아하! 알겠다!”
급하게 건틀릿을 차고 루카스의 목검을 받아 낸 쿠일란이 소리쳤다.
“곧 닥쳐올 방어전에 앞서 우리를 훈련시켜 주려는 거군!”
“…….”
“우리가 대 괴수전에 약하니까, 일부러 그렇게 짐승처럼 사납게 우리를 공격하는 거고! 그렇지?!”
“…….”
“이렇게 세심하게 우리를 걱정하고 챙겨 줄 줄이야! 보기보다 사람이 좋구만, 기사님!”
루카스는 즉답했다.
“아닌데?”
“엑……?”
“그냥 너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조금 두들겨 패주고 싶어서 이러는 것뿐이야.”
지나치게 솔직한 루카스의 새파란 두 눈이 등불처럼 일렁였다.
“네놈들, 지난 방어전에서는 민폐를 잔뜩 끼쳤겠다? 이번에는 안 돼. 그렇게 두느니 차라리 이곳에서 팔다리 분질러서 아예 전선에 못 나오게 하는 게 낫다. 그리고, 그렇게 할 것이다.”
형벌부대의 5인은 동시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괴수는 상대 못해 봤어도, 제국군은 기가 질릴 만큼 상대해본 쿠일란 파티였다. 이들은 직감했다.
눈앞의 기사는 진심이다.
진짜로, 자신들을 패서 죽이려고 하고 있다……!
“똑바로 자세 잡아, 오합지졸 산적놈들아.”
목검을 앞으로 겨누며 루카스가 사납게 으르렁댔다.
“너희를 산적이 아닌 군인으로 만드는 마법을 보여 줄 테니까.”